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급장 떼고 결혼합니다-243화 (243/245)

243.

어차피 죽을 놈이라면.

그 괴물에게 이미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면.

아이트라는 디모네 닉스가 가장 싫어하고 끔찍스러워할 고통을 노잣돈으로 선물하겠다고 다짐했다.

“늙은 늑대는 그래도 가죽을 남겼고, 썩은 백합도 꼴에 꽃이라고 불리는데. 재밖에 남지 않은 시가의 마지막은 어떨까?”

레토가 구치소에서 디모네 닉스에게 마지막에 수수께끼처럼 흘렸던 말이 그 시작이었다.

그 후, 아이트라는 차단했던 정보를 풀었다.

기실 디모네 닉스가 접할 수 있는 모든 정보가 구치소로 흘러가는 것을 막은 것부터가 아이트라의 작품이었다.

물론 모든 정보를 고스란히 푼 건 아니었다.

아이트라는 정보가 풀리는 순서를 손수 정했다. 전남편을 위한 마지막 배려였다.

디모네 닉스가 먼저 접한 정보는 현재 진행 중인 군 관련 재판의 진행 과정이었다.

풀루스 전 해군 소장이 중형을 받았는데, 그의 범죄에 디모네 닉스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프세드 렐리 전 왕실 기사가 2심에서 받은 사형 선고가 확정되었다. 간첩, 해적과 내통했단 혐의가 확정되었는데, 여기에도 디모네 닉스는 없었다.

신성청 고위 성직자들의 마약 유통 혐의로 뜨거운 와중에도 디모네 닉스는 없었다.

어디에도 디모네 닉스와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

기껏해야 현재 그의 재판이 증거 재분석으로 중지되었다는, 그리고 횡령 혐의에 관한 예상 분석이 전부였다.

“…….”

쏟아지는 정보를 허겁지겁 주워 먹던 디모네 닉스는 믿을 수 없단 듯이 두 손으로 제 머리를 헤집었다.

“내가, 내가 얼마나…!”

울긋불긋 달아오르는 얼굴색 위로, 관자놀이 핏줄이 손가락처럼 튀어나왔다. 흥분할 때마다 팔딱거리는 핏줄은 얼핏 검보라색처럼 어두웠다.

“윽…!”

디모네 닉스는 저의 업적이 어디에도 없단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이럴 리가 없다고 숨 쉬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외쳐 댔다.

“내가 세상을 쥐락펴락했어! 모든 것들이 내 손아귀에서 놀아났단 말이다! 내가 그 모든 것을…!”

하지만 그의 절규에 답하는 이는 없었다.

고작 1평 남짓한 독방에서 메아리치는 제 목소리만이 그가 들을 수 있는 전부였다.

절망하는 디모네 닉스에게 닿은 두 번째 정보는 성왕 스켈레로 3세의 죽음이었다.

[스켈레로 3세, 서거]

[각국 정상들의 진심 어린 애도가 쏟아져]

[성왕 스켈레로 3세 예하의 위대한 업적]

신도들의 애도 속에서, 화려하고 성대한 장례식이 진행되었다는 조작된 정보는 디모네 닉스의 관자놀이 핏줄을 끝내 터트렸다.

검붉은 피가 귀와 코에서 흘러나왔지만, 디모네 닉스는 그걸 닦을 겨를도 없었다.

핏줄이 터져 붉어진 눈은 분노로 부글부글 흔들거렸다.

“그놈이! 그 늙은 버러지 새끼가!”

능력과 실력도 없는 주제에, 욕심만 많았던 늙은 벌레 따위가 이딴 식으로 추앙받다니!

디모네 닉스는 이제 피를 토하는 심정이었다.

실제로도 피를 토했지만, 조금씩 이성을 잃어 가는 그는 그걸 눈치챌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보는, 아이트라가 정말 심혈을 기울여 고른 엿이었다.

“…….”

피에타 가문의 후계자가 생존한 것으로도 모자라, 아들라보르에 망명을 신청했다는 소식.

현재 이에 대한 자세한 소식은 왕실을 비롯해 아드벨로와 오케아누스가 친히 정보 접근 제한을 걸어 둔 상태였다.

하지만 아이트라는 당사자인 노아에게 허락을 구해, 다른 누구도 아닌 디모네 닉스에게만 유일하게 모든 정보를 제공했다.

“모든 것이 끝나니까 알 것 같습니다. 디모네 닉스가 왜 보르고 피에타를 건드려 제 가문을 멸문시켰는지.”

피에타가 존재하는 한, 이 전쟁은 디모네 닉스의 뜻대로 진행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에게 피에타의 멸문은 가장 뿌듯한 성과 중 하나일 것이다.

한데 피에타가 살아 있다면.

[피에타의 마지막 후계자, 아들라보르에 망명 신청]

[천년 가문의 명예로움]

[남부 샤프 영지에서 올라온 익명의 정보 제공자에 따르면, 피에타의 후계자는 올 6월 초에 레토 오케아누스 해군 중장과 이미 결혼까지 마친…]

제 손으로 완전히 끝냈다 믿었던 가문의 후계자가, 죽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제 사생아와 결혼했다면.

자신이 계획한 모든 것이 실패했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끝내 남은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단 사실을 깨닫는다면.

“…정말 아쉽구나.”

계획을 마무리한 아이트라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그 괴물의 마지막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

아이트라는 그렇게 복수를 마쳤다.

그녀는 제 분수도 모르고 세상을 휘어잡으려던 버러지에게 기꺼이 본래의 저급한 수준과 신분을 기꺼이 상기시켜 줬다.

“으으, 으…!”

뚜둑.

뚝, 뚜두둑.

좁은 독방 너머에서 관절이 꺾이는 듯한 기괴한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지만, 누구도 이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아, 으윽, 끄억…!”

그리고 이내 끊어진 단말마.

유달리 역겨운 피비린내가 굳게 닫힌 문에 난 네모난 창 사이로 새어 나왔다.

죽은 디모네 닉스는 그날 저녁, 식사를 배식하러 온 구치소 직원에게 발견되었다.

사인은 과다출혈이었고, 자살 이유는 중단된 재판이 다시 진행되는 것이 무서웠기 때문이라고.

디모네 닉스는 죗값을 피하고자 죽음으로 도망친 비겁한 범죄자로 낙인찍혔다.

디모네 닉스의 죽음은 신문 구석에 딱 한 줄로만 알려졌다.

그렇게 끝이 났다.

모든 악이 그러하듯, 허망하고 보잘것없는 마무리였다.

***

신문 구석에 어느 범죄자의 자살 소식이 짤막하게 한 줄 실렸지만, 그자가 저지른 범죄 조사는 계속 진행되었다.

본래라면 피고인의 사망과 함께 공소권이 없어지면서 모든 조사가 중지되어야 했다.

하지만 죽은 피의자의 범죄 혐의 중에 ‘내란죄’가 있었기 때문에, 예외 사항이 적용되어 조사는 이어졌다.

“그래도 참….”

통통통통.

칼과 도마가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솔직히 후련한 결말은 아니에요.”

이틀 전에 샤프 영지로 돌아온 아스가 레몬을 얇고 둥글게 썰며 투덜거렸다. 그녀가 있는 식탁에는 상큼한 레몬 냄새가 가득했다.

“지은 죄에 비해 너무 쉽게 갔잖아요.”

“그게 인생이란 거야.”

바로 옆, 의자 위에 올라선 클라레가 레몬 조각들을 하얀 설탕에 버무리며 말했다.

“세상은 불공평하거든. 할머니가 그랬는데, 착하고 나쁜 것을 가르는 기준은 규칙을 따르고 안 따르고래.”

규칙을 따르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고 제 욕심을 꾹 참을 수 있지만, 규칙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만 생각하니까 주변에 피해를 끼친다고.

“그러게나 말이에요. 나쁜 사람들은 벌을 더 받아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식칼토끼는 정말 살벌하게 복수하는 편이야. 그래서 내가 식칼토끼를 좋아해.”

“정의로운 식칼토끼는 아주 잔혹하죠. 봐주는 게 없어요.”

“할머니가 그랬는데, 그런 걸 필요악이라고 한대.”

“하지만 필요악만 있으면 세상은 어지러울 거예요.”

“도대체 둘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 거야.”

설탕에 절인 레몬을 병에 담던 노아가 기어코 끼어들었다.

“에잉, 언니는 질투하나 봐.”

클라레가 손에 묻은 설탕 뭉치를 혀로 날름날름 핥으며 놀렸다.

상큼한 레몬즙이 스며들어 뭉쳐진 설탕은 생각보다 아주 맛있었고, 클라레는 본격적으로 손 핥기에 몰두했다.

“앗, 이 녀석!”

노아가 클라레를 붙잡아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자고 말했지만, 클라레는 더 먹을 거라며 후다닥 도망가 버렸다.

“…애한테 그런 이야기 하지 마.”

클라레가 완전히 가 버린 뒤에야, 노아가 아스에게 부탁했다.

“어머, 제가 무슨 말을 했다고?”

마지막 레몬까지 썬 아스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저랑 아가씨는 이번에 새로 나온 만화 이야기를 한 거예요. 거기에선 주인공이 나쁜 악당들을 직접 죽이는 대신 경찰들에게 넘기거든요.”

“레토가 드디어 올바른 만화가 나왔다고 좋아하겠네.”

“근데 속 시원한 복수는 아니라, 조금 아쉬운 느낌은 있네요.”

“그건 클라레가 정답을 말했었네.”

노아가 피식 웃으며 레몬청을 가득 담은 유리병 뚜껑을 닫았다.

“세상은 불공평하고, 상식 있는 인간은 규칙을 지켜야 하지.”

“억울하지 않아요?”

무엇이 억울한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들었다.

“글쎄….”

노아는 초연한 표정을 지었다. 부드럽게 올라간 입꼬리는 그녀가 받은 상처가 얼마나 큰지 짐작하게 했다.

“어떤 벌을 받아도, 다 상관없어.”

제 상처가 치유되는 일은 없고, 죽은 부모님과 사람들이 돌아오는 일도 없다.

“그저 벌을 받았구나. 아아, 그래도 나는 내 손으로 복수를 이루었구나. 그 사실 하나를 위안 삼아 살아가는 거지, 뭐.”

“그런 건가요….”

“넌 아냐?”

노아의 물음에 아스는 쉬이 답하지 못했다. 사실, 그녀는 지금 제 마음이 어떤지 영 갈피를 잡지 못했다.

친부모님을 만나고, 아티와 대화를 나눈 뒤로 더더욱 혼란스러웠다.

“친부모님은 정말 좋은 분이에요. 만약 제가 유괴되지 않고 그분과 계속 살았다면, 평탄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겠죠.”

하지만 그 삶을 빼앗겨서 슬프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전 지금이 꽤 마음에 들거든요.”

물론 절 유괴하고 친부모님께 큰 상처를 준 놈들까지 용서한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아스는 제 나름대로 복수에 가담했고, 결국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썩 나쁘게 느껴지진 않았다.

이렇게 행복한데, 굳이 내 과거가 불쌍하다고 단정 지을 필요가 있을까.

“…어른이네.”

노아의 짧은 감탄에 아스가 싱긋 웃었다.

“나중에 부모님 초대해서 여기로 모셔 와. 내 언니의 친부모님이라는데, 가만히 있을 순 없지.”

“그렇지 않아도 겨울에 한번 오시라고 말씀드렸어요.”

레몬청 만들기를 마무리한 둘은 뒷정리를 이어 갔다.

“그런 데 오빠는 만났어?”

“아티요? 뭐….”

말끝을 얼버무린 아스가 눈길을 슬쩍 피했다. 별 뜻 없이 물었던 노아가 도리어 놀랄 정도였다.

“너 지금, 아티를 아티라고 불렀어?”

“아니 그러면 그 사람 이름이 아티인데 아티라고 부르지, 뭐라고 불러요?”

“보통 그 새끼나 도련님이라고 불렀잖아.”

“…아.”

뒤늦게 제 실수를 깨달은 아스가 대화를 얼버무리듯이 애먼 헛기침을 했다.

하나 그런다고 노아의 수상쩍은 시선까진 피할 수 없었다.

“…아니이이.”

괜히 찔린 아스는 아무도 묻지 않은 변명을 늘어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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