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
“이 빛들이.”
향로를 내린 아미가 제 어깨에 앉은 은빛을 보며 말했다.
“두 분의 영혼을 어머님의 곁으로 인도할 겁니다.”
“아직도….”
노아가 희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부모님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던 거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신의 사랑을 받는 딸의 입에서 제법 매정한 말이 나왔다.
조금 전까지 신성한 기적을 목격했던 사람들의 표정이 죄다 얼빠져 있었다.
“…장례식은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거야.”
돌아선 아미가 노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죽은 자에게 얽매이지 마.”
“…….”
“죽은 자가 무엇을 소중히 여겼는지 생각하고, 무엇을 위하여 살았는지만 기억해.”
성녀는 살아남은 후계자를 제 앞에 무릎 꿇게 했다.
자연스럽게 몸을 낮춘 노아는 저도 모르게 바들바들 떨고 있던 두 손을 힘겹게 맞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떨구며 눈을 감았다.
“노빌리아 피에타.”
노아 벨로.
나의 친구.
“저는 당신을 위해 이 빌어먹을 성복을 다시 둘렀고, 두 번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던 의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굳은살과 흉터로 가득한 성녀의 손이 머리 위에 얹어졌다.
“죽은 자를 보내는 것은 당신의 역할입니다.”
“…….”
“그러니 나는 모든 정성을 다하여 그것을 도울 것입니다.”
몸을 돌린 아미가 향로를 번쩍 들었다. 새하얀 연기가 하늘 높이 치솟더니, 이내 은빛 반딧불들이 연기를 따라 날아올랐다.
“하늘에 계신 위대한 어머님의 곁으로 고귀하고 성결한 영혼들을 인도하옵니다.”
성녀님의 말씀대로, 은빛 반딧불이 피에타 백작 부부의 영혼을 인도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순간을 지켜본 노아는 어째선지 이제 이곳에 부모님이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사실이 너무 기쁘면서도 슬퍼서, 노아는 다시 한번 목 놓아 울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노아의 자장가를 듣고 잠든 클라레는 더 이상 예쁜 아줌마와 아저씨를 만나지 못했다.
***
가을 하늘이 높고 푸르른 토요일 아침.
피에타 백작 부부의 장례식은 삼엄한 경비 아래, 숙연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척. 척.
햇살 아래 광택이 흐르는 검고 커다란 관 두 짝을, 해군 특함 대원들이 직접 들었다. 절도가 흐르는 딱딱한 걸음은 자신들이 모시고 가는 영웅들의 영면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했다.
“…….”
그 뒤를, 검은 상복을 입은 노아가 홀로 따라갔다.
비공식이긴 하나, 피에타 가주의 신분으로 사람들 앞에 서는 자리였다. 검은 정장을 입은 노아는 머리에 검은색 베일이 달린 모자를 썼다.
베일 뒤에 가려진 그녀의 얼굴은 꽤 냉정했다.
비록 전날에 펑펑 울어 버린 탓에 눈이 꽤 부어 있지만, 그것만 제외하면 꽤 차분한 표정이었다.
“…아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스의 손을 꼭 쥐고 있던 클라레는 홀로 서 있는 노아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왜 언니 혼자 저기에 있어?”
“작은 주인님은 아가씨를 위해 혼자 계시는 거예요.”
“왜?”
“…….”
아스는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고민했다. 차마 사람들의 이목을 받는 자리에 클라레를 끼우고 싶지 않은 노아의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왜?”
옆에 있던 아티가 슬쩍 물었다.
“가고 싶어?”
“도련…!”
“응.”
아티가 말리기도 전에, 클라레가 힘줘 답했다.
“언니, 너무 울 것처럼 보여.”
홀로 서 있는 노아는 무척 아름다웠지만, 클라레의 눈에는 어째선지 너무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그럼 가.”
“그래도 돼? 안 혼나?”
“여기서 널 혼낼 사람은 어디에도 없어.”
네 친부모님 장례식이잖아.
아티는 어서 가 보라며 클라레의 작은 등을 톡, 두드렸다. 클라레는 슬쩍 아스의 눈치를 살폈다.
“뛰지는 말고요. 넘어지면 다치니까.”
아스의 허락이 떨어지자, 클라레는 입술을 꾹 다문 채로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그러고는 노아의 곁으로 쪼르르 다가갔다.
“……!”
부모님의 관이 미리 파 놓은 구멍 안에 들어가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던 노아가 화들짝 놀랐다.
“클라레.”
“언니랑 있을 거야…!”
클라레는 노아의 다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노아는 무어라 말하려다가, 끝내는 입을 다물고 눈을 질끈 감았다.
갑작스러운 아이의 난입에 장례식이 잠시 중단될 뻔했으나, 노아가 제 동생을 번쩍 안아 올리면서 다시 진행됐다.
“언니.”
클라레가 무덤 아래로 들어가는 관을 보며 노아에게 속닥였다.
“저분들이, 나랑 언니를 낳아 준 친부모님이야?”
“응. 무서워?”
“으음, 무섭지는 않아.”
클라레가 손을 꼬물거리며 말했다.
“언니는 이제 안 슬퍼?”
“…….”
“친부모님 만났으니까, 이제 행복한 거야?”
“언니는 늘 행복했어.”
노아는 클라레의 눈가에 얼굴을 기댔다. 검은 베일이 간지러웠는지 클라레가 소리 죽여 웃었다.
“네가 내 삶의 이유였단다.”
두 자매는 관을 눕힌 구덩이 앞으로 나아갔다.
노아는 안고 있던 클라레를 다시 내려놨다. 관을 옮겼던 특함 대원들이 양옆으로 나뉘었다.
무거운 분위기가 낯설었던 아이는 제 언니의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노아.”
정복 차림의 레토가 새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하얀 장미 두 송이를 내밀었다. 가시를 말끔하게 다듬은 것이었다.
이를 받은 노아가 그중 한 송이를 클라레에게 건네줬다.
“이걸 저 구덩이에 넣으면 돼.”
“낳아 준 엄마랑 아빠한테 선물하는 거야?”
“맞아.”
두 자매는 관 위에 장미꽃을 던졌다.
“…….”
돌아서기 직전.
“으응….”
잠시 걸음을 망설인 클라레가 영면에 든 부모님께 꾸벅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노아도 이때만큼은 참지 못하고 눈물 한 방울을 뚝 흘렸다. 레토를 비롯한 특함 대원들도 흐트러지는 숨을 조용히 고르며 서글픈 감정을 갈무리했다.
이내 다른 손님들도 관 위에 꽃을 올렸다.
국왕과 왕후, 그들의 어린 왕자.
아드벨로와 오케아누스.
해군 고위 장교 몇몇과 특함 대원.
“제게 이토록 사랑스러운 동생들을 만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스는 노아와 클라레의 가족으로서 인사를 올렸다.
옆에 있던 아티도 이번만큼은 별말 없이 조용히 꽃을 던졌다. 눈을 지그시 감고 영면에 드시라는 나지막한 기도가 제법 묵직했다.
마지막 차례는 레토였다.
“평생, 제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그는 제가 죽을 때까지 지킬 언약을 장미에 선명히 새겨 담았다.
“당신들의 딸과 함께하겠습니다.”
반드시 살아서 함께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레토는 꽃을 던지며 뒤로 물러났다.
수북이 쌓인 하얀 장미 위로, 흙이 툭툭 떨어졌다.
노아는 부모님의 관이 흙에 덮여 완전히 모습을 감출 때까지, 그 자리에서 전부 지켜봤다.
영웅들이 영면에 드는 날이었다.
***
갓 만든 묘지는 꽤 추레했다.
막 흙을 덮은 탓에 풀 한 포기 없이 황량하기만 한 흙더미가 꽤 초라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비석과 덮개를 대신해 새하얀 대리석 깔개만이 제단처럼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
장례식이 끝나고, 사람들은 아드벨로 저택이 준비한 늦은 아침을 먹으러 이동했다.
하지만 노아는 홀로 무덤 앞에 서서 부모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해?”
소리 없이 다가온 레토가 가지고 온 숄로 노아의 어깨와 등을 덮어주며 물었다.
“아무 생각 안 해.”
노아는 숄을 조금 더 고쳐 여미며 말했다. 레토는 아직도 노아의 머리에 얹혀 있는 베일을 살짝 들어 올렸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일단 노아는 울고 있진 않았다.
그리고 표정도 제법 가벼워 보였다.
“…드디어 다 끝났구나, 싶어서.”
노아는 레토를 올려다보며 눈웃음을 살짝 지었다. 레토도 따라 붉은 눈을 둥글게 휘었다.
둘은 손을 꼭 잡고 어깨를 가까이 붙였다. 노아가 슬쩍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고, 레토는 닿은 금발에 입술을 조심히 내렸다.
그리고 무덤을 바라봤다.
“대원들이….”
노아는 전날 밤에 대원들이 제게 준 상자 속 물건들을 떠올리며 기쁘게 미소 지었다.
“시스토에서 몰래 가져왔더라고.”
“뭘?”
“우리 부모님 유품이랑, 내가 어렸을 적에 그린 그림.”
“…….”
레토의 표정을 본 노아가 입꼬리를 즐겁게 올렸다.
“몰랐어?”
“어.”
순순히 인정한 레토는 덩달아 미소를 그려 보였다.
그 녀석들이 임무 중에 다람쥐처럼 피에타의 흔적들을 주섬주섬 모아 왔다고 생각하니 귀엽고 감사했다.
“…혹시 기억해?”
추억 하나를 떠올린 노아가 슬쩍 물으니, 레토가 소리 내어 웃었다.
“나도 지금 그 생각했는데.”
“이런 건 또 기가 막히게 통하네.”
“우리는 정말 부부가 될 운명이었나 보다.”
“하여튼 입만 살았다니까….”
오래된 기억 같은데, 생각보다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었다.
바로 올봄이었다.
두 사람이 연애 아닌 연애를 요상하게 끝내고, 그러다가 노아의 진급으로 틀어져 사이가 악화되었을 때.
“계급장 떼고 한 판 붙자.”
“서로의 소원 하나씩 들어주는 건 어떤가?”
드물게 욱한 노아가 성질을 못 참고 감히 상관에게 대들었고, 심보 삐딱했던 레토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붙잡았다.
그렇게 티격태격 싸우다가 눈물 질질 흘리고.
겨우 사랑한다고 입에 담고.
그렇게 부부가 되었다.
“그때 네가 나한테 그랬잖아. 부부 합장묘가 꿈이라고.”
“지금도 마찬가진데.”
“난 매장이 좋아. 땅으로 돌아가련다.”
“그럼 나도 땅으로 돌아간 네 품으로 돌아갈래.”
“미리 묘지부터 정해 놔야겠네.”
우리 둘이 같이 누우려면 땅이 넓어야 할 테니까.
그렇지 않으냐며 싱긋 웃는 노아의 얼굴은 환하기만 했다.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레토는 괜히 눈물이 울컥 차올랐다.
그래서 괜히 노아의 머리에 얼굴을 숨기듯 감췄다.
“…아아.”
행복해.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러게.”
노아는 제 허리를 꽉 끌어안는 레토의 팔을 느리게 도닥였다. 그녀도 어째선지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울고 싶어졌다.
“있잖아.”
레토가 코를 가볍게 훌쩍이며 물었다.
“결혼식, 한 번 더 할래?”
“왜?”
“너무 급하게 한 감이 있는 거 같아.”
몸을 돌려 노아의 앞에 선 레토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번에는 모두에게 보여 주자.”
우리가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그러니 이젠 어떤 걱정도 하지 말라고.
성급했던 첫 번째 결혼식 때 참석하지 않았던 모두를 불러서, 그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는지 보여 주자며.
레토는 노아의 왼손 약지에 낀 결혼반지에 입을 맞추며, 정중하고 간절한 시선으로 그녀를 올려다봤다.
“부디, 저와 한 번 더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이번에는 어떤 방해도 없이, 웬 해적이 난동을 부린다고 해도 기꺼이 결혼식을 완수하겠다며 맹세 아닌 맹세까지 했다.
노아는 거기서 웃음이 터졌다.
“이 바보가.”
해군이 해적을 안 잡으면 어떡해.
웃음을 거둔 노아는 제 앞에 무릎 꿇은 남자를 위해 기꺼이 허리를 숙였다.
그녀의 두 손은 어느새 사랑하는 그의 얼굴을 감쌌고, 남자는 다가오는 것을 기대하며 기꺼이 눈을 감았다.
“너랑 살면 지루할 틈이 없을 거야.”
마주한 입술이 떨어지는 순간, 불어오는 바람이 노아와 레토의 머리칼을 살랑살랑 어루만졌다.
뜨겁고 치열했던 남부에 청량한 바람이 새로운 계절을 불어 왔다.
비로소 결실을 맺는 가을이었다.
[계급장 떼고 결혼합니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