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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속 대공을 구출하겠습니다 (27)화 (27/120)

27화

실수였다. 크리튼을 다룰 수 있다는 걸 너무 믿은 나머지 저도 모르게 이런 상황을 대비하지 못한 건.

“큭!”

쉼 없이 빨려 들어가는 마력 때문에 머리가 핑글핑글 돌았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너무 많은 마력을 한꺼번에 소진한 탓일지도 몰랐다.

어찌 되었든 자신의 섣부른 판단 때문에 위기에 처한 건 변함이 없지만.

“포기하십시오, 도련님. 저와 함께 가시면 해결될 일입니다.”

킥킥.

낮게 울려 퍼지는 집사 특유의 웃음소리는 언제 들어도 기분이 더러워졌다.

―도련님께서 무엇을 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제게 맡기시지요.

예전에 들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집사의 도발 때문이었을까.

경계를 충분히 해야 했음에도 또다시 이런 꼴이라니, 포피와 아스텔라를 볼 면목이 없었다.

“자, 이제 함께 가시지요.”

집사가 들고 있던 랜턴을 더욱 가까이 가져다 대던 바로 그때였다.

쨍그랑!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 하나가 빠르게 랜턴을 꿰뚫었다.

파앗!

랜턴의 유리 조각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그 안에 담겨 있던 검은 연기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젠장!”

집사도 그걸 예상하지 못했는지 욕을 내뱉었다. 기회였다.

챙!

“윽!”

적나라하게 보이는 뼈에 더덕더덕 붙어 있는 살점 사이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집사가 들고 있던 랜턴을 떨어뜨렸다.

안에 있던 심지가 타오름과 동시에 확, 불꽃이 일었다.

“으악!”

집사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뒤로 물러났다. 정말 아스텔라의 말대로 약점은 불이었다.

화형으로 최후를 맞이한 탓일까.

‘그런데 그걸 아스텔라가 대체 어떻게…….’

루베르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건 나중에 생각해도 될 문제가 아닌가.

마음을 다잡은 루베르가 다시 한 번 칼을 휘두르려 손을 올린 그 순간, 집사가 빠르게 저편으로 물러섰다.

“곧 다시 찾아뵙지요.”

집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루베르와 집사 사이로 빠르게 철창 하나가 내려왔다.

“거기 서!”

집사는 어둠 속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이제 양옆으로 내려온 철창은 루베르를 완벽하게 고립시켰다.

위기가 물러간 탓일까. 아니면 갑자기 너무 많은 힘을 쓴 탓일까.

루베르는 더는 이기지 못하고 벽에 몸을 기대며 쓰러지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루!”

“루베르!”

어느새 달려온 포피와 아스텔라의 목소리가 점점 멀게만 느껴졌다.

루베르는 마지막 남은 힘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급한 표정을 한 아스텔라가 뭐라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그게 무슨 말인지는 정확히 알기가 힘들었다.

점점 흐려지는 정신을 어떻게든 붙잡아보려고 용을 썼지만, 이제는 한계였다.

이번에는 꼭 물어보고 싶었는데. 대체 어떻게 귀신들의 약점을 알아낸 건지도. 그리고…….

‘번번이 나를 어떻게 구해주는지도.’

항상 자신이 위험할 때면 마치 알기라도 한 것처럼.

아스텔라의 손에 들린 석궁이 눈에 들어왔다.

대체 어떻게 저 가녀린 손목으로 이 좁은 틈을 비집고 정확하게 목표를 맞힌 건지.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어.’

자신이 지켜주려고 할 틈을 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루베르, 괜찮아요? 정신 차려요!”

“괜찮습니다. 그러니, 그만…….”

걱정해도 된다는 말을 채 끝내지도 못한 채 루베르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한심하긴.”

쯧쯧, 혀를 차는 크리튼의 야유를 마지막으로.

* * *

괜찮다고 얘기한 루베르의 고개가 아래로 푹 숙여졌다.

‘저게 뭐가 괜찮은 거야!’

누가 보더라도 하얗게 질린 얼굴로 괜찮다고 하면 믿을 줄 알았냐고!

“아니, 이 철창은 또 왜 내려온 건데!”

두 손으로 힘차게 철창을 밀어봤지만, 문은 열릴 줄을 몰랐다. 이래서는 무엇도 할 수가 없었다.

쿵!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에 어깨가 절로 움츠러들었다.

루베르도 쓰러지고 갈 곳도 없는 지금, 귀신이라도 만나면 그야말로 죽음뿐이었다.

“루베르!”

“윽.”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루베르는 누가 봐도 움직일 상황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더욱 초조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여기서 벗어나는 게 우선인데…….

“대체 어떻게 열라는 거야!”

몇 번이나 흔들어봐도 내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띠링!

내가 그렇게 말하길 기다렸다는 듯이 떠오르는 알림 창을 보니 힘이 쭉 빠졌다.

메인 미션: 철창을 올리고 루베르를 구출하라. 성공 시, 루베르의 무한한 신뢰를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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