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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되어 줄게, 기꺼이-105화 (105/130)

105화

“또, 또, 혼자만 웃는다. 치사하게.”

“이유를 말해주면 유치하다고 비웃을까 봐.”

인서는 지레 한 발 뺐다.

“그래도 궁금하니까 얼른 말해줘. 왜 혼자만 웃고 있는 건지.”

“진짜 별 이유 없는데?”

“그건 내가 판단할 거고.”

정이설은 상체까지 담뿍 기울이고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연갈색 눈동자에 당황한 제 모습이 어른거렸다. 심장이 또 몽글하게 풀어져 내린다. 종국에는 형체조차 분간 못 할 만큼 흐무러지는 건 아닐까 겁이 날 정도였다.

“너랑 함께하는 이 순간들이 너무 좋아서.”

결국 유치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래?”

정이설은 잠시 말이 없었다. 유치하다고 비웃는 일 역시 일어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자신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만 있다. 초록색 반점이 예쁘게 박힌 눈동자로.

“그래서 내가 묻지 말라고 했잖아. 별거 아니라고.”

인서는 괜히 머쓱해져서 손에 들고 있던 아메리카노 잔만 연신 문질러댔다.

“……있잖아.”

정이설이 부드럽게 운을 떼었다.

“사실은 나도 그리웠어. 너와 함께하는 이런 순간들이.”

“진짜?”

“응, 굉장히 많이. 너도 그랬었나 봐?”

정이설이 물었다. 상냥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와 눈빛으로.

인서는 쉽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방금 전 제가 똑같은 말을 했을 때 정이설이 왜 아무 말도 못 했는지가 단번에 이해가 됐다. 수많은 감정들로 심장이 차고 넘쳐서 감히 입을 뗄 수가 없었던 거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거의 매일 밤마다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어. 정이설 네가 그리워서.

미처 내뱉지 못한 말이 거대한 메아리가 되어 쉼 없이 일렁이는 가슴속을 쿵쿵 쳤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정이설이 얼굴을 천천히 기울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깜박거리는 사이 그대로 입술이 맞물렸다. ‘츕’ 소리가 나게 아랫입술이 빨렸다. 그런 다음엔 윗입술이.

“이런 것도 몹시 그리웠어. 넌?”

달콤한 키스 끝에 입술을 떼며 정이설이 수줍게 속삭였다.

“이렇게 끝내려고?”

멀어지려는 정이설의 목덜미를 단단히 그러쥐고 끌어당겼다.

“……그럼?”

“너무 아쉽잖아.”

“뭐가?”

“혀 집어넣고 제대로 키스하고 싶다고.”

씩 웃으며 말하자 정이설은 목덜미까지 붉어졌다. 한여름 햇살에 잘 익은 복숭아가 있다면 꼭 저런 빛깔이겠거니 싶었다.

혀를 내밀어 도톰하게 부풀어 오른 입술을 연거푸 핥아 올렸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바나나 푸딩 맛이 나는 것도 같았고, 더 깊은 안쪽에선 담백한 캐모마일 향이 나는 것도 같았다. 이래저래 애가 타기는 마찬가지였다.

“벌써 다 까먹었나 봐? 이렇게 키스하면 입술 벌려줘야 하는 거.”

은근하게 속삭여주자 정이설이 살포시 웃었다.

“응? 제대로 입술을 벌려줘야 혀를 넣지.”

“뭐야, 언제 적 얘기를 하고 있어. 나 스무 살 아니거든?”

새침하게 흘러나오는 대꾸에 인서는 피식 웃었다. 안 그래도 예뻐 미치겠는데 귀엽기까지.

“그래서 안 벌려줄 거라고?”

“그건 아니고.”

선홍색 입술이 그를 위해 천천히 벌어졌다. 뭔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매혹적인 모습이었다.

“좀 더 벌려봐.”

거리를 두고 앉은 정이설의 몸을 번쩍 안아 제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다. 희고 가는 팔이 자연스럽게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친밀도가 확 올라갔다.

“이 정도면 되겠어?”

눈높이가 비슷해졌다고 제법 거들먹거리는 말투로 정이설이 물었다.

“아니.”

“그럼?”

“다리도 벌려줘야지.”

“……그건 이미 벌리고 있잖아.”

“겨우 이 정도로?”

슬쩍 시선을 내려 아래를 쳐다보았다. 원피스 자락이 허리께까지 말려 올라간 상태로 자신의 허벅지 위에 앉아 있는 정이설은 속옷이 다 드러날 만큼 적나라한 포즈를 취하고 있음에도 투명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게 말이 되나?

“어떻게 해줄까. 아예 속옷까지 벗어버릴까? 그걸 원하는 거야?”

겁도 없이 조잘대는 사랑스러운 입에 함부로 키스했다. 뜨끈하게 달아오른 혀로 가지런한 잇새를 비집고 들어갔다. 얽히고 비벼지는 건 두 개의 혀인데, 정작 프리컴까지 뚝뚝 흘려대며 반응을 보이는 건 허리 아래였다.

“으으응.”

고개를 모로 틀어 각도를 맞춘 다음 입술을 집어삼키자 정이설이 가느다랗게 신음을 흘렸다. 부러 질척한 소리가 나도록 맞붙은 혀를 난잡하게 비벼댔다. 츕, 츄릅, 할짝. 음란한 소리가 연이어 귓전을 때렸다.

진득하게 혀를 빨며 손을 아래로 내렸다. 중지 끝에 닿는 정이설의 다리 사이가 이미 축축했다. 얇은 팬티를 옆으로 젖히고 손가락을 안으로 미끄러뜨렸다. 흥건하게 젖은 속살이 만져졌다. 둥글게 더듬었다.

찌걱찌걱. 톡 불거져 나온 음핵을 쓰다듬어주기도 하고 손가락을 죽 내려 회음을 문질러대기도 했다. 미끈대는 질액은 보잘것없는 이성을 달아나게 만드는 최음제였다. 정이설은 그야말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의 혀가 휘젓고 있는 입안은 물론이고, 비좁은 구멍 안과 밖도 전부 투명한 질액투성이였다.

더 기다릴 것도 없이 벨트 버클을 풀었다. 도톰한 입술과 미끈대는 질벽 내부를 맛본 이상 느긋하게 전희를 이어갈 시간 따위는 없었다.

인서는 불뚝하게 치솟은 기둥을 지퍼 사이로 빼낸 다음 제 허벅지 위에 앉은 정이설의 은밀한 부위 속으로 단번에 박아넣었다. 속옷을 벗기지도 않고 그저 옆으로만 밀어젖힌 상태였다.

“흐읏!”

가는 목덜미가 뒤로 젖혀졌다. 그대로 허리를 쳐올렸다. 찌걱찌걱, 퍽퍽. 미친 듯이 날뛰는 기둥으로 좁은 질벽이 와락 달라붙었다. 쫀득하면서도 따뜻했다. 성난 자지가 그 쫀쫀한 감촉을 버티지 못하고 부르르 떨었다.

하, 정말 매 순간이 이렇게 좋아도 되는 건가?

인서는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난잡하고 은밀한 방법으로 정이설을 안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눈앞에서 봉긋한 가슴을 들썩이며, 아래로는 제 좆을 무섭게 꽉꽉 물어대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정이설이었다.

깊숙이 삽입을 한 채로 몸을 일으켰다. 가는 팔로 제 목을 단단히 끌어안으며 정이설이 숨을 할딱였다.

츄우웁, 달뜬 숨을 토해내는 입술을 집어삼켰다. 앙증맞은 혀가 그새를 못 참고 달아오른 제 혀에 비벼졌다. 질척거리는 느낌이 너무 좋아 계속 문지르고 핥아 올렸다.

“으응, 하아.”

끊임없이 귓전을 간지럽히는 신음 때문에 머릿속이 온통 달큰하게 절여졌다.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인서는 성큼성큼 걸어 침대 위에 이설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좁은 구멍 안으로 저를 퍽 박아넣었다. 정확하게는 쑤셔 넣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하아앙.”

높은 교성과 함께 정이설의 목이 뒤로 활짝 젖혀졌다. 아래와 마찬가지로 하얗게 드러나는 목덜미에도 이를 박아넣었다.

쯉쯉. 할짝. 허기진 입술이 섬세한 목덜미 여기저기에 벌겋게 자국을 남겼다. 고개를 내려 우아한 빗장뼈에도 탐욕스럽게 흔적을 남겼다. 그런 다음엔 바짝 솟아오른 유두마저 한입에 삼켰다. 사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곳을 삼켰다고 봐야 무방했다.

그는 지금 욕망에 잠식된 지극히 평범한 남자였고, 그 욕망을 한 올 남김없이 분출하기로 마음먹었으므로.

정이설을 놓아준 건 자정이 훨씬 넘어서였다. 그녀의 오피스텔에 들어온 지 거의 세 시간이나 지난 뒤였다. 인서는 탈진한 정이설을 곱게 안아 들고 욕실로 들어와 꼼꼼히 씻겨주었다. 이설은 그가 하는 대로 그저 얌전히 앉아 있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다는 듯.

잠옷까지 입혀준 다음 살며시 침대에 눕혔다. 제 등으로 날아와 꽂히는 시선을 마음껏 음미하며 욕실로 들어왔다. 지극히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샤워를 한 다음 밖으로 나왔다. 정이설은 여태 눈이 말똥말똥하다.

“왜 안 잤어?”

“네가 욕실에 있는데 어떻게 자.”

“그런가?”

인서는 씩 웃으며 수건으로 머리를 털었다. 그러고는 벗어두었던 옷을 찾아 입었다.

“가게?”

정이설이 묻는다. 이불 위로 얼굴만 빼꼼히 드러내놓고. 인서는 대답을 하려다가 멈칫했다. 잠옷 차림으로 이불을 뒤집어쓴 채 저를 빤히 응시하는 정이설의 얼굴 위로 열두 살의 정이설이 나란히 겹쳐 보였다. 무언가 울컥한 기분이 되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한여름의 직사광선이 못내 부담스러워 그늘로만 요리조리 걷던 정이설이었다. 그러면서도 오빠와 어디를 갈 때면 야무진 모양새로 보호자가 되는 걸 주저하지 않던 정이설이었다. 그뿐인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수컷 무리들에겐 함부로 곁을 내주기는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던 정이설이었다.

그러나, 열두 살의 그가 벼르고 별렀다가 벌건 얼굴로 느닷없이 말을 걸었을 땐 몸을 움찔하면서도 묻는 말에 꼬박꼬박 대답해주던 상냥한 정이설이기도 했다.

“이설아.”

네모난 오피스텔 안으로 가을밤이 깊게 스며들듯, 인서의 목소리에도 감정이 여과 없이 내려앉았다.

“……왜?”

고개를 들어 저를 올려다보는 정이설의 예쁜 이마에, 정갈한 눈가와 오뚝한 콧날에, 그리고 더없이 달콤한 입술에 차례차례 숭배하듯 입을 맞췄다.

“사랑한다고.”

“……어?”

놀라서 벌어지는 입술에 또 한 번 키스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갈게.”

더 있다간 겨우 씻겨놓은 정이설을 안아버릴 테고, 그러다 보면 밤을 꼴딱 새우고 말 일이다. 인서는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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