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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되어 줄게, 기꺼이-54화 (54/130)

54화

그렇게 원하던 정이설과의 섹스가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는 걸 깨닫게 된 건 아주 찰나였다. 평소의 단정한 모습을 버리고 잔뜩 흐트러진 채 달뜬 호흡을 내뱉고 있는 얼굴과 마주친 순간이었다.

하아, 뭐가 이렇게 달아.

번들거리는 좆이 물색없이 움찔댔다. 박아도, 박아도 더 박고 싶었다. 움직임이 격렬해질수록 도톰한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숨소리도 빨라지고 탁해졌다. 완연하게 풀어진 녹갈색 동공은 왜 또 그렇게 사람의 심장을 건드리는지 모르겠다.

확실한 것 하나는, 지금 정이설을 안고 있는 사람이 백인서 자신이라는 점이었다. 헤이즐 색 눈동자가 흐릿해지고, 동그란 유두가 흥분으로 뾰족하게 부풀어 오르는 반응하며, 제 자지를 꽉꽉 물고 있는 아래가 정신없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것 역시 전부 자신 때문이었다. 다른 누구가 아니라.

인서는 벼락처럼 깨달았다. 앞으로 어떤 사람을 만나도 이런 맹목적인 감정과 쾌감은 느끼지 못하게 될 거라는 걸.

난잡하게 허리를 쳐올리면서 눈에 보이는 아무 데고 물고 빨았다. 생각 같아서는 정이설을 통째로 삼켜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빨아들일 수 있는 모든 부분을 입안에 넣고 삼켰다.

“하아, ……인서야.”

버둥대던 정이설이 엄지발가락으로 그의 종아리를 문질렀다.

“왜?”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좀, ……천천히.”

정이설이 다시 웅얼거렸다. 잘 들리지도 않는 발음으로.

“제발, 으응, 천천히…… 해줘, 인서야.”

그제야 미친놈처럼 박아대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어, 미안. 나도 모르게.”

인서는 반사적으로 움직임을 멈췄다. 제 감정에만 취해 정이설은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거의 욱여넣다시피 한 채 박고 있는데 강약도 없이 거칠게만 해댔으니.

“……야, 그렇다고 바로 멈추면 어떡해.”

“어?”

인서는 잔뜩 얼이 빠진 얼굴로 되물었다.

“계속 하라고.”

“그래도 돼?”

미안한 마음과 하고 싶어 미치겠는 마음이 정확히 반반씩 뒤섞인 질문이었다.

“너 아직 안 끝난 거 아냐?”

“그렇긴 한데.”

이번엔 미안한 마음이 하고 싶어 미치겠는 마음을 조금 앞질렀다. 자신이 생각해도 양심이 없는 것 같아서.

“그럼 계속 해야지.”

정이설은 다정했다. 미소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대신…….”

“대신?”

“가끔씩은 살살.”

작게 덧붙이는 목소리에 그만 울컥해졌다.

“……그럴게.”

인서는 허리를 움직이기 전에 양손으로 이설의 뺨을 감싸고 다시 한번 느릿하게 입을 맞췄다.

“으음.”

낮게 흘러나오는 신음이 마냥 달콤했다. 혀로 입안 점막을 구석구석 훑듯이 빨아들였다. 정이설의 신음이 더욱 짙어졌다. 입술을 떼지 않은 채로 허리를 부드럽게 쳐올렸다.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가는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천천히 입술을 떼고 물었다.

“이렇게?”

“으응, 그렇게.”

제 어깨를 바짝 움켜쥐고 있던 손에서 스르르 힘이 빠져나갔다. 찌걱찌걱, 느른한 움직임에 맞춰 아래가 달라붙었다가 떨어졌다. 정이설이 들릴 듯 말 듯 작게 한숨을 토해냈다. 입술 끝을 살짝 끌어올리면서.

내벽 속의 성기가 또 꿈틀댔다. 정이설의 미소만 보면 자동반사적으로 나오는 반응이다. 인서는 거세게 박아넣고 싶어 날뛰는 욕망을 힘겹게 억눌렀다.

귀두가 보이는 부분까지 기둥을 끄집어낸 다음 최대한 천천히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마 위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정작 이상한 건 정이설의 반응이었다. 그녀는 인서가 세게 박을 때와 다름없이 숨소리가 달아올랐다. 그를 물고 있는 아래에서도 움찔움찔 자잘한 경련이 이는 것 같았고.

“혹시 힘들어? 왜 이렇게 움찔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가능한 느릿하게 성기를 집어넣었다 뺐다 하면서.

“백인서 네가 너무 천천히…… 넣으니까 그렇지.”

“아까 전엔 너무 세니까 천천히 하라며. 왜 이랬다저랬다 하는데?”

“모, 몰라. 아랫배가, 으으응, 이상하단, 말이야.”

정이설이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그러더니 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윽! 백인서, 너 뭐야? 갑자기 왜 더 커지는데?”

인서는 슬쩍 시선을 내렸다. 아닌 게 아니라 평소엔 납작했던 정이설의 아랫배가 더 불룩해진 것도 같았다.

“어, 미안.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네가 너무 예뻐서 그만.”

사실이었다. 할딱대며 힘들다는 말을 내뱉는 얼굴이 사정감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예뻤다.

“진짜 양심 없는 거 알지?”

아니라고는 대꾸할 수 없어 인서는 멋쩍게 웃었다.

“혹시…… 세게 하고 싶어서 그래?”

“어?”

“그러니까 자꾸만 거기가 커지지.”

“아니야. 천천히 하는 것도 나름 좋아. 신경 안 써도 돼.”

“너 있잖아. 거짓말 되게 못하는 거 알아?”

갑자기 정이설이 눈가를 곱게 접으며 웃었다. 아랫배가 이상하다며 할딱거리던 때와는 또 다른 귀여운 모습이었다.

혹시 요부 기질을 타고난 건가? 순간적으로 든 미친 생각이었다.

“내가?”

인서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물었다.

“마음에 없는 말 하면, 눈동자가 막 흔들리면서 귓불이 빨개지잖아.”

“설마 그럴라고.”

일단 부인부터 했다. 지금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얘기였기에.

“못 믿겠나 본데, 정말이거든?”

정이설이 또 웃는다. 듣는 사람은 심란해 죽겠는데 눈꼬리까지 휘어대며.

“재밌냐?”

조금은 불퉁하게 물었다.

“아니, 전혀.”

“그럼?”

“귀여워. 완전.”

“지금 나보고 하는 얘기야?”

“응, 백인서 너 말이야. 귀여워 미치겠다고.”

하, 진짜 뭐지? 정작 귀여워 미치겠는 게 누군데. 인서는 어이가 없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체 누가 누구보고 귀엽다는 건지 모르겠네. 덩치는 한 줌밖에 안 되는 주제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부러 위협적으로 허리를 놀렸다. 질구 주변에서만 감질나게 드나들던 성기가 단번에 깊은 곳까지 푹 박혀 들었다.

“하으읏, 야, 백인서, 이러면, 읏, 반칙이라고 했잖아.”

“그러게 누가 함부로 귀엽다느니 뭐니 소리를 하래.”

“사실인데 뭘…… 읍!”

뾰로통하게 내미는 입술을 한입에 집어삼켰다. 그러고는 다시는 귀엽다는 소리를 못 하도록 혀를 얽어버렸다.

정이설은 위와 아래가 전부 틀어막힌 상태로 작게 신음을 흘렸다. 마치 강아지가 앓는 소리를 내듯 작고 사랑스럽게.

이것 보라고. 대체 누가 정신 나가도록 귀여운 건지.

달착지근한 입안 점막을 구석구석 음미하는 동안에도 정이설은 내내 앓는 강아지 소리를 냈다. 그게 더 사람을 미치게 하는 줄도 모르고.

양껏 보드라운 입술과 혀를 빨아들인 후 입술을 떼었다. 여기서 더 이상 참는 건 능력 밖이었다. 인서는 내벽 깊숙이 들어가 있던 성기를 귀두까지 빼낸 다음 허리를 퍽 하고 쳐올렸다. 정이설이 고개를 뒤로 젖히며 새된 신음을 흘렸다. 하얀 목이 시야를 어지럽혔다. 그게 기폭제가 될 줄은 또 몰랐다. 인서는 그 어느 때보다 사나운 기세로 허리를 쳐올리기 시작했다. 불알이 회음에 짓이겨지고 거뭇한 제 음모가 엉망으로 뒤엉킬 만큼 깊은 삽입이었다.

“하앙, 읏, 으응. 흣!”

정이설이 입을 벌린 채 신음을 토해냈다. 그럴수록 아래를 더욱 난잡하게 놀렸다. 한 번 불이 붙어버리자 멈추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

“너무, 흐읏, 세게는, 하지…… 마. 아, 아읏, 읏, 아앙.”

뜨겁고 단단한 것이 연신 좁은 속을 들쑤셔대자 정이설은 숨을 할딱이느라 말을 제대로 잇지도 못했다. 그러면서도 질벽 깊숙이 찔러 들어오는 자지를 꽉꽉 물어대며 물을 흥건하게 쏟아내니 도무지 견딜 재간이 없다.

후우, 돌아버리겠네.

인서는 허리를 부르르 떨었다. 무섭게 수축하는 점막이 흥분한 성기를 조여대며 촘촘히 달라붙는 것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움직임을 슬쩍 늦춰보면 그건 그것대로 포피가 잔뜩 문질러져서 자극적이었다. 이미 흥분할 대로 흥분한 살갗은 어딜 건드려도 저릿한 쾌감이 맞물려 올라왔다. 게다가 좁은 내벽이 어찌나 아래를 옥죄는지 어떻게 해도 흥분감이 잦아들지 않았다.

“크읏, 제발 그만 좀 조여. 가뜩이나 좁아서 미치겠는데.”

도저히 못 참고 쥐어짜듯 내뱉었다. 뭐라고 한 소리 들을 줄 알았는데 정이설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을 한 채 가쁜 숨만 몰아쉬었다. 조금 전 이성이 남아 있을 땐 알아서 참으라며 톡 쏘아붙이더니 이제는 그럴 정신도 없나 보다.

사정은 인서 역시 매한가지였다. 그는 온갖 질펀하고 음란한 소리를 내며 허리를 짓쳐 올렸다. 머릿속이 저릿할 정도의 쾌감이었다.

“아, 흣, 응, 으응.”

굵은 자지에 함부로 쑤셔지고 문질러지던 정이설이 끝내 울먹거리며 도리질을 했다. 가는 허벅지로 그의 허벅지를 경련하듯 비벼대면서.

그러더니 어느 순간 달아오른 안쪽이 수축하듯 바짝 조여들더니 물 같은 질액이 왈칵왈칵 쏟아져나왔다. 인서는 머리끝이 쭈뼛 서는 느낌에 우뚝 동작을 멈추었다. 말 그대로 아래가 터질 것 같았다.

와아, 진심, 미쳤네.

얼이 빠져 중얼거리고는 다시 허리를 쳐올렸다. 깊숙이 박아넣었다가 빼낼 때마다 안에서 쏟아져나온 질액이 질컥질컥 소리를 내며 회음과 그것에 비벼지는 불알을 흥건하게 적셨다. 더욱 사납게 허리를 움직였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곧 사정이 임박했다는 걸.

“큿!”

전신이 부르르 떨리고 쾌감이 가장 높은 곳까지 치솟았다. 눈앞이 하얗게 점멸한다는 게 무언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인서는 까무룩 정신을 놓은 정이설의 몸을 바투 끌어안고는 길게 사정했다. 한계까지 박아넣은 상태로 느른하게 허리를 흔들자 뱃속이 얼얼하게 떨리며 저릿한 느낌이 여진처럼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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