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방으로 돌아온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루시의 잔소리였다.
“탐정님, 그런 차림으로 나가시면 어떻게 해요!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울먹거리는 루시를 보고 있으니 괜히 양심이 콕콕 찔렸다.
“미안해, 너무 급해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루시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루베르가 둘러준 망토를 접었다.
“외투로 걸칠 것을 들고 나갔는데 벌써 사라지셔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아세요?”
“미안해.”
생각보다 루시의 잔소리는 어마어마했다.
루시는 허리에 손을 얹고서 눈썹을 치켜올린 채 나를 한참이나 노려봤다.
아니, 우리 엄마보다도 무서운 것 같은데.
괜히 고개가 절로 수그러지고 손이 자연스럽게 모였다.
“그래도 그런 차림으로 식사를 안 하러 가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응?”
루시가 곧이어 옆에 있던 장롱에서 무난한 하늘색 원피스를 꺼내 들었다.
“탐정님이랑 잘 어울릴 것 같아 저희끼리 미리 골라둔 거예요. 이걸 입고 가세요. 아시겠죠?”
옷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휘황찬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부담스러운 보석이 박혀 있지도 않았다.
정말로 내 마음에 쏙 드는 원피스라고나 할까.
“탐정님의 평소 옷차림을 보고 저희끼리 골라본 건데 별로세요?”
내가 아무런 말도 하고 있지 않자 루시가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살폈다.
얼씨구? 아까는 그렇게 사람을 몰아붙이더니?
나도 모르게 장난기가 발동해서 루시를 놀려볼지를 고민하던 그때였다.
똑똑.
“손님, 잠시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집사의 목소리였다.
“네, 물론이죠.”
내가 대꾸하기가 무섭게 집사가 안으로 들어섰다.
“무슨 일이세요? 집사님? 아직 준비까지는 꽤 시간이…….”
“루시, 잠깐 자리를 비워줄 수 있겠니. 손님과 할 얘기가 있어서.”
“네? 네. 알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궁금하다는 표정이었지만, 루시는 생각보다 훨씬 눈치가 빨랐다.
자리를 피하게 하면서까지 하는 얘기라면 꽤 비밀스러운 말이 오갈 걸 예상한 거겠지.
루시는 들고 있던 옷을 다시 옷장 안에 걸고서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그걸 확인한 집사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모두 전해 들었습니다. 대공 저하와 어떻게 알고 계신지도, 왜 그렇게 자주 쓰러지셨는지도.”
“아, 그러셨구나.”
무어라고 말을 해야 할까.
내가 가만히 고민하고 있던 그때 집사가 고개를 숙였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손님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대공 저하께서는 의식불명인 채로 사경을 헤매고 계셨겠죠.”
“아, 아니에요! 저도 대공 저하께는 많은 도움을 받았는걸요!”
“그래도 현실로 돌아올 수 있던 가장 큰 이유는 손님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하하.”
“언제든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해주십시오. 성심성의껏 돕겠습니다.”
언제 이런 말을 전부 얘기했대.
그걸 또 곧이곧대로 믿어주는 집사를 보자니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사실 내가 그를 도왔던 건 단순한 영웅심은 아니었다. 그냥 이 세계에서 나가고 싶다는 것뿐이었는데.
‘이러면 내가 진짜 엄청난 도덕심을 가지고 루베르를 탈출하러 간 영웅 같잖아.’
멋쩍게 볼을 긁적이며 집사를 바라보던 그때였다.
띠링!
집사 알베르토의 신뢰도가 최대 레벨을 달성하였습니다. 이제 집사는 당신의 말에 무조건 수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