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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속 대공을 구출하겠습니다 (54)화 (54/120)

54화

카나의 다음 행동은 내가 알고 있던 정보와 이어졌다.

“열네 살의 저는 그날 납치를 당했습니다. 마취제 때문에 온몸은 저리고 고통스러웠죠.”

루베르의 손이 옅게 떨렸다. 아직도 그땔 생각하면 이렇게 반응이 오는 모양이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납치범에게 생명까지 위협받을 정도가 아니었던가.

나는 루베르의 손을 다독이면서 그를 달랬다.

“다행스럽게도 그 납치는 길지 않았습니다. 그녀를 수상하게 여기고 있던 카룬이 곧바로 나를 찾아 나섰거든요.”

“그 남자가 어떻게 그걸?”

“서신을 보낼 시간이 되었는데도 연락이 없는 걸 알고 직접 찾아온 카룬이 내가 없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운이 좋았습니다.”

카룬은 곧바로 그 일대를 수색했고, 카나는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그녀가 선택한 건 주변에 있던 오두막에 잠시 숨어 있다가 동이 틀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었다.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카나가 숨어 있던 곳은 제 아버지의 영토 안이었거든요.”

북쪽 숲 안에 숨을 곳은 한정적이었고, 황태자의 측근들은 우수했다.

드디어 루베르를 발견하고 카나를 잡아들인 순간, 그녀는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고 했다.

―난 루베르를 구하려고 했던 것뿐이야. 그게 죄가 되는 거야? 응?

기사들에게 팔을 붙잡혀 오두막 밖으로 끌려 나갈 때도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내용은 그야말로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자신은 그를 악몽에서 꺼내준 천사라고. 그렇기에 자신과 함께 가는 게 올바른 거라고.

“그게 무슨 헛소리예요?”

“저도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 와 생각해보니 알 것도 같습니다.”

“그게 무슨…….”

“오두막을 나오기가 무섭게 카나를 향해 화살이 하나 날아들었습니다.”

“네?”

루베르의 붉은 눈동자가 그때를 떠올리기라도 하듯 아래로 향했다.

“불에 타오르는 시체를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지요.”

“…….”

“그 자리에서 즉사한 탓에 무슨 말인지를 물어볼 틈도 없었습니다.”

카나의 돌발적인 행동은 결국 납치 미수로 끝이 났고, 그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했다.

다만, 불에 온몸이 타는 순간에도 카나는 크게 울부짖었다고 했다.

이 모든 게 사실 누구의 계략이었겠냐고. 나는 아무런 죄가 없다고.

“그걸 들은 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뿐이었지만 말입니다.”

어찌 되었든 이후 무사히 돌아온 루베르를 본 선대 대공은 머리끝까지 분노했다.

그렇게나 바쁘게 살아가고 아들을 제대로 봐주지 않았던 자신의 잘못을 알아서였을까.

아니면 더는 선대 대공 부인이었던 스텔라의 죽음을 더는 방관하지 않겠다는 용기가 선 것일까.

그날 이후, 루베르의 아버지였던 선대 대공은 주변 인물들을 하나씩 몰래 조사해나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그날 아주 오랜만에 저를 마주하셨습니다.”

“…….”

“이런 일이 생겨서 미안하다고. 스텔라를 잃었던 슬픔 때문에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게 더 좋을 거란 내 착각 속에 빠져 살았다고.”

선대 대공은 아들에게 있었던 모든 일을 너무나도 늦게 안 것에 분노를 차마 숨기지 못했다고 했다.

선대 대공 부인의 유언에 따라 받아들였던 안나와 그 사용인들은 루베르를 홀대하고 있었고, 그걸 감수한 건 오롯이 루베르의 몫이었다.

가운데서 그 무엇도 해주지 못했다는 선대 대공의 분노는 고스란히 죄인들에게 향했다.

“화형은 원래 가장 극악의 죄를 저지른 자들에게 하던 처형 방식이었지요. 아버지는 그걸 선택했습니다.”

안나가 죽은 건 그 후로 일주일이 지난 뒤였다고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째서 그런 일을 벌인 것인지. 혹시나 다른 꿍꿍이가 있었던 건 아닌지.

모든 걸 조사하기 위해 준비했던 선대 대공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다.

“많이 화가 나셨겠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딱히 없었다.

함부로 당신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잘 알고 있다고 말하기엔 너무나 큰 일이었으니까.

“화가 난다기보다는 이 상황에서 무엇도 할 수 없던 내가 무력하게 느껴졌지요.”

루베르가 슬프게 미소 지으며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네?”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황태자가 카나가 이상하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 어떻게 이렇게 빠른 대처를 할 수 있었는지.”

루베르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내 안에서도 점점 의심이 커졌습니다. 어쩌면 이 안에 내통자가 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궁에서 대공 성에 몰래 사람을 붙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대 대공의 소문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좋은 의도로 그랬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내가 가만히 그를 쳐다보고 있자 루베르가 다음 말을 이어갔다.

“그날부터 상황이 눈에 띄게 나빠졌습니다. 갑자기 아버지의 몸이 나빠지고…….”

“…….”

“곧이어 아버지가 하고 있던 무역 사업 물품에서 대량의 약물이 발견되었습니다.”

약물.

그건 나도 알고 있는 얘기였다. 무엇보다 용의자로 등록된 이유도 그것에 있었으니까.

“아버지는 그 일을 빌미로 무역 업무에서 손을 떼야 했고, 다음 날부터 가택 수사 및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루베르가 이를 아득 깨물었다. 그때의 답답한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있던 남자는 다름 아닌 그토록 믿고 있던 황태자, 카룬이었지요.”

“그럼…….”

“어쩌면 그 내통자가 카룬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가문을 망가뜨린 건 모두 나 때문인지도 모르죠.”

루베르가 한숨을 내쉬면서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가 그런 일에 가담한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얘기했지만, 전혀 들어주질 않았고 잠시 쉬면서 근신하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루베르는 제대로 조사에 임하겠다는 두 사람의 의지도 그대로 무시됐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버지는 그날부터 수면 향을 하루도 사용하지 않으면 몇 시간조차 주무실 수 없었죠.”

“수면 향이라…….”

그것 때문에 지금 얼마나 머리가 아픈지 알고 있을까.

나는 조심스럽게 루베르를 바라봤다. 어떻게든 정보를 모아야 했다.

“수면 향을 쓰는 동안은 아무런 문제도 없으셨나요?”

“이전부터 쓰면서 크게 문제가 있진 않았습니다. 아마 아버지의 몸이 나빠진 건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깨어나지 않던 것도요.

루베르가 낮게 조소를 뱉으면서 그 말을 덧붙였다.

더는 이 얘기를 하는 건 그에게도, 그의 부친에게도 실례일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루베르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한참을 그의 곁에 머물렀다.

지금의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는 사실마저도 미안해졌다.

* * *

대화가 끝난 후 우리는 내가 머물고 있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루베르는 끝까지 괜찮다는 내 말도 한사코 무시하고서 나를 결국 내 방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아스텔라.”

“네?”

루베르는 끝까지 내려놓지 않던 내 손을 슬그머니 놓았다.

밤길이 위험하니 일단 잡고 있자던 말에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잡고 있던 손이었다.

‘그러고 보니 안에 들어와서는 그러지 않아도 됐을 텐데.’

괜히 그걸 깨닫고 나니 맞잡고 있던 손이 홧홧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런 말을 할 권리가 없다는 건 알겠지만, 황태자에 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루베르의 붉은 눈동자에 오롯이 나만이 담겼다.

“황태자는 그렇게 위험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둘이서 만날 일이 있다면 되도록 피하십시오.”

“아.”

“당신의 행동을 이미 황태자가 모두 파악하고 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그러니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루베르는 그 말을 끝맺고서 뒤로 천천히 물러났다.

잘생긴 얼굴이 옆에 아른거리는 불꽃에 비치니 더욱 잘생겨 보였다.

“말이 너무 길었군요. 좋은 밤 되길 바라요.”

나도 모르게 붉어지는 듯한 볼을 부여잡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왠지 모르게 루베르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고개를 푹 숙인 채 루베르가 있는 방향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루베르도 좋은 밤 보내요.”

“얼굴을 보며 말해주었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그 순간, 루베르가 내 얼굴 앞으로 고개를 숙이면서 미소 지었다.

“지금의 이런 모습도 무척 좋으니 그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신의 얼굴을 어떻게 사용하는 게 가장 효과가 좋은지 알고 있는 움직임이었다.

그야말로 천재.

나도 모르게 달아오르는 볼을 감싸 쥔 나는 빠르게 방 안으로 들어섰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홧홧하던 볼의 열기가 가라앉았다. 그렇게 만든 원흉과 멀어진 덕분인지도 몰랐다.

‘왜 황태자를 싫어하는지 이제 이해할 것도 같아.’

아니, 애초에 그런 일을 겪었는데 싫어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무엇보다 귀띔이라도 해줬다면 대처라도 했을 거 아니야. 그런데 그런 것도 없었잖아!

‘그렇게 행동해놓고서 나한테는 마치 루베르를 위하는 척 굴었다 이거지?’

또다시 뒤통수를 칠지도 모르는 용의자 1의 행실을 더욱 잘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황태자가 뭔가를 알고 있다는 게 확실해진 지금은 어떻게 해서든 그에게서 정보를 캘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더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황태자와의 협력은 필수적인 게 아닐까.’

무엇보다 안내 창과 탐정 수첩에 적힌 것만 보더라도 그의 거래 제안이 떡하니 적혀 있었잖아.

그걸 무시하고 다른 일을 하는 게 과연 옳을지.

“이런 건 알아서 알려주면 좀 좋아?”

그러고 보니 악몽 속에서는 그렇게 울어대던 알림이 여기로 돌아오고 나서는 울린 적이 없었다.

‘대체 왜?’

설마 여기는 현실이라서 이제 그런 건 꿈도 꾸지 말라는 건가?

댕, 댕!

어디선가 10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띠링!

그토록 기다리던 알림음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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