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분명한 건, 저렇게 웃을 때의 아빠를 보면 춘천 할머니처럼 혀를 ‘끌끌’ 차고 싶어진다는 점이다. 40이 훌쩍 넘어서까지 그러고 싶냐며. 물론 할머닌 꼭 말끄트머리에, ‘불쌍한 것’ 하고 덧붙이셨지만. 그럼 아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분간이 안 가는 얼굴로 잠시 침묵을 지켰다. 할머닌 여전히 혀를 ‘끌끌’ 찼고.
“몰라. 아무튼, 그렇게 이상한 소리 내면서 웃지 마.”
“그래도 아파트가 마음에는 들지?”
아빠는 자꾸만 확인하고 싶어 했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계약까지 끝낸 마당에 그의 의견이 무슨 대수라고.
“어, 무지, 엄청, 완전, 대박 좋아. 그러니까 그만 물어봐도 돼.”
성가시다는 얼굴로 대꾸하자 아빠가 ‘낄낄’거리며 웃다가 돌연 근엄한 얼굴을 했다.
“우리 인서 좋으면 아빤 됐어.”
갑자기 묘하게 신파 분위기로 바뀐 말투였다. 그래놓고 슬쩍 운전석 창밖을 내다보는 눈빛이 우수에 젖어버리면 어쩌라고.
마음 한구석이 어느새 쿡쿡 쑤신다. 익숙하지만 결코 익숙해지기 싫은 감정이었다.
“뭐…… 엄청나게 예쁜 애도 하나 있고.”
인서는 제 귀에도 잘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아빠와 함께 들어선 아파트는 101동 910호였다. 전체 동수가 스무 개를 훌쩍 넘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제일 작은 평수에 속하는 아파트이기도 했다. 하지만 담배꽁초 하나 없는 공동현관과 엘리베이터는 물론이고, 현관문을 열면 곧바로 마주 보이는 널찍하게 잘빠진 내부 구조와 담백한 색조의 벽지 등은 예전 아파트와 비교도 안 되게 좋아 보였다. 괜히 아빠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게 아니었다.
“이참에 아예 가구랑 가전제품도 싹 바꾸려고.”
아직 이삿짐이 들어오지 않아 휑한 내부를 둘러보며 아빠가 중얼거렸다.
“왜? 아직 쓸만하잖아. 설마 복권이라도 당첨됐어?”
“원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거야.”
“멀쩡한 걸 버리면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는 건 아니고?”
따지듯 묻자 아빠가 피식 웃었다.
“너 사회시간에 안 배웠어? 소비를 적절히 해줘야 경제가 잘 돌아가는 거야. 우린 너나 나나 돈을 너무 안 쓰잖아. 인제 써보지 언제 써보냐. 이사를 해마다 다니는 것도 아니고.”
“괜히 아빠가 바꾸고 싶으니까 핑계는.”
“어, 내가 바꾸고 싶어서 그런다. 됐냐?”
“아우, 유치하기는. 그러니까 맨날 춘천 할머니한테 잔소리나 듣는 거 아냐. 철 좀 들라고.”
“네가 모르나 본데, 할머니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죄다 잔소리가 많은 법이거든? 네 엄마도 할머니가 되면…….”
아빠가 뒷말을 이으려다 말고 불쑥 몸을 돌렸다.
“인서야, 여기로 와 봐라. 경치 죽인다.”
“가전제품 얘기하다 말고 갑자기?”
“원래 갑자기 보는 경치가 더 좋은 법이야. 열두 살밖에 안 됐으니 뭘 알 리가 있나.”
“예, 예, 40 넘으셔서 참 좋으시겠어요.”
인서는 투덜대며 아빠의 옆에 나란히 섰다. 9층이라 전망이 제법 그럴듯했다. 특히 아파트 단지 전체를 구석구석 붉게 물들이고 있는 저녁노을이.
“어때, 나름 괜찮지?”
“어. 좋아.”
“노을 한번 무진장 예쁘네.”
아빠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선 굵은 옆모습 위로 잘 익은 감처럼 진홍색으로 물든 노을이 담뿍 내려앉았다.
“여기서 학교도 가까운 것 알고 있지?”
“걸어서 5분도 안 걸린다며.”
“5분이 아니라 3분.”
아빠가 ‘3’자에 방점을 콱 찍었다.
“그거나 그거나.”
“완전 다르지. 그 학교가 도암시는 물론이고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태권도 명문이라더라. 이번 전국소년체전에서도 메달 많이 땄다던데? 그리고 그 뭐냐, 꿈나무 국가대표도 둘이나 있고.”
“그래서 여기로 이사하려는 거야?”
“이왕 시작한 거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어? 학교 측에서도 열심히 지원해준다고 약속했단 말이야. 그러니까 직접 코치가 아빠한테 전화까지 했겠지. 바쁜 와중에 경찰서로도 막 찾아오고. 안 그래?”
“언제는 힘들까 봐 걱정된다며. 지금은 그런 마음 없어?”
인서의 물음에 아빠는 잠시 대답이 없다. 재미도 없는 농담을 아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던지며 동네 불량배처럼 낄낄대던 모습과는 영 딴판으로 진지하다.
인서는 베란다 난간을 쥐고 있는 손에 지그시 힘을 주었다. 축제를 벌이듯 점점 붉은색으로 진해지는 노을과 달리 마음이 버석거렸다. 아빠가 불량배처럼 낄낄거리면 낄낄거려서, 맥락 없이 우수에 젖어버리면 우수에 젖어버려서. 이래저래 그의 아빤 신경이 쓰이는 존재였다.
“진짜 태권도선수 하고 싶은 거 맞지?”
뜬금없이 아빠가 물었다. 인서는 질문의 의도가 무얼까 싶어 아빠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럼 가짜로 태권도선수 하고 싶은 사람도 있어?”
“아니, 나는 그냥…….”
“그냥 뭐.”
“너는 재미 삼아 하는 건데 괜히 아빠 혼자 오버하는 거면 미안해지잖아.”
아빠가 베란다 난간을 주먹으로 툭툭 쳤다.
“아빠가 무슨 오버를 한다고. 그런 거 아냐.”
“빈말 아니지?”
“우리 사이에 빈말을 왜 해.”
“우리 사이가 무슨 사인데?”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부자 사이지 뭐긴 뭐야.”
툭 던진 말에 아빤 순간적으로 감격한 얼굴을 했다. 그러더니 울뚝불뚝한 팔을 들어 눈앞의 아들을 껴안으려 했다.
인서는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아빤 정말 이상한 순간에, 혼자만 감정적으로 격앙돼서 곧잘 그를 끌어안으려 했다. 그게 얼마나 부담스러운 줄도 모르고.
인서는 금세 눈꼬리가 축 처지는 아빨 모른 척하며 말을 이었다.
“이왕 시작한 거 제대로 하면 좋지 뭐. 열심히 해서 국가대표까지 되면 더더욱 좋고.”
“나야 너 힘들까 봐 그러지.”
“언제는 이 세상에 안 힘든 거 없다며.”
“그거야 그냥 하는 말이고.”
“정말 괜찮다니까? 나 아빠 닮아서 맘에 없는 말 못 하는 거 몰라?”
인서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다. 태어나서 처음 발견한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것도 미친 듯이 재미있는.
“네가 뭘 몰라서 그러는 거야. 중학교 때까진 아빠도 그랬거든. 근데 고등학교 올라가면 지금 하는 말이 쏙 들어갈걸?”
“왜? 고등학교 올라가면 뭐가 달라져?”
“당연히 달라지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어떻게?”
인서는 ‘그래 봐야 운동이지.’ 하는 표정으로 아빠를 올려다보았다.
“너 생각해 봐. 대학에서 뭘 보고 학생을 뽑겠어.”
“그야 성적이지.”
인서는 뭘 당연한 걸 물어보나 싶어 픽 웃었다.
“체대도 마찬가지야. 운동선수는 대회 수상실적이 곧 성적이거든. 결과가 형편없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반대로 수상실적이 탁월하면 네가 원하는 국가대표도 될 수 있는 거고. 그래서 다들 장난 아니게 운동하는 거야.”
“근데 그게 왜?”
도전적인 물음에 아빠가 눈을 끔벅였다.
“왜라니. 아빠도 운동해봐서 잘 아는데 그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거든. 어지간한 독종 아니면 못 버텨.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니까?”
“버티면 되지.”
“……어?”
너무 똑 부러지게 대답한 건지 아빠는 잠시 어항에서 빠져나온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그러더니 제법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있잖아. 고등학교 운동부는 선후배 간 군기도 장난이 아니야. 그뿐이면 다행이게? 재수가 없어서 성질 더러운 코치나 선배한테 걸리면 두들겨 맞는 건 일도 아니라고.”
“아빠.”
인서는 정색을 하고 제 아빠를 쳐다보았다.
“집까지 새로 계약한 처지에 지금 나보고 운동하지 말라고 겁주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그럼 왜 자꾸 나쁜 쪽으로만 얘기하는 건데. 나 그냥 운동하지 마? 그게 아빠가 원하는 거야?”
“설마.”
아빠가 절대 아니라는 듯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갑자기 고등학교 때 생각이 나서 그랬어. 그땐 코치들한테 엄청 얻어맞으면서 훈련했거든. 선배는 말할 것도 없고.”
인서가 기억하기로 아빤 고등학교 때까지 유도선수였다. 전국적인 인지도는 없었지만 강원도에선 나름 알아주는 유도 유망주였단다. 안타깝게도 대학 입시를 얼마 앞두고 크게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진로를 바꾸게 되었지만.
“나도 아빠처럼 얻어맞으면서 운동할까 봐 그래?”
“누가 그렇대?”
“맞네, 표정 보니.”
인서는 괜스레 울컥해졌다. 아빤 별걸 다 걱정하고 난리다. 누가 아들 바보 아니랄까 봐. 그러면서 이사는 어떻게 감행하려는 건지.
“요샌 그런 거 없어. 함부로 폭력 썼다간 코치고 선배고 죄다 감옥 갈걸? 그리고.”
“그리고?”
“내가 누구한테 얻어맞을 사람으로 보여?”
“그건 절대 아니지.”
“그럼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
“좋아. 대신 너도 아빠랑 약속 하나만 해.”
“무슨 약속?”
인서는 아빠가 또 무슨 실없는 소리를 할까 싶어 미간을 잔뜩 좁혔다.
“언제고 힘든 일이 생기면 아빠하고 상의하기.”
“그건 불가능해.”
“어째서?”
“아빠 맨날 바쁘잖아. 집에도 잘 없고.”
“전화는 폼으로 있냐?”
“그렇게까지 귀찮게 하고 싶지는 않은데.”
인서는 목덜미를 슬쩍 문질렀다. 아빠가 무슨 맘인지는 잘 안다. 직업 특성상 같이 있어 주지 못하니 늘 안쓰럽고 불안한 거겠지. 춘천 할머니도 항상 입버릇처럼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세상천지에 둘뿐인 부자라고. 그래서 아빠랑 살기 위해 도암시로 온 건데. 그게 벌써 2년하고도 6개월 전 일이었다.
“……있잖아.”
혼자서도 잘해나갈 수 있다고 말하려던 참인데 아빠가 먼저 운을 떼었다.
“난 그게 뭐가 됐든, 혼자서만 버티는 건 별로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아빠가 손끝으로 베란다 난간을 쓱 문질렀다. 점점 검붉게 변하는 노을에 시선을 붙박아 둔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