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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되어 줄게, 기꺼이-98화 (98/130)

98화

목소리 끝으로 귓불이 깨물렸다. 고개를 돌리려고 턱을 움찔대자 커다란 손이 단번에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이설은 그대로 숨을 멈췄다. 마치 그녀의 심장에 낙인이라도 찍으려는 듯 강렬한 눈동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개 돌리지 마. 눈도 감지 말고.”

“…….”

뒤이어 귓불 전체가 물큰한 혀로 핥아졌다. 아래로는 연신 습윤한 구멍이 비벼지는 가운데 귓속으로는 뜨끈한 혀가 짓쳐들어왔다. 할짝할짝, 찌걱찌걱.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난잡스럽게 질척대는 소리가 울렸다.

“으응. 하아…….”

민망한 비음과 함께 흥분한 아래가 투명한 액을 줄줄 흘려댔다. 이설은 무의식적으로 숨을 할딱대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오랜만에 경험하는 백인서의 손길은 수치심마저 잊게 할 만큼 자극적이었다.

“그, 그만해.”

목소리가 뚝뚝 끊겨서 나왔다.

“왜? 너 나한테 박히는 거 좋아했잖아. 아래를 빨리는 건 더 좋아했고. 그래서 며칠 전에도 나한테 매달렸던 거 아냐? 제발 키스해달라고.”

“그런 거 아니…… 하읏!”

이설은 참지 못하고 신음을 커다랗게 내뱉었다. 동그랗게 솟은 음핵에서부터 저 아래 회음까지를 탐욕스럽게 비벼대던 백인서의 검지와 중지가 예고도 없이 구멍 안으로 푹 박혀 들었다. 그 상태로 비좁은 내벽을 벌리며 손가락 두 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교를 하듯 빠르게 질구를 넘나드는 동작 때문에 이설은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각이었다. 내벽이 움찔움찔하며 안으로 들어온 손가락들을 무섭게 빨아들였다.

“하, 씹.”

머리 위에서 백인서가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이렇게 좋아하면서 무슨 생각이었던 거야, 응? 내가 대체 어디까지 증명해야 되는 건데. 무려 3년이야. 그만큼 기다려줬으면 됐잖아. 더 뭐가 필요해?”

이설은 정신없이 밭은 신음을 내뱉느라 제 아래에서 백인서의 손가락이 빠져나가는 줄도 몰랐다. 몸이 공중으로 붕 뜨고 신발이 아무렇게나 벗겨지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입술을 달싹이는 순간 백인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를 가뿐히 안아 든 채로.

“한마디도 하지 마.”

“……인서야.”

“제발.”

이설은 겨우 떨어졌던 입술을 그대로 다물었다.

백인서의 품에 안겨 지나치는 거실 모습은 예전과 달라진 부분이 없었다. 벽지 무늬도, 커튼 색깔도, 하다못해 소파의 위치까지 전부. 그리고 이설 자신마저 결국 다시 제자리였다. 바뀐 건 아무것도 없는 셈이었다. 그렇게나 부인하고 싶어 발버둥 쳤건만.

방문이 열리고 뒤이어 등으로 침대 시트가 느껴졌다. 이설은 백인서의 체취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침대 위에 누워 전에 없이 성마르게 행동하는 백인서를 지켜보았다.

그는 자신의 옷을 벗지도, 이설의 옷을 벗기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었다. 그는 이설의 몸에선 손바닥만 한 팬티를 아래로 끌어내렸으며, 자신의 몸에선 고작 벨트 버클 하나만 풀어냈을 뿐이다.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몸이 움찔 굳었지만, 이설은 차마 그러지 말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백인서는 어딘가 몹시 간절해 보였다. 굳게 다물어진 입술과 떨리는 손이 그랬고, 흔들리는 눈동자 역시 그랬다. 그런 사람에겐 작은 거절의 말조차 지워지지 않는 생채기로 남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생각은 금세 조각조각 흩어졌다. 백인서가 그녀의 안으로 곧장 들어왔으므로.

콘돔조차 끼지 않은 날것의 성기는 생김새만큼이나 무자비했다. 울뚝불뚝한 힘줄이 여기저기 툭툭 불거져 나온 기둥이 끝을 모르고 비좁은 질벽 속으로 박혀 들었다.

이설은 가쁜 숨만 쌕쌕 몰아쉬었다. 백인서와 틈날 때마다 서로를 탐할 적에도 시작은 늘 버겁기만 하던 성기였다. 이렇게 단번에 끝까지 박히고 보니 숨이 턱 막혔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백인서 역시 사정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이마에는 땀방울과 함께 푸른 힘줄이 드러났고, 미간엔 골이 선명하게 파였다.

너도 힘들잖아. 왜 이렇게 서둘러? 뭐가 그렇게 불안한데?

버거운 와중에도 안쓰러웠다. 곧장 자신에게로만 파고드는 백인서가.

“……천천히 해, 인서야. 나 어디로 읏, ……안 가.”

호흡이 달려 뚝뚝 끊어져 나오는 말을 백인서가 제대로 들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거짓말처럼 동작이 우뚝 멈췄다.

“……정말이야. 이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돼.”

이설은 떨리는 손을 들어 눈앞의 팔뚝을 가만히 쓸었다. 언제 어느 때고 원하기만 하면 기꺼이 달려와서 그녀를 보듬어 안아주었을 단단한 근육이 손끝으로 만져졌다. 눈물이 핑 돌만큼 좋았다.

“말해 봐.”

그녀가 하는 행동을 묵묵히 내려다보던 백인서가 낮게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뭘?”

“아까 만난 그 남자.”

멈췄던 허리가 다시 천천히 움직였다. 더는 들어올 곳이 없을 만큼 깊숙이 진입한 성기가 내벽 이곳저곳을 함부로 쿡쿡 찔러댔다.

이설은 경련을 일으키듯 아래를 움찔댔다. 오랜만의 삽입은 견딜 수 없이 달콤했으며 동시에 저릿했다. 질액이 주르르 흘러나와 질벽 속의 성기를 흠뻑 적셨다. 그에 부응이라도 하듯 백인서가 노골적으로 허리를 움직였다.

“그 남자랑도 정말 이런 거 할 생각이었어?”

“흣!”

미처 답을 하기도 전에 백인서가 허리를 퍽 쳐올렸다. 어차피 그녀의 대답을 들을 생각도 없었던 모양이다.

“지금처럼 사람 미치게 만드는 예쁜 표정을 하고 감히 다른 남자에게 박힐 생각을 했던 거냐고, 그래?”

백인서는 조급하게 굴었다. 이설의 허벅지를 단단히 움켜쥐고 저를 퍽퍽 박아넣는 데만 열중했다. 그녀가 어느 지점에서 느끼는지, 어느 부분을 찔러줘야 움찔대고 자지러지는지 따위에는 신경 쓸 겨를조차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그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예민한 지점을 찾아 정확하게 찔러댔고 이설은 착실하게 몸이 달아올랐다. 종국에는 저에게 무지막지한 속도로 박혀드는 성기를 반사적으로 콱 조일 만큼. 연신 허리를 쳐올리던 백인서가 급히 숨을 들이켠 것도 그때였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좁은 구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성기가 밖으로 쑥 빠져나갔다. 이설은 무릎으로 선 백인서가 뻣뻣이 솟아오른 성기를 재빠르게 훑어내리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곧이어 희뿌연 정액이 포물선을 높게 그리며 뿜어져 나왔다. 이설은 얼굴과 목 주변으로 후두둑 떨어져 내리는 사정의 증거를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비릿한 냄새가 코끝으로 훅 끼쳤다. 그렇지만 더럽다거나 얼른 닦아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설은 끈적한 정액을 얼굴 여기저기에 묻힌 채 가쁜 숨만 몰아쉬었다.

“……이제 속이 시원해?”

달뜬 숨을 겨우 다독이며 물었다.

“그럴 리가.”

“무슨 뜻이야?”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상체를 숙이는 백인서의 눈동자가 그 어느 때보다 진한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설은 시선을 들어 그런 백인서를 빤히 쳐다보다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입술을 달싹였다.

그는 여전히 화가 난 듯 보였지만, 그 사이사이로 언뜻 다정함이 엿보였다. 눈치 빠른 심장이 그걸 알아채고는 곧장 반응한다. 이설은 순식간에 흐무러진 제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고 얼른 시선을 돌렸다.

“뭐가 그렇게 불안해서 시선도 못 맞추는 건데?”

커다란 손이 얼굴로 내려와 여기저기 묻어 있는 정액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그러고는 엄지와 검지로 이설의 턱을 쥐고 저를 바라보게 했다.

“잘못한 건 아는가 보지?”

“내가 언제 시선을 피했다고.”

제법 의연하게 고개를 들었을 때 마주한 건 백인서의 눈가로 피어오르는 엷은 미소였다.

“방금 그랬는데 몰랐어?”

“그건 네가…….”

“내가 뭘?”

“…….”

이설은 즉시 대답을 못 하고 입술만 달싹였다. 백인서의 눈가에 피어오른 미소가 확연히 커져 있었다. 그녀에겐 너무나 익숙한 미소였다. 깊은 눈매가 둥글게 휘어지면서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그래서 바라보고 있으면 심장 언저리가 간질거릴 정도로 근사하기 그지없는 백인서 특유의 미소.

“너 방금까지 화났던 거 아니었어? 왜 이랬다저랬다 해?”

서른이나 먹어 가지고.

이설은 당황해서 아랫입술을 잘근거렸다. 언제 긴장을 했었냐는 듯 방 안 분위기가 몽글몽글해졌다.

“그랬었지. 화가 나서 주체가 안 될 만큼.”

“근데 무슨 이유로 갑자기 달콤해진 건데?”

빤히 쳐다보며 묻자 백인서가 빙그레 웃었다.

“어디로 안 갈 테니까 천천히 하라면서.”

“뭐?”

“내가 정신 못 차리고 아래를 박아대니까 네가 그렇게 말했잖아. 안쓰러운 표정으로. 기억 안 나?”

“아아…….”

이설은 볼 부분이 뜨끈해졌다. 조급하고 거칠게만 구는 백인서의 행동에 화가 난다기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컸었다. 그가 왜 그러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백인서의 말처럼 선을 먼저 넘은 건 그가 아니라 그녀였다. 그래서 버거운 와중에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소중히 간직했던 관계가 일그러지는 건 한순간이구나 싶어서. 속상한 나머지 눈물마저 찔끔 날 뻔했던 걸 그는 알까?

“별 뜻 없는 말에 이상한 의미 부여하지 마. 경황이 없어서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니까.”

“너 모르지?”

상체를 겹친 백인서가 이설의 입술을 가볍게 물었다가 놓아주었다.

“……뭘?”

“무의식중에 나오는 말이 진심이라는 거.”

“그렇게 믿고 싶은 건 아니고?”

“이유가 뭐든 네 입으로 직접 어디로 가지 않겠다고 말한 건 사실이잖아.”

“그, 그거야…….”

이설은 정곡을 찔리자 시선을 돌렸다. 이내 턱이 잡혔다.

“시선 돌리지 말라고 했잖아.”

“…….”

“반드시 지켜. 나한테 했던 그 말.”

“……인서야.”

“약속한 거다?”

“너무 억지…….”

뒷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백인서가 입술을 깊숙이 맞물려왔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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