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 * *
추석 전날이었다. 엄마는 못 올 데를 온 사람처럼 두어 번이나 주저한 후 할아버지 댁 현관 벨을 눌렀다. 고고한 표정의 할머니가 문을 열어주었다.
“너희들뿐이냐?”
마뜩잖은 기색으로 할머니가 문 앞에 선 엄마를 쳐다보았다.
“아범은 마무리할 일이 있어서 조금 늦는대요.”
“알았다. 그건 뭐냐?”
할머니가 냉한 목소리로 물었다.
“추석 선물인데…… 마음에 드실지.”
엄만 불미스러운 일로 교무실에 불려간 학생처럼 고개도 들지 못하고 대답했다.
“일부러 들고 온 것이니 고맙게는 받겠다만, 앞으로는 이런 선물 안 가지고 와도 된다.”
“…….”
“뭘 그렇게 서 있니? 얼른 들어오지 않고.”
할머니가 찬바람을 쌩하니 내며 돌아서자 엄마가 얼른 오빠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섰다.
하, 꼭 도살장 들어가는 거랑 다름없네.
이설은 굳은 표정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가 정작 싫어하는 건 그 이후였다. 할머니의 온갖 잔소리를 들으며 송편과 차례 음식을 다 준비해놓았을 때 작은엄마와 작은아빠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머니, 저희 왔습니다.”
작은아빠의 굵직한 바리톤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할머니는 언제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었냐는 듯 얼굴 전체에 화색이 돌았다.
“바쁜데 뭘 이렇게들 일찍 오니?”
“명절인데 당연히 일찍 와야죠.”
작은엄마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건 또 뭐고.”
“저희 친정에서 어머님 좋아하시는 거라고 대관령 특등 한우 세트와 프랑스산 와인을 보내왔지 뭐예요.”
“아유, 사돈은 명절마다 뭘 매번 이런 걸 보내시고 그러니.”
“그리고 이거.”
작은엄마가 미리 준비해온 봉투를 할머니에게 내밀었다.
“약소하지만 용돈으로 쓰세요.”
말과는 달리 절대 약소하지 않을 게 뻔한 새하얀 봉투가 작은엄마의 손에서 할머니의 손으로 보란 듯 넘어갔다. 어쩌면 아빠 월급보다 훨씬 많을지도 모를 금액이 들어 있을 봉투였다. 괜한 억측이랄 것도 없다. 작은아빠와 작은엄만 할아버지의 칠순 선물로 아파트 한 채를 통째로, 할머니의 칠순 선물로는 포드 자동차와 에르메스 가방을 선물한 이력까지 있는 사람들이니까.
그때 우린 선물로 뭘 드렸더라. 오사카 4박 5일 여행이었나?
공무원 신분으론 과하게 넘치지도, 떨어지지도 않는 적절한 수준의 선물이었으나 작은아빠의 통 큰 선물과 비교되는 바람에 아빤 그 흔한 생색조차 제대로 낼 수 없었다.
“저녁은 먹고들 온 거야?”
할머니는 여전히 작은아들 부부를 챙기는 데만 열심이었고, 그런 와중에 주방과 식당 사이에서 홀로 분주한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어머님이랑 먹으려고 아직 안 먹고 왔죠.”
“잘했다. 오늘 해물이 아주 실하더라.”
주고받는 대화가 어찌나 화기애애하고 살뜰한지 같은 공간임에도 다른 공간에 속해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이설은 슬쩍 엄마의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어깨가 좁고 전체적으로 가녀린 탓에 더 안쓰러워 보이는 뒷모습이었다. 그다음엔 엄마가 명절이라며 들고 왔으나 주방 한구석에 볼품없이 놓이게 된 선물상자를 눈에 담았다.
표정을 지운, 그래서 거의 무표정에 가까운 엄만 시동생 부부에게 간단히 인사만 한 후 부엌 뒷정리에 여념이 없었다. 그 복잡한 속내를 모르지 않기에 이설은 아랫입술만 한번 꾹 깨물었다.
“유주는?”
할머니가 목을 빼고 현관문 쪽을 건너다보았다.
“어머니도, 유주 고3이잖아요.”
“벌써 그렇게 됐나? 내가 이렇다니까.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라.”
“저도 그래요. 내년이면 유주가 어엿한 대학생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랄 때도 있다니까요.”
작은엄마가 눈가를 선명하게 접으며 웃었다.
“그나저나 서운해서 어쩌냐. 우리 유주 보고 싶어서 내내 기다렸는데.”
할머니는 진정 서운한 표정이었다.
“죄송해요. 추석이라 할머니 뵈러 가야 한다고 누누이 얘기했는데도 이 녀석이 공부하겠다고 집에 있겠다네요. 무슨 공부를 그렇게 요란스럽게 하는지.”
“내버려 둬라. 이 좋은 명절날 공부만 해야 하는 저는 오죽 힘들겠니?”
“이해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어머니.”
“고3 수험생이 다 그렇지 이해는 무슨. 우리 때도 고3은 대접받으면서 공부했다.”
곰살맞게 오가는 대화를 들으며 이설은 쓴웃음이 올라오는 걸 억지로 참았다. 할머니가 저런 배려와 친절을 그녀와 그녀의 엄마에게도 베풀면 참으로 좋겠는데 작은엄마와 정유주 한정이라는 게 크나큰 흠이라면 흠이었다.
하, 정말 짜증 나서 미치겠는데 어떡하지? 이걸 앞으로도 만 24시간을 더 참아야 하는 거야? 이러다 성불하는 거 아니냐고.
“형님, 저 뭐하면 될까요?”
겉옷을 벗어 옷걸이에 얌전하게 걸어두고는 작은엄마가 주방으로 들어섰다.
“……어, 준비는 거의 다 했으니까 동서는 상만 차리면 돼.”
“그래요? 죄송해서 어쩌죠? 일찍 서두른다는 게 항상 늦어지네요.”
“바쁘면 그럴 수 있지 뭐.”
“국은 이거 내가면 되는 거죠?”
“응, 그릇은 내가 미리 꺼내놨으니까 거기 담으면 돼.”
엄마는 시종일관 담담했다. 목소리 역시 그런 심리 상태를 반영하듯 별다른 고저 없이 차분하기만 했다. 어쩌면 이런 상황에 이골이 난 걸지도.
아빠는 저녁상을 물리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할아버지 댁을 찾았다.
“아무리 나랏일이 중요하다지만, 어째 명절 연휴에도 쉬지를 못해.”
할머니가 현관문 안으로 들어서는 아빠의 등을 애틋한 손길로 쓸어내렸다. 작은아빠가 들어섰을 때와는 또 다른 다정함이었다.
“며칠 전 내린 폭우 때문에 지역 농가 피해가 만만치 않아요. 그래서 비상대책회의가 길어졌어요.”
“저녁은 먹은 거야?”
“아직이요.”
아빠의 말이 끝나자마자 할머니가 엄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하니, 얼른 아범 저녁상 차리지 않고.”
겨우 숨을 돌리며 앉아 있던 엄마가 군소리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설은 뭔가 모르게 욱해서 제 엄마의 앞을 가로막았다.
“내가 차릴 테니까 엄만 그만 쉬어.”
“네가 뭘 할 줄 안다고.”
“저녁상 차리는 것 정도는 나도 할 줄 알아. 있는 음식 그릇에 담아 내오기만 하면 되는데 그걸 못 할까 봐.”
이설은 친가 식구들이 줄줄이 앉아 있는 소파 대신, 식탁 의자 하나를 빼서 엄마를 앉게 했다. 그래야 조금이나마 심적 부담을 덜 느낄 테니까.
“그래도.”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도로 몸을 일으키려는 엄마의 어깨를 제법 강한 악력으로 꾹 눌렀다.
“엄마 여태 일했잖아. 이럴 때라도 좀 쉬어야지.”
“…….”
이설은 엄마의 시선을 고스란히 등 뒤로 느끼며 음식을 그릇에 담았다.
“내가 해도 되는데.”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귓가로 들렸다. 아무것도 안 들리는 척 열심히 음식을 그릇에 담아 식탁으로 가져갔다.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느긋하게 앉아 있는 아빠와 달리, 엄만 꼭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편하게 쉬라는데도 저런 태도를 취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 이설은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는 매번 저런 식이었다. 스스로 을을 자처했다. 집에서도, 시가에서도.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빠는 밥 먹는 데만 열중이었다.
“국 좀 더 떠와. 맛있네.”
당연한 일을 시키듯 아빠가 엄마에게 턱짓을 했다. 말릴 새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엄마가 거의 비다시피 한 국그릇을 들고 인덕션 앞으로 걸어왔다.
이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마치 온 식구 수발을 들지 못해 안달인 사람처럼 굴고 있었으므로. 그리고 할머니의 온갖 눈총을 받으며 하루 종일 일한 끝에 겨우 쉬고 있던 엄마에게 태연히 국 심부름을 시킨 아빤 감사의 말 한마디 없이 먹는 데만 온 신경을 쏟았다. 영락없는 돼지 같았다. 근엄한 표정에 지적인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저만 아는 오만한 폭력 돼지.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엄마를 사랑한다고 뻔뻔하게 말하는 철면피 돼지. 그게 사랑인가. 엄마가 자신의 본가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훤히 알면서.
이설은 살이 두툼하게 붙은 갈비가 둥둥 떠 있는 국그릇을 통째로 들어 아빠 얼굴에 끼얹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런 미친 짓을 저지르지 않게 된 건 근황이나 주고받자며 부엌으로 들어온 작은아빠 때문이었다.
“일은 잘 마무리됐어?”
할아버지와 흡사한 외모를 가진 작은아빠가 할머니의 외모에 할아버지의 성격을 그대로 이어받은 아빠에게 물었다.
“아직. 넌 요즘 병원 운영은 잘되냐?”
“그렇지 뭐. 이쪽 분야가 워낙 경쟁이 치열해야 말이지.”
“엄살은. 잘나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던데. 너 방송에도 꽤 나오더라. 이젠 전국적인 유명인사야. 우리 부서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어.”
“그래 봐야 직원들 월급 주고 나면 끝이야.”
“의사가 몇이라 했지?”
“나까지 전부 아홉.”
고부간의 갈등이나 동서지간의 미묘한 신경전과는 별개로 두 형제는 아주 편안해 보였다. 마치 딴 세상에 와있는 사람들 같았다.
“근데 이설이는 이번에 수시 원서 어디 썼어?”
작은아빠가 생각났다는 듯 화제를 돌렸다.
“전부 의대 썼지 뭐.”
“여섯 개 다?”
작은아빠가 되물었다.
“유주는 여섯 개 다 의대 안 썼어?”
“나도 그렇게 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서울대 일반학과도 하나 썼더라고.”
“어차피 의대 갈 건데 뭐하러.”
“제 딴엔 보험이라나 뭐라나. 그래야 안심이 된다는 걸 어떡해.”
작은아빠가 웃음 끝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넌 가만있었고?”
“본인이 고집하는데 별다른 수 있나? 그냥 하겠다는 대로 내버려 둬야지. 가만 보면, 내신이 그렇게 좋은데도 몸 사리는 걸 보면 우리 유주가 나랑 닮은 구석이 꽤 많아.”
작은아빠의 은근한 자식 자랑에 아빠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경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