74화
머리가 지끈거렸다. 목은 여전히 텁텁하고 불쾌했다.
“콜록!”
눈앞에는 이미 빠져나왔던 지하의 비밀 서고가 펼쳐져 있었다. 불에 활활 타오르는 책장과 그 밑에서 타고 있는 책들.
그리고 책장 아래에 깔려 정신을 잃은 란의 모습.
“안 돼!”
어떻게든 란을 구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몸이 절로 움직였다.
내가 란이 있는 곳을 향해서 달려가던 바로 그때.
우득!
위에서 뜯겨 나온 나무판자가 그대로 나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피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몸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두 손으로 머리와 얼굴을 가리고서 눈을 질끈 감았다. 그야말로 지옥 같은 풍경이었다.
“악!”
다시 눈을 뜨니 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면서 나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책상과 옷장이 놓인 위치. 그리고 머리 위로 내리쬐는 햇볕까지.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공간이었다.
“이제 정신이 드신 모양이군요.”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일전에 봤던 여자 의원이 앉아 있었다.
“항상 이런 일로 마주하게 되어서 마음이 좋지만은 않네요. 언제나 위험한 곳에 드나드는 게 직업이다 보니 어쩔 수는 없으시겠지만.”
“제가 어떻게 여길……. 콜록!”
“무리해서 얘기하지 마세요. 연기를 꽤 들이마신 터에 목이 꽤 아프실 테니까 말이죠.”
대수롭지 않게 대꾸한 의원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내 맥박과 호흡을 확인하고 얼굴의 여기저기를 살핀 의원은 옆에 있던 의자에 털썩 자리를 잡고 앉았다.
“몸은 좀 어떠시죠?”
“말해주신대로 목이 정말 아프네요.”
“네, 한동안은 머리가 어지럽고 현기증도 자주 올 수 있어요. 기침도 물론이고요. 다행스럽게도 그것 외에는 특별한 게 보이진 않네요.”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하는 건지, 운이 나쁘다고 해야 하는 건지.
의원이 나지막이 속삭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무슨 천방지축 어린애를 보는 듯한 태도잖아! 이래 봬도 사람까지 구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아.”
머릿속으로 란의 생각이 스쳐 지나감과 동시에 다급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방 안에는 의원과 나만 있을 뿐, 다른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저 말고 다른 사람이 함께 있었을 텐데요.”
“네, 그랬죠. 방금 그 사람도 보고 온 참이에요. 오늘 하루에 몇 명의 환자를 돌봤는지, 이제는 몸이 찌뿌둥할 지경이네요.”
의원이 어깨를 돌리면서 무심하게 대꾸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의원의 하루가 얼마나 고달픈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럼 함께 온 그 여자는 지금 어디 있어요? 무사한 거죠?”
“탐정님, 죄송하지만 그건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아닌 듯하네요.”
“네?”
의원이 단호하게 선을 그으면서 말을 이었다.
“의원에게는 환자의 정보를 누설해서는 안 되거든요.”
“하지만, 제가 일어났다거나 제가 어떻다는 얘기는 루베르에게 전부 하실 생각이잖아요?”
“아, 물론 절 고용한 대공 저하를 제외하고는 말이죠.”
그럼 의원의 마음가짐 따위는 전혀 당신과 상관없는 거잖아.
모순적인 말에 반박하기 위해서 입을 뗀 순간, 의원이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런, 시간이 되었네요. 그럼 편히 쉬세요. 한동안은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특히 뛰어다니시는 건 더욱요.”
“저기요!”
“앞으로는 이런 일로 뵙는 일이 없길 바라지요. 그럼 편히 쉬시길.”
의원은 그대로 왕진 가방을 들고서 방을 나섰다. 더는 내게 볼일이 없다는 듯이.
쾅!
문이 닫히고 나서 어두운 적막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한동안은 무리하지 말라고?”
그럴 수 있을 리가 있나. 나는 빠르게 침대를 벗어나 문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조력자인 란이 어떤 정보를 알고 있는지가 지금 내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었으니까.
“너 어디 가려고?!”
“그 여자를 만나야겠어.”
“뭐? 무슨 여자?”
포피가 침대에서 일어나 펄쩍 뛰어댔다.
“한동안 침대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얘기는 못 들었어? 루가 너를 얼마나 걱정했는데!”
“그건 알지만 나도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
“그게 꼭 지금이어야만 되는 건 아니잖아!”
“지금이어야 해!”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며 대꾸하자 포피가 낑, 소리를 내면서 침대로 들어갔다.
축 처진 귀를 보고 있자니 양심이 콕콕 찔렸다.
사실 포피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그저 날 걱정해줬을 뿐인데, 내가 예민하게 반응한 일이었으니까.
“미안해.”
“됐어! 가든 말든 네 마음대로 해!”
포피가 씩씩대면서 돌아누웠다. 화를 내는 포피와 더 대화하는 건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다녀와서 다시 얘기하자.”
노란 등이 작게 움찔댔지만, 포피는 결코 내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시간이 없었다. 분명 내가 깨어난 걸 알면 루베르와 루시까지 이곳으로 찾아오겠지.
‘그전에 어떻게든 란을 만나야만 해.’
따로 얘기할 시간은 없을 게 분명했다. 어떻게라도 지금 만나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빠르게 문손잡이를 잡고 그대로 밀었다.
“어디를 가는 겁니까?”
“그야 물론…….”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물음에 나도 모르게 곧이곧대로 답할 뻔했다.
말도 안 돼. 이렇게 빠르게 도착했다고?
시선을 들어 올리자 그곳엔 내가 생각한 대로 루베르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분명 쉬라는 얘기를 듣지 않았나요? 아스텔라?”
듣기는 했지요. 그런데 시간이 없으니 이러는 거 아니겠어요.
나는 차마 내뱉지도 못할 그 말을 삼키면서 슬쩍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루베르는 조금의 미소도 짓지 않은 딱딱한 표정으로 나를 그대로 막아섰다.
“왜 벌써 움직이려는 겁니까.”
“저 정말 멀쩡해요. 이제 움직여도 괜찮을 것 같아요.”
“아직 몸이 다 낫지 않았다고 보고 들었습니다.”
루베르는 절대로 비켜설 것 같지 않았다.
아, 이러면 곤란한데.
어떻게든 멀쩡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움직이려던 바로 그때, 눈앞이 순식간에 흐려졌다.
“어?”
“아스텔라!”
일순간 루베르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그가 내 허리를 감싸고 나를 받쳐 들었다.
“이런데 뭐가 괜찮다는 겁니까.”
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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