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야, 거긴 하지 마.”
얼굴로 열이 확 올랐다. 팔을 뻗어 탄탄한 어깨를 밀어냈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넌 진짜 안 예쁜 곳이 하나도 없구나. 어떻게 여기까지 예뻐?”
아쉽다는 듯 그녀의 아래에서 입술을 떼며 백인서가 말했다.
“……그래도 앞으로 거긴 빨지 마.”
이설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얼굴로 한가득 몰린 열이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왜? 아깝잖아.”
“뭐가?”
“너한테서 나온 물이 거기까지 흘러내렸다고. 안 빨아먹으면 아깝잖아.”
뻔뻔한 말과 함께 뜨거운 시선이 다시 아래를 훔쳤다. 구석구석 빨리고 핥아지는 바람에 축축하기 그지없는 구멍 주변이 달뜬 시선 아래서 집요하게 탐색당했다.
주륵.
이설은 얼굴이 또 붉어졌다. 백인서가 쳐다본다고 물색없이 젖어버리는 아래라니. 그렇지만 눈빛이 저렇게 야하니 어쩔 수가 없잖아.
백인서에게 발가벗은 모습으로 깔린 채 이설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두근거림을 애써 억눌렀다. 아랫배엔 계속 힘이 들어가고, 비좁은 틈새에선 연신 질척한 액이 토해져 나왔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우리…… 언제 할 거야?”
거기도 빨 만큼 빨았고, 너는 무섭게 섰잖아.
이설은 백인서의 다리 사이에서 가감 없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성기를 흘끗 쳐다보았다. 검붉은 색깔에 힘줄이 울뚝불뚝 튀어나와 있는 데다 끊임없이 프리컴을 줄줄 흘려대고 있는 그것은 차라리 미지의 생물체에 가까웠다. 성기라고 불리는 몸의 일부가 아니라.
“할 거야, 지금.”
발갛게 달아오른 볼에서부터 바짝 솟아오른 유두와 납작한 배, 유혹하듯 움찔대는 조붓한 구멍을 차례차례 훑어 내려가던 인서는 짧게 대답했다. 더없이 습하고 은밀한 목소리로. 그러면서 인서는 생각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피조물이 있다면 그건 바로 정이설일 거라고.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보자마자 시선이 자동으로 끌려가며 첫눈에 얼이 빠져버린 경험은. 몇 날이고 몇 달이고 말이 걸고 싶어 애가 달았던 경험도, 연갈색 눈에 설핏 물기라도 비치면 이유를 알고 싶어 미칠 것 같던 경험도 전부 그녀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인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정이설보다 더 마음을 끄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거라고. 이건 추측이 아니라 맹신이었다.
떨리는 시선으로 정이설을 눈에 담았다. 벗은 제 모습, 그중에서도 흉흉하게 일어선 아래를 흘끗 바라보고는 아랫입술을 잘근 깨무는 모습이 그럴 수 없이 예뻤다. 말로는 언제 할 거냐고 물으면서 귓바퀴까지 새빨갛게 물든 모습 역시 사정할 것처럼 예뻤다.
이건 비유가 아니었다. 정말 아래가 지르르하게 울렸으므로. 손만 대면 사정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인서는 천천히 제 성기로 손을 미끄러뜨렸다. 축축하게 젖은 귀두가 손안에 들어왔다. 프리컴으로 가득 찬 부분을 엄지로 한번 꾹 눌러준 다음, 그 아래 기둥을 손바닥에 비비기 시작했다.
“……뭐해?”
정이설이 물었다. 당연했다. 섹스를 한다고 해놓고 자위 따위나 하고 있으니.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런 흥분상태면 좆을 집어넣자마자 몇 번 박아넣지도 못하고 그냥 싸버릴 게 분명했다. 직감이었다. 그리고 인서는 자신의 첫 경험을, 더불어 정이설의 첫 경험을 그렇게 허망하게 소비할 순 없었다. 부끄러움은 잠시만 묻어두면 됐다.
“미안한데 먼저…… 사정 좀 하고.”
말을 하는데 목 언저리까지 화끈거렸다.
고맙게도 정이설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그가 제 좆을 문지르는 모양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인서는 배꼽 위까지 올라붙은 성기 끄트머리에서부터 고환과 맞닿은 기둥 아래까지를 한 번에 죽 훑어내렸다. 정이설의 시선이 그의 손동작을 따라 움직였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앙증맞은 선홍색 혀가 언뜻 보였다가 사라졌다. 조금 전까지 그가 물고 빨았던 혀였다. 흥분감이 단번에 정수리까지 솟구쳤다.
정이설은 절대 모르겠지? 자신의 시선이 얼마나 큰 흥분제 역할을 하는지.
예상한 대로였다. 서너 번의 자극으로도 아래가 금세 저릿해졌다. 인서는 손바닥에 더 힘을 가해 위아래로 문질렀다.
냉장고에서 라임청을 꺼낼 때만 해도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자신의 방 안 침대 위에서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누운 정이설을 앞에 두고 이런 짓을 하게 될 거라는 걸.
지독히도 민망했으나 부끄러움은 아주 잠시뿐이었다.
인서는 저를 올려다보고 있는 정이설의 순진한 눈동자와 시선을 곧이곧대로 맞추며 상스럽고 난잡하게 좆을 문질러댔다. 등허리로, 다리 사이로 찌르르한 감각이 몰아쳤다. 선수촌 숙소에서 머릿속으로만 정이설을 상상하며 제 좆을 문질러대던 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저릿함이었다. 거침없이, 빠른 속도로 수음 행위를 이어갔다.
“큿!”
사정은 순식간이었다. 귀두 끝에서 뿜어져 나온 정액이 포물선을 높게 그리며 떨어져 내렸다. 인서는 만족감에 흉곽을 최대치로 부풀렸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정액이 손끝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으나 신경 쓸 여력도 없었다.
“하아, 하아.”
연신 가쁜 숨만 내쉬다가 문득 시선이 맞은편으로 옮겨갔다. 정이설의 얼굴과 가슴이 방금 쏟아낸 정액으로 얼룩덜룩해져 있었다.
“……어, 미안.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인서는 서둘러 손을 뻗어 책상 위를 더듬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화장지를 뭉텅이째 뽑아냈다.
“진짜 미안. 더럽지? 내가 금방 닦아줄게.”
허둥대는 그를 올려다보며 정이설은 조금 당황스러운 듯, 그렇지만 부드러운 눈빛으로 미소지었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불쾌한 얼굴로 이게 무슨 짓이냐며 타박을 해도 수긍이 갈 판인데, 정이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도리어 신기하다는 듯 그가 흩뿌려놓은 정액을 손으로 가만히 훔친 다음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러고는 고개까지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이런 게 나오는 거구나. 처음 봤어.”
정이설은 정말 이상했다. 차가운가 하면 다정했고, 거리가 멀어졌다 싶으면 단번에 좁혀 들어왔으며, 아무도 밟지 않은 눈처럼 고귀한 존재인가 싶어 한껏 머뭇거릴라치면, 결정적인 순간에 바닥으로 걸어 내려와서는 한없이 너그러워졌다. 바로 지금 이 순간처럼. 그래서 인서는 정이설을 앞에 두고 뻔뻔스럽게 수음을 했지만, 한 줌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았다.
“잠깐만 그대로 있어 봐.”
인서는 정이설의 턱을 가만히 부여잡고 손을 움직였다. 미끄덩한 점액질이 화장지 가득 묻어났다. 방 안 전체에 퍼지는 진한 밤꽃 냄새에 어지러운 기분마저 느꼈다. 사정없이 떨리는 심장을 바로 잡고 여기저기 묻은 정액을 깨끗이 닦아냈다.
정이설은 희뿌연 정액이 묻은 얼굴도, 그것이 전부 사라져 매끈한 피부를 자랑하는 말간 얼굴도 미칠 듯이 예뻤다. 한바탕 정액을 쏟아내느라 잠시 기세가 수그러들었던 자지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무섭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너 있잖아.”
정이설이 입술을 달싹거렸다.
“어, ……왜?”
“거기가 또 섰어.”
“아아, 이거? 별거 아니야.”
인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받아넘겼다. 사정액을 토해낸 성기가 곧장 다시 발기하는 건 흔하디흔한 그의 일상이었다. 평소에도 정이설만 떠올리면 그런 판국인데 오늘은 꿈에서까지 발정하게 만드는 정이설이 눈앞에 있으니 안 그런다면 그게 더 이상할 일이었다.
“너랑 있어서 그래.”
인서는 솔직히 털어놓았다. 자위까지 한 마당에 숨길 것도 없었다.
“나랑 있으면 항상 그래?”
“거의 그런 셈이지?”
“근데 어떻게 참았어?”
정이설이 물었다. 남자의 생리라곤 요만큼도 모르는 순진한 얼굴로.
“그렇다고 무턱대고 할 순 없잖아.”
“언제부터 그랬는데?”
“알면 내가 싫어질걸?”
“왜?”
“고3 이후로는 거의 짐승 수준이라서. 매일 너랑 하고 싶었거든.”
“그 정도였다고?”
역시나 도톰한 입술이 놀라움을 담은 채 딱 벌어졌다.
“그래서 싫어질 거라고 했잖아.”
“전혀.”
“거짓말 아니고?”
“누가 이런 얘기로 거짓말을 해.”
정이설이 수줍게 웃었다. 마른침이 꿀꺽 넘어갈 정도로 예쁜 모습이었다. 인서는 관자놀이를 슬쩍 붉히며 책상 맨 아래 서랍으로 손을 뻗었다.
“뭐 찾아?”
“콘돔.”
“그런 게 집에 있어?”
“올림픽 때 받은 건데 기념 삼아 집으로 가지고 왔거든. 한번 볼래?”
인서는 서랍에서 찾아낸 콘돔을 이설에게 건넸다. 은색 바탕에 오륜기가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엔 검은색 글씨로 개최연도가 쓰여 있는 어찌 보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콘돔이었다.
“올림픽 때 콘돔을 나눠줘?”
“거기 완전 동물의 왕국이야. 서로 마음만 맞으면 장소 안 가리고 하자는 주의거든.”
“진짜?”
“그러니까 콘돔 자판기가 서너 시간마다 품절 돼서 직원들이 채우느라 난리지.”
“넌 어땠어? 하자는 사람 없었어?”
“있었어도 그럼 안 되지.”
“있기는 있었나 보네?”
“뭐, 조금?”
인서는 말끝으로 씩 웃었다. 그에게 시도 때도 없이 접근하던 수많은 국가대표 선수들이 떠올라서.
종목이나 인종은 상관없었다. 노르웨이 핸드볼선수를 시작으로 대만 태권도선수, 러시아 사격선수, 인도네시아 배드민턴선수 등이 줄을 이어 그에게 다가왔으니까.
여자만 접근한 것도 아니었다. 오며 가며 마주치는 남자 선수들도 종종 그에게 의미 있는 말을 던지곤 했다. 예를 들면 독일 펜싱선수와 호주 수영선수는 자기들이 묵고 있는 방의 호수를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굳이 알려주는 친절함을 보였다. 속셈이야 뻔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