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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되어 줄게, 기꺼이-69화 (69/130)

69화

“지금 우리한테 소금 뿌렸습니까?”

험악한 얼굴로 묻자 피시방 사장이 당황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니, 나는 자꾸만 형사님들이 들락거리니까 영업에 방해도 되고 또…….”

“이보십시오, 아저씨. 우리도 단순 강도나 폭행 사건 같으면 이렇게까지 안 합니다. 근데 이건 강간살해 사건이라고. 피해자는 우리나라 나이로 스무 살, 만으로 하면 고작 열아홉밖에 안 된 어린애고. 아저씨가 여기서 직접 데리고 있었으니까 누구보다 사정 잘 알고 있을 거 아닙니까.”

황호범이 목청을 높였다.

“누, 누가 뭐랍니까. 민진이 불쌍한 거야 나도 잘 알죠. 어린 나이에 하필 걸려도 그런 나쁜 놈한테 걸려서.”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탐문 나온 형사 뒤에다가 소금을 뿌려댑니까? 어떻게든 범인을 잡아서 불쌍한 애 억울함을 풀어주도록 협조는 못 할망정.”

“아, 거 참…….”

피시방 사장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어디 입이 있으면 대답을 해봐요. 내 말이 틀렸나. 진짜 여기 동네 인심이 왜 이래.”

인서는 길길이 날뛰는 황호범의 뒤에서 팔짱을 낀 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피시방 사장은 우락부락한 황호범도 황호범이지만, 그보다 덩치가 훨씬 더 큰 데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인서가 더 신경 쓰이는지 안절부절못했다.

“알긴 아는데 나도 다 먹고사는 문제가 걸려 있으니까 답답해서 그렇지.”

중얼거리는 피시방 사장을 뒤로하고 업장을 나왔다.

“……저기.”

머뭇머뭇 목소리가 들린 건 피시방에서 50여 미터 정도 멀어졌을 때였다. 돌아보니 방금 전까지 사장의 옆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던 알바생이 서 있었다. 잔뜩 주눅이 든 얼굴로.

“뭡니까?”

싸한 느낌을 감추며 인서가 물었다.

“……제가 알아요.”

알바생이 눈을 안 맞추고 우물거렸다.

“그, 그러니까 민진이랑 같이 나간 남자요.”

“그게 누군데.”

황호범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물었다.

“……제 친구요. 걔가 민진이를 엄청 쫓아다녔거든요. 한 번만 만나달라면서요.”

“그래서.”

“그날도 알바 끝나고 민진이가 나가니까 곧바로 쫓아나갔어요. 데려다준다면서요. 근데 민진이도 딱히 싫어하는 것 같진 않더라고요. 어차피 남자친구도 약속 때문에 못 만나는데 바래다줘도 별 상관없다고 했어요. 어차피 처음도 아니었고요.”

“뭔 말이야.”

“민진이 알바 끝나면 가끔 김준열이 기다리고 있다가 함께 나가곤 했거든요. 그러고서 둘이 데이트를 한 건지, 뭘 한 건지는 저도 잘 모르지만.”

황호범이 눈썹을 쓱 치켜 올렸다.

“거짓말 아니야?”

“……예?”

“그렇잖아.”

“……뭐가요?”

“멀쩡히 남자친구 있는 여자애가 뭣 때문에 딴 놈하고 어울려. 한두 번도 아니고. 너 같으면 그러겠냐?”

황호범이 윽박지르듯 추궁하자 알바생이 세상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윤민진도 아닌데. 키 크고 얼굴 되면 아무 상관 안 하나 보죠.”

“뭐?”

“객관적으로 김준열이 좀 생겼거든요. 키도 크고.”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던 알바생이 호범의 뒤에 버티고 서 있는 인서를 흘끗 쳐다보았다.

“물론 저 형사님만큼 크거나 잘생긴 건 아니지만요. 아, 형사님보단 확실히 잘생겼어요.”

“이 자식이! 누가 너보고 쓸데없이 얼굴 평가해 달래?”

황호범이 호랑이 발바닥 비스무리하게 생긴 주먹으로 알바생을 콱 쥐어박았다.

“근데 너 왜 지금껏 말 안 했어. 알바생이면 우리가 매일 밤낮으로 피시방 들락거리는 거 봤을 거 아냐.”

“그게…… 친구이기도 하고, 또…… 사정도 잘 모르는데 나서기도 좀 그렇고.”

알바생이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서 이리저리 꼼지락거렸다.

“솔직히 말할까 말까 되게 많이 망설였는데, 아까 형사님이 우리 사장님한테 말씀하시는 거 보고 생각을 바꿨어요.”

“어떻게.”

“최소한 민진이 억울한 거는 풀어줘야겠다고. 아무리 좋다고 따라 나갔다 해도 그렇게 죽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러더니 알바생이 작게 덧붙였다.

“……착한 애거든요.”

* * *

“여자들은 그럴 수도 있나?”

문득 인서는 이설에게 물었다. 서너 번의 사정을 끝낸 후 숨을 고르면서였다.

“갑자기 무슨 얘기야?”

열이 발그레하게 오른 얼굴로 정이설이 돌아보았다. 제가 정신없이 물고 빨아 도톰하게 부풀어 오른 입술이 자못 색스러웠다. 질문을 이어가야 하는데 도저히 참지 못하고 입술을 다시 겹쳤다.

“으으응.”

정이설이 나른하게 숨을 토해낸다.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숨결이 아까워 꼼꼼하게 빨아들였다. 그런 다음 혀를 내밀어 할짝 소리가 나도록 발갛게 부풀어 오른 입술을 연신 훔쳤다.

이설의 숨소리가 조금 더 진해지더니 가는 허벅지가 그의 허벅지에 대고 비벼진다. 겹쳐진 입술 외에 또 다른 피부가 제 피부에 와 닿자 등허리를 타고 익숙한 쾌감이 흘러내렸다.

인서는 저를 향해 달큰한 호흡을 쏟아내고 있는 입술을 벌리고 그 안쪽의 좁은 공간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열이 오른 혀에 말캉한 혀가 달라붙었다. 그러고는 맞닿은 면을 뭉근하게 비벼대기 시작했다. 마치 속살거리듯이. 더 음란하게 빨아달라고.

기꺼이 부응해주었다.

부드럽게 시작됐던 키스는 이내 난잡하게 변했다. 온갖 질척한 소리를 내며 혀가 비벼지고 빨렸지만, 인서는 여전히 허기가 졌다. 정이설의 입안에 있는 건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전부 빨아먹고 싶었다.

언제 사그라들었냐 싶게 중심부위가 뻣뻣이 융기했다. 손을 아래로 뻗어 기둥을 움켜쥐었다. 사정 직후 콘돔을 빼낸 상태였기 때문에 끝 간 데 없이 발기한 성기는 아주 작은 마찰로도 프리컴을 줄줄 흘려댔다. 요도 구멍을 엄지로 꾹 눌러서 맑은 물을 손바닥 전체에 묻힌 다음 천천히 훑어내렸다. 바짝 올라붙은 불알을 이리저리 쓰다듬을 적엔 뇌수가 녹아내리는 듯했다.

찌걱찌걱.

귓가로, 손끝으로 전해지는 감각들이 정신을 아뜩하게 만들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고개를 내려 귀여운 턱을 한 번 깨문 다음 더 아래 빗장뼈를 혀로 길게 핥았다.

“하으응.”

고양이 소리를 내며 정이설이 몸을 바르르 떨었다. 허공을 향해 슬로모션처럼 느리게 눈을 감았다가 뜨는 모습이 넋이 나갈 정도로 예뻤다.

“한 번 더 할래?”

낮게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정이설이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빠른 손동작으로 콘돔을 끼우고서 저를 향해 열려 있는 내부로 들어갔다. 이미 한껏 달아오른 몸이라 정이설은 금방 절정에 도달했다.

가쁜 숨소리가 조용한 방 안을 잠식했다. 인서는 이설의 목에 얼굴을 파묻은 채 들썩이는 호흡을 가라앉혔다. 지극한 만족감이 혈관을 타고 구석구석 돌았다. 계속 이 상태로 있고 싶었지만 욕심이라는 걸 알기에 겨우 몸을 떼고 정이설의 몸에서 내려왔다.

질구를 가득 채우고 있던 성기가 여전히 숨이 죽지 않은 채로 쑥 빠져나왔다. 콘돔을 벗겨내자 여러 가지 체액으로 번들대는 좆이 공격적인 모습으로 꺼떡댔다. 한 번이 아니라 서너 번도 더 박아댈 것 같은 기세로.

“하, 정말 너도 참 어지간해.”

정이설이 혀를 내두른다.

“좀 심하긴 하지?”

순순히 인정하면서도 궁금은 했다. 왜 이렇게 정이설만 보면 끝도 없이 발정하는지에 대해.

“좀 심한 정도가 아니라 되게 많이 심하거든?”

몸을 옆으로 틀어 가만히 올려다보는 정이설의 눈동자가 오늘따라 유독 진했다. 그 아래로 보이는 입술 모양 역시.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눈빛으로는 단아한 얼굴 전체를, 손끝으로는 매끄러운 피부를 세세하게 어루만졌다. 정이설은 그저 가볍게 한숨을 쉬었을 뿐이다. 더는 못해, 라고 습관처럼 중얼거리며. 그럼 인서도 언제나처럼 대꾸했다. 나도 더 이상은 안 해. 짐승이냐?

말이 끝나자마자 정이설이 눈꼬리를 휘었다. 어, 너 짐승 맞아.

유치한 대화 사이로 초가을 밤이 깊게 내려앉았다. 볼과 턱을 어루만지던 손이 점점 내려와 선이 고운 목덜미와 우아한 쇄골을 더듬었다. 유난히 부드럽고 흰 피부가 그의 손끝에서 미세하게 눌렸다가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를 반복한다.

정이설은 몸을 모로 틀고서 나긋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굳이 얼굴을 맞대지 않아도 그 달콤함에 정수리까지 절여지는 느낌이다.

“그만 일어나야 할 것 같아.”

인서의 손가락이 뾰족하게 솟아오른 유두를 스쳤을 때였다. 정이설이 모로 틀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집에 좀 가봐야 해서.”

“그래?”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참, 아까 하려던 말은 뭐였어?”

침대에서 빠져나가려다가 멈칫하며 정이설이 물었다.

“아까 나한테 무슨 말인가 하려고 했었잖아.”

그제야 생각났다. 자신이 정이설에게 무슨 질문을 하려고 했는지가.

“별건 아니고, 갑자기 궁금해져서.”

“뭐가?”

“너라면 이미 사귀는 남자가 있는데 다른 매력적인 남자가 접근해 오면 따로 만날 수 있나 싶어서.”

“뜬금없이 질문이 뭐 그래?”

정이설이 헛웃음을 머금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질문이라서 그런가 보다.

“아니 난, 여자들은 그런 일이 가능한가 싶어서.”

“양다리가 젠더랑 상관있는 건가? 그냥 개인적인 성향 아냐? 어떤 사람에겐 절대 용납 못 할 일이지만, 또 어떤 사람에겐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잖아. 근데 갑자기 그건 왜 궁금해진 건데?”

자리에서 일어서며 정이설이 물었다.

“어쩌다 보니.”

인서는 얼버무리듯 씩 웃었다. 차마 지금 수사하고 있는 사건 때문에 그런 의문이 생겼다고는 말할 수 없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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