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
수도에서의 소란은 삽시간에 제국 전역으로 퍼졌다.
“피에타의 후계자가 돌아왔대!”
단연코 최고의 화제는 행방불명이었던 피에타의 후계자였다.
“어? 죽은 거 아니었어?”
“살아 있었어! 황성에서 거대한 푸른 오러가 나타났다고…!”
“그거 나도 봤네!”
“그 파란 번개가 오러였다고요?”
물론, 소문은 멀리멀리 퍼질 때마다 과장 어린 살이 달라붙었다. 그래서 조금 어처구니없이 부풀려지기도 했다.
“황제의 목을 위협했다더라고!”
“피에타의 후계자가 지나간 길에 시체가 득실거렸다더군.”
“제 부모를 죽인 자들의 목을 베기 위해 살아난 귀신이라고 들었는데…?”
하나 그 속엔 염려와 걱정도 있었다.
“후계자가 피에타의 종말을 외쳤다는군.”
“저택이 완전히 무너졌대!”
“그럼 이제 이 나라는 어찌 되는 건가?”
“천년의 충정이 황실을, 우리를 버리는 건가? 왜? 어째서!”
사람들은 피에타의 후계자를 무서워했고, 원망했다.
살아 돌아온 피에타의 후계자가 다시금 제국을 일으켜 세워 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저택을 부수고 가문의 종말을 선언했다고 한다.
거기다 후계자가 만든 거대한 오러는 하늘을 흔들고 땅에 불을 냈다고 한다.
실제로 황궁에서는 아닌 밤중에 떨어진 벼락, 아니 오러 때문에 큰 화재가 일어났다고 한다. 황제가 정무를 보는 본궁의 절반이 타 버렸다고.
하지만 그렇게 떠들던 사람들도.
“…어흠!”
“자, 어서들 가세….”
무장한 군인들이 지나가기 무섭게 냉큼 흩어졌다. 나불거리던 입술도 접착제 붙인 것처럼 찰싹 다물렸다.
소문으로는, 황제가 그렇게 노발대발한다고.
그럴 수밖에.
황제는 전쟁을 반대했던 피에타 가문을 눈엣가시로 여겼었다.
그래서 보르고 피에타가 제 가족을 배신하러 갈 때, 기사들까지 붙여 주며 은근슬쩍 도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이동한다!”
마을을 살핀 군인들이 차를 타고 이동했다.
군용차가 점이 되어 사라진 후에야, 마을 사람들은 긴장을 풀며 참았던 한숨을 푹푹 내뱉었다.
이곳은 해안절벽을 근처에 둔 완전 촌구석이었다. 말도 귀해서 소가 달구지를 끌어 사람을 근처 영지로 태울 정도로 시골이었다.
그런 곳까지 무장한 군인들이 차를 몰고 왔으니, 다들 지레 겁을 먹고 몸을 사렸다.
“역시, 피에타를 찾으려고 저러는 건가?”
“그런데 할머니는 어디 계시나? 안 보이는데?”
“말도 마시게. 오늘 아주….”
말을 하다 만 어느 남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7년 전 전쟁에서 외아들을 잃은 노부인은 피에타의 후계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춤을 췄다고 한다.
주름진 눈가가 짓무를 정도로 펑펑 울고, 그러다 기력이 빠져 휘청거려도 다시 일어나 몸을 덩실덩실 흔들었다고.
“피에타가 돌아왔어! 내 아들의 복수를 해 주려고!”
자칫 마을 전체를 지도에서 지울 뻔한 망언이었다.
조금 전 군인이 저 말을 안 들어서 다행이라고 안도하는 와중, 내심 노부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다.
제국은 패전한 이후로 나라의 기능을 잃었다.
전쟁에서 졌으면 알아서 이후의 상황을 대비해야 했다. 하지만 제국은 그러긴커녕 혈세를 더욱 쥐어 짜냈다.
전시 때보다 굶어 죽는 사람이 더 나오고.
사람들이 모여 있기만 해도 반란 준비라며 몰아가니.
차라리 나라가 망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
“…역시, 문명이 좋긴 좋아.”
탕탕!
군인 한 명이 군용차 차체를 손바닥으로 야무지게 때렸다.
마을을 벗어난 군용차는 평탄한 들길을 계속 달렸다. 조금 전에 지나온 그곳이 지도상에 표기된 마지막 마을이었다.
“여기서 수도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렸었지?”
“일주일이지 말입니다.”
벨라 토르 중사가 입이 찢어지게 하품했다.
“피곤하지?”
노아가 벨라의 등을 가볍게 쓸어 주며 말했다. 벨라는 괜찮다며 팔을 위로 쭉 뻗어 기지개를 켰다.
“그래도 운전은 번갈아 가며 했으니까, 그리 피곤한 일도 아닙니다. 치티아 중위님 말씀처럼 걸어 온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중사 말이 맞지.”
레토가 들풀이 무성한 바깥을 보며 말했다.
“일주일이 걸렸던 길을 하루 반나절 만에 내려왔으니까.”
특함 대원들은 전부 제국 군복 차림이었다.
그들이 타고 있는 군용차 역시 제국 육군 차량이었다.
황성 수도에서 트럭을 타고 가까스로 입구 밖까지 내려온 뒤, 특함 대원들은 도로 옆 숲길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황성으로 들어가는 군용차 한 대를 피탈했다.
군복은 벗겨서 자신들이 입고, 헐벗은 군인들은 포박한 뒤에 기절시켜서 도로변에 가지런히 눕혀 뒀다.
“에휴, 그래도 염치가 있지.”
마냥 도둑질하려니 양심에 걸려서, 감기 걸리지 말라고 아미가 축복을 내려 주는 것으로 값을 치렀다.
그렇게 군용차를 타고 꼬박 하루하고 반나절을 쉬지 않고 달렸다. 잠깐 쉴 때는 대원들이 돌아가면서 마력을 충전했다.
마력 소모가 큰 개인함선을 운항하는 그들에게 그 정도 충전은 새 발의 피였다.
“…해가 벌써 중천입니다.”
노아는 때마침 군용차 옆으로 빠르게 지나치는 피에타 별장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한번 들를까?”
운전하던 레토가 물었다.
“괜찮습니다.”
노아는 이미 시선을 별장에서 떨어트린 지 오래였다. 그냥 지나가다 보여서 잠깐 쳐다본 것뿐이었다.
그리고 노아는 그때까지도, 제 부모님의 유해를 한 번도 품에 안지 않았다.
지금 피에타 백작 부부의 유해는 바로 옆에 앉은 아미와 벨라 토르 중사의 품에 각각 모셔진 상태였다.
“그래도 우리보다는 네가….”
“나중에.”
아미가 한 번 권했지만, 노아는 말도 채 끝나기 전에 거절했다.
“그것보단 서둘러 본부로 복귀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기야.”
레토는 노아의 화제 전환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과연 우리 왕녀 저하께선 배편을 구했을까.”
“어렵지 않겠습니까?”
클라우스 구베르 하사가 조심스럽게 제 의견을 말했다.
“설령 구했다고 해도, 배를 보이지 않게 숨기는 것도 문제입니다. 어쩌면….”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려던 그의 입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전방에 차 한 대가 있었다.
군용차였다.
“…….”
“…….”
차를 멈춘 레토가 쯧, 하고 혀를 짧게 찼다. 신호를 들은 대원들이 총을 들었다.
“…중장님?”
그런데 맞은편 군용차 뒤에서 나온 이의 얼굴이 친숙했다. 며칠 떨어진 게 다였지만, 웃음이 절로 날 정도로 그리웠던 얼굴이었다.
“메라 일병!”
아미가 팔을 붕붕 흔들었다. 덩달아 호네스 메라 일병의 얼굴에도 반가움이 깃들었다.
“잠깐.”
운전석에서 내린 레토가 권총을 호네스에게 겨눴다.
“아군이 맞는지 확인해야지.”
짓궂은 말투치고는 눈빛은 신중했다. 호네스 역시 자신들처럼 제국 군복을 입고 있었다.
“…여덟.”
레토가 먼저 말했다.
“다섯.”
이어 호네스가 답했다.
합이 13.
특함 대원 총원이 13명이기에 만들어진 특함만의 합수 암구호였다.
“우리 막내, 그간 고생했군.”
총구를 내린 레토가 다가가서 호네스의 어깨를 손으로 가볍게 두들겼다.
호네스는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이라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배는 구했나?”
“고무로 된 휴대용 구명보트 3척을 구했습니다.”
“오, 대단한데.”
“아이스 중령님이 벨리피아 영지를 수습하러 오는 군용차에서 가져오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역시 연로한 경험자의 지혜는 다르다니까.”
그렇게 연로하시진 않았는데, 호네스는 그리 생각하면서 시선을 레토의 너머로 돌렸다.
다른 대원들도 무사한 듯했다.
“…….”
하지만 아미와 벨라가 하나씩 품에 들고 있는 커다란 보따리 같은 것을 보자마자 표정을 굳혔다.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한 호네스가 노아를 슬쩍 바라봤다.
노아는 그런 막내의 머리를 가볍게 도닥이며 스쳐 갔다.
***
[조금 전 들어온 긴급 속보입니다.]
“이잉, 안 돼!”
라디오 앞에 얌전히 앉아 있던 클라레가 벌떡 일어났다.
“식칼토끼 만화! 이제 막 불법 도축업자를 찾았는데…!”
“속보가 끝나면 바로 이어서 할 거예요.”
흥분한 아가씨를 진정시키며, 라디오 앞에 선 아스가 음량을 살짝 높였다.
[지난주 검찰이 성왕 스켈레로 3세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데 대해, 오늘 신성청에서 입장을 발표하였습니다.]
“소환마법은 금지마법 중 하나야.”
라디오 만화가 중단되어서 입술을 샐쭉거리는 와중에도 아는 단어가 나오자, 클라레는 차기 마탑주답게 지식을 자랑했다.
“하면 잡혀가서 발가락이랑 정수리랑 만날 정도로 엄청 힘들게 한대. 아스는 알았어?”
“어머, 정말요? 역시 우리 아가씨는 똑똑하시다니까!”
“그게 바로 나란 여자지!”
그새 또 기분 좋아진 클라레는 ‘근데 발가락이랑 정수리랑 못 만나나?’ 하면서 제 발을 잡아 올리며 끙끙거렸다.
“그러다 다치실라.”
엉뚱한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와중에도, 아스는 라디오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신성청은 소환에 응하겠다며, 엿새 후에 성왕께서 직접 행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
일순, 아스의 눈이 가늘게 접혔다.
차갑게 얼어붙은 시선과 달리, 그녀의 품과 두 팔은 다리를 머리에 올리려다가 발라당 뒤로 넘어지는 클라레를 다정히 보살폈다.
“힝, 안 되네….”
다리 올리기에 실패한 클라레가 고개를 올렸다.
“근데 아스, 뉴스에서 뭐래?”
“나쁜 사람을 잡을 것 같다는 소식이에요.”
“오, 그건 좀 중요한 거지!”
속보를 전한 뉴스가 끝나니, 곧장 식칼토끼 방송이 이어졌다. 클라레는 불법 도축업자에게 필살기를 쓰려는 식칼토끼를 열심히 응원했다.
반면, 아스는 붉은 노을이 스며든 창밖으로 시선을 움직였다.
‘직접 움직인다고?’
성왕이?
아스는 성왕이 현재 거동이 불편하단 사실을, 그리고 그 이유가 저주 때문이란 점을 알고 있었다.
그녀 역시 이번 사건의 관계자였으며, 더 나아가 성왕 때문에 강제로 훈련받았던 불법 사병 단체의 피해자였다.
‘분명 해군이랑 마탑도 이 소식을….’
“알고 있을걸?”
인기척도 없이 불쑥 들리는 목소리에 아스가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그 찰나에 뻗은 오른손에는 치마 속에 숨겨 둔 날카로운 단검이 들려 있었다.
“어?”
아스의 뒤로 감춰진 클라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 집 개망나니!”
“우리 집 똥강아지.”
잘 지냈어?
아티가 입꼬리를 매끄럽게 올리며 눈웃음을 천천히 그려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