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이혼 소송이 언론에 알려지자마자 엄마의 머리채를 쥐어 잡고 십여 분이 넘도록 흔들어댄 사람이 바로 할머니였다. 그런 마당에 다른 것도 아닌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아들의 장례식에 이혼 얘기가 오가는 며느리가 떡하니 참석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불을 보듯 훤했다. 현명한 결정이라고 이설은 생각했다.
무엇보다 고마운 건 백인서였다. 그는 특별휴가까지 신청해서는 장례가 치러지는 3일 내내 이설의 곁에 있어 주었다. 물론 아빠를 애도하기 위한 건 아니었다.
그는 이설이 아빠에게 습관적으로 손찌검을 당한다는 사실을 눈치챈 이후 단 한 번도 아빠를 용서한 적도, 용서하려고 시도한 적도 없었다. 아빠 역시 고분고분하게 굴지 않는 백인서를 싫어했고.
그런 백인서가 장례 기간 내내 이설의 곁에 머문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혹시 모를 불상사가 있을 경우 그녀와 형설을 보호해주기 위해서였다.
장지는 도암시 외곽에 있는 선산이었다. 이설은 담담한 표정으로 아빠의 시신을 담은 관이 땅속으로 사라지는 걸 바라보았다. 13층이나 되는 곳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아빠의 몸엔 성한 곳이 없었다고 들었다.
그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아빤 무슨 생각이었을까.
유서는 집무실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하얀 봉투 안에 곱게 접힌 상태로. 내용은 딱 두 가지였다. 하나는 현직 시장으로서 자신은 이번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주장이었으며, 나머지 하나는 아내 김영은을 변함없이 사랑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녀와 형설에 관해선 단 한마디의 언급도 없었다. 죽음을 결심하는 순간에조차 두 사람은 떠오르지 않았나 보다. 서운해야 마땅한데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그저 피식 웃음이 났다. 그녀와 오빠가 고인이 된 아빠에겐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존재인가 싶어서.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었다. 그런 하찮은 존재였으니 남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한 존재가 자식이라는데 눈 하나 깜박 않고 시도 때도 없이 폭력을 휘둘렀을 테지. 곱씹을수록 처참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빠의 관 위로 흙이 척척 뿌려졌다. 뒤이어 봉분이 도독하게 만들어진다. 이제 아빠가 영원히 눈앞에서 사라진다는 뜻이었다.
서너 발자국 떨어진 자리에서 할머닌 아주 서럽게, 꺼이꺼이 소리가 나도록 울었다. 아빠에게 마냥 모질게 굴었던 할아버지 역시 눈물을 찔끔거리며 애달파했다. 구십이 가까운 노인들의 눈물에도 이설은 메마른 눈을 하고 있었다. 장례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봉분이 만들어지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
이유가 뭐였을까.
아빠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이렇게 허망하게 삶을 포기한다고?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악착같이 살려던 거 아니었나? 그래서 자신에게 드리워진 모든 범죄 혐의에 대해 극구 무죄를 주장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심지어 유서에서조차 무죄를 주장하던 사람이 아빠 아닌가.
어쩌면 아빤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인생이 범죄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끝난다는 것이. 비록 선거자금으로 거액을 얻어쓰는 대가로 청탁을 받고 그 과정에서 협박을 받는 바람에 살인 청부를 감행했을지라도.
그런 점에선 자살이 가장 아빠다운 선택일 수도 있었다. 조사를 받던 피의자가 수사 도중 사망하면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되어 버리니까. 죄의 유무와 상관없이.
이설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에도 봉분은 차곡차곡 만들어지고 있었다. 점점 둥글게 형태를 갖추고 있는 무덤 주위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생각에 빠져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아빠의 죽음에 대해 순수한 조의와 애도를 표하느라, 어떤 사람은 권력의 허망함에 대해 곱씹느라, 또 어떤 사람은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며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아빠의 선택에 대해 조소를 날리느라. 표정들은 하나같이 다들 엄숙했지만.
이설은 천천히 생각의 터널에서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옆에 선 오빠의 손을 꼭 잡았다.
형설이 이설을 내려다보았다. 표정만으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맞닿은 손을 통해 전해지는 묵직한 온기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그런 두 사람의 뒤에서 백인서는 마치 보호막처럼 묵묵히 서 있었다. 친가 사람들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채.
* * *
“유서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두려웠어.”
어둠이 내려앉은 방 안에서 이설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라도 아빠가 자신의 죄를 참회한다는 말을 남겼을까 봐.”
엄마와 나, 그리고 오빠에게 했던 그 모든 폭력적인 행동들을 진심으로 반성하며 후회하고 있다는 말을 읽게 될까 봐 내심 겁이 났었어.
“왜?”
백인서가 돌아보았다.
“그럼…… 아빠를 용서해야 되잖아.”
그런데 후회 따윈 한 줄도 없었다. 반성은 고사하고 아예 언급 자체가 없었으니까.
“사람들이 다들 그러더라? 증오는 증오밖에 남기지 않는다고.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면 스스로를 괴롭히는 행동이라고. 그러면서 태연하게 덧붙여. 부모 자식은 절대 어떻게 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니까 그냥 용서하고 잊어버리라고. 근데 용서가 안 돼. 아무리 잊고 싶어도 불쑥불쑥 떠올라.”
겨우 일곱 살밖에 안 된 오빠를 죽일 듯이 쫓아와서는 인정사정없이 등짝을 후려치던 모습과 성적이 자신의 기대치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딸이건 뭐건 상관없이 뺨을 후려치던 모습 같은 것들이.
폭력이 자행되던 순간의 기억은 잔인했다. 훌훌 털어내 버리고 싶은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무 때고 기억의 수면 위로 튀어나왔다. 전쟁터에서 쓰다 버린 날붙이처럼 지독한 형상을 하고서.
그럴 때는 속수무책이었다. 서른이 되었어도 여전히 힘에 부대꼈다. 그러니 아빠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겠지.
죄책감은 들지 않는다. 무심결에 그저 두려웠을 뿐. 죽음을 앞두고 감히 아빠의 입에서 반성한다는 말이 나왔을까 봐.
사실은 유서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지 마, 아빠. 난 아직 용서할 준비가 안 됐어. 제발 평소와 다른 모습 따윈 보이지 말아 줘.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한테 배려 없이 굴라고.
괜한 걱정이었다는 걸 알고 나니 허탈해지기까지 했다. 아빠에게 그녀와 오빤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 안중에 없었던 것을.
“내가 이상한 거겠지? 아빠가 죽은 마당에 이런 말이나 하고.”
이설은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렇지 않다는 건 순전한 거짓이었다. 마음속이 만신창이가 된 듯 너덜거렸다.
“용서하지 않아도 돼.”
며칠 새 살이 부쩍 내린 얼굴을 따뜻한 시선이 어루만졌다.
“원하지 않으면 억지로 용서 안 해도 된다고.”
“그래도 될까?”
“넌 피해자야. 직접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피해자에게 작은 거 하나라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지적해선 안 돼. 하물며 부모 자식 간이니 다 잊고 용서해라? 본인들은 정말 그렇게 할 수 있대? 직접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의 인생 훈수, 그거야말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다 헛소리거든.”
깊은 울림을 가지고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이설의 습한 마음에 그대로 스며들었다. 볼을 어루만져주는 손길은 또 얼마나 섬세한지.
같은 결을 가진 눈길과 눈길이, 다정하게 내뿜어지는 호흡과 호흡이 나직한 목소리와 섞여 좁은 공간에서 넘나들었다.
“내가 형사 생활하면서 가장 웃겼던 게 뭔 줄 알아? 진짜 피해자는 용서할 마음도, 준비도 안 됐는데 주변인들이 나서서 이제 그만하면 됐으니 용서해주라고 종용하는 순간이야. 그럼 가해자는 피해자가 아니라 담당 판사에게 마음에도 없는 반성문을 수십 장씩 써낸 다음 감옥에서 회개를 했느니 뭐니 하면서 잘 먹고 잘자. 피해자는 여전히 고통 속에 살고 있는데. 말이 안 되는 상황의 연속인 거지. 용서는 당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건데 자기들이 뭐라고.”
엉망으로 구겨져 있던 마음이 어느새 감정을 드러내며 일렁였다. 백인서는 정확히 그녀가 하고 싶은 말들을 대신해주고 있었다. 뜨끈해진 눈시울 사이로 죽죽 치고 올라온 감정의 덩어리들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넌 그냥 네 마음이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두면 돼. 미워하고 싶으면 미워하고, 생각조차 떠올리고 싶지 않으면 그렇게 하고. 마음 가는 대로 내버려 둔다고 잘못될 일도, 이상해질 일도 없으니까.”
“……응, 그럴게.”
이설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불안하게 머릿속을 잠식하고 있던 균열들이 서서히 봉합되는 느낌이었다.
“오늘 많이 힘들었지?”
젖어서 축축해진 눈을 백인서가 들여다보았다.
“조금.”
“그랬을 거야. 지켜보는 나도 힘들 정도였으니 당사자인 너는 더했겠지.”
“…….”
“그래도 잘 버텨줬어. 고생했다, 이설아.”
진심 어린 위로 한마디에 이설은 그만 눈물샘이 툭 터져버렸다. 겨우 참고 있던 눈물방울들이 볼 위로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백인서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이설의 눈가를 어루만지기만 했을 뿐.
넓은 손바닥이 소금기 가득한 눈물로 흥건해질 때까지 그는 닦고 또 닦아 주었다. 때론 손끝으로 원을 그리기도 하고, 또 어떨 땐 눈가를 꾹꾹 눌러 주기도 하면서.
젖은 눈가를 맴도는 손끝의 움직임이 오래될수록 이설은 마음속 깊은 어딘가가 함께 어루만져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힘이 상처받은 부분만을 골라 진정시켜 주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