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이설은 아랫입술을 잘근거리며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다. 엄마가 벨을 누르기 전에 문을 열어 놓았다. 복도는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이 조용했다.
얼마 되지 않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엄마와 오빠가 내리는 게 보였다. 이설은 현관문을 잡고 서서 엘리베이터가 있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엄마와 오빠가 긴 복도를 걸어 그녀가 있는 오피스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과 걱정스러운 맘이 함부로 뒤섞여 머릿속을 두드려댔다. 두 사람을 보면 언제나 이랬다. 상반된 마음이 팽팽히 자리한 채 마구잡이로 부대꼈다.
“왜 나와 있어.”
가까이 다가오며 묻는 엄마의 눈이 움푹 들어가 있다. 며칠째 잠 한숨도 못 이룬 사람처럼.
오피스텔 안으로 두 사람을 들여보내면서 이설은 오빠의 손부터 확인했다. 눈에 익은 연두색 수건이 보란 듯 들려 있다. 온종일 뱉어내는 바람에 침투성이가 되어 있을 게 분명한.
엄마 말로는 다른 색깔의 수건은 건드리지도 않는단다. 오로지 밝은 청개구리 색깔의 저 수건에만 열심히 제 침을 뱉는다고 했다. 그래서 이설의 본가엔 똑같이 생긴 연두색 수건이 무려 일곱 장이나 되었다.
“저녁은?”
들어오자마자 엄마가 물었다. 전형적인 한국 엄마들 특징이다. 자식 얼굴을 보면 무조건 밥부터 생각나는. 그녀의 엄마라고 별다르지 않았다. 이설이 밥을 굶기라도 하면 큰일 나는 줄 안다.
“먹었어. 병원에서.”
입맛이 싹 달아난 관계로 저녁을 건너뛰었지만, 자연스럽게 거짓말이 흘러나왔다. 솔직하게 털어놓을 경우 엄마가 보이게 될 반응이 영 부담스러워서이다.
“뭐 나왔는데?”
“전복영양밥하고 꼬막무침에, 국은 뭐더라? 아, 배추된장국.”
이설은 막힘 없이 술술 입을 열었다. 전부 어제 저녁에 먹은 메뉴들이다.
“요즘은 병원 밥도 잘 나오는구나?”
엄마의 얼굴에 그제야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설은 씁쓸히 웃었다. 자식이 돼 가지고 집에 들어앉은 부모를 속이기란 이토록 쉽다. 특히 평소에 말썽을 안 부린 자식일수록 거의 누워 떡 먹기 수준이다. 무슨 말을 해도 의심 없이 척척 받아들이니.
“엄마랑 오빤 저녁 먹었어?”
“우리도 먹기야 먹었지.”
대답이 조금 애매하다. 두 사람 중 하나는 부실하게 먹었다는 뜻이다. 아니면 두 사람 다이거나. 요즘 같아서는 후자일 확률이 높은 비율로 컸다.
“뭐 먹었는데?”
이설은 담담한 얼굴로 질문을 이어갔다.
“참치 샌드위치.”
“오빠가 좋아했겠네?”
“그렇지 뭐.”
“대답이 뭐 그래? 뜨뜻미지근하게.”
참치는 그녀의 오빠, 형설이 가장 좋아하는 식재료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오빤 참치가 들어가는 음식은 종류 상관 않고 다 좋아했다. 참치 샌드위치부터 참치에 마요네즈까지 듬뿍 들어간 김밥은 물론이고, 청양고추로 얼큰하게 맛을 낸 참치찌개까지. 거의 집착 수준이라고나 할까.
“맛있었어?”
이설은 오빠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멀뚱히 서 있던 오빠의 고개가 기계처럼 끄덕여진다. 반응을 보니 별로 맛있지 않았나 보다. 더 묻지 않고 두 사람을 의자에 앉혔다. 주방으로 들어가 엄마를 위해선 따뜻한 허브차를, 오빠 몫으론 단맛이 강한 음료를 준비해서 돌아왔다.
“할 얘기가 뭐야?”
“……어?”
무심코 잔을 받아들던 엄마가 멈칫했다. 그러더니 찻잔 밑으로 손을 모으고서 연신 꼼지락거렸다.
“……그게.”
곧바로 대답할 마음이 없는지 엄만 입술만 두어 번 달싹거리다가 말았다.
“시간이 필요한 얘기야?”
이설의 물음에 엄마가 눈동자를 불안하게 굴렸다. 심장이 본능적으로 버석거린다.
“그럼 차 다 마시고 얘기하든지.”
이설은 애써 불안한 마음을 억눌렀다. 엄마의 표정으로 보건대 쉽게 나올 말은 아니었다. 분명 집에서 오랫동안 곱씹고 곱씹다 여기로 왔을 것이다. 이런 경우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의외로 엄만 시간을 많이 끌지 않았다. 몇 분 동안 우물쭈물하더니 이내 마음을 굳힌 듯 입을 열었다.
“……이혼하려고.”
“……뭐?”
이설은 잘못 들었나 싶어 엄마를 쳐다보았다.
“지금 뭐라 그랬어?”
“아빠랑 이제 그만 살고 싶다고.”
처음 말을 꺼낼 때만 해도 불안하기 짝이 없던 엄마였는데, 지금 이 순간의 엄만 마치 이웃집 누군가의 가정사를 이야기하듯 말투에 고저가 없었다.
“갑자기 왜?”
이설은 아빠가 쳐놓은 그늘 밑에서 수십 년 동안 쥐죽은 듯 가만히 있다가 느닷없이 이혼 선언을 하는 엄마의 진짜 속내가 뭔지 궁금해졌다.
“집에 또 무슨 일 있었어? 아니면 오빠가…….”
이설은 무심코 내뱉으려던 말을 도로 욱여넣었다. 이유를 물어본다는 것이 그만 다그치는 말투가 돼버렸다. 그녀가 눈물까지 보이며 사정할 땐 들은 척도 안 하더니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겨서 이러는 걸까 싶었다. 솔직히 잘 믿어지지도 않았고.
“이설이 네 말처럼 32년 동안 한 이불 덮고 살았으면 많이 살았다 싶어서.”
자조적으로 웃으며 엄마가 덧붙였다.
“여기서 끝내는 게 맞아. 오빠를 위해서도, 이설이 너를 위해서도.”
“그러니까 왜? 나한테 입버릇처럼 말하지 않았어? 아빠랑 헤어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기억 안 나? 불과 작년에도 그렇게 말했었잖아.”
“내가 그랬었나?”
엄마가 입꼬리를 희미하게 말아 올렸다. 눈동자는 심연처럼 새까맣게 가라앉은 채로. 처음 접하는 냉소였다.
저렇게 비뚜름한 미소도 지을 줄 아는 사람이었나?
“언제부터 생각하고 있었어? 내 말은…… 이혼 말이야.”
고등학교 이후로 그녀가 늘 원하던 일이었지만, 막상 엄마의 입에서 이혼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이설은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무엇보다 뚜렷하게 냉소를 띠고 있는 엄마의 얼굴이 영 낯설고 어색했다.
“처음 생각한 건 형설이가 일곱 살 때였어.”
“……일곱 살?”
생각지도 못한 말에 이설은 입술을 달싹였다. 그렇게 오래전부터라고?
“작은아빠가 너랑 형설이, 유주 데리고 동네 구경 다녀오던 날 말이야. 그때 처음으로 정이 떨어졌어. 이설이 네 아빠한테 말이야.”
등줄기로 서늘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비록 다섯 살 때였지만 그날의 일만은 기억 속에 선명했다.
추석 전날이었다. 마침 할아버지 댁에서 도보로 10여 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대형 놀이방이 생긴 날이기도 했다. 온갖 놀 거리와 먹을거리에, 명절까지 맞물려서 동네 아이들이 전부 그곳에 모였던 거로 기억한다. 이설과 형설 역시 바람이라도 쐬고 오라는 할머니의 말에 작은아빠의 손을 잡고 유주와 함께 그 놀이방 대열에 합류했었다.
드넓은 내부로 들어갔을 때 이설의 귀에 제일 먼저 들린 건 나란히 자리 잡은 레인 위로 도르륵, 도르륵, 공이 굴러가는 소리였다. 1층엔 볼링장이, 1층과 바로 맞붙은 2층엔 놀이방이 위치한 구조였다.
전부 아홉 개의 레인으로 이루어진 볼링장엔 명절 연휴라고 보기엔 과하다 싶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차례 준비는 남의 나라 이야기 같은 분위기였다.
새로 생겼다는 놀이방은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오빠의 손을 잡고 끙끙거리며 계단을 올라 놀이방 안으로 들어섰을 때, 이설의 눈은 그야말로 휘둥그레졌다. 엄청난 크기의 트램펄린부터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공으로 가득한 볼풀, 복잡한 구조의 정글짐에, 회오리 감자처럼 생긴 미끄럼틀까지. 어린 눈에도 별천지 같던 장소였다.
문제는 작은아빠가 전화를 받으러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어났다. 내내 볼풀에서 놀던 오빠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집에 가자는 것인지 놀이방 출입문을 가리켰다. 유주는? 하고 물었지만, 오빠는 대답도 않고 문으로 걸어갔다. 놀란 이설은 허겁지겁 유주의 손을 잡고 오빠를 따라갔다. 그렇게 꼬맹이 셋이 놀이방을 나왔다.
지금도 그렇지만, 오빤 그때도 무턱대고 길을 나서는 습관이 있었다. 한번 가본 길은 아무리 복잡해도 귀신처럼 기억해낸다거나, 길눈이 밝은 건 절대 아니었다. 발달장애가 있어도, 특정 분야만큼은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한다는 서번트 증후군은 말 그대로 영화 혹은 드라마에서나 등장하는 것이었다.
오빤 그래서 몸에 항상 경찰서에서 준 위치추적기를 달고 다녔다. 혹시라도 길을 잃어버릴 경우를 대비해서.
어린 이설과 유주는 한여름 열기가 채 가시지 않아 여전히 뜨끈한 초가을 햇살을 벗 삼아 골목길을 걷기 시작했다. 중간에는 오빠이자 엉터리 길잡이인 형설이 버팀목처럼 껴 있었다.
작은아빠의 전화를 받은 할머니 댁에선 난리가 났다. 애들 셋이 한꺼번에 말도 없이 사라졌으니 그럴 만도 했다.
작은엄만 유주가 사라졌다는 말에 혼비백산했고, 모처럼 일찍 본가에 와 있던 아빤 뚜껑이 제대로 열려버렸다. 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먼 거리도 아니고 형설이한텐 경찰서에서 지급해준 위치추적기가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누차 말했으나 먹혀들 리가 없었다.
아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나며 불같이 화를 내고는 직접 아이들을 찾아 나섰다. 혹시 길이 엇갈릴 수도 있으니 엄마보고는 어디 나가지 말고 작은엄마와 집에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불행히도 의기양양한 얼굴로 길잡이 놀이를 하던 오빨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아빠였다. 가을 햇살은 눈이 부시게 맑고 찬란했는데, 아빤 누구 하나 잡아 죽일 것처럼 눈을 하얗게 번득이며 오빨 노려봤다. 꼭 저승사자 같았다. 실내놀이터와 할아버지 댁의 정확히 중간 지점에서 딱 마주친 아빤. 정말 그랬다.
개선장군처럼 보무도 당당히 골목길을 걸어가던 오빤 그대로 얼어붙었고 이내 아빠의 손에 우악스럽게 붙들려 집까지 질질 끌려갔다. 이설은 헉헉대며 뒤를 따라온 작은아빠에게 이끌려 종종걸음으로 아빠를 따라갔다.
「저러다 애 잡는 거 아냐?」
부지런히 아빠를 쫓아가면서 작은아빠가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