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급장 떼고 결혼합니다-236화 (236/245)

236.

가로등만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는 텅 빈 도로 위를, 새까만 고급 마동력차 한 대가 빠르게 달렸다.

남부에서는 오케아누스 중장의 붉은 애마로 유명한 마동력차와 같은 모델이었다.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운 외형의 차체는 지붕을 개폐할 수 있었다.

아미는 활짝 열린 지붕 위로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두 팔을 날개처럼 펼쳤다.

잔뜩 상기된 얼굴은 그토록 고대하던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행복해 보였다.

서늘한 밤공기에 달리는 차 속도까지 더해지니, 피부에 닿는 한기가 제법 매서웠음에도 아미는 그저 웃었다.

“다들 듣고 있냐!”

아미는 고래고래 소리쳤다.

“내가 성왕을 죽였다고! 드디어 그 X 같은 변태 새끼를 죽였다고!”

“아 좀!”

운전하던 셀린이 버럭 소리쳤다.

“춥다고, X발!”

결국 셀린은 마동력차를 멈춰 세웠다.

“왁!”

그대로 몸이 쏠린 아미는 두 팔을 공중에 허우적대다가 가까스로 자리에 앉았다. 놀라서 동그래진 눈이 빠르게 깜빡거렸다.

그 틈에 셀린이 욕지거리를 뱉으며 지붕을 닫았다.

“그리 좋으면 혼자 도로 위를 달려!”

“잉, 왜 그래애앵.”

“…….”

“…미안.”

어깨를 살살 흔들며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아미가 순순히 사과했다.

그제야 셀린은 아미의 살가죽을 뜯어 버릴 정도로 살벌하게 번뜩이던 시선을 거두었다.

멈췄던 마동력차는 다시 움직였다.

“…그나저나 정말 조용하네.”

셀린은 전조등으로도 다 비치지 않는 어두컴컴한 도로를 보며 질린단 표정을 지었다.

“이거, 언제까지 이러냐?”

“4시간은 더 달려야 해.”

“중간에 자지 마라. 2시간 뒤에 네가 운전대 잡아.”

“걱정 마! 지금 같으면 1시간 만에 기차역까지 도착할 수 있어!”

이들이 조금 전에 출발했던 상투아 영지는 특수 구역이었다.

신성청에서 기거하는 성직자들과 그들을 돕는 관련 업계 종사자들만 모인 탓에 상당히 폐쇄적인 곳이다.

그래서 타 영지와 연결된 도로에는 그 흔한 휴게소나 가로등, 졸음운전을 예방하는 쉼터 같은 건 하나도 없었다.

성왕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이었다.

실상은 구역 통제에 가까웠지만.

“아, 어쨌건 너무 좋다!”

아미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다시 보니 상투아도 꽤 정겹고 소박하네.”

“컴컴해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만?”

“그게 꼭 신성청의 미래 같아서 더 아름답지 않냐?”

“아주 신났네.”

셀린이 피식거렸다.

***

이틀 전.

아미와 셀린, 두 사람은 영사에 복귀하자마자 다시 임무를 하러 비밀리에 외출했다.

아드벨로 대장이 내렸던 이동 제한 명에서 그 둘은 제외였다.

“검찰이 성왕을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했는데, 성왕이 응했다고 하는군.”

“예전에 중위 그대가 했던 말이 떠오르더라고. 그 변태 새끼가 그래도 꼴에 성왕이라고, 성력으로 저주를 억눌렀다고.”

샤프 영지에서 돌아오는 배 안에서, 레토는 성왕이 참고인 소환에 응했다는 사실을 아미에게 전했다.

그리고 아미는 복귀하자마자 아드벨로 대장에게 말했다.

“성력을 빼앗으려는 겁니다.”

“누구한테서?”

“어릴수록 품고 있는 성력이 깨끗하고 맑습니다.”

“여전히 개X끼네.”

아미와 셀린은 곧장 급행열차를 타고 서부 상투아 영지로 잠입했다.

하루를 꼬박 달려 잠입한 신성청은 아미의 기억 속 모습 그대로였다.

변함없이 추악하고 더러웠다.

마지막까지 신성청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 사특한 것들은 성력을 지닌 아이들을 재료로 써서 성왕에게 기력을 불어 넣으려고 했다.

얼핏 모여 있는 아이들 수만 스물이 넘었다. 모두 약으로 재웠는지, 쓰러진 채로 숨만 미약하게 쉬고 있었다.

아미와 셀린은 곧장 현장을 제압했다.

제압은 빠르게 끝났다. 애초에 아들라보르에서 방대한 마력을 지닌 것으로 유명한 성녀와 왕녀였다.

심지어 해군에서 가장 힘든 부대 중 하나인 특함 소속이다.

타락한 성기사와 성직자들 따윈, 애들 장난 수준이었다.

“드디어!”

그리고 아미는 어느 때보다 흥분한 상태였다.

“내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7년 만에 돌아온 성녀는 한때 저의 신랑이 될 뻔했던 성왕의 새하얀 백발을 한 손 가득 움켜쥐었다.

결 좋은 백발은 손이 닿기 무섭게 푸석푸석 말라 갔다.

성력이 가득한 아미의 앞에서, 비열한 방식으로 생을 연명하는 성왕의 추악함이 드러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머리칼을 쥐고 성왕을 바닥에 질질 끌고 갈 때마다, 성왕은 괴로움에 발버둥 쳤다. 채신머리없이 비명도 질렀다.

성왕이 질질 끌려간 길엔 새하얀 머리칼이 이정표처럼 남았다.

“131살? 오래도 살았다, 그치?”

“이제 그만 가실 때도 됐지.”

“하지만 그곳이 위대한 어머님의 곁은 아니야, 알지?”

“당연하지.”

조그만 리볼버 실린더에 탄환을 넣던 셀린이 싱긋 웃었다.

“나도 그 새끼한테 맺힌 게 좀 있지….”

철컥.

방아쇠를 당긴 셀린이 총구를 성왕에게 조준했다.

“날 제국에 팔아넘기려고 했지?”

그녀는 곧 죽을 놈이 곧 죽을 것처럼 겁에 질리면 어떤 표정을 짓는지 처음 알았다. 아주 불쾌하지만, 제법 재밌는 구경거리였다.

“지옥 가거든, 아버님과 함께 평생 고통받으시길.”

셀린은 일단 가볍게 두 발을 쐈다. 탕! 탕! 총알은 성왕의 발목을 정확히 맞췄다.

근데 생각해 보니 두 발은 너무 정 없는 것 같아, 인심 후하게 넣은 한 발을 더 쏴 팔에 맞췄다.

성왕은 고통에 겨워 비명을 질러댔지만, 죽진 않았다. 아미가 피가 철철 흐르는 그의 상처를 성력으로 치유해 줬기 때문이다.

“성왕 예하.”

아미는 그의 귓가에 달콤하게 속삭였다.

식은땀을 질질 흘리며 괴로운 표정을 짓는 괴물이 그녀의 어둑한 눈동자에 선명히 비쳤다. 아미의 눈이 둥글게 휘었다.

“이제, 목에 손을 얹어야지.”

네 목을 네가 조를 시간이야.

그 말을 끝으로 아미는 셀린이 있는 곳까지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악! 아아악!”

성왕의 고운 얼굴이 기형적으로 비틀리기 시작했다.

“아, 아악, 어, 으어어….”

희고 곱던 피부는 수분이 빠진 것처럼 쭈글쭈글 줄어들더니, 검버섯과 기미 같은 것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으, 으우우…!”

비명을 내지르던 입에선 점점 숨이 막혀 괴로움에 버둥거리는 탁한 신음이 들렸다.

성왕의 팔다리는 실이 엉킨 꼭두각시 인형처럼 뒤틀렸다. 관절이 없는 부위가 뒤로 꺾이고, 다시 또 앞으로 넘어가고.

마치 어린 악마들이 부수며 가지고 노는 장난감처럼 망가져 갔다. 인간의 의지로는 절대 될 수 없는 모습이었다.

피부는 시커먼 보라색으로 변해 갔고, 그 위로 피어났던 검버섯과 기미는 점점 부풀더니 툭툭 터지면서 걸쭉한 피고름을 흘렀다.

그리고 마지막은.

“……!”

비틀린 제 손으로, 성왕이 제 목을 졸랐다.

제 숨통을 스스로 죄는 두 팔과, 숨을 쉬고 싶어 헐떡이는 가슴이 흉측하게 대비되었다.

아미와 셀린은 그 모습을 마지막까지 지켜봤다.

“…….”

“…….”

그리고.

비로소 마침내.

“…….”

성왕이 오랜 괴로움 끝에 지옥으로 떨어졌을 때.

찰칵.

한때 만인의 추앙을 받았던 성왕의 마지막은, 아미의 사진기 속 필름에만 덩그러니 새겨졌다.

“있느냐.”

셀린의 부름에, 기척을 숨기고 있던 자들이 소리 없이 모습을 나타냈다.

까만 복면과 복장으로 무장한 이들은 국왕이 보낸 전직 테네브레 대원들이었다.

그들은 7년 만에 존재를 드러낸 왕녀 저하와 성녀 예하께 한쪽 무릎을 꿇어 경외심을 표했다.

“피해자들을 구출하고, 상황을 정리하거라.”

아미와 셀린은 뒷일을 맡기고 자리를 떠났다.

***

“음, 그런데 넌 괜찮아?”

흥분이 조금 가셨는지, 아미가 한결 차분해진 표정으로 셀린에게 물었다.

“나? 나 뭐 괜찮으면 안 되는 상황인가?”

셀린은 별 이상한 소리를 다 한다는 듯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하지만 아미는 진심으로 셀린이 이해되지 않는단 표정이었다.

“노아까지 포함해서, 우린 좀 비슷한 구석이 있잖아.”

“하고픈 말이 뭔데?”

“난 성왕을 죽였고, 노아는 가문의 배신자를 죽였어.”

셋 다 성격은 판이해도, 당한 일을 몇십 배로 되갚아 주는 복수심만큼은 일란성 쌍둥이보다 더 판박이였다.

“근데 넌 복수할 대상이 없잖아.”

성왕은 아미의 몫이었고, 피에타의 배신자는 노아의 사냥감.

“남은 거라곤 구치소에 있는 디모네 닉스인데….”

“그거는 중장님 몫 아닌가?”

“…너 알았어?”

“모를 리가 있겠어?”

셀린이 코웃음을 쳤다. 저도 제 신원을 담보로 한 비밀 협약서를 찾기 위해 이것저것 조사하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런데 너 좀 웃기다?”

셀린은 아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네 말마따나 우린 그런 못된 것만 쏙 빼닮았지. 당한 건 절대 잊지 않고,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라도 반드시 복수하고 말아.”

“근데 넌 못 했고.”

“왜 못 했다고 생각해?”

“…….”

아미는 입을 살짝 벌린 채로 표정을 굳혔다.

셀린은 그런 아미를 잠깐 힐끔거리곤 다시 도로에 시선을 고정했다.

어둡고 컴컴한 도로를 비추는 건 달리는 여전히 차에 달린 전조등뿐이었다.

“난 너희랑 달라.”

질질 끄는 성미 따윈 없었다.

“…선왕은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했어.”

“대외적으론 말이야.”

“하지만 실상은 자살이라고 아드벨로 대장님이….”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

셀린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황금빛 눈동자가 그날을 되풀이하며 즐거운 이채를 띠었다.

“자살했지, 선왕은.”

7년 전 역공전이 끝나고, 전쟁백서를 편찬하며 진상을 파악하려는 중. 선왕은 식사 중에 사망했다.

공식적인 사인은 심장마비.

한때 이에 대해서 왕태자가 왕위에 오르기 위해 그를 독살한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도 돌았다.

“오라버니는 아버님의 큰 뜻을 몰라요. 이번 전쟁으로 아버님은 아들라보르를 단결시켰고, 세상에 우리의 힘을 보여 줬어요.”

“셀레나, 넌 이 아비의 뜻을 이해하는구나….”

“물론이죠. 저 하나로 아들라보르와 시스토가 하나 될 수 있는데, 숭고한 희생이잖아요.”

“그래! 그러면 모두가 네게 감사할 것이고, 나는 위대한 군주로서….”

그래서 셀레나 공주는 선왕을 도왔을 뿐이다.

겁에 질린 선왕의 건강을 염려하여, 아드벨로 마탑주가 직접 만든 고급 마법약을 선물했다.

“활력을 증진시키는 약이래요. 최근 건강이 염려되어서….”

꼴에 또 그런 건 챙기고 싶었는지, 선왕은 제 딸이 준 고급 마법약을 그 자리에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 세상에 만능인 약은 없어.”

셀린이 그날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거 알아? 성왕이 수명을 늘리기 위해 마탑에 주문한 마법약은 특정 질환을 지닌 환자에겐 독약이야.”

“…….”

“난 그것도 모르고….”

운전대를 가볍게 돌리는 셀린은 전혀 안타깝지 않단 표정으로, 무척 안타깝단 목소리를 흘렸다.

“…그러니 자살 아니겠어?”

엄밀히 따지자면.

“내가 죽인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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