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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되어 줄게, 기꺼이-67화 (67/130)

67화

“대한민국 경찰이기 전에 너랑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세상을 전부 가진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뭐라고. 그냥 평범한 대학병원 인턴일 뿐인데.”

“말했잖아. 내가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

“못 믿겠어?”

“……믿어.”

이설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대답했다. 백인서는 그녀를 대함에 있어 늘 정직했다. 겉과 속이 한결같아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때면 투명하리만치 담백했다. 에둘러 표현한다거나, 이리저리 돌려 말하는 법 따윈 몰랐다. 그래서 명경처럼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내가 진실을 말해줄까?”

“뭔데?”

“냄새는 나보다 백인서 네가 훨씬 더 좋아.”

“그럴 리가. 땀 냄새가 난다면 또 모를까.”

백인서가 픽 웃었다. 절대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네 땀 냄새가 어때서? 난 그것도 좋은걸?”

“말이 되는 소릴 해. 다 큰 성인 남자한테서 나는 땀 냄새가 뭐가 좋다고.”

이설은 제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백인서의 목에 팔을 두르고 탄탄한 목에 얼굴을 깊이 묻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묵직한 체향이 코점막을 자극하며 밀려들었다.

“정말이야. 다른 남자 땀 냄새는 코를 막고 싶을 정도로 거부감부터 드는데, 백인서 네 땀 냄새는 기분 좋아. 거짓말 아니고, 하루 종일이라도 맡으라면 맡을 수 있어.”

이설은 눈을 감은 채로 백인서의 체향을 한껏 들이마셨다. 기분이 묘해졌다. 어릴 땐 엄마 냄새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줄 알았다.

참 신기한 일이다. 엄마 외에 다른 사람의 품에 안겨 볼을 부비며 체취를 맡게 될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러고 보면 자신은 정말 백인서의 냄새를 좋아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떤 냄새인가 하면…….

백인서에게선 기본적으로 소나무와 비슷한 종류의 깊고 알싸한 냄새가 났다. 하지만 그 외에도 일상생활의 반경에 따라 다양한 냄새들이 나기도 했다.

근무를 끝내고 막 나왔을 땐 묵직한 체취 사이로 간간이 섞인 옅은 땀 냄새가, 바람이라도 쐬려고 자전거 뒤에 탔을 때는 싱그럽기 그지없는 가을바람 냄새가, 모처럼 집 안에서 하릴없이 뒹굴거릴 때는 갓 구워나온 빵에서나 종종 맡을 수 있는 고소한 버터 냄새가 났다.

어떤 건 좋고 어떤 건 싫었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언제 어느 때고 백인서에게서 그녀가 싫어할 만한 냄새가 났던 적은 없었다.

백인서는 항상 자신이 중증이라고 하는데 이 정도면 그녀도 결코 만만찮은 것 같다. 사랑에 빠진 정도가.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이설은 잘 알고 있다. 언젠가는 이 달콤한 관계에서 자신이 빠져줘야 한다는 걸. 그리고 그게 백인서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라는 것도.

“맹세코 여기서 멈추려고 했거든?”

이설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술을 붙였다가 떼어내며 백인서가 중얼거렸다.

“……뭐를?”

“너한테 박는 거.”

몸 안에서 굵직한 성기가 쑥 빠져나갔다. 질벽 안이 금방 허해졌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안 될 것 같아서.”

백인서가 빠른 손놀림으로 콘돔을 벗겨냈다. 맨몸을 드러낸 성기가 울퉁불퉁한 힘줄을 고스란히 내보인 채 프리컴과 정액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음란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아래가 움찔거렸다.

방금 전의 쾌감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너무 엄청나서 한동안 허벅지 안쪽으로 경련이 멈추질 않았다. 어떻게 매번 그런 쾌감이 가능한 건지 모르겠다. 논리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남자와 섹스할 때 열에 아홉은 그냥 의무적으로 오르가즘에 도달한 척 연기를 한다던데. 혹시 백인서라서 가능했던 건가? 어쩌면 그럴지도.

생각이 거기에 이르는 순간 기대감으로 질액이 주룩 흘러나온 것도 같았다. 그녀의 다리 사이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드는 백인서의 눈동자가 검게 일렁이는 걸 보니.

“그래서 또…… 하겠다고?”

이설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백인서가 자신의 성기에 새로운 콘돔을 끼우는 걸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아직 삽입도 안 했는데 벌어진 구멍이 알아서 빠끔거리며 질액을 줄줄 토해냈다. 민망해서 다리를 오므리려는데 백인서가 허벅지를 붙잡았다. 그러고는 은밀한 부위가 전부 드러나도록 활짝 벌렸다.

“어, 도저히 못 참겠어.”

흥건히 젖은 질구를 향해 그의 성기가 공격적으로 꺼떡댔다. 뭐라 대꾸를 하기도 전에 입술이 빨렸다.

“흡!”

고개가 뒤로 젖혀지고 아래가 단번에 꿰뚫렸다. 백인서는 격렬했다. 네 번째라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몸이 바짝 달아올랐다.

그는 이설의 입안 점막을 뜨끈하게 열이 오른 혀로 방탕하게 훑었고, 미처 삼키지 못한 타액이 입술 밖으로 흐르기라도 하면 혀를 내밀어 꼼꼼히 빨아들였다. 그러고도 부족해서 동그란 이마와 목덜미, 귓불 주변을 닥치는 대로 물고 빨았다. 무지막지한 성기로는 질구 속을 연신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이설은 전신을 파르르 떨었다. 지금처럼 백인서가 그녀의 몸에 정신없이 집착을 보일 때면 마음 한구석이 못내 불편하면서도, 현실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뇌의 어느 부분이 급격히 무너져내렸다. 복잡한 사정 따윈 하나도 중요치 않아 보였다. 지금 그녀의 삶에서 의미 있는 건 오직 백인서와 함께 있는 이 순간뿐인 듯했다.

무아지경으로 섹스하는 동안, 몇 번이나 자세를 바꿨는지, 그게 정상위인지 후배위인지, 그가 그녀의 몸 어느 곳에 입을 맞추었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귓전으로 퍼부어지던 백인서의 가쁜 숨소리와 관계 하는 내내 그녀를 응시하던 짙은 암갈색 눈빛이 전부였다.

절정으로 치닫는 단계와 단계 사이로 다양한 변주를 보이며 그녀에게 스민 눈빛들은 기억 속에 머물러 있던 백인서의 다양한 눈빛들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현장학습의 일환으로 전교생이 도암산으로 트레킹을 갔을 때 중간중간 그녀에게 보여주던 설렘 가득한 눈빛, 첫 번째 수능을 치르고 절망하는 그녀를 애틋하게 어루만져주던 깊은 눈빛, 607호 아주머니의 눈을 피하기 위해 계단 위쪽으로 급히 숨어 들어갔을 때 그녀를 내려다보던 뜨거운 눈빛 등등이.

절정은 한여름 소나기처럼 급격히 다가왔다. 백인서는 뜨겁게 사정했고 이설은 완전히 넋이 나가버렸다. 네모난 천장이 회전목마를 방불케 하듯 빙글빙글 돌았다. 어지럼증이 느껴져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그래도 회전목마의 속도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백인서는 여전히 그녀의 속에 자신을 깊숙이 박아넣은 채였다. 수려한 이목구비로 그녀의 목덜미를 비벼대고, 탄탄한 허리로는 느른하게 삽입을 이어가면서.

“너무 좋다. 이러고 있으니까.”

사정의 여운을 즐기려는 건지 들고나는 동작이 퍽 은근하면서도 야했다.

“밤새도록 빼고 싶지 않은데 어떡하지?”

목 언저리로 뜨끈한 숨결이 쏟아졌다. 이설은 대답할 기운도 없어 그저 멍하니 누워 있었다.

찌걱, 찌걱.

백인서가 그녀의 질구 속으로 들어왔다가 나가는 소리가 적나라했다. 흥분한 상태에선 미처 들리지 않던 소리였는데 이렇게 가만히 누워 있으니 유독 두드러졌다. 몹시 부끄러웠다. 백인서는 처음부터 콘돔을 끼고 있는 터라, 찌걱대는 소리의 원인은 전부 제가 흘려보낸 질액 때문이었으므로.

민망한 마음에 몸을 살짝 비틀었다. 백인서가 고개를 들었다. 짙은 암갈색 눈동자가 그녀의 얼굴 위로 미끄러졌다. 아주 천천히, 눈에 들어오는 모든 걸 음미라도 하듯, 명경 같은 눈동자가 속을 훤히 내비치며 이설의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젖은 속눈썹, 분홍빛으로 물든 볼을 따라 이동했다. 이설의 눈동자 역시 같은 궤적을 그리며 움직였다.

심장이 맥없이 두근거렸다. 이런 작고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그러고도 백인서는 한참을 더 삽입을 이어가면서 호흡을 정리했다.

“같이 씻을래?”

영원히 빠져나갈 것 같지 않던 성기가 질구 밖으로 쑥 빠져나갔다. 콘돔을 갈무리한 후 백인서가 몸을 일으켰다.

잘빠진 상체가 눈에 들어왔다. 턱에서 목으로 이어지는 선은 남자답게 탄탄했고, 그 아래 위치한 승모근과 대흉근은 오랜 운동경험으로 인해 근육이 촘촘하게 들어찼다. 팔 안쪽의 상완이두근 역시 딱 보기 좋을 정도로만 근육이 잡혀 있다. 보디빌더처럼 과하게 우락부락한 근육은 별로인데 백인서는 그런 면에서 참 근사한 몸을 가지고 있다.

감탄하듯 바라보던 시선이 허리 부분에서 멈췄다. 선명하게 남은 자상이 눈에 들어왔다. 일선 지구대에서 근무하던 중, 신고를 받고 출동한 술집에서 난동을 부리는 십대 패거리들을 제압하다 칼에 옆구리를 찔려 생긴 상처였다.

이설은 손을 뻗어 상처를 가만히 쓸어내렸다. 그녀가 찔린 것도 아닌데 그 당시의 고통이 생생히 전해져왔다. 눈이 마주쳤지만, 백인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별다른 동작을 취하지도 않았다. 마치 그녀의 손길을 두고두고 기억하려는 사람처럼.

“많이 아팠겠어.”

“별로.”

백인서는 담담했다. 사실은 그 사건으로 인해 죽을 수도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공격인 데다 물불 안 가리는 십대 여러 명이 흉기를 들고 한꺼번에 달려들었다고 했다. 같이 현장에 출동했던 나이 지긋한 선배는 지원요청을 한다며 혼자 밖으로 뛰쳐나간 상태였고.

해당 사건은 언론에도 크게 보도가 됐다. 골자는 두 가지였다. 청소년 강력범죄의 처벌 수위가 너무 약하니 한층 더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첫 번째였고, 나머지 하나는 현장 출동한 경찰의 자질논란에 관한 것이었다. 여론이 벌집 쑤셔놓은 듯 연일 들끓어대자 혼자 도주한 선배 경찰은 나중에 해임처분을 받았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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