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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속 대공을 구출하겠습니다 (73)화 (73/120)

73화

“아스텔라!”

루베르는 깊숙하게 침투하는 연기에 코와 입을 가렸다.

쨍그랑!

벽 쪽으로 바짝 붙어선 루베르가 곧이어 테라스로 이어지는 문의 유리를 깨부수자 그의 앞을 막고 있던 연기가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 정도면 앞을 볼 수 있겠지.

루베르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한시라도 아스텔라와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지하에서 시작되었다던 화재는 어느새 계단을 올라와 1층까지 덮친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지하로 내려갈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아니, 방법이 없더라도 꼭 가고야 말겠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루베르는 옆에 차고 있던 크리튼을 매만졌다.

아직 한 번도 시험해보지는 않았지만, 크리튼의 마력을 몸에 두른다면 충분히 저 화력을 뚫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는 하는 수밖에 없지.’

황궁 내에서 마력을 사용한다는 게 얼마나 큰 위험 부담을 안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실제로 조심성이 많은 황제는 자신을 죽이려 시도하는 마법사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마력 억제기를 군데군데 설치해두었으니까.

그런 와중에 마력을 사용한다는 건 자신의 생명을 깎아 먹는 것과 다름이 없는 행동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아스텔라를 구할 방법은 이제 이것뿐이었으니까.

루베르가 고민 끝에 크리튼을 빼 든 바로 그때였다.

“콜록!”

어디선가 들리는 기침에 루베르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루베르는 벽을 딛고 천천히 걸어가 다시 한 번 옆 테라스에 있던 창문을 깨부쉈다.

휘잉!

연기가 밖으로 나감에 따라 시야가 조금은 더 확보되었다.

루베르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천천히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걸어갔다.

“사, 살려주세요!”

흐느낌이 약간 섞인 여자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루베르의 사고가 정지했다.

확실했다. 이 목소리는 그가 그렇게나 듣고 싶어 하던 아스텔라의 목소리였다.

“아스텔라?”

대꾸는 없었다. 루베르는 바짝바짝 목이 탔다.

대체 왜 대답하지 않는지. 한시라도 빠르게 저곳에 가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아직도 시야는 뿌옇고 앞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루베르는 결국 이 상황을 참지 못하고 검을 빼 들었다. 더는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휘잉!

크리튼을 허공에서 한번 휘두르기가 무섭게 바람이 일었다.

“큭.”

곧이어 마력 억제기가 발동함에 따라 루베르의 속이 일순간 콱 막혔다.

부작용이었다. 루베르는 저 구석부터 들끓어 오르는 피를 억누르면서 걸음을 뗐다.

바람이 연기를 흩트려놓은 덕분에 저 앞에 쓰러진 사람 형체가 보였다.

“아스텔라!”

아스텔라가 바닥에 쓰러진 걸 보는 순간 루베르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점멸했다.

이제는 마력을 사용해서 느꼈던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루베르는 몇 번이나 크리튼을 더 휘두르면서 아스텔라의 앞으로 다가갔다.

“아스텔라, 정신 차려요!”

루베르는 아스텔라의 몸을 안아 들면서 주변을 살폈다.

아스텔라의 바로 옆 바닥에 구멍이 나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타일 하나가 들렸다고 하는 게 맞을까.

루베르는 구멍 속으로 보이는 사다리를 보고서 아스텔라가 어디서 나타난 건지를 눈치챘다.

“하.”

역시 대단한 사람이었다.

아스텔라는 그런 와중에도 희망을 놓지 않고 이렇게나 똑똑하게 비밀 출구를 발견한 것이다.

잠깐이나마 표정이 누그러들었던 루베르의 시선이 곧이어 아스텔라의 앞에 쓰러진 여인에게 향했다.

“설마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루베르는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모를 리가 있나. 그렇게나 얘기를 주고받던 수장의 딸이 눈앞에 있는데.

붉은 머리칼에 목 언저리에 보이는 작은 별 모양 흉터.

확실했다. 저 여자는 아멜 공화국의 새로운 여자 수장이었다.

대체 밑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묻고 싶은 얘기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지금은 일단 여기서 탈출하는 게 우선이었다.

루베르가 아스텔라를 끌어안으며 자세를 고쳐 잡으려던 그때였다.

“윽!”

“아스텔라, 정신이 듭니까?”

이윽고 아스텔라의 잿빛 눈동자가 천천히 드러났다.

그렇게나 마주하던 눈인데, 루베르는 이 눈동자와 다시 마주할 수 있게 된 게 너무 고마웠다.

“루베르.”

“말할 수 있겠어요? 무리하지 마십시오. 이제 다 괜찮습니다.”

“절 구하러 와주신 거군요. 고마워요. 콜록!”

“기관지가 많이 상했을 겁니다. 더는 말하지 마세요.”

루베르는 곧바로 자신의 망토 자락을 잘라 아스텔라의 코와 입을 가렸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잠깐만요. 루베르, 그녀도 데려가야 해요.”

“네?”

떨리는 아스텔라의 손길이 루베르의 뒤에 쓰러진 란에게로 향했다.

“부상이 심각해요. 치료하지 않으면 죽고 말 거예요.”

“안 그래도 데려가려 했습니다.”

루베르는 싱긋 미소를 지으면서 아스텔라를 한 손으로 번쩍 안아 들었다.

어차피 란을 구하는 건 루베르가 하려고 했던 일 중 하나였다.

새로운 수장이 왜 여기에 오게 된 건지, 어째서 협조 요청에 답장하지 않은 건지.

그녀에게 물어볼 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적어도 여기서 죽게 내버려둘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고마워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아스텔라가 그 말과 동시에 다시 눈을 감았다.

기절한 탓에 몸의 힘이 모두 빠져 무거울 만도 한데, 루베르는 그런 기색 하나 없이 그녀를 한 손으로 번쩍 들고 있었다.

아스텔라의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고 있던 루베르의 턱에 힘이 실렸다.

위험한 일임은 대충 직감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런 위험 속에 그녀를 혼자 밀어 넣다니, 멍청한 자식.

역시 자신이 따라갔어야 했다. 그랬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루베르는 그때 했던 자신의 선택을 미치도록 후회했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고 손이 떨릴 정도로 화가 났지만, 지금은 감정에 휩싸여 있어선 안 됐다.

아스텔라가 정신을 잃기 전에 부탁한 일을 외면하고 있을 생각은 없었으니까.

몸을 일으킨 루베르는 곧바로 뒤에 있던 란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어깨 위로 둘러멨다.

“저하!”

저 멀리서 연기를 헤치고 들어온 루베르의 호위, 마틴이 자연스럽게 란을 받아 들었다.

“그 여자는 절대로 들켜서는 안 되는 존재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겠지.”

“네, 알겠습니다. 대공 성에서 뵙겠습니다.”

그 말을 마친 마틴이 테라스를 통해 빠른 속도로 성을 빠져나갔다.

루베르는 마틴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후에 곧바로 들어왔던 곳으로 돌아 나섰다.

한시라도 아스텔라를 이 지옥과도 같은 풍경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었다.

* * *

“콜록, 콜록!”

“여기, 내 아내를 봐줄 의원은 없나?!”

밖으로 나오자 상황은 말 그대로 난리였다.

루베르는 여기저기 바쁘게 움직이는 황궁의 의원들을 슬쩍 살피고는 빠르게 걸음을 뗐다.

이곳에 있어봐야 시끄럽기만 할 뿐이었다.

아스텔라의 상태는 다행스럽게도 연기를 조금 마신 것 외에는 특별한 외상이 없었다.

숨도 고르게 쉬고 있는 데다가 상태도 나쁘지 않았다.

‘여기 있는 것보다는 내 성으로 데려가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어.’

무엇보다 황궁에 있는 녀석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더욱이 그들에게 손을 빌렸다가 괜히 다른 말이 나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루, 루베르.”

“정신이 듭니까, 아스텔라?”

아스텔라의 목소리를 들은 루베르가 냉철한 판단을 할 때는 언제였냐는 듯이 반응했다.

“네, 이제는 좀 괜찮은 것 같아요. 내려주셔도 돼요. 콜록!”

“아직 기침이 멎지 않았습니다.”

“괜찮아요. 연기를 너무 많이 마신 것뿐이에요. 걸어서 갈 수 있어요.”

루베르의 얼굴이 삽시간에 구겨졌다.

“루베르?”

웬만하면 아스텔라가 원하는 대로 들어주려고 하고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다.

“안 됩니다. 이대로 성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네?! 콜록!”

웅성웅성.

주변에 있던 귀족들의 시선이 점점 루베르와 아스텔라를 향했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아마 내려달라고 얘기한 거겠지.

하지만, 루베르는 절대로 그녀를 내려놓을 생각이 없었다.

“정말로 괜찮은데.”

“아니요, 제가 괜찮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제 말을 들어주세요.”

아스텔라가 웅얼거리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내려다본 아스텔라의 손은 아직도 그 안에서 있었던 두려움 때문인지 파르르 떨고 있었다. 역시 그녀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루베르가 바삐 걸음을 옮기려고 한 그때였다.

“괜찮은 건가?”

저 멀리서 달려온 카룬이 헝클어진 머리를 한 채로 물어왔다.

괜찮냐고? 지금 이게 어떻게 괜찮아 보인단 말인가.

카룬의 물음은 루베르의 분노와 원망을 터뜨리기엔 아주 충분했다.

“분명 위험한 일은 없을 거라 했는데 결국 또 거짓말이었군.”

루베르가 주변을 의식하면서 작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일이 이렇게 될 거라곤 나조차 상상하지 못했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아스텔라, 혹시…….”

“본인의 일을 처리하느라 지금 아스텔라의 상태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건가.”

루베르의 적안이 매섭게 번뜩였다.

그제야 카룬은 이으려던 말을 중지하고 입을 닫았다.

자신이 얼마나 안이한 행동을 한 건지 이해한 듯 보였다.

“미안합니다. 바로 황궁의 의원을 붙여드리지요. 상태가 호전되면 그때 돌아가시는 걸로…….”

“네 말은 이제 믿지 않아. 나는 이대로 대공 성으로 돌아간다.”

“뭐? 하지만…….”

가까이 다가온 루베르가 남아 있던 한 손으로 카룬의 어깨를 세게 붙잡았다.

“큭.”

힘이 잔뜩 실린 분노가 느껴진 걸까. 카룬이 낮게 신음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카룬을 붙잡고 있던 루베르의 손도 풀렸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에 아스텔라를 이용하지 마.”

“…….”

“이건 경고 따위가 아니야. 이젠 한계라는 걸 통보하는 거지.”

말을 마친 루베르는 그대로 뒤로 돌아 준비되어 있던 대공의 마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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