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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속 대공을 구출하겠습니다 (28)화 (28/120)

28화

뚜벅뚜벅.

어느새 뒤에서 들리기 시작한 발소리는 내 심장을 옥죄어왔다.

어떻게든 4층에 가자마자 몸을 숨길 수 있을 만한 곳을 찾아야 한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그것뿐이었다.

“아스텔라, 저 녀석…… 아직 널 발견하진 못한 것 같아!”

포피가 울먹거리면서 말을 덧붙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지막 칸을 밟고 4층의 복도로 들어섰다.

적어도 내가 숨을 수 있을 곳이 하나는 있겠지.

지금 내게 남은 희망은 그것뿐이었다.

“헉, 헉.”

길게 이어진 복도에는 다행스럽게도 무수히 많은 문이 줄지어 있었다.

뚜벅뚜벅.

발소리는 이제 지척에서 들려왔다. 그새 또 내 뒤를 빠르게 추격하는 모양이었다.

“저기! 저기로 들어가자!”

내 얼굴 옆으로 쑥 제 얼굴을 내민 포피가 작은 손으로 바로 앞에 있는 창고 문을 가리켰다.

‘아, 가장 근처에 있는 문이라 좀 찝찝한데.’

하지만, 저 안쪽까지 들어갈 여유는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빠르게 창고 문고리를 돌렸다.

끼익.

다른 때와는 다르게 조금 가벼운 경첩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다행스럽게도 창고는 잠겨 있지 않았다.

뚜벅뚜벅.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를 마지막으로 나는 빠르게 창고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 * *

“으앙, 무서워.”

훌쩍훌쩍.

포피의 울음소리가 창고의 적막을 깼다. 그래도 이 녀석이랑 같이 있으니 조금 위안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이대로 귀신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우리를 다 죽이면 어떡해?”

아니, 말 취소.

내가 차게 식은 눈으로 포피를 노려보자 포피가 낑, 소리를 내며 귀를 아래로 늘어뜨렸다.

우르르, 쾅!

“흡!”

창밖으로 들리는 천둥소리를 끝으로 복도 전체가 침묵에 뒤덮였다.

나는 들고 있던 촛대를 아이템 창으로 집어넣었다. 빛을 보고 이곳으로 들어오면 그것만큼 난감한 상황도 없었으니까.

너무 조용한 나머지 내 숨소리마저도 크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숨을 죽이고 있었을까.

뚝. 뚝.

물이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문밖에서부터 들려왔다.

곧이어 들려오는 무거운 발소리는 분명 아까 계단을 뛰어오르며 들었던 그 소리였다.

쿵, 쿵.

복도가 무너질 정도로 커다란 소리를 내며 다가온 발소리는 이제 복도 저편으로 멀어져 갔다.

특이한 점이나 이상한 점을 직접 보지 않아서 모두 알지는 못했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이건 절대 사람의 발소리가 아니야.’

온몸을 타고 흐르는 한기와 섬찟한 이 기분만으로도 충분히 느껴질 정도였으니.

그래도 계단을 타고 올라와 바로 눈앞에 있는 창고 문을 열지 않은 것만 하더라도 다행이었다.

나는 안도하면서 몸을 더욱 웅크렸다. 저 귀신이 사라질 때까지는 이 상태 그대로 있을 생각이었으니까.

똑.

그 소리만 들리지 않았더라도 분명 그랬겠지.

‘이게 뭐야?’

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듯한 소리에 일순간 몸이 굳었다. 귀신은 복도를 지나쳐서 다른 곳으로 간 게 아니었다.

똑똑.

내 직감이 맞았다는 걸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이번에는 두 번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노크 소리는 조금씩이지만, 확실하게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대체 지금 뭘 하는 거야?’

나는 슬그머니 창고 문 쪽으로 향했다. 밖의 상황이 대체 어떻게 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가 죽는 것보다는 그게 나을 것 같았다.

끽.

나는 되도록 조심하면서 문고리를 돌렸다.

좁게 열린 문틈 사이로 으슥한 복도의 풍경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내 시선을 잡아끈 건 따로 있었다.

‘미친.’

문 세 개 정도의 거리를 두고서 저만치에 한 여자가 가만히 서 있었다.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여자는 복도에 서서 가만히 문을 응시하더니.

똑, 똑, 똑.

이윽고 자신의 머리를 그대로 문에 가져다 박았다.

멀쩡한 손은 놔두고 대체 왜 저러는 건데!

여자의 푸석한 머리카락이 한번 문을 박을 때마다 거세게 흔들렸다. 나는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몸이 얼어붙었다. 바로 그때였다.

쾅, 쾅, 쾅.

문 안쪽에서 그 여자 귀신이 노크한 횟수만큼 대답이 돌아온 것은.

‘저 안에 또 사람이 있는 거야?’

나도 모르게 내지를 뻔한 비명을 틀어막으면서 가만히 지켜보자, 곧 여자가 문 앞에서 물러나 옆의 방으로 옮겨 갔다.

똑, 똑, 똑, 똑.

이번에는 네 번. 하지만 이전과는 달랐다.

“…….”

안에서는 아무런 대꾸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 순간, 여자의 고개가 이리저리 꺾이더니 이윽고…….

달그락, 달그락!

여자가 문고리를 몇 번이나 힘주어 돌리더니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가 문밖으로 나왔다. 아마 안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모양이었다.

곧이어 여자가 몸을 돌려 다음 방으로 향했다.

똑, 똑, 똑, 똑, 똑.

이번에는 다섯 번.

그러자 안에서 정확하게 다섯 번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여자는 그대로 방을 지나쳤다.

나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여자를 확인하고서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적어도 저 귀신을 피할 방법은 알게 된 셈이니까.

‘노크 소리에 맞춰서 똑같이 대답하면 살 수 있다는 얘기잖아.’

다행스럽게도 내 예감은 적중했다. 복도에서 들리는 노크 소리는 옆방으로 갈수록 한 번씩 더 늘어나고 있었으니까.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어!”

포피가 으르렁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자기도 귀신이면서 귀신을 경계하는 모습이 좀 모순이긴 하지만.

쿵, 쿵.

옆방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온 후 여자의 발소리가 바로 지척에서 들려왔다.

쿵.

이윽고 여자의 걸음이 창고 문 바로 앞에서 멈췄다.

어쩌면 일반적인 방만 두드리는 걸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는데, 내 희망을 듣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이건 그냥 창고 문인데 좀 가주면 어디가 덧나나.’

융통성 없는 게임 같으니라고.

어쨌든 방법을 알고 있으니 마음이 좀 놓이긴 했다. 노크 소리만 잘 듣자는 일념으로 내가 문 쪽으로 몸을 바짝 붙였다.

아까 옆방에서 몇 번을 두드렸더라. 여덟 번이었던가.

내가 곰곰이 아까의 상황을 되새기고 있던 바로 그때, 여자가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아홉 번. 다행히도 내가 듣고 있던 게 맞았다.

‘다행이야.’

적어도 이번만큼은 쫓기듯이 도망칠 필요가 없다는 것에 안심하면서 내가 손을 들어 올린 바로 그때였다.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쉼 없이 이어지는 노크 소리에 내 손은 그대로 허공에서 얼어붙었다.

알고 있구나. 귀신은 처음부터 나를 노리고 온 게 분명했다.

“아스텔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굳어 있던 그때, 포피가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아스텔라! 정신 차려! 여기서 나가야 해. 저 녀석은 지금 우리가 여기 있는 걸 알고 있다고!”

포피의 말은 틀린 게 하나 없었다. 이대로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는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겠지.

뭐라도 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체 뭘 어떻게?

“천장에 네모난 홈이 나 있어. 옆에 사다리도 있고! 저기에 뭔가 있는 것 같아!”

포피의 말이 끝나자마자 파란빛이 나타나 포피가 말한 네모난 홈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아무래도 또 능력이 발휘된 모양이었다.

똑, 똑, 똑, 똑, 똑, 똑, 똑…….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노크 소리가 정신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빠르게 옆에 놓여 있던 마대를 집어 들었다.

탁.

문고리에 마대를 걸자 마치 이 자리가 원래 자리였던 것처럼 정확하게 맞물렸다.

‘이걸로는 한참 부족할 거야.’

적어도 시간을 벌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나는 구석에 놓인 의자를 들고 와 문 앞에 쌓았다.

바로 그때, 계속해서 울리던 노크 소리가 뚝 멎었다.

“아스텔라, 얼른!”

포피가 다시 한 번 나를 재촉했다. 나는 그대로 뒤로 돌아 사다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포피, 꽉 잡고 있어.”

“알겠어!”

포피가 내 옷자락에 손을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랑거리는 감촉이 영 불편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쾅, 쾅!

사다리에 오르기가 무섭게 창고 문 쪽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노크 소리를 듣지 못한 귀신이 안으로 들어오려고 시도하는 게 분명했다.

‘이게 탈출로가 아니면 정말 방법이 없어.’

이제 믿을 만한 구석은 이것뿐이었다. 나는 빠르게 네모난 홈을 살폈다.

“아.”

홈 틈으로 작지만 바람이 느껴졌다. 나는 안으로 푹 파인 손잡이처럼 생긴 홈으로 손을 집어넣어 당겼다.

휘잉.

열린 홈 사이로 사람 하나가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을 만한 공간이 생겼다.

여기로 나갈 수 있어야 할 텐데. 밖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내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일단 여기를 사람이 다닐 용도로 만들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이대로 몸부터 들이밀었다가 죽으면 그것만큼 억울한 것도 없겠지.

“포피, 네게 일생일대의 부탁이 있어.”

“뭐?”

내가 포피의 몸을 들어 올리자 포피가 바동거리며 몸부림을 쳤다.

“너, 너!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포피를 괴롭히려고 하는 거지?”

“이 틈으로 올라가서 위가 어떤지 좀 봐줘. 알겠지?”

“싫어! 포피는 높은 곳을 싫어한단……! 으앙!”

포피의 말을 가뿐히 무시하고 좁은 틈 사이로 손을 내밀자 시원한 공기가 느껴졌다.

‘역시 이쪽은 바깥으로 연결되는 거였어!’

탈출할 수 있는 곳이 여기뿐인 만큼 정보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어때, 포피? 나갈 수 있겠어?”

“으음……. 그건 될 것 같긴 한데, 지붕 위라서 좀 기울어졌어. 그래도 괜찮아?”

“일단 가보자고.”

“뭐, 뭐!? 그럼 포피를 여기 올린 이유가 없잖아!”

나는 포피를 옆구리에 낀 채 그대로 작은 틈 사이로 몸을 밀어 넣었다.

쿵, 쿵!

문짝이 부러질 것처럼 세게 움직였다. 이제 더 버티는 건 힘들어 보였다.

나는 사다리를 발로 차고서 그대로 바깥으로 몸을 내밀었다. 그리고…….

“여기를 대체 어떻게 가라는 말인데!”

잔뜩 기울어진 지붕의 가운데에 멈춰 아찔한 낭떠러지와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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