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급장 떼고 결혼합니다-232화 (232/245)

232.

“…….”

클라레는 파란 눈동자를 동그랗게 떴다.

교문 앞에 언니가 있었다.

저랑 똑같은 금발을 하나로 질끈 올려 묶고, 절 향해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는 언니가 제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노아 언니다!”

함께 있던 리리가 먼저 말했다.

“클라레, 네 언니랑 형부 아저씨야!”

“어, 그러면 우리 아빠는?”

우리 아빠도 왔어?

센샤가 서둘러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곤 환하게 웃으며 교문으로 달려갔다.

“아빠! 아빠아아!”

때마침 아이를 마중하러 나온 아이스 중령이 노아와 레토를 발견하곤 어째 다들 생각하는 게 이리 똑같으냐며 머쓱하게 웃고 있었다.

“센샤!”

군에서 보여 주던 위엄은 온데간데없이, 아이스 중령은 환한 미소로 막내딸을 품에 번쩍 안아 들었다.

“형님! 정말 형님이에요?”

어느새 달려온 카리나도 레토의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진짜 형님이냐고 몇 번이고 되물었다.

“그럼, 진짜 네 형이지.”

그래서 레토는 먼저 카리나를 껴안으며 멋들어진 웃음을 지어 보였다. 카리나가 얼굴을 붉히더니 이내 화사하게 따라 웃었다.

반면.

“클라레.”

노아는 아직도 요지부동인 클라레를 한 번 더 불렀다.

혼자 우두커니 운동장에 서 있는 클라레는 약간 멍한 표정으로 노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인상을 살짝 찌푸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따라 삐뚜름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노아가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언니 왔는데, 인사 안 해 줘?”

“…….”

“설마 삐쳤어? 열 밤 안에 안 왔….”

살짝 심술궂은 소리를 하려던 노아는 이내 당황했다.

“…….”

인상을 와락 쓴 클라레의 파란 눈동자가 일렁일렁 흔들리더니, 이내 큼지막한 물방울을 뚝뚝 떨어트리기 시작했다.

“이에에엥….”

그러고는 울음을 터트리며 손을 뻗었다.

“언니, 언니이이….”

울먹이며 저를 부르는 소리에 잠시 넋이 나갔던 노아가 서둘러 우는 동생을 끌어안았다. 품에 안긴 클라레는 흐느끼는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노아는 제 어깨와 등을 꽉 붙든 채 엉엉 우는 클라레를 품에 감췄다.

하교하는 다른 학생들이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면서 힐끔거렸기 때문이다.

샤프 영지를 수호하는 비밀 조직의 대장 체면이 있지, 우는 모습을 함부로 보여 줄 수 없었다.

그래서 레토가 근처에 주차해 둔 붉은 애마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차 문이 덜컥 닫히는 소리에 안심했는지, 그제야 클라레가 노아를 찾았다.

“언니! 으어어엉!”

“왜 울어, 언니 속상하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클라레의 젖은 얼굴을 손바닥으로 닦았지만, 노아도 울상을 짓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결국 노아는 또 눈물을 흘렸다. 기껏 아미에게 성력으로 붉게 짓물렀던 눈가를 치료받은 게 헛수고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클라레가 절 끌어안고 이렇게 우는데, 어떻게 태연할 수 있을까. 노아는 절대 그럴 수 없었다.

게다가 하필 또 우는 모습이, 저 사관학교 간다니까 떨어지기 싫다고 보였던 울음이랑 닮아서 더욱 가슴이 미어졌다.

“언니가 미안해….”

노아는 우는 클라레의 등을 도닥이며 사과했다.

“너무 늦게 왔지? 우리 클라레 속상했어?”

“으엉, 어어엉!”

“응? 뭐라고?”

“으아아앙! 아앙! 으어엉!”

무어라 말은 하는 거 같은데, 눈물에 삼켜지고 짓뭉개져서 제대로 된 발음이 아니었다.

결국 노아는 되묻는 걸 포기하고 그냥 그래그래, 하고 대충 다독이기만 했다.

“언니….”

울음을 겨우 그친 클라레가 딸꾹질하며 히끅거렸다. ‘언니’보다는 ‘응니’라고 들리는 것이 이 와중에 귀여웠다.

“미안해….”

하지만 제게 미안하다고 웅얼거리는 클라레의 사과를 듣자마자, 노아는 표정을 심각하게 굳혔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언니, 흑, 내가, 너, 너무 어려서….”

“…….”

“어려서, 도움이 안 됐어….”

“무슨 소리야! 네가 왜 도움이 안 돼!”

“그치만, 언니 혼자….”

클라레는 자신이 열심히 고민했던 것을 노아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자신이 어리니까 언니가 혼자서 제국에 간 거라고.

“내가 아직 법률상 제한능력자라서, 행위능력이 제한받잖아….”

“…상당히 고급스러운 지식이네.”

“오빠가 가르쳐 줬어….”

근데 무슨 뜻이야?

뜻도 모르고 외운 클라레가 뒤늦게 훌쩍였다.

“클라레.”

노아는 일단 클라레의 잘못된 생각부터 부정했다.

애한테 웬 이상한 법률 지식을 가르친 아티는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나중에 만나면 그때 족치면 그만이었다.

“이거 기억나?”

노아는 주머니에 있던 하얀 털뭉치 고리를 꺼냈다.

“내 털뭉치!”

클라레는 금방 알아봤다.

“내가 언니 준 거!”

“언니가 이거 때문에 제국에서 안 다치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어.”

“진짜?”

클라레가 안 믿긴다는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기다란 속눈썹이 눈물로 촉촉하게 젖은 와중에 또 저런 표정을 지으니, 노아는 그만 웃음이 터질 뻔했다.

“내가 애라고 거짓말하는 거 아냐? 난 그런 동정은 필요 없어! 항상 냉정한 평가를 필요로 한다고.”

“하지만 정말인걸?”

노아는 클라레의 젖은 눈가에 입술을 쪽 맞추며 말했다. 클라레는 괜히 뽀뽀 당한 눈가를 손으로 살짝 만졌다.

그러면서도 노아의 말이 진짜인지 의심 간다는 눈으로 노려보는 건 멈추지 않았다.

“네가 준 이 털뭉치로 제국에 있는 못된 사람들을 혼내 줬어. 그래서 나랑 레토가 얼마나 큰 도움을 받았다고.”

이 털뭉치 하나로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지켜냈다고 강하게 말했다.

그제야 클라레는 정말인가,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언니를 도와준 거야.”

노아가 클라레의 손에 털뭉치를 쥐여 주며 말했다.

“역시 내 동생이야. 너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니까!”

“…뭐, 내가 좀!”

내가 좀 대단하지!

그제야 클라레가 씩 웃으며 털뭉치를 든 손을 쭉 내밀었다.

“그러니까 내가 뭐랬어! 나도 같이 갈 수 있다고 했잖아.”

“아, 그건 아니야.”

“왜애? 나 도움이 되었잖아!”

“거기는 식사가 맛이 없고, 만날 계속 걸었어. 쉬지도 못하고.”

심지어 이불도 없이 맨땅에서 잤다는 말에 클라레가 깜짝 놀라더니 이내 인상을 퍽 심각하게 찌푸렸다.

“…그건 좀 싫은데?”

“안 가길 다행이지?”

“그래도 언니가 있으니까….”

울음이 싹 가셨는지, 클라레는 맹맹해진 코를 크게 훌쩍거렸다.

그러고는 노아를 힐끔 바라봤다.

“언니.”

그리고 조심히 물었다.

“우리 낳아 준 부모님, 같이 왔어?”

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클라레는 한 번 더 노아의 눈치를 살피고는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있잖아….”

“응.”

“낳아 준 부모님도, 싫어하지는 않아.”

“알아.”

“나쁜 말 했는데, 나 안 미워할까?”

사과하고 싶다는 여동생의 이마에, 노아는 부모님의 진심을 대신 전하듯 입술을 쪽 맞췄다.

눈물이 또르르 한 방울 흘러 내린 것은 턱 밑에 맺혀 떨어지기 전에 서둘러 손으로 훔쳤다.

“그분들은 널 아주 많이 사랑해.”

어느 정도 진정한 두 자매가 차에서 내리자, 아이들이 쪼르르 몰려왔다.

“클라레 울었어?”

“왜 울었어? 아파?”

친구들의 걱정을 받은 클라레는 별일 아니었다면서 살짝 붉어진 얼굴로 씩씩하게 대답했다.

“여자는 가끔 이렇게 이유도 없이 울고 싶을 때가 있어!”

“…뭐 잘못해서 혼난 게 아니고?”

한마디 툭 던져 놀린 보르는 냉큼 운동장으로 도망쳤다. 클라레가 도끼눈을 뜨고 잡히면 가만 안 둔다며 쫓아갔기 때문이다.

“노아….”

“누나.”

레토가 부르려는 찰나, 세레니도 동시에 노아를 불렀다.

“신사분 먼저.”

레토는 기꺼이 순서를 넘겨줬다.

“누나, 이거요.”

세레니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노아에게 내밀었다.

“쓰세요.”

“세상에, 세레니….”

“…….”

감동한 노아와 달리, 레토는 순서를 빼앗겨서 조금 당혹스러웠다.

요 눈치 빠른 도련님이 왜 노아와 아스는 물론이고 동네 아주머니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살짝 위기의식도 느꼈다.

“안타깝지만.”

레토는 냉큼 손수건을 빼앗아 세레니에게 돌려줬다.

“노아에게 줄 손수건은 항상 내가 챙기고 있단다.”

네가 언제?

딱히 손수건을 받은 기억이 없던 노아가 가느스름하게 뜬 시선으로 레토를 노려봤다.

뒤통수가 아주 아프고 따가웠지만, 레토는 애써 미소 지은 채로 세레니에게 운동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신사분의 손수건은 저기 운동장에서 친구를 족치, 아니, 타이르는 씩씩한 여성분의 것이 아닐까?”

“클라레 손수건은 따로 챙기고 있어요.”

세레니가 다른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노아에게 건넸던 민무늬와 달리 토끼 그림이 아기자기하게 그려진 것이었다.

“클라레는 나중에 따로 줄 거예요. 클라레는 우는 걸 많이 부끄러워해서, 대놓고 주면 안 좋아하거든요.”

“우리 세레니는 왜 10년이나 늦게 태어난 걸까?”

17살만 되었어도 내가 한번 참고 기다렸을 텐데! 노아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감동했다.

“…7년 전에 태어나 줘서 정말 고맙다.”

반면 레토는 저보다 한참 어린 세레니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만약 눈앞에 있는 소년과 노아를 두고 경쟁했다면, 자신은 패배했을지도 모른다.

상상만으로도 오싹했다.

“…….”

“…….”

그런 레토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리리와 센샤가 조그만 머리를 맞대고 소곤거렸다.

“노아 언니, 결혼 잘한 거 맞을까?”

“얼마 안 있어서 이혼하겠는데?”

“너희 고모처럼 되는 거 아냐?”

“그러고 보니까, 이번에 울 고모가 괜찮은 남자 만났다고 또….”

조숙한 꼬마 아가씨들의 대화 주제는 오늘도 통통 튀었고.

“뭐라고? 그게 또 남자를 만난다고?”

저 없는 동안 그새 또 여섯 번째 남자를 만났다는 여동생 소식에 아이스 중령은 두 눈이 튀어나오기 직전이었다.

“우, 우리 형님은 엄청 근사하고 예의 바르셔!”

카리나가 냅다 끼어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예의 바른 신사야. 울 할아버지도 그랬는걸. 형님만 한 남자는 세상에 별로 없댔어.”

그렇죠, 형님!

카리나의 순진무구한 믿음이 레토를 향했다.

“형님도 형수님 전용 손수건 있죠?”

“…….”

“…없어요?”

그리고 아이는 처음으로 레토에게 살짝 실망했다는 기색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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