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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속 대공을 구출하겠습니다 (37)화 (37/120)

37화

안나가 혼란스러운 듯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소리쳤다.

루베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서 앞에 서 있는 안나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참을 가만히 있던 안나가 고개를 들어 루베르를 향해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이제라도 내가 너를 돌본다면 그 아이도 분명 나를 이해해줄 거야.”

“뭐?”

저건 또 무슨 미친 소리야. 본인이 없어도 잘만 살고 있던 사람을 왜 괴롭혀?

하지만, 안나의 헛소리는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와 함께 가자, 루베르. 모두 잊고 여기서부터 우리 관계는 새롭게 시작하는 거야. 어때? 우리 둘 다 죄인이잖아. 여기서 그 죄를 모두 청산하는 거야.”

“…….”

“스텔라는 너를 임신하고 나서 몸이 약해졌어. 너도 그걸 알고 있지?”

안나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어주고 있는 루베르가 대단하게 느껴지던 바로 그때였다.

“나도 어머니를 죽인 죄인이라고 했지요?”

루베르가 높낮이가 없는 어조로 안나가 했던 말을 되뇌었다.

‘설마.’

루베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건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물론, 나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지만.

‘루베르는 아직도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지도 몰라.’

너무나도 많은 과거를 한 번에 접한 루베르가 혹여 이곳에서 모든 걸 포기하지는 않을까.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루베르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루베르!”

이 남자가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나는 빠르게 루베르의 소매를 붙잡고 뒤로 잡아당겼다. 하지만, 루베르는 그 자리에 서서 요지부동이었다.

아니, 대화 좀 하자고요! 저런 말도 안 되는 소리에 휩쓸릴 바엔!

계속해서 옷자락을 잡아당기자 루베르가 고개를 돌려 나를 응시했다.

그리고 소리를 내지 않고서 입을 벙긋거렸다.

‘괘, 괜찮아요?’

뭐가 괜찮냐는 말인지를 물어보려던 찰나, 루베르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곧이어 루베르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던 내 손에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루베르는 내 손을 붙잡아 내리며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마치 자신에게 용기라도 불어넣어달라는 듯이.

* * *

루베르는 아직도 앞에 서 있는 안나를 바라보며 검을 거머쥐었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걸 부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머니가 아프기 시작했던 출발 선상에 자신이 있었던 건 거짓이 아니었으니까.

그런 생각에 여태껏 죄의식에 사로잡혀 하루하루를 보낸 적도 있었다.

“루베르…….”

손을 맞잡아주는 따스한 온기에 안심이 되었다.

지금 와 생각하면 그녀는 자신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기 위해 어머니가 보내준 사람이 아니었을까.

잘못한 거라며 스스로 탓하는 것조차 어머니에게 상처가 되는 일이라는 걸 상기시켜주려고.

그렇다면 더욱 멈춰 있을 수는 없었다.

이제는 과거 속에 갇혀 허우적거릴 시간조차 아까웠다.

무엇보다 루베르는 자신의 곁을 지켜준 아스텔라를 한시라도 빠르게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다.

루베르는 천천히 입을 뗐다.

“예전의 나였다면 당신의 말에 동조했을 겁니다.”

“뭐라고?”

안나의 눈동자가 거세게 일렁거렸다. 루베르가 이런 말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어머니는 제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마음 아파하실 정도로 다정하셨던 분이니까.”

언제나 어머니는 그랬다. 루베르를 자신의 자존감이자 자랑이라며 얘기했으니.

―루베르, 기억하렴. 넌 언제나 내 자랑이란 걸.

적어도 아프지 않은 그곳에서만큼은 더 마음 아프실 일이 없길.

루베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은 그것이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너무 늦은 깨달음이긴 했지만.

“나는 당신과 함께 갈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만 비켜서시지요.”

“…….”

“어머니를 돌봐주셨으니 더는 탓하지도 않겠습니다. 이게 제 마지막 배려입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있었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다.

가문이 넉넉하지 않았던 안나가 독약을 구할 방법도, 증거조차 남기지 않고 무사히 넘어갈 수 있던 방법도…….

‘누군가가 뒤에 있었군.’

분명 그 뒤에서 안나를 움직였던 자가 있었다는 걸.

루베르가 손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어떻게든 이곳에서 빠져나가 그걸 파헤친다.

자신에게는 이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더는 이곳에 머물 수 없었다.

* * *

‘다행이다.’

진심으로 루베르가 저 말에 홀랑 넘어가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뱉으면서 힐끗 저편을 쳐다보고 있던 그때였다.

“너희들은 항상 그런 식이지.”

표정을 일그러뜨린 안나가 이를 갈면서 한 발짝 앞으로 다가왔다.

“항상 나를 동정하는 듯한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 뭐든 이해해줄 것처럼 구는 태도도.”

“…….”

“스텔라도 너도 언제나 나를 그런 식으로 쳐다봤지.”

이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시비야.

이제 보니까 안나는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사람 같았다.

“내가 가지지 못할 것들을 손에 쥐고서 나를 내려다보는 그 가증스러움이 얼마나 나를 숨 막히게 했는데!”

악에 받친 안나의 목소리가 넓은 홀 가득 울렸다.

안나의 곁에 있던 귀신들의 웃음소리가 뚝 멎었다. 그들은 일제히 루베르와 내가 있는 방향을 노려보고 있었다.

“너희들은 아무것도 몰라.”

“…….”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남에게 베풀어준다고 생각하는 너희들은 우리 같은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치열한지 알 수도 없다고!”

루베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자 안나가 눈을 부라렸다.

이윽고 안나가 거칠게 호흡하면서 속사포처럼 말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모두 이해할 것처럼 굴지 마. 너희들은 내가 살기 위해서 어떤 짓까지 했는지 모르잖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독을 사용해 우리 어머니를 죽였다는 걸.”

“……!”

그 순간, 안나가 세상을 잃은 것처럼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마님!”

뒤늦게 달려온 집사 귀신이 안나를 부축해보려는 듯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안나는 집사의 손을 매섭게 뿌리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지? 그걸 알고도 지금 나를 용서하겠다고 한 거야? 나를 탓하지 않겠다고…….”

“분명 어머니라면 그런 말을 했을 테니까요.”

루베르가 내 앞을 다시 한 번 가로막으면서 안나와 거리를 벌렸다.

“하, 그래. 너희 가족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지.”

안나의 눈빛에 살기가 넘실거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무시무시함에 손에 땀이 났다.

“내가 루크를 사랑하는 걸 알면서 마치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는 듯이.”

“…….”

“내가 가난한 가문의 영애라는 걸 알면서 마치 적선이라도 하듯이.”

안나가 깔깔, 웃음을 터뜨리면서 한 걸음씩 더 다가왔다.

“그렇게 행동하면 너희가 착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아? 나랑은 다른 존재라는 거에 우월감이라도 느껴져?”

미친 사람. 대체 얼마나 열등감에 젖어야 저런 말이 나오는 거야.

당장이라도 욕이 튀어나올 뻔한 걸 간신히 참고 있던 바로 그때, 뒤에서 불쑥 포피가 고개를 내밀었다.

“이제 돌이킬 수 없어.”

“뭐?”

포피가 고개를 내 목덜미에 처박으면서 중얼거렸다.

“어떻게든 구하고 싶었는데.”

“너 그게 대체 무슨……!”

우르르 쾅! 쨍그랑!

제대로 된 말을 듣기도 전에 갑자기 1층에 있던 모든 창문이 깨졌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방금 나섰던 연회장으로 향하는 문마저 완전히 부서지고 말았다.

“그렇게 하면 네가 착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냐는 말이야!”

깨진 창문 사이로 불어 들어오는 비바람에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저런 괴물 같은 상대랑 싸워서 이길 수가 있을까.

아무리 루베르가 뛰어난 실력을 보유한 대공이라고는 하지만, 이곳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게임 속에서 보던 루베르보다 앳된 얼굴을 보면 확실했다.

루베르는 아직 자신의 힘을 모두 찾지 못했겠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귀신들을 처리해온 루베르는 거의 쉬지 못하고 강행군을 달려왔다.

그런 상황에서 이곳의 최종 흑막과도 같은 안나를 물리칠 힘이 남아 있긴 할까.

무엇보다 여기에 있는 건 안나만이 아니었다.

우리를 향해 매서운 시선을 날리는 수많은 귀신이 원을 그리듯이 우리를 둘러싼 상태였다.

그 말은 즉, 더는 도망칠 곳이 없단 것이었다.

“으앙, 무서워!”

나는 또다시 울음을 터뜨린 포피를 앞으로 당겨 안으면서 주변을 살폈다.

어떻게든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아니, 하다못해 그 석궁을 쏠 수라도 있으면 조금이나마 나을 텐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열심히 생각하던 바로 그때였다.

띠링!

축하합니다! 최종 스테이지에 도달해 아스텔라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 8 → 레벨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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