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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되어 줄게, 기꺼이-72화 (72/130)

72화

양동민은 곧바로 다음날 경찰서로 불려왔다. 인서의 추측대로 양동민은 경찰서 내부로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눈알을 가만두지 못하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안절부절못하더니 조사를 받던 도중 기어코 밖으로 뛰쳐나갔다. 도저히 못 하겠다며. 조사를 진행하던 박성진 형사는 어이가 없어 했고, 황호범은 저 새끼 왜 저러냐며 혀를 끌끌 찼다.

“야, 막내. 일단 네가 따라가 봐.”

김모동 팀장이 턱짓으로 양동민이 뛰쳐나간 방향을 가리켰다.

“살살 구슬려서 데려오는 거 알지? 황호범마냥 절대 무식하게 윽박지르거나 하면 안 돼.”

인서는 신신당부하는 김모동 팀장을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양동민은 경찰서 뒷마당에 우뚝 솟아 있는 아름드리 조경수 아래 쪼그리고 앉아 훌쩍대고 있었다. 인서는 아무 말 없이 그 옆에 같이 무릎을 구부리고 앉았다.

인기척이 느껴지자 양동민이 돌아봤다. 울어서 눈 주변이 벌겋게 부어올라 있다.

“자요.”

미리 준비해둔 화장지를 내밀자 양동민이 예의 바르게 건네받았다.

“……고맙습니다.”

말끝으로 두어 번 딸꾹질을 하고서 양동민이 눈물 자국을 닦기 시작했다. 대충 닦는 시늉만 할 줄 알았는데 요기조기 꼼꼼히도 닦는다. 그러는 와중에 손이 덜덜 떨리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부담되는가 보다.

“많이 힘드시죠?”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양동민은 대답 없이 계속 훌쩍대고만 있다. 서너 장 겹쳐서 건네준 화장지가 금세 얼룩덜룩해졌다. 마음만 여린 게 아니라 눈물까지 많은 성격인가 싶었다.

“혹시라도 알고 있는 사실을 털어놓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들어 그러는 거라면,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인서는 고개도 들지 않고 연신 훌쩍이는 양동민의 정수리에 대고 말을 이었다.

“지난번에 저랑 황호범 형사한테 그러셨잖아요. 최소한 민진이 억울한 거는 풀어줘야겠다고. 아무리 제 발로 김준열을 따라 나갔어도 그렇게 죽으면 안 되는 거라고.”

“……맞아요.”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으신 거죠? 그러니까 기꺼이 조사에 응해주신 거잖아요.”

“……네.”

양동민이 작게 대답했다.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양동민 씨가 착하다고 말한 민진이, 겨우 열아홉에 불과한 어린애인데 음부와 항문에 심각한 열상이 생길 정도로 무참히 강간당한 후 목이 졸려 죽었습니다. 사체는 쓰레기처럼 인적 드문 공터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고요.”

“…….”

“전부 양동민 씨가 친구라며 감싸주고 있는 김준열이 한 짓입니다. 더 나쁜 게 뭔 줄 아세요? 그 자식은 양심의 가책이라곤 전혀 없다는 거. 그뿐만 아니라, 양동민 씨의 여린 속내를 간파하고 아무렇지 않게 범죄 뒤처리에 이용해 먹었다는 거. 그런데도 우정 따위를 들먹이고 싶습니까? 김준열에겐 별로 중요해 보이지도 않는 우정인데요.”

슬쩍 던지는 질문에 양동민의 어깨가 움찔했다. 인서는 그걸 놓치지 않고 마무리를 지었다.

“양동민 씨는 김준열과는 다른 부류잖아요. 잘못된 일을 보면 적어도 양심의 가책이라는 걸 느끼지 않습니까?”

“사실은요…….”

일단 입을 열자 양동민은 그간의 전말을 술술 다 토해내기 시작했다.

* * *

고속도로는 놀라우리만치 한산했다. 아침을 먹고 느지막이 출발한 차는 12시 무렵이 돼서야 춘천에 도착했다.

“점심부터 먹고 갈까?”

인서는 추모공원 쪽으로 방향을 틀기 전 이설에게 물었다.

“아니, 아저씨한테 인사부터 하고 나서.”

“그럴까?”

더 묻지 않고 차를 추모공원 쪽으로 꺾었다. 이곳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추모공원의 규모가 정말 어마어마하다. 죽은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건가 싶으니 묘한 기분마저 들었다. 더 놀라운 건 이 엄청난 규모의 추모공원이 성묘 철만 되면 주차할 곳이 없을 만큼 산 사람들로 붐빈다는 점이다.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몽글몽글한 양떼구름 사이로 바다를 통째로 옮겨놓은 듯 새파란 하늘이 보인다.

날씨 한번 기가 막히네.

중얼거리는 얼굴 위로 선선한 바람이 와 닿는다. 전형적인 가을하늘에 전형적인 가을 공기였다. 이러다가 어느 순간엔 서리가 내리고 추워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정이설이 좋아하는 함박눈이 내릴 테고.

슬쩍 돌아본 정이설은 두 손 가득 꽃을 들고 있다. 이름은 모른다. 그냥 정이설 본인처럼 예쁘다는 생각만 들 뿐.

꽃에 관해서 별로 아는 게 없는 인서의 눈에도 국화는 아니었다. 정이설은 한 번도 국화를 들고 이곳 추모공원을 찾은 적이 없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죽음이 곧장 연상돼서 싫다고 했다. 나름 괜찮은 이유라고 생각했다.

청명한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정이설과 나란히 걸었다. 두 사람 사이로 흐르는 공기는 지나치게 맑았고, 주위는 태초의 어느 날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자박자박 울리는 발소리를 들으며 인서는 생각했다. 무언가 현실이 아닌 것 같다고.

아버지 앞에 섰다. 정확히는 아버지의 유골함 앞에.

사진 속의 아버지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 살아생전엔 눈꼬리와 입꼬리가 맞붙을 정도로 환하게 웃은 적도 별로 없었으면서.

아버진 겨우 쉰하나였다. 비보를 전달받았을 때 인서는 대학교 체육관에서 훈련 중이었다.

사인은 교통사고였다. 고속도로를 역주행하던 음주운전 차와 정면충돌하는 바람에 현장에서 즉사했다는 말을 코치는 인서와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전달했다. 할머니를 뵙고 춘천에서 막 돌아오던 길이란다.

소식을 들은 할머닌 그대로 혼절해버렸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손도 써보지 못하고 그렇게 황망하게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더구나 자신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이었으니 오죽했을까.

이별을 준비할 시간 따윈 없었다. 눈물? 그런 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심장은 조각조각 깨져서 너덜너덜한데 메마른 눈은 장례식을 치르는 내내 욱신거리기만 할 뿐, 물줄기 비슷한 것도 흘려보내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 인서는 못내 힘들었다. 차라리 시원하게 울어버리면 감정의 응어리가 조금이나마 풀릴 것 같은데, 인생은 그런 작은 호의조차 그에게 베풀어주지 않았다. 엄마 때도 그러더니.

서둘러 장례가 치러지고, 아버진 그렇게 인서의 눈앞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췄다. 그게 남아 있는 사람에게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깨닫게 된 건, 뜬금없는 순간에 함께 했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를 때이다.

정이설은 오늘따라 아버지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투명한 눈동자 가득 수많은 감정을 품고서.

물어보고 싶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느냐고.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도톰한 입술을 꼭 다물고 있을 때의 정이설은 어쩐지 그에게 마음을 열기 전의 모습과 결이 비슷했다. 견고한 막으로 둘러싸여 있다고나 할까.

얇디얇은 그 막은 어느 순간엔 무장 해제된 듯 사르르 녹아내려 그의 발밑에 찰박찰박 물웅덩이를 만들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엔 놀라우리만치 몸집을 키워 그의 진입을 단번에 가로막았다. 오늘은 특히 더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예고도 없이 정이설이 자신을 차단해 버릴 것만 같은 막연한 불안감.

괜한 걱정은 하지 말자, 백인서.

복잡한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말간 얼굴로 아버지 사진을 바라보고 있던 정이설이 천천히 그를 돌아보았다.

“그만 가자.”

저를 올려다보는 커다란 눈동자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작은 단서라도 보이면 참 좋으련만.

“오늘은 우리 아빠한테 할 얘기가 제법 많았나 봐?”

넌지시 물었다.

“용기를 달라고 했거든.”

“무슨 용기?”

“있어, 그런 거.”

정이설은 구체적인 대답 없이 입꼬리만 끌어올렸다.

주차장까지는 걸어서도 한참이었다. 인서는 이설의 손을 잡고 가을볕이 담뿍 내려앉은 소로를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10월이라 그런지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햇살마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정이설이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날씨가 너무 좋다고.

인서는 대답을 하는 대신 이설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좁은 어깨와 가는 몸이 한 번에 폭 감겨들었다. 은은하게 풍기는 체향과 함께.

이곳이 추모공원이라는 사실과 방금 느꼈던 복잡한 감정들을 전부 뒤로하고 정이설의 목에 잠시 얼굴을 묻었다. 보드라운 피부가 코끝에 비벼진다. 감각이 녹아내릴 것 같은 기분이다. 조금 더 입술을 내려 쇄골 부위를 더듬었다.

“뭐야, 어린애처럼.”

밀어낼 줄 알았는데 정이설은 가만히 그를 안아주었다. 그러고는 안은 자세 그대로 넓은 등판을 자분자분 토닥여주기까지 한다. 뭔가 모르게 울컥한 기분이 든 건 그래서였을 것이다.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근처 식당은 식사시간대임에도 한산했다.

“뭐 먹을래?”

메뉴판을 훑어보며 물었다.

“넌?”

맞은편에서 정이설이 되묻는다.

“내가 먼저 물었잖아.”

“그랬나?”

“어. 방금.”

장난기를 담아 빙그레 웃자 정이설도 마주 웃어준다. 붉은 입술이 살포시 벌어지면서 가지런한 앞니가 살짝 드러났다가 사라지는 모습을 인서는 정말 좋아했다.

“그럼…….”

정이설이 뒷말을 목 안으로 넘기더니 벽에 붙어 있는 메뉴판을 훑는다. 쌀국수 전문점이라 메뉴라고 해봐야 고작 서너 가지가 전부일 뿐인 단출한 메뉴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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