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일어났네?”
이설은 오빠를 향해 작게 미소를 지었다. 본가에 발을 들인 후 처음 지어보는 미소였다.
“잠은 잘 잤어?”
다정한 물음에 오빤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배는 안 고파? 아까부터 잤다며.”
오빠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손에 그건 뭐야?”
이설은 오빠의 손에 들린 연두색 뭉치를 쳐다보았다.
“이거…… 수건.”
오빠가 슬쩍 고개를 숙이고는 자신이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러더니 들릴 듯 말 듯 작게 웅얼거렸다.
“수건은 왜 들고 있어? 세수하게?”
이어지는 질문에 오빤 고개를 끄덕이지도, 좌우로 흔들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입을 열어 대답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게…….”
엄마가 이설의 눈치를 살피며 말끝을 흐렸다.
“뭔데?”
“요즘 형설이가 침을 잘 안 삼켜서.”
“그래서?”
“바닥에 뱉을 수는 없잖아.”
엄마가 죄를 지은 사람처럼 머뭇머뭇 말을 이었다.
“침은 바닥에 뱉으면 안 돼.”
멀거니 서 있던 오빠가 엄마의 말을 반복했다.
“왜?”
이설은 오빠를 쳐다보았다. 방금 일어나서 눈두덩이가 살짝 붓고 머리가 여기저기 헝클어진 오빤 서른두 살이 아니라 마치 열두 살 어린애처럼만 보였다.
“자꾸만 나오거든.”
“뭐가?”
“침이.”
“그럼 삼키면 되잖아.”
이설의 말에 오빤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곧바로 입을 열었다.
“더러워.”
예상보다 더 단호한 대답이었다.
“침은 자꾸만 자꾸만 나오거든. 하루 종일 계속. 그래서 더러워.”
말끝으로 오빠가 수건을 입에 대더니 조용히 침을 뱉어냈다. 정말로 더럽다는 듯 미간까지 찌푸리며.
“알았어. 그럴 수도 있지 뭐.”
이설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했다. 수건에 침을 뱉어내고 난 형설이 고개를 들어 그런 이설을 빤히 쳐다보았다. 무저갱처럼 텅 빈 눈동자로.
한때는 그럴 수 없이 사이가 좋았던 남매였다. 어딜 가든 항상 손을 잡고 다녔으며 무엇을 하든 서로를 애틋하게 챙겨주던 사이였다. 이렇게 그녀가 집을 나오고 병원 일로 바쁘게 되기 전까지는.
“그만 갈게.”
이설은 오도카니 서 있는 엄마와 오빠를 한 번씩 쳐다본 후 몸을 돌렸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 위로 엄마와 오빠의 시선에 한꺼번에 쏠린다. 굳이 고개를 돌려 확인하지 않아도 두 사람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눈에 선했다. 불시에 뜨거운 것으로 목구멍이 콱 틀어막혔다.
“언제 또…… 올 거야?”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서는 이설의 등에 대고 오빠가 물었다.
“시간 되면.”
“그게…… 언젠데?”
오빠가 눈을 깜박인다. 별다른 기대감은 보이지 않았다. 오빠도 알고 있는 거다. 그녀가 이 집에 발을 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했잖아. 시간 되면 온다고.”
“…….”
이설은 형설과 눈을 마주했지만 구체적인 대답은 해주지 않았다. 사실은 오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건 오빠에게 너무 잔인한 행동 같아서였다.
* * *
밤이 깊게 내려앉은 거리 속으로 차를 몰았다. 10차선이나 되는 광막한 도로 위엔 무심한 차들만이 쉴 새 없이 꼬리를 문 채 바삐 달려가고 있었다.
이설은 무표정한 얼굴로 휙휙 지나쳐가는 차들을 응시했다. 이제 교차로 두 개만 더 지나면 그녀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이었다. 겨우 차로 10분밖에 안 걸리는 곳을 한 달 만에 찾은 거였다. 그러니 오빠가 계속 묻는 거겠지. 언제 올 거냐고.
주차장에 차를 세웠으나 몸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이설은 차에 시동을 끄고 운전석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음악도 틀지 않은 터라 차 안은 금세 기이한 침묵 속에 틀어박혔다.
수건에 침을 뱉는다고?
어둡게 가라앉은 공기 속으로 여러 가지 이미지들이 어지럽게 뒤엉켰다. 눈이 움푹 들어가 버린 엄마의 초췌한 얼굴과 조금이라도 더 딸을 비난하지 못해 안달인 아빠의 냉랭한 눈초리, 그리고…….
「침은 바닥에 뱉으면 안 돼.」
「왜?」
「자꾸만 자꾸만 나오거든. 하루 종일 계속. 그래서 더러워.」
머리에 온통 까치집을 지은 채 오빤 연두색 수건을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듯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침을 뱉어내는 용도치고는 참으로 볼품없는 도구였는데 오빤 아랑곳하지 않았다. 떨어질세라 손에 꼭 쥐고 있던 걸 보면.
생각해보니 오빤 예전에도 음식을 씹어 삼키지 않고 종종 입에 물고 있기는 했다. 뭔가 불안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길 때마다 그랬던 것 같다.
삼키지는 않고 계속 욱여넣는 바람에 입안은 물론이고 볼 전체가 햄스터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기 일쑤였지만, 오빤 끝도 없이 음식을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운 좋게 아빠가 기분이 좋거나 자리에 없을 땐, 그렇게 입에 물고 있다가 화장실 변기에 가서 뱉는 거로 끝이 났으나, 반대의 경우엔 등짝으로 아빠의 매서운 손바닥이 날아오곤 했다. 그러면 오빤 눈물을 글썽거리며 음식을 삼키고서는 이내 소리도 요란하게 토악질을 해댔다. 부엌 바닥이 뜨끈한 토사물로 흥건해지는 건 금방이었다.
엄만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홀로 엉망이 된 부엌 바닥을 닦아냈고, 화를 못 이긴 아빤 수저를 내동댕이치며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이제는 아예 침까지 삼키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이설은 기막힌 마음에 운전대에 얼굴을 묻었다. 그럴 만도 했다. 아빤 선거운동 기간 내내 오빠를 철저히 이용했다. 첫 번째 선거유세 때는 오빠의 상태를 생각해서 그나마 자중하는 것 같더니, 절치부심하고 나온 두 번째 선거유세 기간엔 그마저도 없었다. 공식 유세가 시작되기 무섭게 오빤 매일 아침 아빠와 똑같은 색의 유니폼을 입고 지역 곳곳에 포진해 있는 유세장들을 돌아다녀야 했다.
전략이 먹혀들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아빤 하루아침에 중증 장애가 있는 아들을 극진히 보살피는 헌신적인 부모이면서, 지방고시 출신에다 업무까지 능한 시장 후보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첫 선거 때 아쉽게 탈락의 고배를 마셨던 아빤 두 번째 도전에선 꿈에 그리던 시장직에 당선될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금전적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이뤄낸 일이라 아빤 그야말로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당선 직후엔 대통령에라도 뽑힌 사람처럼 너는 시장 할 그릇이 아니라며 내내 자신을 무시하던 할아버지 댁으로 가서 큰소리쳤다고 한다. ‘보십시오, 아버지! 저도 할 수 있잖아요!’라고.
그런 아빠가 늘 엄마 앞에서 당당하게 주장하는 말이 있었다.
「대한민국에 중증장애아를 두고 이혼하는 새끼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난 최소한 그런 짓은 안 했어. 할 만큼은 했다고.」
이설은 참다못해 쏘아붙였다. 그럼 지금이라도 당장 이혼하라고. 동물도 하는 일인데 부모가 돼서 아픈 자식 거둔 게 뭐가 그렇게 자랑스러우시냐고. 버릇없는 대거리가 끝나기 무섭게 아빠가 죽일 듯 노려보았으나 그때만큼은 입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너 방금 아빠한테 뭐라 그랬냐? 동물도 하는 일?」
「제 말이 틀렸어요? 그렇게 억울하면 이혼하시라고요. 안 말려요.」
경멸스러운 눈빛을 하고 다다다 쏘아붙였을 때 이설에게 가해진 건 그 어느 때보다 잔인한 손찌검이었다. 두 번째 선거가 끝난 직후에 일어난 일이었으며, 이설이 이십 대 이후로 처음 당하게 된 손찌검이기도 했다.
「한 번만 더 손찌검 해보세요. 그럼 바로 가정폭력으로 신고할 거니까.」
「뭐?」
「왜요, 제가 못 할 것 같아요?」
날이 새파랗게 선 반응에 아빤 주먹만 쥐었다 폈다 하며 요란하게 들썩대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정말 신고라도 당할까 두려웠는지 더 이상의 손찌검은 없었다.
비열하고도 비겁한 인간. 모든 상황이 곪아 터진 쓰레기 같았다. 너무 엉켜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 도무지 알 길이 없는.
이설은 힘겹게 운전대에서 얼굴을 뗐다. 눈 주위가 어느새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손을 들어 대충 닦아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차에서 내렸다. 눈물로 얼룩져 있던 볼 위로 한층 선선해진 가을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거짓말처럼 마음이 차분해졌다. 후덥지근한 바람이었으면 기분이 더 착 가라앉았을 텐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무감한 눈으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시선을 계기판에 두고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1, 2, 3, 4…….
차곡차곡 불어난 숫자가 10이 되었을 때 스르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묵직한 손가방 때문에 어깨를 한번 추스르고 밖으로 나왔다.
자박자박 옮겨가던 발걸음이 복도 중간에서 우뚝 멈추었다. 그녀의 오피스텔 출입문에 누군가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 흐린 조명 속에서도 문제의 인물이 누구인지를 구태여 가늠해 볼 필요는 없다. 저런 피지컬의 남자는 어디에서도 흔치 않았으므로.
눈이 마주치자 백인서가 천천히 몸을 바로 했다. 그러고는 이설에게로 다가왔다. 발소리도 없이 조용히.
“생각보다 일찍 왔네?”
듣기 좋은 중저음이 좁은 복도를 묵직하게 울렸다.
“오늘 되게 여유로운가 봐? 하루에 두 번씩이나 나를 기다리고?”
이설은 다소 냉담하다 싶게 말을 건넸다.
“말했잖아. 바쁜 일 다 해결돼서 나름 한가하다고.”
“그랬나?”
“집에 간 일은 어떻게 됐어? 별일 없는 거지?”
물어보는 시선에 걱정이 한가득 담겨 있다. 어쩌면 그녀를 기다리는 내내 마음을 졸이고 있었을지도.
“별일이 있을 게 뭐가 있어? 매번 똑같지.”
오빠에게 이상한 습관이 하나 더 늘어난 것만 제외하면.
“그럼 다행이고.”
그녀의 까칠한 반응과 상관없이 백인서는 시종일관 다정했다. 차분하게 내려다보는 시선이 그럴 수 없이 따뜻한 걸 보면.
백인서는 항상 그랬다. 태생적으로 성격이 모질지 못했다.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 맺음과 종결에 있어 늘 못된 쪽은 그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