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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속 대공을 구출하겠습니다 (42)화 (42/120)

42화

루베르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포피의 짐작은 꽤 설득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아스텔라가 직접 얘기해줬던 것이니까.

‘지금 이 상황이 과연 그때와 같은 상황인가.’

그것에 관해서 루베르의 입장은 확고했다.

아니, 어쩌면 아닐 수도 있다. 작긴 하나 가능성이 남아 있는 지금, 혼자서 이곳을 나갈 수는 없었다.

일전에 제 앞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나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저를 찾아오지 않았던가.

“루?”

“아니, 포피. 그래도 아스텔라의 상태를 확인해야겠어.”

루베르의 시선이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아스텔라가 누워 있던 차디찬 마루로 향했다.

마치 마법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의 몸은 사라지고 없었다.

‘언제나 이런 상황을 혼자서 받아들여야 했던 걸까.’

이토록 고통스러운 순간을 다시금 맞이하게 했다는 분노가 다시금 치밀어 올랐다.

루베르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매만졌다. 평소에 불면증을 앓고 살던 그에게 두통은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었다.

‘괜히 늘 피우던 수면 향의 냄새까지 느껴지는 기분이군.’

꿈속에서조차 마음대로 쉴 수 없는 몸이라니.

이 정도면 자신에게 정말로 저주가 내렸던 건 아닐까. 루베르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걸음을 뗐다.

사실 모든 건 핑계에 불과했다.

루베르는 단지 아스텔라가 무사한지 그리고 정말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함께 있어줄 수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지 않고는 도저히 이곳에서 나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이기적인 놈.’

어쩌면 포피의 말대로 루베르가 나가면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마음속에서는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루베르는 어떻게 해서든 아스텔라와 함께 이곳을 나서고 싶었다.

설령, 그녀가 정말 포피의 말대로 무사하게 되더라고 하더라도.

‘아니, 이기적이라고 하더라도 좋아.’

그녀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그런 손가락질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것이다.

달빛에 비친 루베르의 눈동자가 매섭게 번뜩였다.

마치 사냥감을 찾는 것처럼 매서운 그의 붉은 눈동자는 저택 안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무섭고 두려운 포식자의 눈빛이었다.

“루, 루! 저기 아직 남은 귀신이 있었나 봐!”

울먹거리는 포피의 목소리에도 루베르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손가락을 튕겼다.

“악!”

그러자 저 멀리 있던 귀신의 몸에 푸른 불꽃이 피어오르더니 곧이어 귀신이 재가 되어 사라졌다.

“루, 너…….”

포피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정도로 빠르게 모든 능력을 되찾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억을 되찾은 그에게 이 정도는 큰일도 아니었다.

루베르는 빠르게 뛰어올라 금세 2층으로 향했다.

“포피, 위치를 말해줘.”

“응, 지금은 더 멀리 있는 것 같은데. 아마 4층이나 5층쯤…….”

“알겠어.”

루베르의 속도가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어떻게든 이번에 그녀를 지켜내겠어.’

더는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끔찍한 경험은 두 번으로도 충분하다 못해 넘쳤으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스텔라를 반드시 지키겠다는 일념만이 가득 차올랐다.

그래, 설령 자신이 다치는 한이 있더라도.

루베르의 눈동자가 크게 일렁거렸다.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절대로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 * *

불타오르는 느낌이 세포 하나하나를 태우는 고통스러운 느낌이 아직도 생생했다.

언제쯤 이 고통이 끝날까. 아니, 끝나기는 할까.

눈앞에 훅 몰려오는 검붉은 불이 나를 덮치려 들었다.

“악!”

“어머, 탐정님!”

비명을 지르며 눈을 뜨기가 무섭게 밝은 방 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4일째: 낮〕이라는 글자가 눈앞에서 깜빡거렸다.

돌아왔구나. 죽지 않고 그래도 아직 이렇게 살아 있구나.

“탐정님, 많이 아프세요? 어머, 이 땀이랑 눈물 좀 봐! 울지 마세요, 탐정님. 금방 해열제를 가져다 드릴게요!”

루시가 내게로 조심스럽게 다가와 수건으로 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조심스럽게 루시의 작은 손을 밀어내면서 묻자 루시가 울먹이며 대꾸했다.

“어제저녁에 갑자기 쓰러지셨는데 열이 엄청 많이 나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의원님 말씀으로는 과로와 스트레스가 겹친 것 같다고 잘 쉬라고 하셨어요.”

다정한 루시는 속사포처럼 말을 이으며 이번에는 물수건을 갈아줬다.

어찌 되었든 그럼 3일째 밤은 무사히 지나가고 4일째 낮으로 돌아왔다는 얘기겠지.

그래도 아픈 걸 더는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게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안도의 숨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키던 바로 그때, 순간적으로 엄청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저쪽 세계에서 내 몸은 무사한 거 맞아?’

무엇보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죽은 것도 한 번밖에 되지 않아서 처음이라는 말도 그다지 적합한 말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죽고 나서 바로 살아난 걸 확인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갑자기 낮의 몸으로 깨어난 터라 내 몸이 제대로 부활했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게다가 부활한다고 했더라도 큰 문제가 있었다.

‘그러면 또 4층에서 시작한다는 소리잖아?’

루베르와 포피는 이제 1층에 있는데 나 혼자 거길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언젠간 맞이하게 될 4일째 밤이 두려워져 나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아니, 그런데 생각할수록 열 받네. 적어도 무사한지는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니야?

순식간에 두려움이 분노로 변하던 찰나, 가만히 나를 쳐다보고 있던 루시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추우세요? 창문을 닫아드릴까요?”

“아냐, 괜찮아. 그냥 그대로 둬도 돼.”

열이 뻗쳐서 지금 딱 뒤로 넘어가기 직전이니까.

내가 씩씩거리면서 숨을 쉬고 있는 걸 가만히 지켜보던 루시가 작게 흠칫댔다.

아니, 그렇게 무서워할 정도는 아니잖아. 루시, 우리 꽤 친한 사이 아니었어?

내가 당황한 눈으로 루시를 올려다보자 이윽고 루시가 화들짝 놀라면서 뒤로 돌아섰다.

“그럼 약을 가져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귀신 피하듯이 밖으로 나가는 게 영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짹짹.

정신을 차리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온몸이 불에 타는 고통 속에 있었는데, 창밖에서는 새나 울고 있고.

여태껏 내가 경험하고 느꼈던 모든 게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정말 모든 게 꿈일지도 모르지.’

차라리 그러길 바라는 게 더 나았다. 그 끔찍한 악몽 속에서 여러 번 죽을 바에는.

나는 이불 속에 몸을 더욱 욱여넣었다.

바깥에 뜬 태양을 보면 아직 내가 꿈속으로 돌아갈 시간은 아니겠지.

꿈속에서의 상태가 현실에 물리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없는 일이 된 건 아니었다.

아직도 몸이 불타던 고통은 생생하게 기억났다.

나는 질끈 눈을 감고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그러기가 무섭게 온몸이 벌벌 떨렸다. 마치 그때의 고통을 지금 느끼기라도 하듯이.

‘빌어먹을 게임 같으니라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사람을 이렇게나 부려먹는 건데.

그런 와중에도 무사히 전개를 진행했다는 안내 창을 보고 죽은 것에 안도하는 나 자신이 싫었다.

이제 더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정신은 극악의 난이도 때문에 난도질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으니까.

‘그래, 조금만 쉬자.’

적어도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래도 몸이 아팠다는 게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나는 금세 잠에 빠지고 말았다.

* * *

달콤한 단잠은 그렇게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잠이 들락 말락 하는 그 순간에 기가 막히게 방으로 들어온 루시와 집사 때문이었다.

“이제 괜찮으십니까?”

“네, 멀쩡해요.”

집사가 들고 온 약을 협탁에 내려놓으면서 나를 이리저리 살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쓰러지기 직전까지 같이 있던 사람이 집사였지?

하긴 나도 사람이 예고도 없이 내 앞에서 기절하면 엄청 걱정이 될 테니까.

그런 걸 감안하고도 계속해서 나를 살피는 집사의 모습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나는 어떻게든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안심시켰다.

루시는 아픈 와중에도 자신을 걱정해준다면서 눈물을 그렁거렸다.

그 마음이 갸륵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있었다.

“집사님,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 잠시 시간 좀 괜찮으신가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당연히 협력해드려야지요. 하지만, 너무 무리하시는 건 아니십니까?”

집사가 아직도 걱정 가득한 시선을 감추지 못하고 나를 응시했다.

무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으니까.

그렇다고 한들 일을 미룰 수는 없었다. 더욱이 물어볼 게 이렇게 확실한 상황에서는.

‘분명 그때 안나는 그 사람에게 일이 생길 줄 알았다면 돕지 않았을 거라고 했어.’

이곳에 있으면서 안나의 동요를 불러일으킬 사람이라면 한 명밖에 없었다.

안나가 그토록 사랑했던 대공의 죽음에는 역시 풀어야 할 의문점이 있었다.

정확하게는 안나가 대공이 죽고 함께 지내던 사용인들마저 죽게 만들면서까지 협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걸 알아내야 했다.

‘안나가 자살한 이유도 이제야 이해가 갈 것 같아.’

그런 상황에서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했을까.

‘어찌 되었든 안나는 선대 대공의 죽음에도 관여했을 거야.’

그렇다면 가장 먼저 의심해야 하는 살해 방법은 역시 독살이 아닐까.

선대 대공의 죽음에 의문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어떻게든 그의 사인과 그때의 상황을 명확하게 해야 했다.

무려 대공 일가를 몰살하려고 한 무시무시한 사건이 아니던가.

‘그 정도로 엄청난 계획이라면 그만한 힘을 가진 사람이겠지.’

대충 그게 누구일지는 예상이 가긴 했지만, 그래도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용의자도 아닌 용의자 1이라니. 그렇다면 용의자가 더 있을 수도 있단 얘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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