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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속 대공을 구출하겠습니다 (51)화 (51/120)

51화

조급한 마음의 루베르가 서둘러 황궁 복도의 모퉁이를 돈 순간이었다.

“폐하께서는 무슨 생각이신 걸까요?”

갑자기 들려오는 여인의 목소리에 루베르의 발걸음이 뚝 멎었다.

“아니,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지낸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 말이야?”

무슨 얘기가 나올지는 뻔했다. 루베르는 팔짱을 끼고서 벽에 몸을 기댔다.

“아무리 그래도 선대 대공이었던 루크님의 비리로 타국과의 무역이 중지될 뻔했잖아요. 그런데, 그 후임으로 아들을 임명할 줄은…….”

“말을 조심해! 여기가 자네 집이라도 되는 줄 알아?”

화들짝 놀란 여자의 만류에도 하녀는 쉼 없이 입을 놀렸다.

“황제 폐하께서도 대단하세요. 전쟁을 일으킬 뻔한 남자의 자식과 아무렇지 않게 지내기도 하시고.”

“…….”

“그렇지 않나요? 일전에 부정을 저지른 가문의 자식을 아무렇지 않게 그 업무로 복귀시켰다는 게.”

하녀가 창을 열려고 하는지 루베르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왔다.

루베르는 그 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만둬. 이런 얘기를 하면서 창문을 열려고 하면 어떻게 해.”

“뭐 어때요. 이 주변으로 다닐 사람도 없는데. 언니는 어떻게 생각해요?”

“뭐가?”

“여기 오래 계셨잖아요. 황제 폐하는 왜 저렇게까지 아량을 베푸시는 걸까요?”

참 남 일에 호기심이 많은 하녀군.

루베르가 대수롭지 않게 손가락으로 벽을 톡톡 두드리면서 생각했다.

그걸 저 여자에게 묻는다고 한들 황제가 생각하고 있는 답이 나올 리가 만무했다.

“아무래도 어려서부터 함께 알고 지냈고, 이번 일로 타격을 입으면 정계로 다시는 복귀할 수 없다는 걸 알아서가 아닐까.”

“네? 정 때문이라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신 거라고 보는 게 맞지 않겠니.”

탁탁.

여자가 무언가를 정리해 쌓으면서 대꾸했다.

그 말을 끝으로 루베르는 벽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마지막 기회라. 어쩌면 황제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문제가 일어났던 건 아멜 공화국과의 외교에서였다.

아버지는 그 무렵 폐쇄적인 아멜 공화국과의 무역 활로를 개척했다며 무척 기뻐했다.

그래, 황궁의 기사들이 파헤친 짐 속에서 나왔던 하얀 가루만 아니었다면 계속 즐거웠을 테지.

그건 아멜 공화국 내에서도 얻기 어렵기로 유명했던 마약이었다.

본국에서조차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던 약이 나오자마자 아버지는 직위 해제와 더불어 근신 처분을 받았다.

분명 오해를 산 거라는 아버지의 말은 황제 폐하의 귀에 들어가기엔 너무 멀었다.

그래, 과거는 분명 거기서 결착을 지었다고 생각했다.

이틀 전, 악몽에서 깨어나 아스텔라가 발견했다던 약이 아버지에게 혐의가 걸렸던 약과 같은 것임을 알게 되고 나서부터는 달랐지만.

‘그 약이 어머니의 죽음과도 연결되어 있을 줄이야.’

그런 와중에 카룬의 말까지 들으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어찌 되었든 지금은 성으로 돌아가는 게 우선이었다.

아스텔라가 어서 아무런 문제 없이 정신을 차리면 좋겠는데.

초조한 마음에 손에 땀이 찼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는 상상만 해도 가슴이 미친 듯이 뛰고 소름이 끼쳤다.

“윽.”

익숙한 두통이 루베르를 찾아왔다. 잠을 자지 못해서 언제나 달고 다니던 부작용과도 같은 것이었다.

어쩌면 쓸데없는 얘기를 들은 탓일지도 모르지.

루베르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복도 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찌 되었든 지금은 성으로 돌아가는 게 급선무였다.

루베르는 더는 한시도 이 답답한 황궁에 머물 생각이 없었다.

* * *

“탐정님!”

“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는 열어두었던 탐정 수첩을 빠르게 닫았다.

곧이어 루시가 머리만 빼꼼 안으로 내비치면서 씩 웃었다.

“기다리던 소식을 가져왔어요. 지금 대공 저하께서 막 황궁에서 돌아오셨대요.”

“정말?”

얼마나 기다렸는데!

나는 이불보를 던져 버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루베르가 다른 일 때문에 바쁘기 전에 빨리 지금 만나서 얘기를 나눠봐야 했다.

“지금 어디 있는데?”

“마차에서 내려서 정원을 들어오실 때쯤 왔으니까 이제 현관에 도착해 계실 거예요. 어서요!”

나는 누워 있느라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빗어 넘기고 빠르게 방 밖으로 나섰다.

“어, 어? 타, 탐정님!”

뒤에서 들리는 루시의 당황스러운 목소리도 듣지 못하고서.

탁탁.

나는 익숙하게 중앙 현관 쪽으로 뛰어 내려갔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좀 놀라는 것 같긴 했지만, 지금은 루베르를 만나는 게 우선이었다.

이윽고 2층 중앙 복도에 다다르자 저 멀리서 집사의 인사를 받고 있던 루베르가 보였다.

“루베르!”

나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외치면서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아스텔라?”

화들짝 놀란 루베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올려다봤다. 그의 볼이 묘하게 붉어 보이기도 했다.

밖을 나갔다 와서 덥기라도 했던 걸까.

하지만, 내게는 그것보다 반가움이 더욱 컸다.

어찌 되었든 그 세계에서 나와 현실에서는 처음 루베르와 마주하는 것이었다.

악몽 속에서 탈출해서 무사하다는 걸 확인하니까 가슴이 벅차올랐다.

“루베르! 무사했군요!”

나는 자연스럽게 루베르를 끌어안고 방방 뛰었다.

루베르는 망부석이 된 것처럼 나를 마주 안고서 가만히 서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루베르를 놓고서 뒤로 물러났다. 아니, 물러나려고 했다.

“루베르?”

“이걸 두르고 있는 편이 좋겠습니다.”

루베르가 눈을 피하면서 내 어깨에 망토를 둘러줬다.

아니 왜?

나는 슬그머니 내가 입고 있던 옷을 살폈다.

이곳에서는 잠옷으로 쓰는 옷이라 그런지 조금 얇은 감이 있긴 했지만, 노출이 있다거나 그런 건 없는데.

생각보다도 여기서 선정적이라는 기준이 까다로운 모양이었다.

‘한국에서 입고 다니는 옷을 보면 기절하겠네.’

그렇게 얘기하고 나니 루베르의 반응이 또 궁금하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튀어나올 뻔한 웃음을 간신히 억누르고서 나는 망토의 끝자락을 여몄다.

어쩐지 아까부터 사람들이 나만 바라본다고 했더니 착각이 아니었구나.

나는 내가 공주병이라도 걸린 줄 알았는데. 아니, 공주는 아니니 굳이 따지자고 한다면 「탐정」 병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잡다한 생각이 이어지던 바로 그때였다.

꼬르륵.

내 배에서 우렁차게 배가 고프다는 비명이 들렸다.

그걸 들은 루베르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이윽고 나를 내려다봤다.

“식사는 아직 하지 않은 모양이군요.”

“네, 루베르가 올 때까지 기다렸으니까요.”

내 말에 뒤에 있던 사용인들이 웅성댔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나는 정신을 차린 루베르와 현실에서 마주하는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마치 예전부터 알고 있던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그 높으신 대공 저하의 이름까지 불러가면서.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얼굴을 보니 너무 반가운 마음에 이름부터 나와버린 걸 어쩌겠어.

그렇다고 이제 와 처음 보는 사람인 척 내숭을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뻔뻔하게 나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나는 마음을 다잡고 루베르를 올려다봤다.

“루베르는 황궁에 다녀온 참이라던데 식사는 했어요?”

“아니요, 나도 아스텔라와 식사하려고 아직 먹지 않은 참입니다.”

헉.

뒤에서 이어지는 사용인들의 경악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사용인들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이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니, 그 정도로 우리가 친한 게 놀랄 일인가.

괜히 머쓱해져서 머리카락만 매만지고 있자 뒤에서 슬그머니 집사가 나타났다.

“식사 준비라면 이미 해두었습니다. 바로 식사하시겠습니까.”

우리의 상황에 꽤 놀랐을 텐데도 어떤 동요도 없었다.

루베르가 우리 얘기를 하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물어보고 싶은 건 산더미처럼 많았지만, 지금은 배가 너무 고팠다.

그런 내 마음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루베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바로 식사하러 갈 테니 준비를 마쳐두도록.”

“알겠습니다. 손님도 함께 식사하시겠습니까.”

“네, 네!”

기다렸던 말에 곧바로 반응하자 집사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니, 그렇게 대놓고 비웃을 필요는 없잖아요…….

집사는 잠시 후에 방으로 안내하겠다는 말과 함께 곧바로 사라졌다.

“아스텔라, 그러면 잠시 후에 식당에서 만나지요.”

지금 당장 음식을 먹으러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루베르의 복장을 보니 저절로 수긍이 갔다.

이제 내 어깨에 둘리게 된 망토는 무겁고 길었다.

더구나 그가 안에 입고 있던 옷은 또 어떤가.

목부터 아래까지 수많은 단추가 모두 채워진 채로 보는 사람마저 숨이 막힐 정도였다.

황궁에 다녀온다고 정갈한 옷차림을 한 모양이었다.

‘이런 모습으로 식사했다간 안 먹어도 얹히겠어.’

애초에 소화가 되기는 할지 우려스러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뒤로 물러났다.

“망토는 나중에 꼭 돌려드릴게요.”

“마음에 든다면 가지셔도 되지만, 그것보다는 본인에게 맞는 망토를 선물하는 편이 더 낫겠죠.”

루베르가 진지하게 나를 살피면서 대꾸했다.

아니, 나는 이 망토가 탐나는 게 아니라 당신들의 눈 보호를 위해서 그런 건데.

내가 당황스러워하고 있던 그때, 루베르가 나를 향해 한 발짝 더 다가왔다.

그러더니 내 어깨에 묻어 있던 머리카락을 떼어주고서는 씩 웃었다.

“그럼 조금 이따가 만나요.”

미모가 열심히 일하는 순간이었다.

“네, 네.”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자 루베르의 호선이 더욱 짙어졌다.

이 남자, 자기가 어떻게 하면 더 매력적인지 알고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의심의 눈초리를 키워나가려던 찰나 루베르가 뒤로 물러나더니 곧이어 걸치고 있던 외투를 시종에게 넘겼다.

우리는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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