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대공 부인의 일만큼은 허투루 해서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던 사용인들은 모두 빠르게 움직였다.
―정말 조사를 하지 않으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집사의 걱정 어린 시선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던 대공의 모습은 아직도 루베르의 기억 속에서 생생했다.
―다 나으면 저랑 포피랑 함께 소풍 가기로 약속했단 말이에요!
어머니는 절대로 약속을 어길 사람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더욱 어렸던 루베르는 어머니의 죽음을 외면하는 대공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제 좀 알 것 같군.’
루베르가 힘없이 숨을 뱉어냈다.
모든 상황을 알았을 때 받게 될 충격과 죄책감. 아버지는 그게 두려웠던 게 아닐까.
고통의 늪에서 빠져나갈 힘조차 없는 아버지는 그 모든 걸 내려놓은 게 아니었을까.
“루베르……!”
대공 부인이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루베르를 노려봤다.
단 한 번도 마주하지 못했던 눈빛. 그 속에 담겨 있는 건 엄청난 증오였다.
루베르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칼을 거머쥐었다.
일전에 똑같은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또 자신은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이 환영에 사로잡혀 있었겠지.
“어떻게 내게 이럴 수가 있어! 그것도 네가!”
파르르 몸을 떠는 대공 부인은 누가 보더라도 애처로웠다.
하지만 루베르는 단 한 발자국도 떼지 않았다. 예리하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는 마치 이 상황을 관찰하기라도 하듯이 매서웠다.
루베르는 들고 있던 마검을 노려봤다. 예나 지금이나 취미가 나쁜 건 변함이 없었다.
“준비를 할 거면 좀 더 철저하게 했어야지.”
이전과 똑같은 수법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이 검은 모르는 게 분명했다.
루베르는 싸늘한 미소로 칼을 치켜들었다.
그 순간, 자리에 주저앉아 있던 대공 부인이 루베르를 향해 달려들었다.
“루베르, 네가 감히!”
눈앞에 있는 저 환영은 어머니가 아니었다. 그걸 눈치채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마검을 손에 쥐었을 때 시험에 들었던 상황과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무거운 마음은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또 한 번, 자신의 손으로 어머니를 베어내야 한다니. 이건 끔찍한 악몽이었다. 하지만…….
‘해야만 한다.’
약속하지 않았던가. 아스텔라를 믿어보기로.
제 목숨을 내던지면서까지 자신의 손을 붙잡아준 사람을 배신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루베르는 계속해서 그 말을 되뇌며 달려 나갔다.
* * *
“윽……!”
팔자에도 없는 짓을 하려니 삭신이 쑤셨다.
“어서 문을 닫아야지!”
“좀 기다려! 루베르부터 눕혀야 할 거 아니야!”
조그만 게 어찌나 말이 많은지!
포피의 머리를 당장이라도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지금은 등 뒤에 달고 있는 루베르가 너무 무거웠다.
“아휴!”
방은 또 왜 이렇게 쓸데없이 넓은 거야!
저 멀리 보이는 침대까지 루베르를 굴리는 게 더 나을 정도였다.
‘진짜 굴려버릴 수도 없고!’
나는 터질 것 같은 종아리에 억지로 힘을 주었다. 앞으로 조금만 더 버텨줘!
“아!”
침대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나는 등 뒤에 있던 루베르를 집어 던지듯 내려놓았다.
“헉, 헉.”
“이제 어서 문을 닫으라고. 안 그러면 또……! 아야! 왜 때려!”
“아까부터 쥐어박고 싶은 걸 참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이 얄미운 녀석을 한 대 때리고 나니까 기분이 나아졌다. 조금 상쾌한 것 같기도 하고?
“너! 루가 일어나면 다 이를 거야! 으앙!”
나는 포피의 울음을 뒤로한 채 한층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빠르게 문 쪽으로 향했다.
“와, 문이 내 몸의 몇 배인 거야?”
아까 들어오면서도 느끼긴 했지만, 정말 엄청난 크기였다.
이렇게까지 문을 크게 만들면 뭐가 좋길래.
나는 실용성이 제로에 수렴할 정도로 무식하게 큰 문의 손잡이를 잡고 안으로 당겼다.
끼익.
문은 묵직한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닫혔다.
이 정도의 무게라면 귀신이 쳐들어올 걱정도 없지 않을까.
‘아니야, 그 힘을 보면 문을 부수고 들어올 수도 있지.’
루베르가 처리했던 귀신과 같은 녀석들이라면 가능성이 있었다.
아, 또 생각났어.
잊히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귀신의 얼굴이 떠오름과 동시에 오한이 일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이냐고.”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천천히 옆에 있는 서랍에 몸을 기댔다. 이제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한계였다.
“어서 루의 상태를 봐줘야지!”
“네가 말 안 해도 가려고 했어.”
쉬고 싶다는 내 마음을 어떻게 저 정도로 감쪽같이 알아차린 건지.
내가 혀를 내두르면서 몸을 일으키려던 그때였다.
땡그랑.
“아.”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키면서 무게 중심이 기운 걸까.
서랍 위에 올라가 있던 액자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네가 사람을 보채니까 이런 거 아니야.”
“뭐!? 그건 포피 탓이 아니야!”
포피가 침대 위에서 폴짝 뛰어대면서 귀를 위아래로 세차게 흔들었다.
나는 그런 포피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서 액자를 집어 들었다.
“이건…….”
그곳에는 아름다운 여성과 어린 루베르가 활짝 웃음을 짓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루베르의 아래에 작게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사랑하는 나의 자랑, 루베르.〕
진심이 가득 담긴 글자를 보니 이곳이 어딘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왜 진작 알아채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방 안에는 여성의 물건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액자를 손에 쥔 채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생각하는 게 정답이 맞는지를 알려줄 사람, 아니 인형은 이제 하나뿐이었다.
“포피.”
“왜!”
“이 방, 혹시…….”
“뭐야, 너 알고 들어온 게 아니었어?”
포피가 고개를 갸웃대면서 천천히 침대 끝으로 다가와 털썩 앉았다.
“여기는 엄마 방이야. 나는 그걸 알고 여기로 들어온 줄 알았는데.”
“그냥 마음이 급해서 여기로 들어온 거지.”
“……그래? 루가 기절해 있는 게 다행이야. 루는 여길 좋아하지 않거든.”
“그건 왜?”
포피가 꼬리로 탕탕, 침대를 내려쳤다. 무언가 불만이 많아 보이는 행동이었다.
“루의 어머니는 이 방에서 돌아가셨어.”
“뭐?”
“말도 안 되는 일이야. 항상 약속을 지켰던 엄마가 자살이라니, 그걸 인정한 게 어이가 없어! 그 뒤로 루도 이 방에 안 왔지.”
작은 코끝이 파르르 떨리는 걸 보고 있자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더 자세히 물어보려고 입을 뗀 바로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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