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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되어 줄게, 기꺼이-59화 (59/130)

59화

따라서 무도 특채를 통해 제복을 입게 되는 경찰관들은 기존의 메달리스트들이 경찰관 무도 교수요원으로 배치됐던 것과 달리, 국민 생활과 밀접한 조직폭력 및 강력사범 검거 부서 등에 배치되어 강인하고 당당한 경찰상을 확립하는 데 일조한다는 방침이다.

이후 현재까지 경찰청은 매년 일정 자격을 갖춘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무도 요원 특별채용시험을 실시하고 있다.

합격자들은 충주에 위치한 중앙경찰학교에서 주특기인 무술 외에 수사 요령, 형법, 지문 채취 교육 등 소정의 직무교육을 이수하고 나면, 1년간 일선 지구대에 배치되어 현장근무 경력을 쌓은 후에, 각 경찰서 강력계 또는 광역수사대 등에서 강력범죄 전담 요원으로 근무하게 된다.

* * *

“자자, 다들 인사나 나누자고. 이번에 우리 강력2팀으로 합류하게 된 백인서 형사야. 내가 입 아프게 소개 안 해줘도 이름 석 자 정도는 이미 다들 알고 있지?”

도암경찰서 강력2팀 팀장, 김모동이 팀원들을 죽 둘러보았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책상 앞에 널브러지듯 앉아 있던 다섯 형사의 눈이 자동으로 신입에게 꽂혔다.

“여기부터 시계 방향으로 원도협 형사, 김상돈 형사, 그 옆이 차준섭 형사, 반대편 털북숭이가 황호범 형사, 마지막으로 박성진 형사.”

눈 깜짝할 사이에 팀원 소개를 마친 김모동 팀장이 바로 옆에 서 있던 신입을 올려다봤다. 이 정도 소개면 얼굴하고 이름 외우는 데 아무런 문제 없지? 하는 표정으로.

“근데, 진짜야?”

털북숭이 황호범이 입술을 비쭉이 빼물며 난데없이 물었다.

“뭐가 말입니까?”

인서는 절도 있는 뒷짐 자세로 서 있다가 되물었다.

“올림픽에서 2연패 했다는 거 말이야.”

“들으신 대로입니다.”

“종목이 뭐라고?”

“태권도입니다.”

“올해 나이가 스물일곱이라며. 그럼 몇 살 때 처음 올림픽 메달을 땄다는 거야?”

“대학교 1학년 때입니다.”

“대학이 어딘데.”

“한체대입니다.”

황호범이 계속해서 뻔한 질문을 이어가자 김모동 팀장이 숯검정 눈썹 아래 눈알을 희번덕거렸다. 이 자식이 뭐 하자는 수작인가 싶어서.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황호범이 신입에게 질문이랍시고 묻는 것들은 전부 오늘 아침 서장이 직원들 앞에서 했던 말들이었다. 아니, 서장이고 뭐고를 다 떠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올림픽 2연패는 물론이고 나가는 대회마다 족족 우승을 거머쥐었던 백인서 선수를 모를 수가 없었다. 특히 올림픽에서 2연속 메달을 딴 직후에는 온갖 매체에서 하루가 멀다고 줄기차게 떠들어댔기 때문에 더 그랬다.

도암시는 말할 것도 없었다. 곳곳에 현수막이 걸리고 도시 전체가 난리가 났었다. 시쳇말로 모르면 간첩이었다. 그러니 좌뇌, 우뇌가 멀쩡한 인간이라면 당사자를 앞에 세워두고 저럴 수는 없는 거였다.

“솔직히 태권도 아무리 잘해도 실전에선 무용지물 아닌가? 딱히 쓸 데를 모르겠던데.”

“뭐?”

김모동 팀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에이, 뭘 새삼 모르는 척하고 그래요. 다들 아는 사실이구만.”

“알긴 누가 뭘 다들 알어. 그리고, 백 형사가 태권도만 잘하는 줄 아나 본데, 합기도, 유도, 특공무술, 하다못해 주짓수까지 못하는 게 없어.”

김모동 팀장이 눈알을 위아래로 굴렸다. 헛소리 그만하라는 뜻으로.

“그래봤자 괜히 폼 잡는다고 영화에서처럼 이단 옆차기나 뒤돌려차기 같은 거 함부로 날렸다가 피의자가 어디 한 군데 부러지거나 다치기라도 해봐요. 특히 골다공증 걸린 할머니처럼 살짝만 꺾어도 뼈가 아작나는 상습 마약 사범들한테 그랬다간 독박은 죄다 우리가 쓰는 거야. 고소 먹기 딱 좋다고. 안 그래요?”

황호범이 들으라는 듯 인서를 빤히 훑어내렸다.

“야, 모든 사람들이 다 너처럼 무식한 줄 아냐? 실습 기간 중에 범인 검거를 2차례나 한 거 봐. 괜히 졸업식 때 경찰청장상을 줬겠어?”

김모동 팀장이 한껏 역성을 들어주었다. 그러더니 슬쩍 제 오른쪽에 서 있는 인서의 얼굴 표정을 살폈다. 혹시라도 기분 나쁜 기색은 없는가 하고. 그런데, 있어야 할 자리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각 잡고 들어앉은 신입 형사의 서늘한 이목구비엔 기분 나쁜 기색은커녕 일말의 동요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것도 모르고 눈치 없는 황호범이 두꺼비 같은 면상을 이리저리 씰룩대며 감탄사를 내질렀다. 누가 봐도 과장된 톤으로.

“이야, 인제 보니 엄청난 인재가 우리 팀에 들어온 거였구나. 하긴, 그러니까 서장까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겠지. 안 그렇습니까, 박 형사님?”

“넌 뭐가 불만인데? 인재가 들어와도 탈이냐?”

맞장구를 쳐주는 대신 박성진 형사가 피식 웃었다.

“누가 뭐랍니까? 하도 경력이 화려하다 못해 출중하니까 궁금해서 좀 물어본 거지.”

“부러워서는 아니고?”

박성진 형사가 또 입꼬리를 피식 끌어 올린다.

“사람을 어떻게 보고. 이게 다 관심의 표현이라고요, 관심!”

“그렇게 관심이 많으면 황호범 네가 백 형사 데리고 다니면서 일 돌아가는 것도 좀 가르쳐주고 경찰서 분위기 파악도 제대로 시켜줘라. 쓸데없이 여기 들어앉아 구시렁거리고만 있지 말고.”

김모동 팀장의 말에 널브러지듯 의자에 기대앉아 있던 황호범이 퉁방울눈을 연신 끔벅였다.

“제가요? 아니, 왜요?”

“지금 여기 너 말고 신입한테 관심 있는 사람 누가 있어. 없잖아, 안 그래?”

“하, 진짜. 매일 만만한 게 나지.”

“그러게 나대긴 왜 나대서 일을 만들어.”

황호범이 투덜대자 주변에 있던 팀원들이 한마디씩 거들며 낄낄댔다.

“야, 신입.”

듣다 못한 황호범이 벌게진 얼굴로 인서를 불렀다. 뒷짐 자세로 내내 절도 있게 서 있던 인서의 눈동자가 천천히 의자에 앉아 있는 황호범에게로 향했다. 표정이 드러나지 않는 서늘한 눈과 정면으로 마주치자 퉁방울눈이 저도 모르게 찔끔한다. 맹수 앞의 하이에나처럼.

“너, 나랑 짝 먹고 싶냐?”

찔끔한 기색을 서둘러 감추느라 황호범의 목소리가 되레 더 우렁우렁해졌다.

“선택권이 있는 거였습니까?”

인서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뭐?”

“아니면 그냥 가시죠?”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대꾸에 팀원들의 웃음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황호범의 딴지는 환영회 겸 회식 자리에서도 슬금슬금 이어졌다.

“좋아요. 다른 건 다 그렇다 쳐도, 운동선수 출신이면 그냥 까막눈 아닌가? 진술서는 작성할 줄 아나 몰라.”

황호범이 한 번에 삼겹살을 두어 점씩 입안으로 구겨 넣으며 뇌까렸다. 보다 못한 김모동 팀장이 복장 터지는 얼굴을 했다.

“이 자식이 점점. 넌 진술서도 작성 못 하는 놈한테 경찰청장상을 주냐? 대한민국 경찰학교가 물로 보여? 그리고, 백인서 형사 지구대 평점이 몇인 줄이나 알고 떠드는 거냐? 전국 최고점이야.”

“참나, 팀장님이 무슨 백 형사 대변인이라도 되세요?”

“아이고, 말이나 못 하면.”

김모동 팀장이 황호범의 얼굴에 대고 쥐어박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너 황호범.”

“아, 또 왜요?”

“자꾸만 내 말 안 듣고 편식할래?”

김모동 팀장이 황호범을 향해 미간을 있는 대로 구겼다.

“제가 무슨 편식을 어떻게 했다고 이러세요. 설마 지금 상추는 안 먹고 줄창 고기만 먹어대서 그러시는 겁니까? 와, 무진장 서럽네.”

“생각하는 수준하곤. 너 맨날 도박하는 놈들만 굴비 엮듯 잡아들이잖아. 그게 편식 아니면 뭐냐고.”

“아니, 나쁜 놈들 잡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거지 피곤하게 종목은 왜 따져요.”

“다른 강력사건들이 얼마나 많은데 쓰잘머리 없이 도박판에만 기웃대냐고. 하여간에 그렇게 잔소리를 해도 저 자식은 허구한 날 도박판에만 불을 켜고 달려들어.”

김모동 팀장이 스스로 잔에 소주를 따라서는 벌컥벌컥 들이켰다.

“내버려 두세요. 쟤네 집 도박 때문에 풍비박산 났잖아요. 제 딴엔 맺힌 게 많아서 그렇겠죠.”

사람 좋게 생긴 원도협 형사가 김모동 팀장의 잔에 소주를 따라주며 다독였다.

“그래도 자식이 어느 정도여야지. 이건 뭐 막무가내야.”

김모동 팀장이 소주잔을 기울이느라 여념이 없는 사이 황호범이 슬쩍 인서를 쳐다보았다.

“넌 왜 술 마신 표가 안 나냐? 어떻게 점점 더 잘생겨져?”

취기 없이 말짱한 얼굴마저 마음에 안 드는지 건네오는 말투가 영 시비조였다.

“내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말씀하십시오.”

“수석 졸업이면 오라는 데 많았을 거 아냐. 지구대 평점도 끝내줬다며. 근데 하필 왜 우리 서로 왔어? 혹시 고향이니 뭐니 하는 하찮은 이유 때문에? 설마 그런 거야?”

“아닙니다. 어차피 여기가 고향도 아니고요.”

“그래? 듣기론 초중고 다 여기서 나왔다던데?”

“강원도 춘천이 고향입니다.”

“그럼 대체 뭣 때문에 여기로 왔어?”

“개인적인 것까지 말씀드려야 됩니까?”

인서가 물었다. 술기운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말간 얼굴로.

“해주면 나야 좋지. 너랑 나랑 이제부터 파트너인데.”

황호범이 ‘파트너’라는 말에 유달리 방점을 찍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왜 귀찮게 신입을 달고 다녀야 하냐며 펄쩍 뛰던 사람이었다는 것이 무색해지는 행동이다.

“가능하면 가까운 데 있고 싶어서요.”

“어?”

황호범이 금붕어처럼 툭 불거진 눈을 표나게 끔벅거렸다. 행간에 품은 뜻이 뭔지 파악이라도 하려는 듯이.

“개인적인 얘긴 이쯤 하시고 한 잔 더 드시죠?”

인서가 소주병을 손에 들고 황호범을 쳐다보았다. 얼결에 소주잔을 내밀면서 황호범은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이렇게 스리슬쩍 빠져나간다고? 데굴거리며 요란하게 굴러가는 퉁방울 눈동자에 속마음이 훤히 다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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