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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장 떼고 결혼합니다-231화 (231/245)

231.

사람이 너무 많이 울면 눈가가 새빨갛게 짓무르다 못해 따가워서 만지는 것도 아프다는 것을, 노아는 오늘 확실하게 배웠다.

그렇게 엉엉 울던 노아는 절 찾으러 온 레토에게 안긴 채로 의무실로 복귀했다. 그리고 거기서도 한참을 울었다.

레토는 울지 말라고 달래는 대신, 제 허벅지 위에 노아를 앉히고 가슴께로 몸을 끌어안아 등을 도닥였다.

레토는 그간 참았던 거 다 토해 내라며, 되레 등을 도닥이며 울음을 재촉했다.

갈아입은 옷이 다 젖어도 불편한 내색은커녕 제 소매로 노아의 눈물과 콧물까지 닦았다.

그래서 노아는 어린아이처럼 목놓아 울었다. 마치 제 어린 여동생이 슬플 때 꺼이꺼이 우는 것처럼.

“알고 보니 울보였네.”

이렇게 눈물이 많았으면서 어떻게 참고 살았을까.

레토는 자신들이 앉은 침대 위에 있던 이불보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훌쩍이는 노아를 갓난쟁이 포대기 싸매듯 꼼꼼히 덮어 줬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노아가 빨개진 얼굴을 킁킁 찡그렸다.

“다 울었어?”

눈물로 흠뻑 젖은 노아의 얼굴 여기저기에 입술을 쪽쪽 맞추면서, 레토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모르겠어.”

노아가 짓무른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따끔한 통증에 저도 모르게 손이 올라가는 것을, 레토가 잡아 내렸다.

대신 그가 입술 근처에 제 입술을 살짝 내렸다. 쪽 소리도 나지 않을 정도로 보드라운 입맞춤이었다.

“나중에 뭐 좀 발라야겠다. 빨갛게 부었네.”

“응….”

살면서 이렇게 울어 본 것도 처음이라서, 노아는 놀란 강아지처럼 딸꾹질을 연신 해 댔다.

그리고 히끅, 하고 어깨를 달싹이며 코를 훔칠 때마다.

“춥진 않고? 물 좀 마실래?”

“응….”

“그거 말고 이거 마셔. 그새 식었다.”

“응….”

레토는 이것저것 못 챙겨서 안달이었다.

“너 열 오른다.”

커다란 손이 노아의 이마 위에 얹어졌다. 서늘한 감촉에 노아는 저도 모르게 몸을 살짝 떨었다.

진이 빠지도록 울다 기절했는데, 일어나자마자 또 울어 버린 노아는 미열이 살짝 오른 상태였다.

“뭐 좀 먹자. 그래야 약 먹지.”

“이렇게, 울어 본 건 처음이라서 그래….”

“너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어?”

“잘 몰라. 머리가 멍해.”

“이런.”

레토는 씁쓸하게 웃어 버렸다.

요 짧은 시일 동안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노아가 멀쩡한 게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간 참았던 것을 전부 터트렸으니 몸도 놀라고, 마음도 놀라서 본인 스스로 뭘 어쩌지 못하고는 중이었다.

“치티아 중위 말로는 치유마법이나 성력으로 치료받는 것보다는 시간을 두고 저절로 낫게 두는 편이 좋다는데.”

레토도 사실 같은 의견이었다.

노아는 이제 성급할 필요가 없었다. 대신에 시간을 찬찬히 두고 마음을 여유롭게 가라앉힐 연습이 필요했다.

“…….”

그러나 노아는 잠시 고민하곤 치유마법을 받겠다고 말했다.

“클라레한테 가야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라고 말하려던 레토가 아, 하고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노아는 클라레를 떠올리자마자 조금 정신을 차린 듯 보였다. 레토는 이걸 좋게 받아들여야 할 상황인지 조금 고민했지만, 이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카리나 보러 가고 싶다.”

“우리가 배웅하러 가면, 둘 다 놀라지 않을까?”

“처제는 왜 이제 왔냐고 화낼 거 같아서 귀여워.”

“도련님은 또 엉엉 울려나.”

“이젠 안 울걸? 카리나가 얼마나 의젓해졌는데.”

남동생 자랑을 마친 레토는 제 품에 안긴 노아를 놔 주기는커녕 오히려 꼭 끌어안았다.

“그만해…!”

어느 정도 이성을 되찾은 노아가 몸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이제야 자신이 레토의 무릎에 올라앉은 채로 어린애처럼 꼭 끌어안겼단 것을 알아챘다.

“이제 좀 내려 줘!”

“조금만 더 이러고 있자….”

레토는 입술을 삐죽이며 붉은 눈망울을 느리게 깜빡거렸다.

이러는 거 싫어? 라고 어리광 부리듯 말끝을 길게 늘이니, 노아가 뭐 이런 미친놈을 다 보느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 이래!”

“사이좋은 부부시구나, 여기서 생명이 창조되는 거사를 치르시려는….”

“야!”

그런 건 집에 가서 하자고!

거절 아닌 거절을 외치며, 노아는 몸을 버둥거렸다. 그제야 레토가 끌어안고 있던 팔에서 순순히 힘을 뺐다.

“어우, 지쳐….”

“우리 자기 이래서야 오늘 거사를….”

“우리 부모님 장례식 때 너도 같이 순장당하고 싶으냐? 옆에 한 자리 만들어 줘?”

“난 너랑 같이 묻힐 거야. 부부합장묘로 해 줄 거지, 응?”

“이 미친놈 진짜….”

노아는 짜증을 내다 말고 이내 비식비식 웃었다.

물에 빠지면 주둥이만 둥둥 떠다닐 놈이, 정말 가끔은 한 대 쥐어박고 싶을 만큼 얄미운데 도저히 미워할 수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더 예뻐 보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사랑만 점점 몸집을 불리며 커졌다.

이제는 안다. 레토가 저렇게 가볍게 구는 건 제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해 주려는 의도라는 걸.

“후우….”

하지만 마음이 가벼워져도 몸은 아직 힘들어서, 노아는 허리에 손을 얹고 한참 숨을 골라야 했다.

“…뭐 좀 먹고 싶어.”

그리고 식욕이 돋았다.

그 말을 기다렸단 듯이 레토가 물었다.

“밖에서 먹을까? 아직 학교 수업 끝나려면 멀었잖아.”

“그럼 근처 카페에서 가볍게 먹자. 옷 입고 나와.”

레토는 기운을 차린 노아를 보며 싱긋 웃었다.

“아.”

아미를 부르러 가기 위해 일어선 레토가 나가기 전에 물었다.

“혹시 장모님이랑 장인어른이랑 무슨 대화 나눴는지 물어도 돼?”

“별거 아니었어.”

노아가 머쓱히 웃었다.

“나를 사랑한다고 하셨어.”

“으음….”

“왜?”

“아니, 역시 그런 거겠지?”

한 번 더 으음, 하고 뜸을 들인 레토가 뭔가 다짐한 것처럼 찰나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의무실을 나갔다.

***

노아와 레토가 자리를 비운 동안, 클라레도 제 나름, 정말 열심히 고심했다.

“나도 어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곤 아침에 대뜸 이 소리였다.

퍽 심각한 말투치고는, 입가에 잼을 묻힌 채로 입술을 꾹 다문 토끼 머리 모양의 꼬마 아가씨는 상당히 귀여웠다.

“아직은 아이로 있어 주세요.”

그리고 아스는 여느 때처럼 다정하고 평온한 얼굴로 갓 구운 팬케이크를 한 장 더 접시에 올려 줬다.

아이의 취향에 맞게끔 구운 토끼 모양 팬케이크였다.

“그치만 난 빨리 어른 되고 싶은데!”

“그 뭐 좋은 거라고 빨리 되려고 해요. 어른이 되면 다시는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 없어요.”

즐거운 일보다 머리 아프고 사람 쥐어 패고 싶은 일만 가득하다며 아스가 우는 척을 했다.

“아니야,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 있어!”

클라레가 토끼 팬케이크의 귀 부분을 야무지게 우물거리며 말했다.

“할머니가, 으응, 돈과 권력만 있으면 어린아이로, 음 맛있다! 어쨌건 돌아갈 수 있다고 했어.”

“어머, 그런 방법이?”

아스가 저는 전혀 몰랐다며 천연덕스럽게 굴었다. 클라레는 이게 바로 비밀조직의 정보력이라며 소리 죽여 중얼거렸다.

“대신 사회적 위신과 정신건강은 포기해야 한대.”

근데 사회적 위신이 뭐야?

클라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올려 묶은 양 갈래 머리도 따라 흔들거렸다.

어쨌거나 클라레의 각오는 꽤 굳건했다. 그래서 아스는 어른이 되기 위한 첫걸음으로 혼자 하교하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다.

유치원은 물론이고, 마레이 학교에 입학한 뒤로 언제나 아스와 함께 다녔던 클라레에겐 솔깃한 도전이었다.

“학교 다니는 언니라면 당연히 할 수 있어!”

“우리 아가씨가 언제 이만큼 크셨을까…!”

감동한 아스가 눈망울을 글썽거렸다. 그래도 오늘까지는 학교에 데려다주겠다고 말했다.

클라레도 처음부터 무리하면 탈 난다면서 순순히 아스의 자전거에 올라탔다.

‘나도 이제 어른이 되어야지!’

클라레가 느닷없이 이런 각오를 다진 건, 제 나름 진지하게 고민해서 내린 결과였다.

아이는 언니가 제국에 갔던 것이 상당히 충격이었다. 자신들의 가족은 여기에 다 있는데, 왜 언니는 제국에 가려고 고집인 걸까.

그리고 그런 아이의 의문에 대한 답을, 곁에 남은 어른들이 아주 조금씩 가르쳐 줬다.

“너희를 낳아 준 부모님을 찾으러 간 거야.”

“그분들은 이제 돌아가셨어. 신의 곁으로 갔단다.”

“네가 태어났을 당시에, 전쟁이 막 일어났는데….”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늘 저도 듣고 싶었던 어른들만의 이야기. 그래서 클라레는 조금 무서웠지만, 제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왜 언니는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안 한 거야?”

그러면 어른들의 대답은 이랬다.

너는 너무 어렸고, 네 언니도 어렸다고.

그래서 노아는 어른이 되자마자 부모님을 데리러 제국으로 간 거라고 했다.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설명이었지만, 똘똘한 클라레는 딱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내가 너무 어려서 언니한테 도움이 안 되었어.’

상상을 초월하는 냉정한 자기평가였다. 만약 어른들이 이를 알았다면 기함하며 그렇지 않다고 몇 번이고 붙잡아 설명했을 거다.

다행히 클라레는 자신이 쓸모없다는 못된 비약까진 하지 않았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는 자기 비하 대신, 앞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생각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언니와 어른들이 저를 신뢰할 수 있을 만큼 멋진 어린이가 되자는 각오였다.

‘그러기 위해선 주체적인 아이가 되어야 해!’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하자!

각오를 다진 클라레는 어서 빨리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씩씩하게 교실을 나갔다.

“나 오늘 혼자 집에 간다?”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럼 이제 아스 누나는 안 와?”

세레니가 물었다. 클라레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내가 같이 가 줄까?”

“괜찮아! 이건 내 임무 같은 거야.”

클라레의 굳은 결심에 세레니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교문까지는 같이 가자는 제안에 클라레가 빵긋 웃으며 그러자고 말했다.

“야, 오늘도 공원에서 모일 거지?”

보르가 달려와 클라레에게 물었다.

“오늘은 숙제가 먼저야.”

“그러면 같이 모여서 하자!”

센샤의 제안에 어느새 모인 비밀 조직 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 장소는 늘 그랬듯이 언덕 위 벨로 저택이었다.

“그러면 다들 숙제 들고 우리 집으로 와라, 알았지?”

그렇게 친구들과 약속한 뒤, 나 홀로 하교를 처음 도전하는 클라레를.

“클라레.”

아주 다정한 목소리가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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