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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속 대공을 구출하겠습니다 (65)화 (65/120)

65화

마차를 타고 성으로 돌아오는 동안 우리 사이에 별다른 얘기는 오가지 않았다.

아니, 내가 일방적으로 아까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 걸 피하려고 한 거긴 하지만.

“오늘도 좋은 밤 보내요, 아스텔라.”

“……네, 루베르도요!”

정작 행동한 루베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면서 복도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나는 넋을 반쯤 놓은 채로 방 안으로 들어섰다.

“왔어?”

방 안으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침대에 누워 있던 포피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꼬리를 붕붕 흔들면서 다가오는 게 정말로 날 반기는 강아지 그 자체였다.

“누워 있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 근육이 다 배길 정도였다니까? 물론 포피는 근육은 없지만.”

나는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포피의 등을 조심스럽게 잡아 안았다.

그러자 포피가 낑, 하는 소리를 내면서 내 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역시 내가 있어야 마음이 편하지?”

“그래, 그렇다고 하자.”

“나도 없는 곳에서 너희들끼리 무슨 재밌는 걸 하고 온 거야?”

재밌는 거?

그 말을 떠올리니 오늘 있었던 모든 일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 갔다.

“아야!”

“아, 미안.”

“너, 포피를 일부러 떨어뜨린 거지!”

“아니, 일부러는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풀려 포피를 바닥에 떨어뜨리자 포피의 꼬리가 하늘로 치솟을 듯이 바짝 섰다.

“대체 무슨 재미있는 걸 하다가 왔길래 그래? 둘만 데이트하고!”

“데이트라니!”

잠깐만, 데이트가 아니라고 하기엔 너무 정석대로 다 밟지 않았나?

나는 차마 포피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뭐야! 무슨 생각을 했길래 표정이 이상해져? 포피, 무서워!”

포피가 파르르 떨면서 나와 거리를 벌렸다.

“이상하긴 누가!”

그러면서도 머릿속에는 자꾸만 루베르가 내 손등에 입을 맞추었던 게 떠올랐다.

환한 불꽃 아래에서 마주했던 따스한 적안. 그건 정말…….

“악!”

“왜 저래!”

더는 참을 수가 없을 정도로 쿵쿵, 발악해대는 심장 탓에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나는 침대 위로 몸을 날리며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이게 맞아?’

그냥 감사의 뜻을 표시한 걸지도 모르는데 나만 이렇게 설레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 애초에 루베르가 나를 따르는 이유는 자신을 구해주었던 이유 탓이잖아.

‘어쩌면 나를 엄마처럼 생각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는데…….’

루베르는 별 뜻 없이 했을지도 모르는 행동에 괜히 나만 마음 졸이는 게 맞느냐고.

“무슨 일인데?”

“너는 몰라도 돼!”

“뭐!? 포피가 몰라도 되는 건 없어!”

영양가 없는 대화를 끝으로 하루는 빠르게 저물어갔다.

루베르의 진심을 알 수가 없는 답답한 마음만을 남긴 채로.

* * *

아스텔라를 데려다 준 루베르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컴컴하고 그 흔한 불 하나 켜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루베르는 그게 익숙하다는 듯이 책상 앞으로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

등 뒤로 비치는 달빛만이 그가 의지할 수 있는 전부였다.

“특별한 일은 없었나.”

“네, 따로 미행이 붙거나 수상한 자를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보고를 올렸다.

루베르는 미간을 좁히면서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사실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다른 이의 악의가 느껴졌다면 루베르, 자신이 가장 먼저 느꼈을 테니까.

“아까 얘기했던 건 무슨 일이지. 좀 더 자세하게 얘기해봐.”

“그게…….”

아스텔라와 함께 있을 그때, 느껴졌던 다른 이의 존재.

루베르가 잠깐 자리를 비웠던 건 그걸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남자가 드물게 말을 흐리더니 이윽고 품 안에 넣어 두었던 편지 하나를 꺼내 책상에 내려놓았다.

아멜 공화국과의 교류를 담당하고 있는 루베르만이 얻을 수 있는 정보.

그건 그곳에 파견된 통신관으로부터 주기적인 연락을 받는 것이었다.

“공화국에서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그것도 긴급 서신으로 말입니다.”

공화국이라는 말에 루베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아스텔라가 찾아낸 약물 덕분에 조사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물론 20년이나 더 된 금지령이 오히려 그에게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 되었다.

황궁에서 불을 켜고 감시했던 탓에 유입 경로가 그렇게 많지 않았으니까.

다만, 10년도 전에 일어났던 일이라 그때의 증언이나 증거가 뚜렷하지 못하다는 게 조금 흠이었다.

그렇지만 대공의 자리에 있다는 건 그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단 뜻이었다.

루베르는 생각보다도 빠르게 아스텔라가 찾아낸 약과 아버지에게 혐의가 걸렸던 그 수입품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두 가지는 모두 아멜 공화국에서 건너온 재료였다는 걸.

어쩌면 그곳으로 가서 조금 더 조사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꽤 머릿속이 복잡하던 참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더 있을 수도 있겠어.’

아버지에게 모든 걸 뒤집어씌우고 모든 걸 입막음해야 했던 이유.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라면 루베르는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건 뭐지?”

“아멜 공화국을 주시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이후, 조사를 맡고 있던 녀석이 보내온 편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직접 읽어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루베르가 편지를 펼치자 꽤 긴 내용이 이어졌다.

아멜 공화국을 다스리고 있던 수장의 죽음.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새로운 수장의 등장.

드물게도 이번 수장은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여인이 뽑힌 것 같았다.

“여인이 뽑힌 탓에 평소와는 다르게 전대 수장의 죽음도 숨기고, 새로운 수장의 얼굴도 내비치지 않는 건가.”

“꽤 드문 일이 아닙니까. 더구나 그곳은 여인의 입지가 굉장히 좁은 것으로 유명한 공화국이니까요.”

그런 곳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했을 여인이라.

궁금증이 일긴 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루베르는 빠르게 다음 문장을 읽어 내려갔다.

“이건 또 무슨 소리지? 행방불명이라니. 서신을 보낼 땐 그런 말이 없었잖아.”

편지에 적힌 내용은 루베르를 당황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여자 수장으로 알려진 여인이 어느 순간부터 얼굴도 비치지 않는다, 일과를 보내던 어떤 곳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말만이 꾸준히 적혀 있었다.

“그런데 그 수장이 오늘 새벽 아멜 공화국의 항구에서 목격되었다고 합니다.”

“항구라.”

폐쇄적인 정치와 대부분 비밀리에 덮인 수장이 갑자기 다른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라.

루베르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이윽고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전달하라고 했던 편지에 대한 회신은?”

“아직 없었습니다. 하지만, 전달은 정확하게 한듯합니다.”

“그래?”

편지를 읽고 어쩌면 그자도 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건 아닐까.

아멜 공화국의 물건이 밀수되었다는 사실.

그건 공화국 내에서도 꽤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내용일 테지.

무엇보다 그게 제국의 대공 가문과 관련이 있다는 걸 안 이상,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직감한 걸지도 몰랐다.

“어쩌면 여기로 오고 있을 수도 있겠군.”

“네?”

“배에 타는 모습은 확인했나?”

“아니요, 어떻게 된 건지 그 뒤로 여인을 놓쳤다고 합니다.”

“그래?”

루베르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이젠 확신이 들었다. 항구에서 갑자기 모습을 감춘 수장. 그리고 그 모든 걸 비밀리에 붙이고자 했던 목적.

여자는 어쩌면 제국으로 들어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좋은 일이지.’

그녀와 공조하면 좀 더 일이 수월해질지도 모르는 일이니.

루베르는 의자를 돌려 자신을 비추고 있던 달을 올려다봤다.

―루, 루베르?

손등에 입을 맞춘 건 꽤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런 짓을 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대처했는지 자신이 더 놀라울 따름이었다.

붉게 물든 그녀의 볼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그 볼에도 입을 맞추고 싶었다는 걸 안다면 나를 피하려 들겠지.’

손등만으로도 그렇게 사람이 경계 태세를 갖추는데.

피식.

루베르는 아까 보았던 아스텔라의 얼굴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아니, 잊으려고 해도 잊히지 않는다는 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대공 저하?”

“보고는 이걸로 됐어. 내일을 위해서 너도 오늘은 쉬도록 해.”

“알겠습니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사내를 확인한 루베르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오늘은 어쩐지 평소보다 조금 더 편안하게 잠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 *

“모두 탔나.”

여인의 단호한 목소리가 배 안을 가득 채웠다.

주변에 있던 자들은 모두 예를 갖추며 크게 그렇다고 대꾸했다.

“제국에 들어가면 한시도 방심해서는 안 돼. 알겠나.”

“네, 수장님!”

아멜 공화국의 새로운 수장이 되어버린 란 리오페는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이 자리에 오르자마자 이런 큰일에 맞닥뜨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란, 밀수의 흑막을 이번에야말로 붙잡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그 말을 뱉으며 숨을 거두신 아버지를 위해서도 그녀는 이 일만큼은 반드시 해치워야 했다.

란은 다시 한 번 의지를 다잡으면서 창밖을 내다봤다.

환하게 떠오른 달빛은 어서 오라는 듯이 그녀를 향해 반짝이고 있었다.

‘어차피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는 돌아갈 생각도 없어.’

제국의 대공에게 받은 편지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가득 담겨 있었다.

왜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밀수의 흑막이 제국 내에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약물의 다른 사용법을 이렇게 알아내서 대공 일가를 몰살하려 들 리가 없었다.

누군가의 깊은 악의.

편지를 통해 깊은 악의의 존재를 알게 된 란은 곧바로 배에 올라탔다.

어쩌면 흑막은 이보다 더 커다란 일을 계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 그 약의 새로운 효능을 알고 있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 아니던가.

흑막의 존재를 찾기 위해서는 우선 대공이 말한 일과 관련된 정보를 더 모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제국까지는 얼마나 더 걸리지?”

“적어도 내일 아침이면 도착할 예정입니다!”

“알겠다.”

제국의 황궁에 적힌 무역 정보와 공화국의 정보를 비교해볼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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