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미안해, 엄마. 내가 잘못 생각했어. 엄마가 정말 행복해야 나는 물론이고 오빠도 행복해지는 건데.”
사실은 더 일찍 말했어야 했다. 나와 오빠를 위해서 엄마의 행복을 미루거나 버리지 말라고. 그거 정말 우리를 위하는 거 아니라고. 불행한 엄마를 보면서 크는 자식은 행복보단 눈물을 먼저 배우는 법이니까.
“오빠는 요즘 어때? 많이 나아진 것 같던데. 눈빛도 훨씬 안정되고.”
“작년보다는 한결.”
“그래도 아침이면 정신없지? 오빠 준비시키느라.”
이설은 엄마와 오빠의 아침 풍경을 떠올렸다. 다른 집들과는 사뭇 다르게 서른이 훌쩍 넘은 아들을 보살피느라 이른 아침부터 동분서주하고 있을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오빠를 깨우는 것으로 시작해 아침밥을 차려주고, 밥을 다 먹은 후엔 양치를 꼼꼼하게 했나 확인해야 할 테고, 방으로 들어와서는 주간보호센터에 입고 갈 옷을 챙겨준 다음, 한숨 돌릴 틈도 없이 등원 차량에 탑승하는 일을 도와주는 것까지 전부 엄마의 몫이었다. 간혹 보호센터 차가 평소보다 늦게 도착하면 몸을 가만두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오빠를 진정시켜줘야 하는 것도 역시 엄마의 몫이었고.
“안 힘들어? 매일 오빠 보살펴야 하는 거.”
“힘들지.”
엄만 별로 망설이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렇지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 푸념해 봐야 별 소용도 없고.”
“일상생활 정도는 오빠가 알아서 하면 참 좋을 텐데.”
안 되는 일인 줄 알면서도 이설은 속상한 마음에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두세 살 먹은 아이한테 혼자 알아서 못 한다고 속상해 봐야 아무 소용없어.”
“……어?”
이설은 괜스레 뜨끔해졌다.
“엄마가 일일이 챙겨주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하면 좋겠지만 오빠 머릿속은 겨우 두세 살 정도인걸. 우리가 이해해야지.”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거잖아. 엄마도 점점 힘에 부칠 테고.”
기본적인 의사 표현조차 힘든 중증 발달장애인의 특성상 보호자가 없으면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서른이 넘어도 마찬가지였고 사십이 넘어도 변하지 않을 사실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엄마가 돼서 그 정도도 못 해줄까.”
“나도 부모가 되면 그런 마음이 저절로 생겨날까?”
이설은 함초롬한 눈동자로 엄마를 쳐다보았다.
“궁금하면 너도 낳아보면 되지. 인서도 원하고 있을걸?”
“……그럴까?”
“눈치 못 챘어? 요즘 인서가 주변 아이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
이설은 엄마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슬쩍 시선을 돌려 백인서와 오빠가 있는 방 쪽을 쳐다보았다.
“모르겠어. 그런 생각은 아직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서.”
입안이 바짝 말라왔다.
아기라고? 백인서와 내가 낳은?
“인서라면 분명 좋은 아빠가 될 거야. 돌아가신 인서 아버님만 봐도 알 수 있잖아.”
“그렇겠지?”
이설은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그녀가 경험한 백인서의 가족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다정다감하고 정이 많았다. 할머니부터 아버지까지 전부.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어머니 역시 다르지 않았을 거라 짐작된다.
“아직도 결혼 생각이 없어?”
엄마가 넌지시 물었다.
“……결혼?”
“지금도 생각에 변함이 없냐고.”
“그건 아닌데.”
“그럼?”
“어떻게 하다 보니까 시간이 흘러버렸어.”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잖아. 엄마, 아빠 이혼 소송에 아빠 일도 있었고.
“하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
방금 전까지 오빠에 관한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언제 그녀의 결혼이야기로 대화의 주제가 옮겨왔는지 모를 일이다. 미처 대답을 못 하고 망설이자 엄마가 죄책감이 가득 깃든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표정이 마치 원죄를 짊어진 사람의 그것과 똑같다.
이설은 잠시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완벽한 가족에 대해.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판단해보건대 완벽한 부모는 없었다. 더불어 완벽한 자식도. 당연히 완벽한 가족 또한 높은 확률로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어쩌면 사막에 피어오르는 신기루처럼 허상에 불과한 걸지도.
가족이란 참으로 이해 불가였다. 같이 살아서 행복한 경우도 많지만, 헤어짐으로써 더욱 행복해지는 경우도 있다. 이설의 가족은 불행하게도 후자였다. 전자는 굉장히 운이 좋은 경우에 속했다. 같이 살아서 더욱 행복해지는 관계이므로.
그러나 가족이라는 이유로 행복하든 불행하든 참고 견디며 끝까지 붙어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절대적으로 잘못됐다. 한 공간에 살며 서로를 할퀴어대기만 하는 사이라면 과감히 끊어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녀의 가족이 아버지라는 존재를 인생에서 영원히 지워버렸듯.
그러므로 희망이라는 건 언제 어디서든 있는 법이다. 선택이 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뿐.
“결혼 생각 없는 거 아냐. 하고 싶어.”
그 상대가 백인서라면.
“근데 뭘 망설여?”
예고도 없이 엄마가 훅 치고 들어왔다. 이설은 당황해서 눈을 깜박였다.
“그야 갑작스럽게 질문을 받았으니까. 또…….”
“인서가 먼저 결혼하자고 말하길 기다리는 거야?”
이설은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내가 백인서의 청혼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나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정말 좋아하면 먼저 청혼해도 될 것 같은데. 꼭 남자가 먼저 하라는 법 없잖아.”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망설이던 차에 오빠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잔뜩 상기된 얼굴을 하고서. 손에는 방금 백인서와 만들었을 게 분명한 레고가 들려 있었다. 아주 단순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레고 시리즈 중 하나였다.
오빠는 입버릇처럼 로봇에서 자동차로 변신할 수 있는 복잡한 피규어를 조립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아직까진 무리였다. 백인서는 어린아이처럼 칭얼대는 오빠를 데리고 자신의 귀한 여가 시간을 보냈다. 불평 한마디 없이.
어쩌면 레고를 완성한 다음엔 오빠가 요즘 빠져 있는 걸그룹 노래도 함께 앉아 들었을지 모를 일이다. 덕분에 백인서는 예전이라면 전혀 관심도 두지 않았을 걸그룹 안무까지 줄줄 외울 지경이 되었다.
* * *
본가를 나온 건 밤 아홉 시가 훌쩍 넘어서였다.
“오늘은 우리집에서 자고 갈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백인서에게 물었다.
“시간도 늦었는데 그럴까?”
흔쾌히 동의하는 백인서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손 참 크다.”
“새삼?”
“볼 때마다 놀라거든. 뭐든 다 커서.”
심지어 마음의 크기까지.
“싱겁긴.”
픽 웃으며 내려다보는 백인서의 눈빛이 참 다정했다.
“엄마가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따실 계획이래.”
차가 아파트를 벗어나 큰 도로에 접어들었을 때 백인서에게 말해주었다. 엄마가 품고 있는 소박한 꿈에 대해.
“그런 다음엔 작은 식당을 열 계획이고.”
“음, 그러면 내가 첫 번째 단골이 되겠네?”
백인서는 의외로 쿨했다. 현실적인 걱정은 아예 내비치지도 않았다. 그저 엄마에게 처음으로 꿈이라는 것이 생겼으니 자신은 전폭적으로 응원해주겠다는 태도였다.
“그러면 곤란한데.”
이설은 곧바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왜?”
“내가 첫 번째 단골이 될 생각이었거든. 엄마한테도 이미 그렇게 말했고.”
“나한테 더 좋은 방법이 생각났는데.”
백인서가 의미심장하게 미소 지었다.
“뭔데?”
“우리 둘이 함께 첫 번째 단골이 되는 거지.”
“아, 그 방법도 있었구나. 좋은 생각이야.”
손뼉까지 치며 환하게 웃자 백인서가 따라 웃었다. 몽글몽글한 분위기가 금세 두 사람 주변으로 피어올랐다.
“사실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땐 하지 말라고 했었어. 걱정이 많이 됐거든.”
“아무래도 그렇지. 자영업 쪽으로는 경험이 전무하시니까. 근데 왜 마음을 바꿨어?”
“뭐든 처음은 있는 법이잖아. 시작하지 않으면 계속 경험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는 거고. 무엇보다 엄마가 저렇게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우며 꿈에 부풀어 있는 모습은 처음 보았거든. 나라도 응원해주자 싶었어.”
조곤조곤 말을 하는 이설의 옆얼굴로 인서의 시선이 닿았다. 구석구석 골고루.
“너 요즘 굉장히 긍정적으로 변한 건 알고 있어?”
“내가?”
이설은 백인서에게서 받은 프리지어 꽃다발을 소중히 품에 안고 있다가 고개를 돌렸다. 코끝을 스치는 샛노란 꽃향기 속으로 백인서의 눈빛이 부드럽게 얽혀들었다.
“좀 나답지 않은 모습인가?”
이설은 어색하게 웃었다. 처음이었다. 누군가에게서 긍정적이라는 말을 들은 건.
“아니, 보기 좋아.”
“그래?”
“예전엔 너무 안쓰러웠거든. 뭐든지 혼자서만 짊어지려고 애쓰는 모습이.”
차가 빨간 신호에 걸려 일시 정지 상태가 되자 기다렸다는 듯 커다란 손이 다가와 이설의 볼을 어루만졌다. 특히 귀에서 코로 이어지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내가 예전엔 많이 부정적이었지? 뭐든 안 되는 쪽으로 먼저 생각하고. 왜 그랬나 몰라. 그게 더 사람을 힘들게 하는 줄도 모르고.”
후회돼. 아주 많이.
이설은 인서의 손에 볼을 내맡긴 채 작게 중얼거렸다.
“네 말처럼 뭐든 처음은 있는 법이잖아. 우리 둘 다 서툴렀던 거지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리고 그땐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있고.”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응.”
담백하게 웃는 백인서의 눈빛에 다른 뜻은 없어 보였다. 그는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자신의 생각을 드러냄에 있어 지극히 투명했다. 겉으론 이렇게 말하고 속으론 저렇게 생각하는 종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백인서의 말엔 어느 때고 사람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힘이 있다.
“너를 알게 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이설은 고백하듯 말했다.
“네가 없었으면 하루하루가 얼마나 삭막했을까. 어쩌면 버티지 못했을 거야. 너 때문에 그나마 중심을 잡고 나아갈 수 있었던 거지.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