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어찌나 꼭꼭 숨겨놓았던지 저희 수사팀이 온 집 안을 먼지 한 톨 안 빠뜨릴 만큼 샅샅이 수색한 후에야 겨우 발견했지 뭡니까. 곽인철이 피해자 오부규를 난도질한 후에 허겁지겁 챙겨서 나온 게 하필 시장님의 차용증이라는 점도 영 미심쩍고 말입니다. 그렇게 떳떳하시면 그냥 거기에 둬도 아무 상관 없었을 텐데요. 아, 또 하나. 이번에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지역에 대해 알아보니 하필 곽인철이 살고 있는 동네더라고요? 이것도 우연의 일치입니까?”
내내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정근호 시장의 눈동자가 조사실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미세하게 떨렸다. 김모동 팀장은 놓치지 않고 질문을 이어갔다.
“대포폰은 무슨 이유로 사용하셨습니까?”
“그건…… 정치적인 이유에서였습니다.”
“자세히 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제가 아무래도 야당 정치인이다 보니 혹시라도 있을 정치간섭이나 도청의 위험 때문에 극비로 전달할 사항이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사용하게 됐습니다.”
김모동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한 도시의 시장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는 사람인데 이딴 걸 변명이라고 둘러대는 게 참으로 한심했다.
“근데 통화는 곽인철 한 사람하고만 하셨네요? 일개 폭력조직원하고 시장님 사이에 극비리 전달할 정치적 사항이 뭔지는 도저히 모르겠지만요.”
“…….”
“참, 이런저런 이유를 다 떠나서 대포폰 자체가 불법인 거는 알고 계시죠?”
김모동 팀장의 질문에 정근호 시장은 이제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더는 대답할 묘수가 떠오르지 않는지 그는 이후의 질문엔 전부 묵비권으로 대응했다.
* * *
현직 시장이 살인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도암시 전체로 퍼져나갔다. 소문에 날개가 달렸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는 표현이었다. 어딜 가도 벌집을 쑤셔놓은 듯 사람들이 수군댔다. 병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설은 자신에게로 흘끗거리며 쏟아지는 시선들을 애써 외면했다. 머릿속이 윙윙 울려대고 두통이 무지근하게 몰려들었다.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만큼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결국 서너 숟가락도 뜨지 못하고 식사를 끝마쳤다. 허기를 면하겠다고 꾸역꾸역 더 먹었다간 토할 게 분명했다.
“……너 괜찮니?”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길에 강라희가 넌지시 물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이설은 아랫입술을 잘근거렸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그녀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각종 매체에서는 연일 그녀의 아빠에 대해 떠들어댔다. 9시 뉴스는 물론이고 각종 사건 사고를 다루는 고발프로그램에서도 아빠에 대한 이야기가 심층 보도라는 제목하에 앞다퉈 다뤄지고 있었다.
자극적인 기삿거리의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언론은 어디고 할 것 없이 물 만난 고기처럼 신이 나 있었다. 온갖 추측과 가설이 난무하는 보도에서 확실히 짐작할 수 있는 건, 백인서가 직접 수사하고 있는 사건에 아빠가 깊이 관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백인서에게 궁금한 사항을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이설은 감히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자신이 걱정하는 일이 정말로 현실이 될까 봐.
백인서 역시 그녀와 만나기는 해도 사건에 대해선 직접적인 언급을 회피했다. 평소처럼 일상적인 얘기만 했다.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눈빛과 표정으로 이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설상가상으로 얼마 전엔 어떻게들 알아냈는지 엄마와 아빠의 이혼 소송까지 언론을 타고 세간에 알려졌다. 그간 쉬쉬했던 가정사가 만천하에 까발려지는 건 금방이었다.
도암시는 하루가 멀다고 터지는 시장 관련 소식에 도떼기시장처럼 들끓었다. 엄만 그저 입을 꾹 다물었다. 기자들이 떼로 찾아와서 인터뷰 요청을 할 때도 그랬고, 주변 사람들이 의혹의 눈길을 던질 때도 그랬다.
소식을 전해 들은 할머니가 고모들을 대동하고 아파트로 찾아와서 난리를 피워댔을 때도 그런 태도엔 변함이 없었다. 할머니는 언론에 이혼 소송 얘기가 나올 때까지 돌아가는 상황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고모들로부터 전후 사정 얘기를 전해 듣고선 눈을 하얗게 뜨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단다.
병신을 낳아놔도 우리 근호가 지극정성으로 떠받들어주며 살았는데 지금 뭣 하는 짓거리냐고.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시장 사모님이 됐으면 하늘 같은 남편이 세상 억울하게 수사를 받고 있을 때 같이 고통 분담을 해도 모자랄 판에 이혼을 강행하고 싶냐며 엄마 머리채를 잡고 죽일 년, 살릴 년 했더랬다.
그 끔찍한 난리법석에도 엄만 고집스럽게 침묵만 지켰다.
이설은 이래저래 속이 바짝 타들어 갔다. 꼭 출구 없는 터널에 갇힌 기분이었다.
그런 와중에 피해자 오부규의 둘째 아들인 오성윤은 기자회견을 벌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경찰서 앞에서 피켓 시위까지 벌였다. 혐의가 명명백백한데도 정근호 시장을 구속시키지 않고 있으니 이게 바로 정치권과 경찰의 유착이 아니고 뭐냐면서.
그는 또 덧붙였다. 자신이 입만 열면 정근호 시장의 비리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건 시간 문제지만, 스스로 죄를 시인하고 참회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일단 기회를 한번 줘본다고. 그래도 일체의 죄를 자백하지 않고 뻔뻔하게 나오면 기회고 뭐고 전부 다 폭로해버리겠다고.
아빠가 1차 조사를 마치고 경찰서를 나온 직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백인서는 뭐래? 수사담당자니까 뭔가 내막을 알고 있을 거 아냐.”
강라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 물어봤어. 중간에서 난처할까 봐.”
“아… 수사 내역 함부로 발설하면 안 되겠구나.”
“응, 괜한 부담 주고 싶지 않아.”
말은 그렇게 둘러댔지만, 사실은 두려웠다.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
“뭐, 그렇긴 하겠다.”
강라희도 더는 묻지 않았다. 이설의 복잡한 속마음을 눈치챈 듯.
* * *
「아직 아빠를 잘 모르는구나? 다른 건 몰라도 자존심 하난 센 사람이야. 엄마가 선뜻 내준다고 하면 몰라도, 안 된다며 거절하는 상황에서까지 외할머니 유산에 손대는 짓은 절대 못 하는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작은아빠한테도 손을 안 벌렸겠지.」
아파트 살 돈이 어디서 났냐는 물음에 엄마가 한 말이었다. 이설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두 차례의 선거를 치르면서 아빤 늘 돈에 쪼들리고 허덕였다. 공격적으로 유세에 나섰던 두 번째 선거에서 특히 더 그랬던 것 같다.
아빠는 꼭 배수진을 친 야전 장수 같은 표정으로 매일 아침 집을 나섰다. 자신과 똑같은 초록색 점퍼에, 역시 같은 색 띠를 장렬하게 두른 오빠의 손을 잡고. 그렇게 집을 나선 뒤엔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고 이리저리 뛰어대곤 했다.
그땐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이제야 의문이 든다. 아빤 대체 무슨 돈으로 선거를 치른 걸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고고한 자존심을 빌미로 외할머니가 남겨준 유산에는 손도 대지 않고, 작은아빠에게도 구차하게 손을 벌리지 않았다면서. 그렇다고 할아버지가 도와준 것도 아닌데.
“……그렇게 된 거란 말이구나.”
이설은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마음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구속과 무죄 중에 후자의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걸.
이설은 오피스텔 창가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린 건 문을 두드리는 소리 때문이었다. 현관으로 걸어갔다. 이 시간에 저토록 부드럽게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
“나야.”
역시나 깊고 성량이 풍부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출입문 밖에서 들렸다. 이설은 곧바로 문을 열었다. 저보다 더 심란해 보이는 표정의 백인서가 문 앞에 서 있다.
“전화라도 하고 오지. 내가 없었으면 계속 거기 서 있을 뻔했잖아.”
“이렇게 열어 줬음 됐지.”
“저녁은 먹었어?”
이설은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까 사무실에서. 넌?”
“나도 먹었어. 병원에서.”
사실은 서너 숟가락에 그치고 만 점심이 전부였지만 굳이 털어놓을 필요는 없었다.
“이거.”
백인서가 손에 들고 있던 걸 불쑥 내밀었다.
“뭔데?”
“너 좋아하는 연어 초밥.”
“갑자기?”
“야참으로 먹으라고.”
이설은 백인서를 빤히 쳐다보았다.
“혹시 다 눈치채고 있었던 거야?”
“뭘?”
“나 저녁 안 먹은 거. 그렇게 티가 났냐고.”
“나도 입맛이 없어서 대충 먹는 둥 마는 둥 했거든. 어쩐지 너도 그럴 것 같아서.”
백인서가 멋쩍게 웃었다.
“……고마워.”
이설은 백인서의 손에서 연어 초밥을 받아들었다. 그녀가 즐겨 찾는 식당에서 만든 초밥이었다. 포장 용기에 눈에 익숙한 상호와 로고가 선명한 걸 보니.
“여기 이 시간이면 문 닫았을 텐데 어떻게 샀어?”
“아, 그거? 미리 주문해서 사무실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퇴근할 때 가지고 왔어. 늦게 가면 네 말처럼 문을 닫아버리니까. 저번에도 그래서 허탕 쳤잖아.”
“뭐야. 예고도 없이 사람 감동시키고.”
이설은 코끝이 찡해지는 바람에 잠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엄마는 아직도 모르고 있지만, 이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연어가 들어간 음식이었다. 오빠가 참치가 들어간 음식은 종류 불문 다 좋아하듯, 그녀는 연어가 들어간 음식이라면 가리지 않고 다 좋아했다. 연어 초밥과 연어 덮밥은 물론이고 연어 스테이크와 연어 샐러드까지 전부.
그 사실을 백인서는 그녀와 처음 연어요리를 먹던 날 알아채고는 이렇게 틈날 때마다 연어가 들어간 초밥이나 샐러드 등을 사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