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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속 대공을 구출하겠습니다 (24)화 (24/120)

24화

“이곳에 오게 된 이유는 뭡니까. 돈벌이를 위해서인가요? 가족은 있습니까?”

“어, 그게 말이죠.”

점점 길어지는 호구 조사에 진땀이 흘렀다.

이 정도로 자세하게까지 물어볼 거란 생각은 안 했는데.

“아스텔라?”

“사실은 그게…… 제가 기억이 없어서요.”

“네?”

루베르의 적안이 거세게 일렁거렸다. 내가 이런 말을 할 거라곤 예상하지도 못한 눈치였다.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거짓말도 아니잖아. 이렇게 된 이상…….

“언제부턴가 어릴 적 기억을 잃어버려서 가족에 관한 거나 제 나이도 사실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아요.”

“…….”

“그래서 자세한 얘기를 해드릴 수가 없네요.”

“미안해요. 그런 일이 있는 줄은 몰랐군요.”

“아니에요! 알고 물어보신 것도 아닌데.”

아까만 하더라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이렇게 어색할 일인가.

뭐라고 더 할 말이 없어 괜히 애꿎은 침대보만 매만지고 있던 그때였다.

“아스텔라, 그럼 다른 걸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네? 뭘요?”

무언가를 망설이는 듯이 입술을 움찔대던 루베르가 이윽고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이곳에 관한 얘기입니다.”

* * *

“이곳이라면…….”

루베르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아스텔라를 보면서 살짝 미소를 지었다.

괜히 그녀를 놀라게 해서 또다시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당신을 만나기 전에 이곳에 왔던 사람들을 통해 어느 정도는 들었습니다. 이곳이 현실과는 전혀 다른 곳이라는 걸요.”

“알고 계셨어요?”

“네, 어른이 되어서 북부를 다스리는 대공이 되었다는 것까지는.”

어린아이였을 때는 그 말이 모두 거짓말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몸이 크면서 기억이 돌아옴과 동시에 그건 전부 사실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나니 더욱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까는 쟤 혼자만 사라지더니 이번에는 너도 사라지고 말이야! 말을 하고 가라고!

마력을 운용할 수도 없는 일반인이 마법사가 된 것처럼 스스로 사라졌다니.

그것도 마력이 똘똘 뭉친 이 공간에서?

‘절대로 불가능하지.’

그래, 그녀가 마법사가 아닌 이상은 절대로.

루베르의 미간이 좁아졌다.

굳이 아스텔라가 자신을 속이기 위해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아스텔라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걸면서 필사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던가.

‘애초에 마법사였다면 나를 구하지 않더라도 이곳에서 나갈 방법을 찾아냈겠지.’

본인도 직접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던가. 그걸 인정하고 나니 입 안이 썼다.

이렇게나마 도움이 된다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한참을 망설이던 루베르가 이윽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스텔라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스텔라, 잠시 당신의 손을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네? 지금요? 상관은 없는데…….”

아스텔라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튀어나올 것처럼 크게 뜬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루베르는 아스텔라의 손을 마치 금방이라도 깨어질 듯한 유리를 쥐듯이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이윽고 눈을 감은 루베르가 아스텔라의 몸으로 자신의 마력을 불어넣었다.

‘역시 아니야.’

예상은 했지만, 사실을 확인하고 나니 더욱 안심되는 마음에 루베르가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사실 자신의 감이 틀렸다고 한들 달라질 건 없었겠지만.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아스텔라는 평범한 일반인에 불과했다. 아니, 이곳에서 평범하다고 얘기할 만한 일이 있기는 하려나.

루베르가 자조하면서 천천히 아스텔라의 손을 내려놓았다.

“의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면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전혀 그렇게 안 느껴졌어요! 의심하셨다고 한들 충분히 그럴 만한 상황이기도 했잖아요.”

아스텔라가 두 손을 마구 내저었다.

작은 두 손이 허공에서 흔들리는 걸 보니 그녀가 꽤 작은 체구라는 게 더욱 잘 느껴졌다.

“저도 제 몸에 관해서 잘 모르기도 하고요. 어쩌면 정말 마법을 쓸 수 있는 몸이 아닌지 의심도 했거든요. 이런 것도 되더라고요.”

아스텔라의 손에 아까만 해도 없던 촛대가 들려 있었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집은 물건은 이렇게 언제든 불러낼 수도 있고.”

“…….”

“이런 걸 보면 제가 좀 무섭기도 해요.”

아무렇지 않은 듯이 웃고 있긴 했지만, 파르르 떨리는 아스텔라의 손끝만 보더라도 그녀 역시 한계에 몰린 것처럼 보였다.

‘그런 사람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래, 그녀라고 이 상황이 혼란스럽지 않을까.

루베르가 거칠게 제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애써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어떻게든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아스텔라의 노력을 수포로 돌리고 싶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여길 벗어나야 할 텐데, 그렇죠?”

“이 세계에서 벗어나면 하고 싶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음…….”

아스텔라가 말을 흐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이 많은 걸까. 루베르가 가만히 아스텔라를 바라보고 있다가 입을 뗐다.

“뭐라도 좋으니 다 얘기해보세요. 제 목숨을 구해준 당신에게 어떤 보상이라도 할 테니까.”

“보상이요?”

아스텔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마치 루베르의 말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참을 고민하던 아스텔라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 * *

“그냥 적당한 보수면 되지 않을까요?”

“적당한 보수라.”

루베르의 당황한 눈을 보고 있자니 진땀이 흘렀다.

아스텔라가 목숨을 걸면서까지 이런 위험한 일을 맡은 이유라.

‘그런 거 나는 전혀 모른단 말이야!’

자본주의에 찌든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건 보수 따위가 한계였다.

무엇보다 목숨을 거는 걸 즐기는 사람은 아닐 테니까.

“그, 그렇죠! 무엇보다 루베르가 정신을 잃고 있다는 건 이미 알려진 데다가 보수도 걸려 있으니까요!”

“그렇습니까?”

“네, 네! 막대한 재산과 높은 명예를 노리고 달려드는 사람도 많아요.”

아마도.

어떻게든 머리를 쥐어짜내며 간신히 대답한 게 먹힌 걸까.

루베르가 탐탁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스텔라, 당신이 원하는 건 뭡니까.”

“저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죠. 수도에 멋진 집도 하나 얻고, 명예도 챙기고, 좋은 가정도 꾸리고 그러지 않을까요?”

“가정이요?”

갑자기 표정을 굳힌 루베르가 나를 쳐다보며 질문했다.

“따로 미래를 약속한 사람이 있는 겁니까?”

“아, 아니요. 딱히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중세 시대가 배경인 이곳이라면 독신으로 살아가는 자는 거의 없지 않을까.

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던 그때, 갑자기 노란 덩어리 하나가 불쑥 끼어들었다.

“흥! 이렇게 포피를 막 대하면서 어떻게 아이를 돌보고 가정을 꾸린다는 거야!”

“뭐라고?”

노란 머리통을 들이민 포피가 씩씩, 콧김을 내뿜으면서 독설을 퍼부었다.

조그마한 게 못 하는 말이 없네.

“악!”

포피의 머리를 내려침과 동시에 포피가 폴짝 뛰며 소리쳤다.

그러게, 까불긴 왜 까불어서.

내가 승리를 만끽하고 있자 루베르가 씩, 미소를 지었다.

“분명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까지 타인을 위해 목숨을 걸고 나서주는 사람이니까요.”

“네?”

“분명 그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도, 함께 하는 배우자도 모두 행복할 테죠. 누구든 부러워할 정도로 말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실수였다. 괜히 루베르 앞에서 가족 얘기를 꺼내서는.

가족이라는 단어가 그에게 있어서 상처와도 같은 것임을 알면서도.

“몸은 어떠세요?”

“한동안은 괜찮을 겁니다. 마검 때문에 상황이 조금 복잡해지긴 했지만요.”

어떻게든 빠르게 주제를 바꾸기 위한 내 노력을 눈치챈 걸까.

루베르가 제 손에 들고 있던 마검을 휘두르며 대꾸했다.

“복잡해졌다는 말은…….”

“마검은 인간의 가장 유약한 부분을 건드려 그걸 이겨내는 자를 주인으로 택합니다. 질 나쁜 시험에 합격한 셈이죠.”

질이 나쁜 건 그 검이 아닐까.

진심으로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듣고 있는 검이 눈앞에 있었기에 나는 턱 끝까지 차오른 말을 간신히 삼켜냈다.

“마검을 다스리기도 쉽지 않은 거군요. 고생이 많으셨어요.”

“이곳에 갇히기 전에도 겪었던 일이니 괜찮습니다.”

“그래도 힘드셨을 거 아니에요.”

내 말에 루베르가 검을 닦던 손을 멈췄다.

“뭐, 그다지 좋은 풍경을 보는 건 아니니 좋지는 않았지요.”

말을 아끼는 듯 보였지만, 그가 대충 어떤 광경을 마주했을지는 뻔했다.

루베르의 과거를 본 이상 그걸 모를 수가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하지만.

‘분명 어머니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고 있겠지.’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루베르가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태어난 게 그분께 큰 영향을 끼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절대로 그런 생각 하지 마세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실 분이라는 건 가장 잘 알고 계시잖아요.”

루베르가 힘없이 미소를 지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어머니는 마법사셨습니다. 어머니의 힘 덕분에 세상의 마수가 토벌되고 제국의 평화가 찾아올 정도로 강력한 마법사셨죠.”

“…….”

“그런 어머니의 상태가 날 낳은 이후로 빠르게 바뀌었습니다. 시작은 나로부터였지요.”

그게 아닌데. 루베르는 정말로 자신의 탓이라 믿고 있었다.

“위로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것에서 눈을 돌릴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요.”

“루베르, 당신의 어머니는 자살이 아니셨어요. 알고 계시잖아요!”

“당신이 그걸 어떻게……!”

루베르가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되물었지만, 내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알고 있구나.’

어쩌면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파헤치고 있던 게 아닐까.

이렇게 된 이상, 모두 밝히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당신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그분은 혼자가 아니셨어요. 같이 봐서 알고 계시죠?”

루베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서 고개를 떨구었다.

내가 무얼 말할지를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을 보니 이제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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