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루, 루베르?!”
“이번에야말로 당신을 지킬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나를 끌어안은 탓에 루베르의 표정이 어떤지는 볼 수 없었지만, 작게 떨리는 그의 몸만 보더라도 대충 느낌이 왔다.
‘아, 그때 타서 죽었던 게 역시…….’
남이 보더라도 그렇게 유쾌하지 않은 광경을, 함께 지내던 동료였던 사람의 죽음을 목격했으니 꽤 충격이었겠지.
“죄송해요, 많이 놀라셨죠?”
“내가 부족했던 탓입니다.”
루베르가 허리를 일으켜 나를 이리저리 살폈다.
“다친 곳은 괜찮습니까. 아직 아픈 곳은요?”
“일어났을 때는 좀 아팠는데, 지금은 멀쩡해요. 걱정하실 정도도 아니고요.”
“하.”
루베르는 얼굴을 쓸면서 한숨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그때 보았던 광경이 여간 충격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전 정말로 괜찮아요. 위험할 상황에 맞춰서 마침 루베르가 구해주기도 했잖아요?”
“…….”
“정말 고마워요. 루베르가 아니었다면 벌써 또 한 번 죽었겠죠.”
“아스텔라.”
내 어깨를 붙든 루베르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루베르는 눈에 띄게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건 그의 흔들리는 눈빛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나는 루베르의 어깨를 붙잡아 내리며 그를 안았다.
두근, 두근.
루베르와 나 사이에 존재하던 틈 사이로 이제는 따스한 울림이 느껴졌다.
서로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몸으로 느끼고 나서야 루베르의 떨림이 조금은 잦아들었다.
“저는 정말 무사해요. 당신 덕분에 이렇게 살아 있을 수도 있던 거고요.”
“…….”
“그러니 더는 저에 대해서 죄책감 같은 건 가지시지 마세요. 항상 절 위해 최선을 다해 지켜주셨잖아요.”
“당신은 정말이지…….”
한참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루베르의 손이 이윽고 내 허리를 감쌌다.
곧이어 루베르가 내 목덜미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었다.
어린아이가 투정이라도 부리는 것 같은 그 자세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졌다.
“좀 더 칭찬해줄 순 없겠습니까?”
“네?”
허리를 감싸는 손길과 목덜미에 느껴지는 숨결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키면서 되묻자 루베르가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맞추고는 싱긋 웃었다.
“어릴 때의 모습일 땐 내가 뭘 해도 잘한다며 칭찬해주지 않았습니까.”
“그건 어렸을 때니까요.”
“지금이나 그때나 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데.”
시무룩한 얼굴을 보고 있으니 다른 변명이 떠오르질 않았다.
결국 나는 삐걱대면서 루베르의 결좋은 머리칼에 손을 얹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시느라 고생하셨어요. 덕분에 저도 이렇게 살아 있을 수 있는 거고요.”
“그건 틀렸습니다.”
“네?”
루베르가 단호하게 고개를 젓더니 내 손을 붙잡아 아래로 내렸다.
“당신이 나를 구한 거지, 내가 당신을 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루베르의 붉은 눈동자에는 흔들림조차 없었다. 그건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감정은 평소에 나를 보던 것과는 묘하게 달랐다.
뭐랄까. 마주하면 할수록 얼굴이 홧홧해지는 느낌이랄까.
그러면서도 루베르의 눈을 피하지 못하고 바라보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무슨 소리야, 우리가 이렇게 만날 수 있던 것도, 네 목숨을 구할 수 있던 것도 모두 포피 덕분이잖아!”
대뜸 콧김을 내뿜으면서 씩씩대는 포피가 오늘따라 귀여워 보였다.
나는 흘러나오는 웃음을 막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 포피의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포피와 나를 연결해주던 그 능력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적절한 때에 나를 도와주지도 못했겠지.
“그래, 네 덕분이야.”
“뭐, 뭐!?”
포피의 귀가 하늘을 뚫을 것처럼 올라갔다.
마치 자신이 뭔가를 잘못 듣기라도 한 듯한 표정이었다.
“네 도움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란 말에 동의한다고.”
“저, 정말이야? 네가 포피의 말에 동의한다고?”
“맞았다고 해줘도 뭐라고 하네. 아, 취소.”
“아니야! 포피 말이 다 맞지? 응!?”
포피가 이내 꼬리까지 흔들면서 얼굴을 들이밀었다.
먼지가 묻은 꼬질꼬질한 얼굴이 썩 내키지 않아 고개를 뒤로 뺐지만, 포피는 개의치 않았다.
“역시! 너희는 이 포피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니까!”
몇 번이나 신나게 웃어젖히던 포피가 이윽고 낑, 소리를 내면서 나에게 안겼다.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아스텔라.”
파르르 떨리는 작은 몸뚱이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그래도 누구 하나 나를 걱정해줄 리 없을 거라 확신했던 이 절망 같은 곳에서 내 편이 두 명이나 생긴 게 안심이 됐다.
‘이렇게까지 나를 찾아주러 오다니.’
예상치도 못한 그들의 행동에 감동이 밀려왔다.
나는 포피를 마주 안으면서 루베르를 향해 활짝 웃었다.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둘 다.”
그게 내가 진심을 담아 내뱉을 수 있는 최선의 감사 표시였다.
* * *
어른이 되어 힘이 돌아온 루베르와 함께여서인지 그렇게나 고비를 넘기며 내려갔던 게 거짓말 같았다.
“악!”
어디선가 숨어 있던 귀신들을 너무나 쉽게 해치우는 루베르 덕분이기도 했다.
루베르는 이제 칼로 귀신을 베어내는 게 아닌 단순히 휘두르는 수준으로 귀신들을 퇴치하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힘이 강하길래 그냥 휘두르는 걸로 끝인 거야?’
이쯤 되니 어린 시절의 루베르를 지키겠다고 몸을 바쳤던 과거가 좀 부끄러워졌다.
루베르는 이미 내가 구하거나 도움을 줄 정도를 넘어서 있었으니까.
“아스텔라?”
“네?”
루베르가 가만히 있던 나를 향해 고개를 갸웃댔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그러는 와중에도 구석에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귀신을 해치우는 루베르의 손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무서운 사람 같으니라고.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루베르는 미간을 좁히며 뭔가 탐탁지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건 얼마 가지 못했다.
“저기 출구가 보여!”
내 품에 쏙 안겨 있던 포피의 말에 우리 셋의 눈이 1층의 현관으로 향했다.
안나와 싸울 때만 하더라도 굳게 닫혀 있던 문은 이제 활짝 열려 있었다.
심지어 그 안에서는 익숙한 푸른빛이 넘실거렸고, 그 주변은 저번에 봤던 안개가 무성했다.
딱 보기에도 저곳이 출구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띠링!
출구로 추정되는 문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그때, 머리맡에서 익숙한 알림음이 울렸다.
곧이어 푸른 창이 떠오르더니 그토록 원하던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출구에 도달했습니다. 탈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