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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속 대공을 구출하겠습니다 (64)화 (64/120)

64화

정말 이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자신을 의원이라고 칭하는 여자의 박력을 이기지 못하고 우리는 그녀의 집으로 따라갔다.

의원이라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던 듯 정말로 안으로 들어가니 의료기구로 보이는 물건들이 가득했다.

“여기 앉아 계세요.”

여자는 뒤로 돌아 바로 보이는 선반에서 소독약을 꺼내 들고서 내게 다가왔다.

저거 닿으면 엄청 따갑겠지?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 여자가 생긋 웃으면서 솜에 약을 적셨다.

“조금 따끔해요.”

「따끔」으로 끝나지 않을 그 마법의 문장을 내뱉으면서.

* * *

“아스텔라, 괜찮습니까?”

치료실 밖에서 앉아 있던 루베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따가워 죽는 줄 알았다고 징징거리면 분명 또 걱정할 게 뻔하지.

“역시 대공 성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는 게 나았을 것 같은데.”

“그럴 필요가 있나요. 여기 의원님이 떡하니 있는데. 게다가 어찌나 치료를 잘하시는지 하나도 아프지 않았어요. 정말 멀쩡하다니까요.”

나는 눈물을 삼키면서 열심히 뛰는 시늉을 해 보였다.

루베르는 그걸 보고서도 걱정이 되는지 한참이나 내 상태를 살폈다.

“그럼 이제 돌아가도록 하죠. 이대로 더 구경하는 것도 무리니 말입니다.”

“그럴까요?”

“어머, 돌아가시려고요?”

나를 치료해줬던 의원이 치료실에서 나오며 말을 건넸다.

“그러지 말고 식사라도 하고 가세요. 마침 우리 집 마당이 불꽃놀이 명당이거든요.”

“네?”

“이렇게 아이를 살려주신 은인을 그냥 보내기도 그렇고, 그렇게 하시면 어떨까요?”

의원의 눈이 반짝거렸다.

입에 걸린 미소는 우리의 입에서 허락이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집에 가는 길은 걱정하지 마세요. 이웃 중에 오늘 휴무인 마부가 있는데 그 사람을 깨우면 되니까요. 네?”

이렇게까지 도움을 준다고 하니까 조금 마음이 흔들렸다.

그렇다고 한들 이곳에서 계속 머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날이 저물기도 했고.

내가 고개를 내저으며 거절의 의사를 표현하려던 그때였다.

꼬르륵.

배에서 어서 밥을 달라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들은 여인의 입가에 더 짙은 미소가 걸렸다.

“역시 저녁이 되니 배가 고프시죠? 마침 수프와 빵을 데워놨어요. 한 입이라도 들고 가세요.”

“맞아요! 같이 먹어요, 누나!”

이제는 옆에서 가만히 있던 아이마저도 내 손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남자아이의 모습을 보니까 자꾸만 어렸던 루베르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

‘아휴, 내가 어쩌다가 이런 모습에 약해져서는.’

결국 나는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까요?”

“네! 금방 식사를 준비할게요!”

두 사람이 화색을 표하면서 주방으로 사라졌다.

나는 뒤로 돌아 루베르의 눈치를 살폈다.

할 일이 많다 못해 넘쳐흐르기까지 하는 대공을 이렇게 잡아둬도 되는지.

그래도 내게 일말의 양심은 남아 있었다.

“괜찮아요, 아스텔라.”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루베르가 싱긋 웃으면서 내 어깨를 다독였다.

“당신이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해도 괜찮습니다. 무엇보다 오늘은 정말 시간이 넉넉하기도 하고요.”

“정말요?”

“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쩜 말도 이렇게 착하게 해주는지.

바쁘다는 걸 알면서도 그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식사 준비는 다 됐어요! 어서 오세요!”

주방 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루베르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다친 다리로 걷는 게 힘들다면, 제 손을 붙잡으세요.”

아직 약을 바른 곳이 따끔거리긴 했기에 나는 주저하지도 않고 루베르의 손을 붙잡았다.

이제는 익숙하게 손을 맞잡은 우리는 주방 쪽을 향해 걸어갔다.

* * *

식사는 생각보다도 맛있었다.

루베르도 제법 만족스러웠는지 큰 말 없이 잠깐 밖에 다녀온다는 말과 함께 사라졌다.

‘아, 배불러.’

넉넉한 배를 두드리면서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 옆에 앉아 있던 남자아이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누나, 저 형이랑은 결혼한 사이예요?”

“쿨럭!”

편하게 있던 몸을 일으킨 나는 고개를 내저으면서 격한 부정을 내비쳤다.

“그런데 저 형은 누나를 좋아하는 것 같던데.”

“오해야. 원래 저렇게 다정한 사람이라서 그래.”

“그래요?”

남자아이는 고개를 갸웃대더니 주방에 걸린 시계를 쳐다봤다.

“아! 곧 불꽃놀이 시작할 시간이다! 누나, 어서 따라와요.”

“응?”

“우리 집 앞에서 보면 가리는 것 하나도 없이 구경할 수 있거든요.”

남자아이가 내 손을 붙잡고 잡아당기는 터에 내 몸은 속수무책으로 따라갔다.

“이쪽이에요.”

주방에서 보이는 작은 쪽문을 열자 그곳엔 정말 아담한 마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엄마랑 오늘 여기서 불꽃놀이 보려고 다 준비해뒀는데, 날 구하려다가 다친 거니까 특별히 양보할게요.”

“응? 그럼 너는?”

“우리 집 2층에서 봐도 불꽃은 잘 보이거든요. 엄마랑 거기서 보면 돼요.”

남자아이가 해맑게 대꾸하면서 나를 의자 쪽으로 부축해 앉혔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요!”

“뭐?”

그런 말은 대체 어디서 배운 건데. 그리고…….

‘정말 그런 사이 아니라니까!’

하지만, 내 울부짖음을 들을 사람은 이미 집 안으로 사라지고 난 후였다.

“하.”

그래, 이렇게 된 이상 불꽃놀이라도 보고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모든 걸 체념한 내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아스텔라, 여기 있었습니까.”

“루베르, 왔어요?”

어디선가 다가온 루베르가 내 옆에 있는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기가 불꽃놀이 명당이라고 하더라고요. 온 김에 그것까지 보고 갈래요?”

“저는 상관없습니다.”

뭔들 다 알겠다는 대답이 돌아오니 정말 괜찮은 건지, 아닌 건지.

나는 루베르의 눈치를 살피면서 의자에 더욱 몸을 파묻었다.

팡!

이윽고 저 멀리서 쏘아 올린 불꽃 하나를 시작으로 하늘이 환하게 빛났다.

“와.”

생각보다도 훨씬 예쁘잖아?

아까의 투덜거림은 새까맣게 잊은 채로 나는 불꽃에 정신을 놓고 바라봤다.

하늘은 곧 형형색색의 예쁜 불꽃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 * *

그렇게 신이 나는 걸까.

루베르는 옆에서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아스텔라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하늘에서 팡팡, 소리를 내며 아무리 큰 불꽃이 터져도 루베르의 시선은 그녀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이런 하루가 될 거라곤 예상치도 못했는데.

역시 그녀와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세상은 너무나 크게 바뀌고 있었다.

―루베르, 이거 먹어봐요. 정말 맛있어요!

노상에서 음식을 건네면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생각보다 더 맛있는데요?

하나 더 먹고 싶다는 미련이 가득 담긴 목소리를 애써 숨기려고 할 때도.

―저는 괜찮아요. 별로 다치지도 않았는데요.

자신이 다친 걸 애써 숨기려 하면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분산시키려고 노력할 때도.

“와, 진짜 예쁘다.”

넋을 놓고 불꽃놀이를 보고 있는 지금도 그녀는 예상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루베르는 그런 아스텔라와 함께 있는 게 즐거웠다.

그녀가 자신에게 가져다주는 작은 변화들이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루베르의 손을 잡고서 기분을 풀어주려고 애쓰는 것도, 걱정해주면서 언제나 곁에 있어주는 것도.

루베르는 솔직히 오늘 하루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이렇게까지 편안하고 따스한 느낌을 받은 적이 얼마 만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 감정을 더 느끼고픈 자신의 욕심에 놀라기도 했다.

아스텔라.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 동안 그녀를 향해 들끓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것도 꽤 긴 시간을.

공포의 순간에 머물러 있던 자신을 찾아와준 그녀는 마치 어릴 적 어머니를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더욱 그녀에게 안절부절못하며 매달렸는지도 모른다.

아스텔라에게 더욱 집착할 수밖에 없던 것도, 걱정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오늘 하루를 함께 지내면서 느낀 감정일까.

아니면 그전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자신이 애써 부정하고 있던 감정일까.

루베르는 아스텔라를 향해 느끼는 이 감정이 더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루베르!”

아스텔라가 고개를 돌려 루베르를 올려다봤다.

반짝이는 잿빛 눈동자는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을 연상시켰다.

“지금이 가장 절정인가 봐요! 불꽃이 진짜 크죠?”

환하게 웃는 아스텔라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루베르는 자신의 감정에 대한 답을 확실하게 알아챘다.

사랑.

루베르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게 언제부턴지는 알 수 없지만, 아스텔라는 어느새 자신의 마음속을 이렇게나 짙게 물들여 놓았다. 그녀만의 색으로. 그녀만의 향취로.

루베르가 조심스럽게 아스텔라의 손을 잡았다.

“루베르?”

아스텔라가 당황했는지 눈을 크게 뜨고서 루베르를 쳐다봤다.

하지만, 루베르는 맞잡은 그 손을 놓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아스텔라.”

“네?”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는 모습마저 사랑스럽다니 중증이었다.

루베르는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아스텔라의 손등을 엄지로 천천히 쓸었다.

“함께 있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건 제가 할 말이죠. 상황이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긴 했지만, 루베르 덕분에 불꽃도 구경하고 정말 즐거웠어요.”

하하.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제 눈을 피하는 아스텔라를 보니 문득 심술이 솟았다.

쪽.

루베르는 아스텔라의 손등에 작게 입을 맞추었다.

아스텔라가 화들짝 놀라면서 손을 떼어냈다.

“루, 루베르?”

“저도요.”

“네?”

“저도 정말 즐거웠습니다.”

팡!

두 사람의 사이로 환한 불꽃이 큰 소리를 내면서 터졌다.

환하게 빛나는 두 사람을 2층에서 내려다보던 어머니와 아들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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