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급장 떼고 결혼합니다-230화 (230/245)

230.

피에타 백작 부부의 유해는 해군 본부로 운구했다.

본부에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불의의 사고로 직무 중 사망한 해군을 위한 영안실이 있었다.

피에타 백작 부부는 해군의 최고 사령관인 아드벨로 대장이 직접 영안실로 인도했다.

급하게 준비한 임시 봉환식이었지만, 국왕까지 직접 자리에 참석하여 격을 높였다. 아들라보르와 해군이 당장 할 수 있는 최고의 예우였다.

가까스로 몸을 추스른 노아는 레토의 부축을 받고 일어섰다가 기어코 혼절했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저만큼이나 파랗게 질린 레토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장하다고, 그간 고생 많았다며 칭찬해 주는 부모님의 목소리도 얼핏 들렸던 것 같았다.

“…….”

그래서 다시 눈을 떴을 때, 노아는 저도 모르게 울어 버렸다.

“야!”

때마침 옆에 있었던 아미가 눈을 뜬 노아의 손을 붙잡았다.

“정신 차렸어? 괜찮아?”

“…….”

“나 누군지 알겠어? 네 가문 재산 나한테 다 양도하기로 했던 유일한 절친이잖아!”

“그런 적 없어….”

“칫, 또 쓸데없이 멀쩡하네.”

친구의 아찔한 농담에 겨우 정신 차린 노아가 젖은 눈을 손등으로 살살 누르며 물었다.

“몇 시야?”

“10시 좀 넘었어.”

무려 3시간을 기절해 있었다.

“부모님….”

부모님은? 이라고 물으려던 노아가 잠시 멈칫했다.

“…부모님 유해는?”

잊을 뻔한 부모님의 죽음을 애써 상기한 노아가 다시 물었다.

“여기 본부에 있어. 영안실에 계시는데, 지금 너희 부모님이, 어어, 그러니까 양부모님! 그분들이 유해를 맞추고 계셔.”

오러로 파랗게 물든 뼈를 함부로 공개할 수 없기에, 아드벨로 공작 부부가 직접 뼈를 맞춰 관에 눕혔다.

아미는 그 외에도 노아가 궁금해할 법한 소식을 들려줬다.

“다른 대원들은 전부 영사로 돌아갔거나 집으로 갔어.”

임무 보고서는 샤프 영지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전부 적었기 때문에 일찍 귀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의 휴가가 떨어졌는데, 동시에 이동 제한 명령도 내려졌다.

보고서 검토 중에 문제가 생길 시에 본부로 복귀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다들 피곤해서 어디 놀러 갈 정신머리는 없다며 아미가 농담처럼 덧붙였다.

“국왕은 지금 대장님이랑 함께 피에타 백작 부부의 장례를 검토 중이야. 오케아누스 장군님도 계신다더라.”

“아….”

그 말에 노아는 뒤늦은 부끄러움에 휩싸였다.

“…너무 채신머리없어 보였을까?”

부모님의 죽음을 처음으로 뼈저리게 실감했다. 그 순간의 비통함과 절망, 외로운 심정은 아직도 노아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하지만 그런 제 모습을 남들이, 그것도 저를 잘 아는 사람들이 봤다고 생각하니 솔직히 창피하고 무안했다.

아마 다 그 자리에 있었을 텐데.

할머니, 할아버지만이 아니라 엄마랑 아빠. 국왕 옆에 오빠도 있었던 것 같았고.

오케아누스 장군님은 물론이고 후작님도 함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일하면서 안면을 익혔던 다른 부대원들이며 훈련시켰던 부사관들, 절 좋게 봐 주시던 장교들.

“기가 막혀서.”

정작 노아의 걱정을 들은 아미는 지랄도 유분수라며 마땅찮은 표정을 지었다.

“울어야 정상이고, 그런 널 보고 처신없다고 욕하는 놈들은 공감 능력 없는 반사회성 인격장애 새끼들이야.”

알아서 나 걸러 줍쇼, 하고 광고하는 놈들이니 기억해 뒀다가 어른들에게 이르기나 하라며 아미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니 넌 이제 네 몸이랑 마음 추스르고, 부모님 장례식 준비나 해.”

대충 설명을 마친 아미의 눈초리가 매서웠다.

노아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제야 아미의 표정이 부드럽게 풀렸다.

“식사는 어떻게 할래? 뭐 좀 먹을래?”

“아니, 괜찮아….”

노아가 상체를 일으키려고 하자, 아미가 옆에서 붙잡아 거동을 도와줬다. 노아는 덜덜 떨리는 제 몸에 깜짝 놀랐다.

“…참았던 게 터져서, 몸이 버티질 못하는 거야.”

아미가 눈살을 찌푸리며 잔소리했다.

노아의 몸 안에서 불규칙적으로 뜀박질하던 마력은 이제 완전히 진정되었다.

하지만 그간 홀로 꾹 참고 견디었던 감정이 터지면서 놀란 몸은 오랜 진정이 필요했다.

“치유마법으로 치료할 수는 있지만….”

이참에 진짜로 몸을 쉬게 하는 쪽이 더 좋을 거라며 아미가 슬쩍 제안했다. 다행히 노아는 그러겠다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가 끊기자 서먹한 정적이 흘렀다.

“으음….”

괜히 어색해진 아미가 조심히 물었다.

“어쨌건, 이제는 좀 괜찮아?”

“울었더니 확실히 낫긴 해.”

“그래, 나도 너 우는 거 보니까 슬프면서 후련하더라.”

참느라 고생 많았다는 아미의 칭찬 아닌 칭찬에 노아가 붉게 짓무른 눈매를 부드럽게 휘었다.

아미는 노아가 깼단 소식을 전하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나가지 말고 여기 가만히 있어ㄴ!”

아미가 야무지게 한마디 하고 나갔지만, 잠시 후 노아는 슬쩍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딱히 심술을 부리는 건 아니었다.

정처 없이 걷는 것처럼 보였지만, 노아가 향하는 방향은 명확했다. 그리고 노아는 곧 영안실에서 나오는 제니우스와 아메타를 마주쳤다.

“엄마, 아빠.”

둘은 노아가 입에 담은 호칭에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환한 미소로 딸을 반겼다.

“몸은 괜찮고? 이렇게 움직여도 돼?”

“배는 안 고파? 뭐 좀 먹을래?”

저를 향한 다정한 걱정에 노아는 그저 싱긋 웃었다.

“아직 괜찮아. 둘 다 여기서 뭐 해?”

“네 친부모님 뼈 맞추고 있었지.”

제니우스가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으며 말했다.

“으음, 지금은 보기 좀 힘들 거야. 더 쉬었다가….”

“아니야.”

고개를 가로저은 노아가 말했다.

“엄마랑 아빠를 보러 왔어.”

“어머.”

이건 또 예상치 못한 예쁜 말이라서, 제니우스와 아메타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방긋 웃었다.

세 사람은 근처에 있던 휴게실에 들어갔다.

아메타가 휴대용 화로에서 차를 끓이는 동안, 제니우스는 노아의 상태를 꼼꼼히 살폈다.

“확실히 마력은 이제 진정되었구나. 그래도 한동안은 무리하지 말고. 이왕 휴가 받은 거, 푹 쉬어.”

“알았어.”

“괜찮냐고 물어보고 싶은데….”

에휴, 제니우스가 노아의 볼을 쓰다듬으며 애정이 듬뿍 담긴 한숨을 흘렸다.

“네 속이 그냥 속이겠니. 고생 많았다.”

“이제는 정말 괜찮아.”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네가 말하는 괜찮다는 절대 안 믿어.”

차를 끓여 온 아메타가 클라레도 안 속을 거짓말이라며 코웃음을 쳤다.

노아가 허를 찔렸단 듯이 곤란한 웃음을 토했다. 하지만 마냥 거짓말은 아니었다.

노아는 어느 때보다 마음이 편안한 상태였다. 마냥 꾹 참고 견디었던 바로 몇 시간 전과 비교하면 너무나 잔잔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곧장 제니우스와 아메타를 찾았다.

평소 두 사람에게 꼭 하고픈 말을 계속 꽁꽁 숨겨 두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라면 약간의 용기만으로 그걸 꺼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랑 아빠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어.”

드물게 쭈뼛거리며 말을 아끼는 큰딸을, 부부는 아주 의외란 듯이 바라보다가 동시에 눈을 크게 떴다.

“혹시 너 우리한테 미안해서 이러는 거야?”

“아이고, 이 철부지야…!”

노아가 말을 다 꺼내기도 전에 빠르게 눈치챈 둘은 이내 깔깔 웃었다.

속내를 들킨 노아의 고개를 푹 숙였다. 새빨개진 귀가 선명했다.

“아우, 좀! 분위기 좀 읽어 주면 안 돼?”

“네가 되도 않는 소리를 하려니까 그러지!”

제니우스는 뭐가 그리 웃겼는지 연신 깔깔댔다.

“뭐가 그리 미안한데?”

그러곤 대뜸 웃음을 뚝 멈추더니, 제니우스가 노아를 응시했다.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초록 눈동자가 한없이 인자하고 다정했다.

“…그냥, 여러 가지로.”

노아가 조그만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솔직히 내가 미운 짓을 많이 했잖아. 난 계속 친부모님을 잊지 못하고, 그래서 엄마랑 아빠 속도 좀 썩이고….”

“뭐, 그건 그렇지.”

“아니라곤 못 하겠다.”

제니우스와 아메타도 부정하진 않았다.

새삼스럽지만, 노아는 제니우스와 아메타가 얼마나 대단한 결정을 내렸는지를 또 한 번 느꼈다.

“동생 삼을래, 딸 삼을래?”

전쟁 막바지에 몰래 데려온 적국의 귀족을 이딴 식으로 소개한 글로리아도 글로리아였지만.

“딸 없었으니까 딸로 삼을래.”

“나도 드디어 딸 생겼다! 그것도 둘이나!”

저런 이유로 입양한 제니우스와 아메타도 어지간한 대인배가 아니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노아와 이들의 관계는 마냥 순탄하지 않았다.

7년 전의 노아는 정말 예민했었다. 얼마나 예민했냐면, 아티마저 눈치를 살피며 거리를 조금 둘 정도였다.

가족이었던 인간에게 제 부모님이 살해당했고, 저와 동생까지 죽을 뻔했다. 노아의 인간 불신은 극에 치달을 수밖에 없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원망하고 증오했다. 심지어 자신들을 보호하는 아드벨로마저 믿지 않았다.

특히 노아가 가장 날카로워질 때는, 모르는 사람이 클라레에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의 손이 닿는 것을 혐오하는 수준에 가까웠다.

잠깐 저 없는 동안 어린 동생의 기저귀를 갈아 주러 온 고용인을 죽일 뻔했던 사건은 지금도 간담을 서늘케 할 정도였다.

“근데 그 상황에서 선을 안 긋는 게 정상이니?”

정작 제니우스는 그 일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넌 친부모님을 막 잃었고, 혼자서 클라레를 지켜야 했어.”

“아가, 그건 절대 이상하고 잘못된 게 아니었어.”

아메타가 노아의 손을 꼭 쥐며 말했다.

아까 펑펑 울었던 탓에 감정이 평소보다 섬세해진 노아는 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노아.”

제니우스가 우는 아이를 다독이듯이 다정히 말했다.

“그분들은 너희를 사랑했고, 너도 그분들을 사랑했어.”

사랑했기에 갑작스러운 헤어짐은 큰 충격이었고, 아이의 세상은 배려조차 없이 급작스럽게 바뀌었다.

충격을 다스리고 슬픔을 받아들일 여유가 단 한순간도 없었다.

“네가 세웠던 가시는 그 슬픔을 받아들이기 위한 과정일 뿐이었어. 그걸 미안해할 필요는 없단다.”

“오히려 잘못은 우리가 했지. 너무 성급하게 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메타의 말에 제니우스가 바로 그거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자신들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노아에게 보란 듯이 씩 웃어 보였다.

“그러니 우리에게 미안해하지 마.”

“아까 말했잖아. 예쁜 딸을 둘이나 얻어서 아주 행복하니까.”

“우린 네가 아주 자랑스럽단다.”

낳아 주신 분들의 사랑을 기억하는 너를.

길러 준 우리에게 고마워하는 너를.

“그런 마음씨를 지닌 널, 어떻게 안 사랑하겠어.”

노아는 끝내 또 울어 버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