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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속 대공을 구출하겠습니다 (48)화 (48/120)

48화

푸른빛이 반짝이는 안개 속으로 들어가니 그 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긴 대체 뭘까요?”

“무의식과 의식 사이의 경계야. 이제 여길 모두 지나가면 꿈에서 깨어나겠지.”

내 품에서 고개를 치켜든 포피의 말이 끝나자마자 푸른빛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이윽고, 푸른 화살표가 하나 생겨나더니 하얀빛이 반짝이고 있는 저편을 가리켰다. 마치 그곳으로 가라는 듯이.

“저기로 나가면 출구라는 뜻일까요?”

“아마 그럴 것 같군요.”

루베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탈출은 눈앞까지 도달한 상황이었다. 이전이었다면 지금 여기서 만세를 외치고 오열이라도 했겠지.

“아스텔라?”

하지만, 지금은 어째선지 그 정도로 기쁘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마음은 무거워졌고, 그만큼 이별의 시간은 더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정이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포피와 루베르가 그곳에 돌아가는 게 그렇게 달갑지 않다는 걸.

현실로 돌아가면 루베르는 분명 차갑고 잔혹한 진실을 마주하게 되겠지.

그렇게나 반가워했던 친구와의 관계 악화, 사랑했던 아버지가 자신을 죽음으로 몰았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그 범인을 찾는 걸로도 모자라 또다시 목숨이 위협받을 정도로 무거운 대공이라는 자리.

엄청난 무게감에 짓눌릴 그가 혼자서 얼마나 많은 걸 감내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루베르는 비록 내가 이곳에서 자신을 구해주었다며 감사하고 있었지만, 나중에는 나를 원망하게 될지도 몰랐다.

내가 보고 왔던 루베르의 현실은 너무나도 잔혹했으니까.

당장 나는 이곳에서 나가면 끝이었다. 하지만, 루베르는?

정말 이대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돌아가는 게 올바른 걸까.

“아스텔라?”

“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얼굴이 좋지 않아요.”

루베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내려다봤다.

이렇게 자상하게 대해주는 사람에게 나는 진실을 숨겼다.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졌다.

‘역시 얘기하는 게 좋을까.’

이곳이 게임 속이고 너는 앞으로 더 많은 절망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아스텔라, 몸이 좋지 않다면 내게 기대세요.”

루베르가 조심스럽게 내 손을 붙잡으면서 권유했다.

그의 따스한 온기를 느낌과 동시에 내 마음에 들어 있던 모든 고민이 사라졌다.

‘아니, 난 못 해.’

겁쟁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루베르에게 이런 사실을 얘기할 용기가 도무지 생기질 않았다.

무엇보다 루베르는 나를 의지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나마저 떠난다는 걸 말하는 것도 모자라 그런 악담을 펼치고 갈 수는 없었다.

어쩌면 나만 생각한 너무 이기적인 결말이었지만.

‘그래도 아스텔라라는 인물은 게임 속에서 실존하고 있는 인물이니까 내가 나가서 뭔가를 할 수 있을 거야.’

게임은 아직 깨지 않은 데다가 이미 캐릭터의 특징은 대부분 파악하고 있었다.

이것으로 어떻게든 루베르를 도울 수 있다면.

‘겁쟁이.’

이곳에 남을 용기는 없으면서 나쁜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이기적이기 짝이 없었다.

나는 자조적으로 나오는 웃음을 내뱉으면서 루베르의 손을 맞잡았다.

“전 괜찮아요. 어서 가요.”

곧이어 우리는 하얀빛이 반짝이는 탈출구 앞에 멈춰 섰다.

이제는 정말 작별의 순간이었다.

“루베르.”

“네?”

그래도 이 한마디는 해도 되지 않을까.

“당신과 함께해서 정말 좋았어요. 그리고 당신 잘못은 아무것도 없어요. 알고 있죠?”

“그게 대체 무슨…….”

“그냥 그 말이 꼭 하고 싶었어요.”

나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루베르의 손을 이끌었다.

눈치가 빠른 루베르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챌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 몸에는 이제 원래 아스텔라의 영혼이 돌아오겠지.

어쩌면 나랑은 차원이 다른 엄청난 능력으로 사건을 금세 해결할지도 모른다.

그게 루베르에게 훨씬 나은 상황이라는 걸 알면서도 씁쓸한 마음은 차마 숨길 수가 없었다.

“어서 가요.”

그래도 여기서 멈춰 서 있을 수는 없었다. 이제는 정말 돌아갈 시간이었으니까.

나는 포피를 안은 손과 루베르와 맞잡은 손에 힘을 주고 빛을 향해 한 발짝 걸음을 뗐다.

화악!

엄청난 빛이 우리를 감싸 안음과 동시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익숙한 감각이었다. 그야 몇 번이나 이런 느낌을 받으면서 현실과 악몽 속을 오갔으니까.

‘이젠 이것도 마지막이겠지만.’

씁쓸한 마음을 끝으로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눈앞에 쨍한 빛이 비쳤다.

또 아침이 오기라도 한 걸까. 내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눈을 뜨려던 바로 그때였다.

띠링!

익숙한 알림 덕분에 싫어도 눈이 번쩍 뜨였다.

내 눈앞에는 이제는 없으면 섭섭할 정도로 익숙한 푸른 창이 하나 떠 있었다.

나는 빠르게 주변을 둘러봤다. 내 옆에는 함께 서 있던 루베르도, 품에 안겨 있던 포피도 보이지 않았다.

그 말은 즉, 나는 게임과는 전혀 다른 공간에 있다는 것과도 같았다.

드디어 탈출했구나. 그걸 깨닫자 울컥 감정이 치솟았다. 곧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미션 클리어! 루베르를 악몽에서 구출하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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