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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되어 줄게, 기꺼이-53화 (53/130)

53화

“……으응, 백인서, 그…… 그만, 해.”

더는 못 참겠는지 정이설이 어깨를 밀어냈다. 인서는 손가락이 빠져나온 자리에 흥건히 고여있는 질액을 몇 번이고 혀로 깨끗하게 핥아 올렸다. 그러고도 못내 아쉬워 음핵에 한 번, 제가 들어갈 자리에 두어 번 더 입을 맞췄다.

사실은, 얼굴을 더 내려 질액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회음과 그 아래 주름진 구멍까지 샅샅이 핥아주고 싶었지만, 그건 정이설이 부담스럽다고 했기에 가까스로 참고 상체를 일으켰다.

셔츠를 벗으며 슬쩍 시선을 내렸다. 구석구석 한 방울도 남김없이 전부 빨아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정이설의 그곳이 어느새 물기로 흥건했다. 심지어 그가 보고 있는 순간에도 질액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아, 미친!

허리 아래로 힘이 바짝 들어갔다. 그대로 얼굴을 다시 처박고 개처럼 빨아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인서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정이설은 사람을 짐승으로 만드는 데 특출난 재주가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운동복 하의와 감색 드로어즈를 한꺼번에 벗어버렸다. 축축하게 젖은 건 제 아래도 정이설 못지않았다. 좁고 따뜻한 곳으로 들어가고 싶어 무섭게 꺼떡대는 자지가 물색없이 흘러나온 프리컴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그곳에 이제는 제법 능숙해진 손길로 콘돔을 씌웠다. 정이설이 눈을 깜박였다. 그건 또 언제 샀냐는 뜻이다.

“피임도 안 하고 막 할 수는 없잖아.”

인서는 귀밑까지 벌게졌다. 검은색 야구모자를 푹 눌러쓴 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콘돔을 사던 순간의 제 모습이 떠올라서.

「……특대형이요?」

빌어먹을 편의점 직원은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문제의 손님을 위아래로 살피면서 다시 묻기까지 했다. 그러더니 인서의 체격을 재빨리 스캔하고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갔다. 의연하자고 다짐했던 마음이 빛의 속도로 뭉그러지는 순간이었다.

뭐, 이상하게 볼 테면 보라지. 대한민국에서 특대형 콘돔을 사는 게 불법도 아니잖아.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데 편의점 직원이 콘돔을 건네주며 인서를 또 곁눈질했다. 특히 허리 아래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하, 씹. 이 정도면 진심 성희롱 아닌가?

묻고 따질 새도 없이 콘돔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밖으로 나왔다. 검은색 야구모자 아래로 드러난 귓불과 목 언저리가 숫제 벌겋게 물든 채로.

어제 자정 무렵의 일이었다. 생각해보니 되게 웃겼다. 정이설과의 경험을 곱씹느라 이리 뒤척, 저리 뒤척대다가 고작 떠올린 게 콘돔 사는 것이었다니.

그래도 요긴하게 쓰이고 있긴 하다. 이렇게 간절할 때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있으니.

더 좋은 건, 다시 가기 창피해서 편의점에 있는 걸 죄다 쓸어오다시피 했다는 점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했다.

인서는 스스로를 대견하다 칭찬하며 정이설의 다리 사이로 자리를 잡았다. 아무리 가늠해봐도 제 것을 받아들이기엔 영 무리인 듯 보이는 조붓한 구멍에 아래를 맞추고 젖은 소리가 나도록 문질렀다.

조금만 더 힘을 주면 들어갈 것도 같은데.

분명 어제도 했으니까 오늘이라고 안 들어갈 리는 만무했다. 그런데도 인서는 머뭇거렸다. 저 좁은 곳에 자신의 성기가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아서.

다행히 미끈대는 질액의 도움으로 욱여넣다시피 귀두를 집어넣은 다음 슬쩍 정이설의 안색을 살폈다. 숨을 할딱거리면서도, 버거움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싫은 기색은 없었다. 그러기는커녕 질벽 속의 자지가 홧홧해지도록 무섭게 조이기를 반복했다.

“읏! 힘 좀 풀어 봐. 아래가 끊어질 것 같아.”

인서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과장이 아니라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야.”

정이설이 새빨개진 얼굴로 쳐다보았다.

“왜?”

“그런 거,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고.”

“뭐?”

“조이고 풀고, 그런 것 따위, 하나도 모른다고. 어제 너랑 한 게 처음이잖아. 그러니까 나한테 뭐라 하지 말고 네가 알아서 참아. 나도 그러고 있으니까.”

앵돌아진 얼굴로 톡 쏘아붙이는 게 너무 귀여워서 하마터면 사정을 할 뻔했다. 사실, 흥분한 정이설이 순간적으로 아래를 확 조이기도 했지만.

“알아서 참으라고 한다면, 그렇게 해야지.”

인서는 씩 웃으며 허리를 퍽 쳐올렸다. 귀두만 간신히 들어가 있던 자지가 좁은 내벽 속으로 쑥 박혔다. 정이설이 ‘악’ 소리를 내며 어깨를 움켜잡았다. 적어도 밀어내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용기를 내 한 번 더 허리를 쳐올렸다. 새된 신음과 함께 어깨를 움켜잡은 손에 힘이 꾸욱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밀어내지는 않는다. 대신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자신을 노려볼 뿐이다. 연갈색과 초록색이 절묘하게 뒤섞인 눈동자로.

나중에서야 알았다. 이렇게 녹색과 황갈색이 섞인 눈동자를 헤이즐 색이라고 부른다는 걸. 뭐라고 칭하든 상관없었다. 그에겐 정이설의 눈동자가 세상에서 가장 예뻤으니까.

“그런데 진짜 이렇게 좁아도 되는 거냐?”

인서는 제 아래 깔린 이설을 다정하게 바라보다가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말로 힘이 드는지 이마 위로는 핏대를 세우고, 허리 아래로는 발정기에 접어든 짐승처럼 집요하게 박아대면서.

찌걱찌걱, 음란한 소리가 맞붙은 곳에서 연신 흘러나왔다. 정이설은 뭐라 대꾸도 못 하고 눈만 깜박였다. 거의 쑤셔넣다시피 삽입한 아래 때문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도톰한 입술을 금붕어처럼 달싹거리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애틋한 기분이 들게 했다.

손을 들어 정이설의 목덜미를 가만가만 쓸어주었다. 그가 이제껏 보아온 가장 우아하고 긴 목이었다. 그대로 손을 미끄러뜨려 빗장뼈도 쓰다듬었다. 믿을 수 없이 섬세하면서 부드러웠다.

고개를 숙여 얼굴을 파묻었다. 목덜미와 어깨가 만나는 지점에. 기분 좋은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솜사탕으로 이루어진 건 아닐까 싶게 달콤하고 또 달콤했다. 그를 품고 있는 아래도, 서로 혀를 얽고 비벼대던 입술과 목덜미도 전부.

인서는 동작을 멈추고 정이설과 눈을 맞추었다. 총천연색 눈동자가 물기에 젖어 유난히 함초롬한 모양새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꿈이 아니었다. 무수히 많은 시간, 무수히 많은 장소에서 시시때때로 밤잠을 설치게 만들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정이설이 자신의 침대에 누워있었다. 서툴기 짝이 없는 자신의 움직임을 모두 감내한 채로.

“……왜?”

계속 바라만 보고 있자 정이설이 물었다.

“믿어지지 않아서.”

“뭐가?”

“너랑 이러고 있다는 게.”

“난 또.”

“절대 허락해주지 않을 것 같았거든. 섹스는 고사하고 키스도. 그래서 아직도 솔직히 실감이 안 나.”

“내가 그렇게 정 없이 굴었나 보네?”

정이설이 작게 웃었다. 희고 가지런한 앞니를 붉은 입술 사이로 살짝 드러내 보이며.

예전엔 보일 듯 말 듯 피어오르는 저 작은 미소가 보고 싶어 종종 애가 달았었다. 운이 아주 좋은 날엔 저 작은 미소가 한순간 커지면서 오른쪽 볼에 희미하게 볼우물이 파이는 경우도 있긴 했다. 물론 정말 드문 경우였지만. 그런 날엔 종종 행복한 상상에 잠겼다. 저 감미로운 미소가 자신에게로 향하면 어떨까 하는.

지금도 그 간절함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정이설의 볼우물은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아무튼, 그렇다고.”

인서는 불쑥 치켜든 감정을 참지 못하고 정이설의 입술에 제 입술을 맞물렸다. 눈을 감자 검은 공간 속으로 처음 정이설을 만나던 순간의 기억이 선명하게 펼쳐졌다.

아빠와 함께 새로 이사할 아파트 단지를 구경하러 가던 날이었다. 정이설은 한여름 무더위에 지칠 대로 지친 사물들 속에서 혼자만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시선을 안 주려야 안 줄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때 무슨 옷을 입고 있었더라. 맞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반소매 상의와 그보다 더 평범한 색의 반바지였지.

처음 든 생각은 그저 ‘예쁘다’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다른 표현은 떠오르지 않았다. 정이설은 열두 살 때도 그랬지만, 스무 살이 된 지금도 그가 마주친 사람 중 가장 예쁜 피조물이었으므로. 그런 정이설과 키스를 하고, 심지어 섹스까지 하다니 실감이 나지 않는 건 당연했다.

인서는 뭉클해지는 심장을 다잡고 정이설의 입술에 깊숙이 키스했다. 젖은 혀가 서로 맞닿은 상태로 진득하게 비벼졌다. 등허리가 찌르르하게 울리면서 내벽을 가득 채우고 있던 중심부가 그에 맞춰 몸집을 한층 더 키웠다.

정이설이 앓는 소리를 냈다. 뜨거운 숨결이 그의 입안으로 훅 밀려들었다.

정이설은 어디고 할 것 없이 뜨거웠다. 열에 들뜬 발그레한 볼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를 받아들이고 있는 좁디좁은 구멍은 물론이고, 매달리듯 그의 탄탄한 허리에 감겨 있는 희고 가는 허벅지도 데일 듯 뜨겁긴 마찬가지였다.

인서는 더욱더 안으로 파고들었다. 욕망에 충실한 성기가 끝도 없이 안으로 쑤셔박혔다.

후우, 미치겠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정이설은 살갗마저 향기롭고 달았다. 그를 향해 벌어진 입술은 또 어떤가. 할딱이며 쏟아져나오는 숨소리가 익숙지 않은 감각으로 담뿍 젖어 있었다. 미칠 것 같았다. 단전에서부터 시작된 열기가 복부와 심장을 거쳐 순식간에 정수리까지 타고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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