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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되어 줄게, 기꺼이-127화 (127/130)

127화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백인서는 두 사람이 누웠던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이설은 새삼 놀라웠다. 구김 하나 없이 팽팽하게 펴진 시트며 가지런히 놓인 베개 등이 호텔 침구가 울고 갈 정도로 각이 딱 잡혔다. 누가 정리정돈 왕 아니랄까 봐.

“나 욕실 다 썼는데.”

인기척을 내자 백인서가 몸을 빙글 돌렸다.

“알았어.”

이설은 제 볼을 부드럽게 토닥이고는 욕실 쪽으로 걸어가는 백인서의 뒷모습에 오래도록 시선을 두었다. 그는 지나치게 담담했다. 그렇게 해야 켜켜이 묻어놓은 아픔이 중화라도 되는 것처럼.

잠시 후, 물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시원하게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 꼭 한여름 소나기를 연상시킨다.

이설은 백인서가 내는 물소리를 들으며 헤어드라이어의 전원을 켰다. ‘윙’ 소리와 함께 뜨거운 바람이 머리카락 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백인서는 뜨거운 바람이 머릿결을 상하게 할 수 있어서 좋지 않다고 했지만 어쩔 수 없다. 뭐든 빨리 끝내야 속이 편했다.

그러고 보면 성격이 조급한 그녀에 비해 백인서는 매사 참 느긋했다. 반반씩 섞어놓으면 더없이 좋을 텐데.

보송보송하게 말린 머리를 브러시로 빗어 내리고 있을 즈음 욕실 문이 열리며 백인서가 밖으로 나왔다. 허리엔 수건 하나만 달랑 두른 채로. 그러더니 물기 하나 없는 이설의 머리카락을 아쉬운 듯 쳐다보았다.

“머리 벌써 다 말렸네? 직접 말려주려고 했더니.”

“번거롭게 안 그래도 돼.”

“내가 말려주는 거 별로였어?”

백인서가 다가왔다.

“좋긴 한데 매번은 부담스럽지. 무슨 공주도 아니고.”

함초롬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데 백인서가 그녀의 앞으로 몸을 바짝 기울였다.

“아무리 봐도 공주 맞는 것 같은데.”

“어?”

“내 눈에 예쁘면 공주 아냐?”

그러더니 눈동자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향긋한 바디워시 냄새가 코끝으로 훅 끼쳤다.

“지금 되게 예쁜 거 알아? 눈동자도 그렇지만 특히 여기가.”

백인서가 손을 뻗어 이설의 허벅지 부근을 쓱 문질렀다. 이설은 당황해서 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샤워 후에 곧장 머리를 말리느라 셔츠와 팬티 한 장만 달랑 걸친 차림이었다.

“아, 그거? 이제 입으려고.”

“입지 마.”

“……왜?”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생겼어.”

백인서가 무릎을 꿇은 채로 이설의 다리를 천천히 벌렸다. 쭉 뻗은 콧대가 허벅지를 지그시 누르는가 싶더니 이내 잘생긴 얼굴이 다리 사이로 다가왔다.

쪽. 얇은 속옷 위로 입술이 닿았다. 이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입술만 벙긋거렸다. 일어나자마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그럼에도 백인서와 함께 있으면 온몸의 감각이 깨어난다. 미세한 자극에도 정신이 아뜩해질 만큼.

“으응.”

매끄러운 혀가 얇은 속옷을 진득하게 스칠 때마다 등허리로, 허벅지 사이로 불순한 감각들이 속살거렸다. 아래가 금방 축축해졌다. 그게 백인서의 타액 때문인지, 그녀의 안에서 흘러나온 질액 때문인지 분간할 방법은 없었다. 이설은 그저 고개를 뒤로 젖히고 신음을 토해내는 게 전부였다.

입술을 뗀 백인서가 속옷을 아래로 끌어내렸다. 분홍색 천 조각이 오른쪽 발목에서 대롱거리다가 한구석으로 치워졌다.

“조금만 더 벌려줘.”

“……그러고는 싶은데, 불이 너무 환해서.”

이설은 선뜻 다리를 벌리지 못하고 망설였다. 백인서와 숱하게 몸을 섞었지만, 조명이 환한 곳에서 은밀한 부위를 드러내는 일은 늘 부끄러움을 동반했다.

“내가 이렇게 원하는 데도?”

이설은 아랫입술을 잘근거리다가 호흡을 멈췄다. 저를 올려다보는 백인서의 눈빛이 타는 듯 뜨거웠다.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다리가 천천히 벌어졌다.

“있잖아. 넌 이런 자세를 하고 있어도 눈부신 거 알아?”

“설마.”

볼이 뜨끈해지는 가운데 귓가로 어렴풋이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저기, 밖에 비 오는 거 아냐?”

“지금 그 소리가 들려?”

“……어?”

“난 머릿속이 온통 한 가지 생각뿐이라서 전혀 안 들리는데.”

“……그래? ……으응.”

오랜만에 내리는 봄비라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입술 밖으로 흘러나온 건 미약한 신음이 전부였다. 그녀의 몸을 의자 가장자리로 끌어당긴 백인서가 은밀한 부위로 혀를 집어넣었다. 축축하게 젖은 틈새를 집요하게 핥고 빨아대는 움직임이 너무 외설스러워서 이설은 가쁜 숨만 할딱였다.

“하아, 으응.”

하릴없는 손이 허공에서 움찔거리다가 이내 백인서의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돌덩이처럼 딱딱한 근육이 만져졌다. 이설은 아래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저릿한 느낌을 견디지 못하고 백인서의 어깨 근육을 움켜쥐었다. 그래도 지르르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은밀한 부위가 구석구석 핥아지고 있었다. 때론 입안으로 빨아 들여지기까지 하는 바람에 아래가 움찔거리면서 허벅지 안쪽이 부르르 떨렸다. 어떻게 해도 떨림이 멈추질 않았다.

“그만하고 넣어줘.”

결국 참지 못하고 각진 어깨를 밀어냈다. 천천히 고개를 드는 백인서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어렸다.

“언제 그 말이 나오나 기다렸어.”

허리에 두른 수건이 ‘툭’ 하고 아래로 떨어졌다. 엄청난 크기로 몸집을 키운 성기가 튕기듯 밖으로 드러났다.

이설은 단단한 팔에 안겨 침대로 옮겨졌다. 구김 한 점 없이 팽팽히 펴진 시트가 등 위로 느껴졌다.

“흐윽!”

아랫배가 불룩해지도록 그 큰 성기가 단번에 안을 꿰뚫고 들어왔다. 이설은 입술을 빠끔거리며 숨을 할딱였다. 뱃속이 꽉 들어차서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접합 부위에서 울리는 습한 소리가 커질수록 가는 몸이 정신없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그런 와중에도 백인서는 이설의 눈동자만 진득하게 바라보았다. 오롯이 자신만을 응시하는 암갈색 눈동자와 마주하고 있자니 속절없이 가슴이 울려댔다. 작고 무수한 빛줄기가 온몸을 감싸듯 시선이 닿는 곳마다 간지러운 기분이었다. 그뿐이면 다행인데 백인서의 시선엔 노골적인 욕망이 마디마디 묻어났다.

“그렇게, 흐읏, 보지 마.”

“내가 어떻게 쳐다봤는데?”

지척까지 다가온 입술이 이설의 입술에 부드럽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몰라. 그런 시선을 받으면 견딜 수가 없어.”

심장이 떨려서. 뒷말은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나만큼 떨려?”

백인서의 눈동자가 한층 더 진해졌다. 검게 물든 모양새가 이설의 모든 것을 먹어 치울 듯 강렬했다.

“응? 나만큼 떨리냐고. 난 정이설 너만 보면 항상 미치겠는데.”

낮게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입안이 바짝 말라붙었다. 대답을 하려는 찰나 백인서가 무지근하게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설은 버거움에 숨을 할딱였다.

“대답해 봐.”

오늘따라 백인서는 어린애 같았다. 허리 아래로는 자비 없이 굴면서 입으로는 자꾸만 확인하려 들었다. 마치 주인에게 치대는 강아지처럼.

“나도…… 떨려. 너만 보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백인서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이리와. 안아줄게.”

이설은 팔을 뻗어 인서의 목에 둘렀다. 분명 그는 웃고 있는데 이설은 자꾸만 애틋한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안아 줄 건데?”

“이렇게.”

이설은 인서의 목에 팔을 감고서 바짝 끌어안았다. 창밖으로 죽죽 쏟아지는 봄비 소리와 백인서의 호흡 소리가 한데 뒤섞여 귓가를 달콤하게 적셨다. 어쩜 이다지도 감미로울 수가 있는 건지.

달싹대는 입술 위로 백인서의 입술이 곧바로 맞물렸다. 치열을 가르고 들어온 혀가 입안 점막을 골고루 핥아 내린 후 혀를 뭉근하게 빨아들였다.

그 어느 때보다 길게 키스한 뒤 인서는 천천히 입술을 뗐다. 제 아랫도리를 깊숙한 곳까지 품은 채 저를 올려다보는 정이설의 얼굴이 마냥 예뻤다. 감탄하듯 바라보았다. 꿈을 꾸듯 풍성한 색조를 띤 녹갈색 눈동자부터 유독 색이 붉고 도톰한 입술과 그 아래 선이 곧고 우아한 목덜미까지.

입안이 바짝 탔다. 안고 있음에도 더 철저히, 더 구석구석 안고 싶어서.

멈췄던 허리를 다시 움직이다가 인서는 깨달았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의 원인이 그녀를 완전히 제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마시고 싶은 게 아니라 사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통째로 삼켜버리고 싶은 거였다. 그게 무엇이든 남기지 않고 전부 다.

인서는 상체를 깊숙이 숙인 다음 이설의 목을 빨아들였다. 보들보들한 피부가 혀끝에 닿는 순간 머릿속이 온통 얼크러졌다. 향긋한 살 냄새에 온전히 취하는 순간이다.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이때만큼은 엄마에 대한 생각도, 가여운 아빠에 대한 생각도 기억 저 너머로 희미하게 사라져버렸다.

허기진 짐승처럼 목을 계속 빨며 가는 허벅지를 바짝 움켜쥐었다. 여름 하늘처럼 뜨거웠다. 데일 듯 뜨거운 열기를 못 이기고 그대로 저를 퍽 박아넣었다. 정이설이 몸을 파르르 떨었다.

못 본 척, 못 알아챈 척, 연거푸 박음질을 해댔다. 비좁은 구멍이 연신 움찔거리며 폭주하는 성기 위로 쫀쫀하게 달라붙었다. 쾌감을 이기지 못하고 등골이 찌르르 울렸다.

열기에 취한 동공 속으로 곧장 정이설이 보였다. 양 볼과 이마엔 가는 머리카락들이 어지럽게 달라붙었고, 섬세한 목 주변은 울혈 현상으로 인해 어디고 할 것 없이 온통 울긋불긋해진 정이설이.

그럼에도 예쁘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하나같이 마음 깊은 곳을 무지근하게 울렸다. 인서는 허벅지를 쥐고 있던 손을 천천히 안쪽으로 움직였다. 골반을 어루만지다가 예고 없이 두 사람의 성기가 결합 되어 있는 부위를 쓸었다.

“아으응.”

정이설이 진저리를 치며 반사적으로 내벽을 콱 조였다. 무서운 속도로 박아대던 아래를 잠시 느른하게 움직였다. 질꺽, 질꺽. 교접 부위에서 나는 적나라한 소리에 귀가 멀 것 같았다. 그러다간 다시 퍽 쳐올렸다. 귀두가 자궁구에 닿도록.

자극이 한계치에 다다랐는지 어디에 저를 묻어도 허리 아래가 저릿했다. 정이설은 눈조차 뜨지 않고 도리질했다. 그녀의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이 볼 위로 또르르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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