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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속 대공을 구출하겠습니다 (17)화 (17/120)

17화

―안나, 네가 나를 대신해서 그 두 사람을 지켜줘.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스텔라!

―부탁이야.

스텔라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맞잡은 손만 보더라도 그녀의 열망이 그대로 드러났다.

‘진심이야.’

그녀는 진심으로 안나에게 대공 부인의 자리를 권하고 있었다.

―안나, 이제 부탁할 사람이 너밖에 없어.

―스텔라…….

안나도 그걸 깨달은 것인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은 말없이 시선을 교환할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먼저 입을 뗀 건 안나였다.

―내게도 시간이 필요해.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너도 알고 있잖아.

―그래, 안나. 네게 부담을 줘서 정말 미안해.

―아니야.

고개를 내저은 안나가 이윽고 탁자 위에 놓인 봉투 하나를 집어 스텔라 앞에 내밀었다.

―부탁한 약을 가져왔어. 정말 저하께 얘기하지 않을 생각이야?

―그이에게 이보다 더한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아.

스텔라가 단호하게 선을 그으며 입을 닫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안나가 한숨을 푹 쉬면서 옆에 놓인 찻잔을 집어 올렸다.

―네 선택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차라도 마실래?

―고마워. 너도 함께 마시자. 찻잔도 마침 두 잔이잖아.

―그럴까? 그전에 일단 약부터 먹어. 오늘 약이 다 떨어져서 못 먹었다며.

―응, 그래야겠어.

찻잔을 받아 든 스텔라가 힘없이 웃으면서 차를 들이켜던 바로 그때였다.

“저건 또 뭐야?”

“왜 그럽니까.”

옆에 있던 루베르가 질문을 해왔지만, 대꾸할 여유조차 없었다.

깜빡, 깜빡.

스텔라가 들고 있던 찻잔 주변을 맴도는 빨간빛에 가슴이 쿵쿵 진동했다.

마시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보기만 해도 불편해지는 붉은빛은 이제 스텔라를 감싸고 주변을 빙빙 돌았다.

―윽!

그 순간, 스텔라가 가슴을 부여잡으면서 신음을 뱉어냈다.

쨍그랑!

바닥으로 떨어진 찻잔 두 개가 깨지며 날카로운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나가서 의원님을 불러올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안나가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혼자 남은 스텔라는 가슴을 부여잡은 채로 헉헉, 가쁜 호흡을 내쉴 뿐이었다.

‘아니, 환자가 몸이 안 좋은데 의원은 주변에 딱 붙어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과거의 파편을 통해 스텔라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서 더욱 마음이 심란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녀가 어떻게든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얼마나 스텔라를 지켜보고 있었을까.

뚜벅뚜벅.

복도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크게 울렸다.

사람을 데리고 왔구나. 다행이야. 안도가 되고 나니 몸에 힘이 쭉 빠졌다.

‘안나라는 사람이 정말로 스텔라를 좋아하긴 했구나.’

이렇게 빨리 의원을 데려올 거라곤 생각지 못했는데.

―나같이 예쁜 애에게 이런 뒤처리나 시키다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목소리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카나?’

이 악몽 속에서 질릴 정도로 들어본 목소리라고 해야겠지.

스텔라의 방으로 들어온 카나는 빠르게 침대로 다가갔다. 마치 이럴 것을 예상한 듯한 행동이었다.

―그러게, 일찍 죽었으면 좀 좋아?

씩.

여기서 본 것과 다르게 짓무른 피부도 훤히 드러나는 뼈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카나의 행동은 이곳에서 본 것보다 더욱 소름이 끼치고 구역질이 올라오게 했다.

―그랬으면 이렇게 될 일도 없었을 거 아니에요.

스텔라의 귓가에 작게 속삭인 카나가 킥킥, 웃으면서 바닥을 내려다봤다.

―아, 정말. 짜증 나게.

언짢은 듯 혀를 한번 찬 카나가 바닥에 주저앉듯 몸을 숙였다.

찻잔 조각들을 대충 살피던 그녀가 앞치마에 그것들을 추려 담았다.

―그럼 다음에 또 보자고요. 이번에는 장례식이 되려나?

사람이 저렇게까지 못된 말만 골라서 할 수가 있을까.

지금 당장이라도 뛰어가서 카나의 머리끄덩이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럼 안녕.

탁자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은 카나는 가만히 쓰러진 스텔라를 응시하다가 몸을 돌렸다.

카나는 마지막까지도 웃음을 잃지 않은 채로 방을 빠져나갔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줄지어 들려왔다.

―어서요!

방을 들어온 사람은 땀범벅이 된 안나와 허겁지겁 의료 상자를 들고 달려온 의원이었다.

곧이어 의원이 스텔라의 가녀린 팔목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이, 이럴 수가.

의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는 확실했다.

―숨을 쉬지 않으십니다.

―뭐라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자 한 명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방 안으로 들어섰다.

―지금 뭐라고 했지?

―대, 대공 저하!

의원이 화들짝 놀라면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대공에게 있어서 중요한 건 지금 그런 인사치레 따위가 아니었다.

―스텔라.

대공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대공은 망설이지도 않고 빠르게 침대로 다가갔다.

―스텔라, 내가 왔어. 일어나봐. 응?

대공의 간곡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스텔라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움직일 수 없다는 게 맞겠지만.

‘이럴 수가.’

경악스러운 상황에 입이 벌어졌다.

스텔라가 죽은 이유는 단순히 그녀의 몸이 나빠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건 아까 들어와서 이 상황을 예견하고 있었다는 듯이 행동하는 카나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스텔라가 죽기 직전에 했던 행동을 되짚어보면 사인(死因)은 명백했다.

‘자살이 아니었어. 독살이었던 거야.’

띠링!

그와 동시에 눈앞에 다시금 안개가 짙어지더니 푸른 창이 하나 떠올랐다.

단서가 추가되었습니다! 대공 부인은 독살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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