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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속 대공을 구출하겠습니다 (60)화 (60/120)

60화

카룬의 미소만 봐도 이젠 불안한 경지에 이르렀다.

이건 단순히 용의자여서가 아니라 그냥 저 남자가 무슨 폭탄 발언을 할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어차피 루베르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제 연회에 초대받지 않았습니까.”

“제가 갈지, 가지 않을지는 정해지지 않은 것 같은데요.”

“오게 될 겁니다. 당신은.”

마치 내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당당하게 말하는 짝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알기는 할까.

포피의 머리를 쓰다듬던 카룬이 곧 포피를 나에게 내밀었다.

“지금은 줄 수 없으니 당신이 제 연회에 참석해주면 그때 드리도록 할까요.”

“고작 그 목걸이 하나로 제가 연회에 참석할 것 같나요?”

“네. 그러니 그렇게 목걸이에 집착한 게 아니었습니까?”

씩.

미소를 짓는 카룬의 얼굴에 주먹을 내지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내가 그렇게 알기 쉬운 사람이었나.’

그러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카룬은 너무나도 쉽게 내 약점을 잡고 말았다.

알고 보면 이 남자가 게임을 만든 개발자가 아닐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어차피 게임도 가게 될 걸 알고서 이렇게 한 건 아닐까.’

어느 쪽이 되었든 불쾌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문 쪽으로 향했다. 더는 이 남자와 단둘이 있는 상황에 머물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럼 이만 나가주시겠어요?”

“그대는 정말 신기합니다. 자주 내가 황태자라는 신분을 가진 황족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입가에 얼마나 신이 났는지 미소를 지우지도 않은 채였다.

“마치 루베르를 보는 것 같아서 재미있어요.”

카룬은 그대로 문밖으로 걸음을 뗐다가 이내 뒤돌아 나를 쳐다봤다.

“나는 배후에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배후는 황태자인 나도, 선대 대공이었던 루크 대공도 가뿐히 처리할 만한 능력이 있는 자라고 생각하고요.”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아니, 애초에 내 앞에 있는 황태자에게 걸린 용의도 다 풀리지는 않았다.

“그 배후에 있는 자는 분명 우리의 무역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던 목표를 이뤄내려고 한 겁니다. 루크 대공을 몰아내고 대공 일가를 몰살시키려던 목표를.”

무시무시한 얘기에 소름이 돋았다.

어찌 되었든 이미 이렇게 깊게까지 발을 들인 이상 더는 뺄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그 배후를 알아내야 나도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옷은 이쪽에서 준비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 네.”

어차피 생일 연회를 즐기러 가는 것도 아닌데 옷이 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면서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카룬이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리면서 뒤로 돌아서 복도를 가로질러 갔다.

듣는 사람 처지에서는 그렇게 속이 뒤집히는 웃음이 또 있을까 싶은 웃음이었다.

* * *

황태자인 카룬의 방문이 있었던 날은 그렇게 빠르게 지나갔다.

적어도 사흘이 지날 때까지는 그와 얽힌 일에 또 속이 뒤집히지는 않겠지.

그렇게 생각했던 내 머릿속은 카룬을 만나고 난 다음 날 아침부터 완벽하게 뒤집히고 말았다.

“타, 탐정님!”

루시가 허겁지겁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얼마나 다급했는지 노크하고 내가 들어오라는 말도 채 하기도 전에 말이다.

“무, 무슨 일이에요?”

탐정 수첩에 있던 내용을 읽고 있던 와중에 들어온 터라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나는 의연한 표정으로 주머니에 탐정 수첩을 넣었다.

다행스럽게도 루시는 내 행동에 이상한 점을 느낀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이 겪은 일 때문에 복잡해 보였을 뿐.

“화, 황태자 전하께서 선물을 보내셨어요.”

“네?”

대뜸 선물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어제 있던 일을 곰곰이 생각하던 내 머릿속에 곧이어 그가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

―옷은 이쪽에서 준비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마 그 옷이 도착한 거겠지.

“빠르기도 하셔라.”

“네?”

고개를 갸웃거리는 루시에게 애써 미소를 지어준 나는 천천히 바깥으로 나섰다.

1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는 복도를 막 걸어가려던 그때였다.

“아스텔라.”

“루베르?”

“마침 당신을 찾아가려던 참이었습니다.”

착각인가. 그의 적안이 평소보다도 더 짙게 물들어 있었다.

뭔가 화가 난 분위기 같기도 하고. 어쨌든 평소와는 무언가가 달랐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이것에 관해서 긴히 할 얘기가 있어서 말입니다.”

루베르가 자신의 손에 들린 상자를 내게 보여주었다.

“이게 뭔데요?”

“황태자가 당신에게 보낸 선물입니다. 혹시 싶어서 안을 확인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아니요, 별 상관은 없는데요.”

어차피 크게 중요한 물건이 든 것도 아니니 그건 상관없었다.

다만 루베르가 지금 불편한 표정을 지은 채 눈썹을 치켜올리고 있는 이 상황이 무서울 뿐이었다.

“어제는 당신과 황태자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건지 묻는 게 내 자격 밖의 일이라고 생각해 묻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황태자가 돌아간 이후, 함께 식사했던 그날 저녁.

루베르는 생각 외로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음식이 입에 맞느냐는 걸 묻기만 했을 뿐.

그랬던 루베르가 이렇게까지 분노하는 이유는 분명 하나뿐이겠지.

“당신에게 드레스를 선물해준 이유가 혹시 제가 생각하는 그런 이유에서입니까?”

“아마도요.”

내가 카룬의 생일 연회에 참석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할 테니까.

“하…….”

루베르가 깊게 한숨을 내쉬면서 들고 있던 상자를 내려다봤다.

당장이라도 찢어발기고 싶다는 듯한 분노가 담긴 표정은 보기만 해도 무서웠다.

“대공을 깨우는 데 도움을 준 탐정으로서 당신이 황궁에 들어가는 순간 시선이 집중되겠지요.”

“…….”

“주변 귀족들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당신을 무시하고 괄시할 겁니다. 단지 평민이라는 이유로.”

“알고 있어요.”

다만 내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포피의 목걸이. 그것만 어떻게든 손에 들어온다면 내게 두려울 건 죽을 때의 고통뿐이었으니까.

“그런데도 황태자가 당신에게 파트너를 신청했다는 말입니까?”

“네?”

갑자기 나온 파트너 얘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분명 카룬은 나에게 자신의 생일 연회에 참석해달라는 부탁을 하긴 했다. 하지만 그건 파트너 신청이 포함된 건 아니었다.

그 말은 즉, 루베르가 단단히 무언가를 오해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당신을 그런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습니다. 이건 우리 성에 방문한 귀빈 보호를 위해 충분히 말해도 괜찮을 얘기가 아닙니까?”

“저기, 잠시만요!”

나는 폭풍처럼 이어질 듯한 잔소리를 끊어냈다.

그러자 루베르의 눈썹이 아까보다도 더 위로 치켜 올라갔다. 이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고!’

누가 그런 뻔뻔하고 제멋대로인 남자의 파트너를 하겠다고.

나는 죽어도 그럴 생각이 없었다.

“저는 황태자의 파트너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하지만 이렇게 드레스를 보내오는 건 파트너를 신청하는 것과 같습니다.”

“네?”

뭐 이런 남자가 다 있어.

애초에 황태자의 파트너로 그곳에 들어서면 얼마나 시선이 집중되겠냔 말이야!

나는 루베르의 안에 들어 있던 상자를 열어 드레스를 확인했다.

“허.”

“아스텔라?”

빨간색의 보석이 미친 듯이 박힌 드레스는 딱 보기만 해도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

언제는 조용히 황궁 내의 비밀 서고로 들어가라고 하더니.

‘이런 옷차림으로 잘도 들어가겠네.’

계속 보면 볼수록 가관인 이 드레스를 걸칠 생각이 제로에 수렴하고 있던 그때였다.

“카룬이 당신에게도 연회 초대장을 준 건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럼 파트너는 아니었다는 겁니까?”

“당연하죠!”

분명히 이건 날 놀리려고 보낸 게 분명해.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이성을 꾀어내려는 화려한 공작 같은 옷을 보냈을 리가 없어.

“진짜 열 받네?”

얼마나 옷을 쥐고 파르르 떨고 있었을까.

갑자기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루베르가 단번에 옷을 집어 올려 상자 안으로 쑤셔 박았다.

“루베르?”

“그럼 굳이 이 옷을 입지 않아도 되겠군요.”

싱긋.

날 향해 미소를 짓는 루베르의 얼굴이 아까와는 전혀 달랐다.

“무엇보다 당신에게는 이런 옷보다 더 어울릴 예쁜 옷이 있을 텐데 아쉬울 뻔했습니다.”

“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내가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며 눈치를 보고 있던 찰나, 루베르가 대뜸 내 앞에 손을 내밀었다.

“오늘 하루, 내게 시간을 내어줄 수 있겠습니까?”

다정하게 웃고 있는 그 얼굴을 보니 거절의 말이 튀어나오질 않았다.

무엇보다 성안에서 내가 특별히 할 수 있는 건 없기도 했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기가 무섭게 루베르가 뒤를 바라보고서 말했다.

“손님께서 오늘 외출을 하실 테니 그에 맞는 준비를 해두도록.”

“네, 네!”

어느새 내 뒤에 나타난 루시가 고개를 푹 숙이면서 대꾸했다.

루베르는 루시의 모습을 잠시 눈에 담았다가 이윽고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잠시 뒤에 만나요.”

이윽고 내 볼에 붙어 있던 머리칼을 떼어준 루베르가 반대편 복도로 사라졌다.

“이게 뭐야.”

나는 졸지에 생긴 약속 준비를 위해 루시의 손에 이끌려 방으로 끌려 들어갔다.

* * *

“어머, 어쩜 좋아요. 제가 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뭐?”

루시가 호들갑을 부리면서 옷장을 열어젖혔다. 안에는 내가 처음 보는 옷들이 가득 차 있었다.

아니, 저건 또 언제 저렇게 다 채워 넣은 거야?

내가 그걸 물어볼 틈도 없이 문이 열리더니 다른 하녀들이 우르르 방으로 들어섰다.

“탐정님의 화장은 내가 맡을 테니 두 사람은 액세서리를 부탁해요.”

“저는 옷을 맡을게요.”

“그럼 제가 머리를……!”

“저기, 잠시만요!”

나는 거의 붙잡히듯이 의자에 앉혀졌다.

곧이어 나를 둘러싼 하녀들 사이에서 비명이 쏟아졌다.

“세상에! 여자라면 거들뜨지도 않던 우리 대공 저하께서 저렇게 저돌적으로 데이트를 권하시다니!”

“역시 뭔가 있다 싶긴 했는데!”

“저기 그런 게 아니라……!”

하녀들이 동시에 나를 쳐다보며 눈을 반짝였다.

“대공 저하의 마음을 어떻게 훔치신 거예요? 정말 대단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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