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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속 대공을 구출하겠습니다 (50)화 (50/120)

50화

루베르의 눈이 번뜩이는 걸 파악한 카룬은 빠르게 말을 이어나갔다.

평소였다면 저를 없는 사람처럼 취급했을 그가 오랜만에 보인 반응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 약방에 와서 20년도 더 된 독약에 관해서 묻더군요.”

“독약이라면……!”

“그래, 그대와 내가 그렇게 찾아 헤매던 것 말입니다.”

루베르가 선대 대공 부인이었던 스텔라의 죽음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더욱이 그의 옆에 있던 유일한 벗으로서 그때의 루베르가 얼마나 슬퍼했는지도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던가.

배후에 반드시 누군가 있다.

의견이 합치한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선대 대공이었던 루크는 그 일에 관해 더는 캐고 싶지 않다는 뜻을 표했다.

조사하는 과정을 들킬 수 없는 루베르 입장에서 황태자였던 카룬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카룬 또한 그랬다. 20년도 넘게 엄격히 감시하고 있던 약물의 존재는 그의 관할에서 일어난 잘못이었다.

어떻게 본다면 루베르의 어머니는 자신의 실수로 인해 사망한 것과 다름없었다.

카룬은 어떻게든 그 죄를 씻고 싶었다. 자신의 친우와의 우정을 이렇게 망가뜨리고 싶지도 않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조사했다.

그 결과는 그렇게 좋지 못한 결말로 막을 내리고 말았지만.

카룬이 그때를 떠올리면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대공과 선대 대공이 사용하고 있던 수면 향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다니더군요.”

“수면 향에 대해서 말입니까?”

루베르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아마 그 여자로부터 이런 얘기를 전해 듣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자신이 줄 수 있는 정보가 그렇게 적지는 않았구나.

오랜만에 나누는 루베르와의 대화는 과거의 많은 감정을 떠올리게 했다.

이대로 우리가 다시 친하게 지낼 수만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하던 카룬이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제는 돌이킬 수 없겠지.

그건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은 죄인이었으니까.

“여러모로 참 날카로운 건지, 아니면 둔감한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조심하라고 일러두었습니다.”

“…….”

“더 많은 피해자를 만들길 바라는 게 아니라면 대공도 그만 그 탐정을 돌려보내는 걸 추천하지요.”

“제 손님의 대우는 저희 성에서 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말라는 건가. 아니, 정확히는 관심조차 가지지 말란 뜻이겠지.

결국 또 날이 선 말이 서로를 날카롭게 베어냈다.

카룬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이제는 물러날 때임을 알아서였다.

“주제넘은 걱정이었군요.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바로 정신을 잃을 정도로 무리하는 걸 보니 괜히 나도 모르게 신경이 쓰였나 봅니다.”

루베르의 눈매가 다시금 매서워졌다.

자신이 먼저 대화를 청하려고 할 때는 한 번도 들어준 적이 없던 남자인데.

이렇게까지 감정을 드러내는 게 새로우면서도 동시에 심술이 샘솟았다.

“그날 조심히 들어가셨는지는 모르겠군요.”

“저희 손님은 저희가 잘 알아서 모시고 있습니다. 걱정은 마십시오.”

두 번째 선 그음. 이번에는 아까보다도 더욱 적나라한 불쾌감이 깃들어 있었다.

예전의 그때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어 카룬이 슬그머니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그에게 조언해야 할 게 있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라고 알려주십시오.”

“…….”

“그와 관련된 비밀을 파헤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진심을 담은 마음이 과연 전해졌을까.

카룬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루베르를 마주봤다.

그러나 루베르의 표정은 아까보다도 더욱 차갑게 굳어 있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약점을 파헤치는 게 얼마나 위험한 건지는 말이죠.”

루베르의 적안이 정확하게 카룬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 자리에 오르고 가장 먼저 느꼈던 게 그것입니다.”

“…….”

“가까운 사람일수록, 높은 사람일수록 더욱 조심해야 할 게 늘어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을요.”

쿵.

카룬의 심장이 다시 한 번 크게 달음박질을 쳤다.

그래, 자신은 이런 말을 듣더라도 그에게 어떤 말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 건 오히려 제가 더 잘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 말을 마친 루베르가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카룬을 지나쳤다.

두 사람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 * *

루베르는 알현실로 향하는 복도에 들어서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수면 향에 대한 것이라.’

아스텔라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런 수고로운 행동을 했을 리는 만무했다.

분명 무슨 이유가 있어서겠지.

언제나 그랬다. 그녀가 하는 행동에는 항상 이유가 있거나 아니면 그녀가 원하는 결과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는 건…….

‘아스텔라는 지금 수면 향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루베르가 미간을 좁혔다. 그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극히 드물다고 해도 좋았다.

무엇보다 해외에서 처음 보는 재료나 물건을 수입하는 건 대공과 황궁이 함께 맡고 있는 일이었다.

그 말은 즉, 그 수면 향을 들일 때 선대 대공이었던 자신의 아버지도 일에 관여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런 수면 향에서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다니.

일을 대충 하는 법이 없는 아버지에게서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뚜벅뚜벅.

대체 무슨 연유로 그녀가 그런 행동을 했을까.

카룬의 얘기를 들어보면 마치 자신이 사용하던 수면 향에 문제가 있었던 것처럼 말하던데.

‘혹시 그럴 만한 증거라도 찾은 걸까.’

직접 가서 물어보는 게 빠르긴 하겠지만, 어찌 되었든 마음이 복잡했다.

―너도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지. 이번에 우리가 새롭게 들여온 수면 향이다. 너도 써보거라.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거의 교류가 없던 아버지에게서 받았던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문제가 일어났다고?

‘역시 아버지는 나를 원망하고 계셨는지도 모르겠군.’

크리튼의 말을 듣고서 모두 용서했을 거라 믿은 자신이 안일했다.

어떻게 용서가 되겠는가. 자신도 어머니의 죽음을 파헤치지 않은 아버지에게 그렇게 실망했었는데.

‘어쩌면 이대로 함께 생을 마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여인을 죽게 만든 원흉과 함께.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휑해지는 기분이었다.

“대공 저하를 뵙습니다.”

알현실 앞에 도착하자 앞에 서 있던 보초가 루베르를 향해 격식을 차려 인사했다.

루베르는 대충 손짓하고서 말을 이었다.

“황제 폐하의 명을 받고 왔다. 안에 계신가.”

“네, 아까부터 대공 저하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어서 들어가시지요.”

그래도 반년 만에 자신이 일어난 게 큰 사건이긴 한 모양이었다.

언제나 바쁜 황제가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어 이렇게 기다려주기까지 한 것만 보더라도.

끼익.

알현실로 향하는 두꺼운 문이 양쪽으로 열렸다.

루베르가 걸음을 떼어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저 높은 의자에 앉은 한 남자가 손을 들며 입을 뗐다.

“루베르,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다.”

“제국의 태양,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그런 인사는 집어치워라. 나는 네가 무사한 것으로 족하니까.”

말을 마친 황제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계단 아래로 성큼성큼 내려왔다.

곧 루베르의 앞에 선 황제가 대뜸 루베르의 손을 덥석 잡았다.

“어디 아픈 곳은 없느냐.”

“무척 멀쩡합니다. 심려를 끼쳐 죄송할 따름입니다.”

“네가 잘못되었을 때 네 아비를 볼 면목이 없어 내가 얼마나 미안했던지.”

황제가 눈물까지 그렁대면서 루베르를 올려다봤다.

선대 대공이었던 루크와 황제는 아카데미 동문이었지만, 단지 거기서 끝나는 가벼운 사이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서로가 힘들 때 도와주기도 하고, 선대 대공이 「그런 사건」을 겪었을 때 직접 나서서 그를 옹호해주기도 했으니까.

그랬기에 루베르는 언제나 그가 고마웠다.

“이렇게 무사히 일어난 걸 보면 분명 루크도 크게 기뻐했을 텐데.”

“네, 아버지는 이렇게 반가워해주시는 폐하께 감사 인사를 꼭 드리라고 했을 테고요.”

“하하하! 네 말이 맞아! 그 녀석은 언제나 그런 거에 인색했지.”

한참을 호탕하게 웃던 황제가 이윽고 웃음을 멈추고는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루베르를 쳐다봤다.

오염되지 않은 푸른 바다를 연상시키는 그의 하늘색 눈동자는 언제나 청량했다.

“조금 더 쉬는 게 좋지 않겠나. 아무래도 무리하면 좋지 않을 텐데.”

“아닙니다. 그래도 원래 하던 업무를 해야지요.”

“언제부터 일을 다시 시작하려고?”

“당장 내일부터라도 가능합니다.”

“흠.”

황제가 턱을 매만지면서 낮게 신음했다.

뭔가 불만족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이윽고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을 열었다.

“그대가 편한 대로 해. 하지만, 오늘은 반드시 돌아가서 쉬도록 하게.”

“감사합니다, 폐하.”

“아니, 이렇게 무사히 깨어난 게 더 고맙다네.”

황제가 루베르의 어깨를 툭툭, 치고서 다시 의자로 올라가 앉았다.

“그대 가문의 고집을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닌데, 말린다고 되는 사람이었던가.”

장난스러운 황제의 말에 루베르도 씩,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수면 향의 수입과 상용화 건에 관해서는 내일부터 업무를 재개하도록 해. 그대에게 맡기지.”

“알겠습니다, 폐하.”

두 사람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루베르는 무언가에 쫓기듯이 인사를 마치고 알현실을 나섰다.

―루베르!

그녀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듯한 환청마저 느껴졌다.

루베르의 발걸음이 조금 더 빨라졌다.

그는 이곳에서 더는 머물고 싶지 않을뿐더러 어서 돌아가 해야만 할 일이 있었다.

한시라도 빠르게 성으로 돌아가 아스텔라가 무사한지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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