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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속 대공을 구출하겠습니다 (66)화 (66/120)

66화

“탐정님, 어서 일어나셔야 해요!”

루시의 재촉과 함께 굳게 감고 있던 눈 위로 환한 햇살이 쏟아졌다.

나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돌아누웠다.

‘어제 제대로 자지도 못했는데.’

계속해서 떠오르는 축제의 기억에 밤잠 설치다가 겨우 잠에 든 게 몇 시간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벌써 일어나라니. 그것도 아직 이렇게 이른 아침에.

짹짹.

내 말이 정답이라도 하다는 걸 인정하듯 밖에서 참새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아직은 너무 일렀다.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 썼다.

“루시, 아직 이른 아침이잖아. 왜 그래?”

“준비하려면 지금부터 해도 빠듯하다고요.”

“뭐? 무슨 준비?”

“전하의 생일 연회에 가실 준비요! 벌써 드레스가 도착해 있다고요.”

아, 맞다. 그랬지. 생각해보니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네.

나는 무거운 눈을 억지로 뜨면서 바깥 상황을 살폈다.

루시의 뒤로 보이는 문밖엔 이미 많은 하녀가 방으로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 좋은데 아직은 너무 이르지 않아?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저항했다.

“루시, 조금만 더 있다가 시작해도 늦지 않아.”

“무슨 소리세요? 화장에 머리까지 만지려면 바빠요!”

“나는 화장도 안 할 거고, 머리도 그렇게 만질 게 없잖아. 이 짧은 단발에 뭘 할 게 있다고 그래.”

“네? 얼마나 하고 싶은 머리가 많은데요!”

루시는 끊임없이 잔소리를 이어갔다.

얼마나 더 이어졌을까. 결국 항복하게 된 건 나였다.

“최대한 눈에 안 띄게 부탁해.”

“절대 그럴 순 없어요. 거기에 얼마나 많은 영애가 꾸미고 오는데요. 저희도 준비를 단단히 했다고요.”

아니, 내가 괜찮다는데 너희가 무슨 준비를 그렇게 했는데?

내가 황당한 마음을 담아 쳐다보자 루시가 헛기침하며 내 눈을 피했다.

‘이전에는 이렇게 내 눈을 피하지 않았잖아, 루시?’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루시는 내 쪽을 바라보지도 않고 뒤에 있던 하녀들에게 말했다.

“준비, 다 됐어요. 언니들!”

“실례하겠습니다, 탐정님!”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안으로 들어온 하녀들에 의해 내 몸이 반강제적으로 일으켜졌다.

“자, 잠시만요!”

하지만, 이미 하녀들의 귀에 내 말은 닿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욕실로 거의 끌려가듯이 들어갔다.

* * *

루베르는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1층 로비로 나섰다.

정복이 꽤 불편했지만, 황궁에 가는 이상 괜히 흠 잡힐 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댕, 댕.

괘종시계가 6시를 알리며 크게 울었다.

꿈속에서는 그렇게 저 소리가 무서웠는데,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는 게 신기했다.

루베르가 헛웃음을 내뱉으면서 시계를 바라보고 있던 그때였다.

“루베르, 준비가 벌써 끝났어요?”

사랑스러운 목소리.

루베르의 시선이 절로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향했다.

곧이어 루베르의 적안이 크게 뜨였다.

“아스텔라.”

“죄송해요, 솔직히 일하시는 분들의 말을 안 믿었거든요. 제가 늦은 게 맞았군요.”

아스텔라가 허겁지겁 계단을 내려오면서 횡설수설 말을 이었다.

하지만, 루베르의 눈에는 지금 그 어떤 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어제 보았던 노란 드레스를 입고서 화장까지 한 아스텔라 이외에 보이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하겠지만.

왜 진작 눈치채지 못했을까. 이렇게까지 확실한데.

루베르는 여태껏 자신의 감정을 모르고 있었다는 게 어이가 없어질 노릇이었다.

“괜찮으니까 천천히 내려오세요, 아스텔라.”

“아니에요, 7시까지 가야 한다면서요. 어서 가야지……!”

별안간 아스텔라의 몸이 옆으로 기울었다.

루베르는 누구보다 빠르게 계단 앞으로 달려가 아스텔라의 몸을 받아 들었다.

“괜찮습니까?”

“네, 네!”

아스텔라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아스텔라의 귓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루베르는 문득 그 귀를 깨물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하지만, 루베르는 그럴 수 없음을 알고서 감정을 억눌렀다.

그렇게 한다면 저 작은 탐정님은 분명 멀리 달아날 테지.

루베르는 자신을 멀리하는 아스텔라의 모습을 보고 평정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발목은 괜찮습니까?”

“네, 괜찮은 것 같아요. 고마워요.”

아스텔라가 목덜미를 매만지면서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루베르는 그걸 애써 못 본 척하며 자신의 왼손을 내밀었다.

“혹시 모르니 잡고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물론 그건 핑계에 불과하고 결국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함이었지만.

“네, 미안해요.”

“미안해하지 말아요.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으니까요.”

아스텔라의 온기가 손을 타고 느껴지자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평온함과 더불어 이 온기가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루베르는 손에 힘을 주었다.

“루베르?”

갑자기 힘이 들어간 손 때문인지 아스텔라가 루베르를 올려다봤지만, 루베르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놓치고 싶지 않다. 그녀를 이렇게 영원히 자신의 곁에 둘 수만 있다면.

“루베르!”

아스텔라가 다시 한 번 부르는 목소리에 루베르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루베르는 빠르게 표정을 갈무리하고서 그녀를 향해 미소 지었다.

헉.

주변에서 들리는 사용인들의 경악에 찬 음성이 들렸지만, 지금은 그걸 탓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도 이런 자신의 행동이 낯설기 그지없었으니까.

“미안합니다. 그럼 이제 가보도록 할까요.”

“네, 가요!”

아스텔라가 루베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루베르는 저도 모르게 올라오는 입꼬리를 애써 내리려고 하면서 아스텔라의 걸음에 발을 맞추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황궁으로 가는 마차까지 함께 걸어갔다.

* * *

마차는 빠르게 황궁에 도착했다. 몇 시간은 걸릴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사람들이 많을 거라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황궁 주변은 한산했다.

‘다들 먼저 들어가 있는 건가?’

고민하고 있던 그때 옆에 있던 루베르가 손을 내밀었다.

“안으로 들어가죠.”

“아, 네!”

자연스럽게 루베르의 손을 붙잡은 찰나, 문득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안에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지금 이대로 들어가게 되면 시선이 확 집중될 거 아냐.’

나는 고개를 올려 루베르의 얼굴을 바라봤다.

너무 아무렇지 않게 나를 대해줘서 잠시 잊고 있었지만, 루베르는 무려 제국의 대공이라는 엄청난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과 함께 들어가면 분명 눈에 확 띌 거야.

‘그건 죽어도 싫어.’

나는 슬그머니 루베르의 손 위에 올려뒀던 내 손을 내렸다.

“아스텔라?”

“먼저 들어가요, 루베르. 저는 시선이 집중되는 게 영 부담스러워서요.”

루베르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부정은 하지 못했다.

아마 자신도 그럴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나는 슬그머니 미소를 지으면서 루베르의 등을 떠밀었다.

“저는 조용히 뒤로 난 길로 들어갈게요.”

“하지만, 당신은 내 목숨을 구해준 은인입니다.”

“그러니까 이번 한번 정도는 좀 봐주세요.”

내 절실한 마음이 통한 걸까.

루베르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살폈다.

“안에 들어가면 바로 당신을 찾으러 갈 겁니다.”

“알겠어요. 안에서 만나요.”

“네, 대신 호위를 데려가세요. 그 정도는 괜찮지요?”

“네.”

루베르가 턱짓하자 뒤에 붙어 있던 루베르의 호위기사가 내 뒤로 붙어 섰다.

눈짓 한 번으로 뭘 해야 할지 눈치채는 게 보통 눈치가 아니었다.

“조심해야 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렇게 밝은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긴 하겠어요?”

너스레 떠는 내 말을 듣고도 루베르는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나를 한참이나 내려다봤다.

이대로라면 헤어지는 데에 반나절은 걸릴 기세였다.

결국 내가 먼저 루베르를 등졌다.

“이쪽입니다.”

루베르의 호위기사의 안내를 따라 뒤쪽으로 들어가니 그곳엔 정말 기다란 복도가 펼쳐졌다.

“여긴 사용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입니다. 이곳으로 들어가시면 그렇게 시선이 집중되지 않을 겁니다.”

“감사해요.”

내가 원하는 걸 이렇게 찰떡같이 알아채줄 줄이야.

나는 바닥에 끌리는 드레스 자락을 살짝 올려 들고서 천천히 복도로 들어섰다.

“좀 어둡네요.”

“아무래도 사용인들이 다니는 곳이니 말입니다.”

그렇게 얼마나 더 안으로 들어갔을까. 문 앞을 막고 서 있던 병사들이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이곳에는 무슨 용무가 있으십니까?”

뭐라고 얘기해야 하지.

손님으로 초대를 받아서 오긴 했는데, 들어가는 길이 너무 휘황찬란해서 가고 싶지 않다고 해야 할까.

내가 고민을 하면서 초대장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였다.

“그분이라면 내 손님이야.”

“전, 전하!”

뒤에서 불쑥 나타난 황금빛의 머리칼. 그건 분명히 카룬이었다.

* * *

카룬이 얘기해준 덕분에 안으로 무사히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아까 날 호위해주던 기사의 말을 들어보니 초대장만 내밀며 얘기했어도 됐을 거라곤 하지만.

“여기에는 어쩐 일이세요?”

“뭐, 당신이 여기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랄까요.”

“네?”

그럼 내가 여기로 오는 모습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얘기야?

불쾌함에 표정 관리도 하지 못하고 인상을 찌푸리자 카룬이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미안합니다. 그래도 연회가 시작되기 전에 꼭 얘기해야 할 게 있어서요.”

“그게 뭔데요?”

투덜대면서 묻던 그때, 대뜸 뒤에 있던 남자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전하, 이제는 가야 할 시간입니다. 더 늦었다가는 의심을 살 겁니다.”

“어쩔 수 없군.”

카룬이 한숨을 내쉬면서 나를 내려다봤다.

곧이어 카룬이 자신의 주머니에서 작은 쪽지 하나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일단 나중에 얘기하지요.”

그 말을 끝으로 카룬은 복도 저편으로 사라졌다.

‘대체 이건 또 무슨 짓이야.’

카룬의 이상한 행동을 미처 파악할 틈도 없었다.

그래도 이걸 줬으니 읽어보기는 할까.

춤을 추고 난 이후라면 귀족들을 상대하느라 다들 바쁠 겁니다. 그때를 노려 약도에 그려진 방에서 만나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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