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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속 대공을 구출하겠습니다 (30)화 (30/120)

30화

문 너머로 흩날리는 먼지 사이로 얼굴을 드러낸 귀신이 씩 미소를 지으며 이곳으로 무섭게 기어 오기 시작했다.

“악!”

“포피, 포피도 챙겨 가야지!”

나는 빠르게 내 몸을 타고 오르는 포피를 붙잡고 반대편으로 달렸다.

하지만, 쫓고 쫓기는 술래잡기는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언제 여기까지……!”

벽을 타고 온 건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귀신이 긴 혀를 날름거리며 나를 향해 다가왔다.

“윽!”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다가온 귀신이 이윽고 내 발목을 붙잡고 아래로 훅 잡아당겼다.

내 몸은 속절없이 귀신의 밑으로 딸려갔다.

“아스텔라!”

포피는 어쩔 줄을 모르는 듯이 방방 뛰었다.

“이것 참, 여기서 이런 꼴을 보고 싶지는 않은데.”

그런 와중에도 남자는 태평하기만 했다.

‘저런 사이코패스 같은 검이 있나!’

아까 포피가 했던 말이 진짜였을 줄이야. 나는 있는 힘껏 남자를 노려봤다.

“야! 너도 루베르의 친구라면 아스텔라를 도와야 할 거 아니야!”

“나는 그 녀석의 친구가 아니야. 그러니 저 여자를 도울 필요도 없지.”

포피의 말에 남자가 처음으로 정색하면서 반박했다.

“……내게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라면 말이야.”

“뭐라고?! 이 못돼먹은 검 같으니라고!”

“네 성질도 그렇게 좋지는 않아.”

귀신한테 붙잡혀 있는 나를 두고 참 태평하기도 했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싸울 시간에 나 좀 구해줄래!?”

“아!”

포피가 화들짝 놀라며 나를 쳐다봤다. 이윽고 몸을 돌리던 남자와 허공에서 정확하게 시선이 마주쳤다.

“내가 도와주면 넌 뭘 해줄 건데?”

“뭐?! 악!”

곧이어 귀신의 머리카락이 내 전신을 휘감기 시작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없었다.

“워, 원하는 게 뭔데!”

“음, 주로 좋아하는 건 사람의 약점을 알아내는 거긴 한데…….”

“웃기지 마!”

그런 걸 허락하는 변태가 어디 있냐고!

“그래, 네겐 그걸 굳이 얻어낼 필요는 없겠네. 그랬다간 그 녀석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니까.”

뭐라는 거야, 진짜!

내가 다시 한 번 울분을 토해내려던 그때였다. 남자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파앗!

곧이어 엄청난 안개와 함께 내 위에 있던 귀신이 저편으로 날아갔다.

“악!”

어느새 구석에 나동그라져 괴롭게 비명을 지르는 귀신을 얼마나 보고 있었을까.

“자, 일어나.”

“네?”

남자가 내 손을 붙잡고 나를 번쩍 일으켜 세웠다.

“어서 내려가야 할 거 아냐.”

아까까지만 해도 완전 남인 것처럼 선 그을 땐 언제고?

갑자기 변한 태도에 적응할 수가 없어 그를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귀찮게. 알아서 적당히 죽은 척하고 있을 것이지.”

“뭐라고요?”

딱.

남자가 가볍게 한번 손가락을 튕기자 뒤에서 환한 빛이 생겨났다.

“악!”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귀신이 푸른 불길에 휩싸여 몸을 이리저리 꺾고 있었다.

털썩.

얼마 지나지 않아 귀신은 재가 되어 공중에 흩어졌다. 그걸로 모든 게 거짓말처럼 끝이 났다.

“자, 그럼 이제 가볼까.”

남자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바로 앞에서 얼쩡거리는 포피의 등을 잡아 올렸다.

“이거 내려놔!”

“별짓을 다 해놨어. 그 녀석 하나 살리겠다고 말이야.”

아까부터 느꼈던 거지만, 역시 착각이 아니었다.

“당신, 왜 그렇게 루베르를 싫어하는 거예요?”

“잡담할 시간이 없는 거 아니었어?”

남자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대공의 집무실 쪽으로 고갯짓했다.

“어서 가자고.”

그 말을 끝으로 남자는 빠르게 연무장에서 빠져나갔다.

* * *

귀찮게 됐다.

이 세상을 주름잡았던 마검, 크리튼인 자신이 대체 어쩌다가 이런 짓을 하게 된 건지.

크리튼은 바로 앞에 걸어가고 있는 작은 여자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 녀석이 도와달라고만 하지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인간과의 유대감은 이래서 쌓지 않으려고 했건만. 역시 정이란 건 하등 쓸모없는 것이었다.

“뭐 하세요? 빨리 와요!”

“가고 있잖아.”

크리튼이 뒤에서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귀신을 향해서 몰래 불덩이를 날렸다.

저런 쓸모없는 마력 덩어리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자신이 처리하게 만드는 꼴이란.

“저리 비켜 있어. 내가 앞서서 갈 테니까.”

결국 답답한 마음에 크리튼이 앞장섰다. 아스텔라는 그대로 옆으로 비켜섰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크리튼의 걸음걸이는 조심스럽게 옮기던 아스텔라의 것과는 사뭇 달랐다.

“길을 전부 알고 계신 거예요?”

“내 영혼의 기운을 따라가기만 하면 금방이지.”

어깨를 으쓱해 보인 크리튼은 어느새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발견하고서 턱짓했다.

“저기 있네. 가자.”

“와, 능력 대박.”

뒤에서 자신의 능력에 순수하게 감탄하는 목소리가 썩 나쁘지 않았다.

―와, 정말 대단한데요?

그래, 자신의 유일한 친구인 그 녀석의 아내였던 스텔라와 똑같은 반응이랄까.

한껏 어깨를 편 크리튼이 환한 불꽃을 뽐내면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두 사람은 3층 복도를 거닐고 있었다.

“저기요.”

“크리튼이라고 불러. 어차피 너희는 날 그렇게 부르고 있잖아?”

“네, 크리튼 씨. 그러면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뭔데?”

크리튼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아스텔라와 눈을 맞추었다.

“내 스리 사이즈?”

“아니요.”

아스텔라가 질색하면서 손사래를 쳤다. 장난에도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는 게 꽤 재미있었다.

크리튼은 웃음이 터질 뻔한 것을 간신히 억누르며 헛기침을 했다.

“그러면 뭔데?”

“음. 이런 걸 물어도 괜찮은지는 모르겠지만…….”

한참을 머뭇대던 아스텔라가 곧이어 말을 이었다.

“왜 그렇게 루베르를 싫어하는 거예요?”

“뭐?”

아스텔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튼은 꽤 충격이었다. 자신이 그 정도로 티를 냈던가. 아니, 적어도 그러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저 녀석은 원래 그런 녀석이야. 남을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 변태 같은 검이라고!”

부정할 생각은 딱히 없었다. 크리튼은 그걸 꽤 즐기기도 했으니까.

그래, 그 녀석을 만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랬는데.

“…….”

아스텔라의 눈은 자꾸만 잊고 있던 과거를 상기시켰다. 그래서였을까.

“루베르, 그 녀석은 언제나 그런 식이었어. 자신이 가장 슬픈 줄로만 알지.”

그 녀석이 얼마나 속으로 울부짖었는지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그래서 더욱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루크도 그녀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말이지.”

이윽고 크리튼의 걸음이 딱 멎었다. 바로 앞에 놓인 철창 너머로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루베르가 보였다.

“도착했네.”

크리튼이 쇠창살에 손을 가져다 대자 검은 오라가 피어났다. 이윽고 그 주변의 쇠창살이 모조리 사라지더니 커다란 구멍이 하나 생겼다.

크리튼은 원래 그 자리에 구멍이 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

못난 녀석. 이런 놈을 지켜달라고 마지막까지 부탁한 그 녀석이 불쌍해질 지경이었다.

“네 아버지가 내 친구가 아니었다면 너는 진즉 죽었을 거야.”

루베르의 귓가에 작게 속삭인 크리튼이 한숨을 내쉬면서 뒤로 돌아섰다.

“이제 더 조심해야 할 거야. 자신 있어?”

아스텔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크리튼을 바라봤다. 저 작은 여자아이가 정말 이 녀석을 지킬 수 있을까.

크리튼은 믿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내 영혼의 절반이 바깥에 있었기 때문에 이 녀석은 죽지도 않고 무사할 수 있었다는 얘기야.”

“그러면 여태껏 루베르를 지켜줬던 게…….”

크리튼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내 아들, 루베르를 부디 지켜줘. 혼자 남은 그 아이가 외롭지 않도록.

마지막으로 들은 친구의 부탁을 꼭 들어주겠다고 맹세했다. 그랬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자신의 영혼을 나누고, 이곳에서 기약 없는 기다림을 지속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더는 내가 이 녀석을 제대로 돌볼 수가 없으니까.”

“…….”

이제 남은 건 저 여자뿐인가. 왠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목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아, 그새 또 정이 든 걸까. 그 짧은 틈에.

크리튼은 천천히 루베르를 살폈다. 한 손에 들린 검을 보고 있자니 더욱 감정이 샘솟았다.

“잘 부탁한다.”

그래도 저 여자아이에게 남은 「힘」이 있으니 괜찮을지도 모르지.

크리튼은 이제 상념을 접기로 했다. 더는 이곳에서 멈춰 있을 수는 없었다.

루베르도 그리고 자신도. 크리튼은 천천히 검에 손을 얹었다.

* * *

남자가 사라진 건 그야말로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그보다 더 충격적인 말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이제는 루베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얘기지?’

여태껏 지켜주고 있던 이상한 힘이 크리튼의 마력이었다니. 정말 예상치도 못한 일이었다.

적어도 크리튼이 해줄 수 있는 보호는 모두 해주고 있었구나.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뭐 저런 게 다 있냐는 마음이 싹 사라졌다.

띠링!

「철창을 올리고 루베르를 구출하라」를 달성하였습니다. 보상으로 루베르의 무한한 신뢰를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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