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
“…와, 저게 도대체 뭐야!”
트럭 트렁크에 올라선 채로 지켜보던 아미가 눈살을 찌푸렸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리고 앞으로도 다시는 보지 못할 천재지변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노아가 오러를 쓰는 것을 이미 본 적 있었다.
그때도 숨이 막히는 위압감과 소름 끼치는 섬뜩함이 몸을 옥죄고 두려움을 자아냈었다.
그런데도 지금 펼쳐지는 이 천재지변은, 마치 그때의 공포가 어린애 장난 수준이었다는 걸 보여 주고 있었다.
‘자연을…!’
자연을 조종하고 있다.
본디 마법도, 그러니까 마탑이 폭발한 100년 전까지만 해도, 마법 또한 불을 만들고 물을 조종하는 원시 형태를 취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자연현상을 모방하는 것뿐이지, 자연 자체를 의지대로 조종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이상은 신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지금 노아는 그 영역에 발을 디뎠다.
“…치티아 중위!”
레토가 아미를 불렀다. 가까이 다가가서 본 레토 역시 무척 놀란 상태였다. 하지만 다른 대원들보다는 여러모로 훨씬 침착했다.
그는 아미에게 물었다.
“중위, 이게 지금 내 착각이면 좋겠는데….”
“예, 비슷합니다.”
아미는 레토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대답했다. 그가 무엇을 물어보고 싶어 하는지 눈치챘다.
“피니치 구역에서, 제가 썼던 ‘단죄’와 닮았습니다.”
“가능한 일인가?”
“불가능하다는 대답을 원하십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대답은 중요하지 않아.”
대화를 멈춘 두 사람의 시선은 다시 노아를 향했다.
폭풍이라도 몰아칠 것처럼 나부끼는 바람에 노아의 금발이 펄럭거렸다.
먹구름 사이로 번개가 칠 때마다 노아의 푸른 눈동자는 새하얗게 번뜩였다.
감히 바라보는 것조차 송구스러울 정도로 찬란한 일순의 찰나.
아주 천천히.
하지만 아주 빠르게.
노아가 페미나를 세로로 내리 휘둘렀다.
콰르릉-!
동시에 먹구름 사이로 거대한 번개가 내리쳤다.
노아의 오러를 닮은 푸른 번개는 지상으로 떨어지기 무섭게 세상의 모든 것을 새파란 빛으로 뒤덮었다.
고막을 찢을 듯한 파괴음이 땅을 흔들었다.
그리고 빛이 어느 정도 잠잠해지면서 도로 어둠이 몰려온 뒤에야.
“…….”
노아는 평온한 표정으로 페미나를 도로 검집에 갈무리했다.
“후우….”
그리고 숨을 깊이 들이쉰 뒤.
“…들어라!”
오러로 잔뜩 힘을 준 목소리는 황성 전역에 울렸다.
“피에타의 진정한 후계자, 노빌리아 피에타가 돌아왔다!”
그녀는 제 손으로 무너트린 저택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이 자리에서, 피에타의 종말을 선언하노라!”
***
“…….”
“…….”
트럭을 타고 달리는 내내.
특함 대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히 떠들어 봤자 우리 여기 있소, 라고 알리는 꼴밖에 되지 않으니 조용히 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지금 내려앉은 침묵은 조금 다른 결이었다.
“…….”
피에타의 종말을 외친 후, 노아는 줄곧 눈을 감고 입을 다문 상태였다.
숨은 약간 거칠고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열이 오르는지 얼굴도 조금 빨갛게 달았다.
조금 전에 과도하게 사용했던 오러의 부작용이었다.
“성력이 안 먹히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인데.
상태가 썩 좋지 않은 노아를 성력으로 치유하려던 아미가 끝내 혀를 찼다. 그러곤 눈을 샐쭉거렸다.
“그러게 왜 몸에 부담되는 짓을!”
“…….”
“어휴, 속 터져서 진짜.”
마음 같아서는 등짝을 몇 대 내리치고 싶었지만, 노아의 상태가 정말 안 좋아 보여 꾹 참았다.
그래도 쫑알쫑알 내뱉는 잔소리엔 친구를 향한 걱정이 가득했다. 그 마음을 알기에 노아는 입꼬리를 힘겹게 올렸다.
파직파직, 노아의 몸에서 푸른 정전기가 미약하게 올라왔다.
“…한데 말입니다.”
클라우스 구베르 하사는 내심 걱정이었다.
“그, 이래도 괜찮은 건지 말입니다.”
클라우스만이 아니라, 다른 대원들도 마음이 어수선했다.
일단, 노아를 향한 경외심이 가장 컸다. 그녀가 보여 준 오러는 가히 신의 영역이었다.
기적이나 다름없는 광경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울컥해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혔었다.
하지만 그런 진심과 별개로, 조금 전 상황은 간첩으로 몰래 숨어들어온 자신들에겐 위험한 일이었다.
너무 큰 소란을 일으켰다.
천년 고택이 무너지고, 제국의 병력을 죽였다.
이 소란은 감추기 어렵다. 분명 황실에서 자신들을 잡으려고, 아니,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병력을 보낼 것이다.
‘그런데….’
분명 그래야 하는데.
트럭이 황성을 막 벗어나는 이 순간까지도, 특함 대원들은 자신들을 잡으러 와야 할 어떤 병력도 보지 못했다.
아니, 사람은커녕 떠돌이 개의 꼬리털 하나 안 보였다.
“확실히 이상하긴 합니다.”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
운전석에 앉은 벨라 토르 중사가 트렁크와 연결된 뒤쪽 창문을 열었다. 조수석에 앉은 뮤트 플라치드 병장도 같은 마음이었다.
“괜찮아.”
조금 진정이 된 노아가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푸른 눈동자는 아직 가라앉지 못한 오러 때문인지 이따금 이채가 스치듯 반짝였다.
“들어 봐.”
그러곤 다시 눈을 감았다.
다들 영문 모를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노아가 무슨 말을 하나 싶었다.
“…아하.”
그때, 별안간 매끄러운 미소를 지은 레토가 눈길을 밖으로 돌렸다.
빰빠라….
다른 대원들도 따라 시선을 돌렸다. 불분명한 음색이 점점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빰빠라 빰빠빠 빠암!
이 야심한 새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하지만 그들의 귀에는 아주 익숙한 노랫말이 들렸다.
[식칼토끼! 식칼토끼!]
“정의의 복수자, 식칼토끼….”
노아는 선명해진 음악에 맞춰 중얼거렸다. 제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 주제곡이 마냥 반갑고 흥겹기만 했다.
[부모를 죽인 불법 도축업자!]
“그자의, 피를 식칼에 묻혀….”
“내가 몇 번이나 말하지만, 저건 진짜 애들 만화 아니라니까.”
노아가 제게 조금 더 편히 기댈 수 있도록 상체를 안은 레토는 기가 막힌단 시선으로, 트럭 뒤를 따라오는 새하얀 토끼 한 마리를 바라봤다.
또렷하게 뜬 가위표 두 눈.
새하얀 흰털은 어둠 속에서도 그 뽀송뽀송함을 자랑했다. 검붉은 피가 덕지덕지 묻은 것은 흐린 눈으로 대충 넘어갔다.
그리고 양손에 들린 시퍼런 날의 식칼에 묻은 핏물도, 어찌어찌 넘어갔다.
[동물복지를 실현한다! 불법 도축은 처형이다!]
“숨겨진 아군이 있었잖아!”
아미가 트렁크 밖으로 손을 뻗자, 식칼토끼가 폴짝 튀어 올라 손바닥 안에 안착했다.
[정의로운 무적!]
[식칼토끼!]
노래를 마친 식칼토끼는 노아를 향해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단조로운 기계음이 제 맡은 바를 충실히 해냈다고 보고했다.
[목표 대상 전원에게 이동 불가능한 부상을 입혔습니다.]
“잘했어….”
노아가 가쁜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아미의 손바닥에서 내려온 식칼토끼가 뽁뽁, 소리가 날 것 같은 가벼운 걸음으로 노아의 곁에 다가갔다.
피범벅이 된 식칼토끼를 보자니, 노아는 속이 쓰렸다.
[조금 전 정체불명의 마력 파동으로 내부가 손상되었습니다.]
[이 이상의 형태 유지는 불가능합니다.]
[위치 전, 송이 더는 불가능합, 니다.]
[지금부, 터 대, 기상, 태에 들, 어, 갑니, 다.]
그리고 식칼토끼는 원래의 조그만 털뭉치 상태로 돌아갔다.
노아는 그것을 주워 다시 주머니 안에 넣었다.
“…어린이들의 영웅에게 몹쓸 짓을 시켜 버렸네.”
노아가 혀를 짧게 찼다.
나중에 클라레에게 돌려주기 미안해졌다.
“뭘 한 거야?”
그제야 아미가 어찌 된 상황이냐고 물었다.
“부모님이 클라레 신변 보호를 위해 만든 마도구야.”
피에타 저택으로 향하던 중, 노아는 트럭에서 내리자마자 털뭉치 고리에 마력을 주입해 발동시켰다. 보송보송한 털뭉치는 정의로운 식칼토끼로 변신했다.
“막아.”
짧은 명을 받은 식칼토끼는 재빨리 몸을 숨겼다.
그리고 피에타 저택에서 그 난리가 일어나기 무섭게 언덕을 향해 올라오는 병력을 전부 막아냈다.
그리고 그 흔적을 구석에 숨기던 중, 노아의 마지막 오러에 영향을 받아 내부 기계가 고장이 나 버렸다.
“조금 전 내 오러 때문에, 황성은 지금 먹통이 되었을 거야.”
노아의 오러는 모든 기계를 망가트렸다. 전기, 수도, 마력으로 움직이는 값비싼 마도구까지.
“어…!”
때마침 트럭도 마찬가지란 듯이 엔진이 멈춰 버렸다.
하지만 특함 대원들은 군말 없이 트럭에서 내렸다.
어차피 황성은 무사히 빠져나왔다. 트럭이 여기까지 버틴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걸을 수 있겠어?”
레토가 휘청이는 노아를 부축하며 물었다.
“금방 가라앉을 겁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언제 괜찮아질지는 노아도 몰랐다.
조금 전 기술은 오러의 궁극이었다. 노아가 아무리 피에타라고 한들, 오러를 다시 제대로 훈련한 지 아직 몇 개월이 채 되지 않았다.
상당한 피로가 노아를 짓눌렀다.
***
“세상에…!”
셀린은 저 멀리서 번쩍거리는 푸른 번개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 저게 뭡니까!”
함께 야간 순찰을 돌던 로간 미타스 상사도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소란을 들은 다른 대원들도 오두막에서 속속들이 나왔다.
천지가 개벽하는 것 같은 커다란 번개가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멀리서도 들리는 어마어마한 폭음이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을 타고 이곳까지 전해졌다.
“…수도 방향 같은데?”
아이스 중령이 가늘게 뜬 눈으로 번개가 내려친 곳을 응시했다.
“그런데 아까 그 푸른 번개는….”
“…대위님?”
메델라 사나 하사와 호네스 메라 일병이 연이어 말했다.
“준위님.”
아이스 중령이 피스트 준위를 불렀다.
“과연 좋은 징조일까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쁜 예상은 들지 않았다.
대원들은 저 번개에서 익숙한 기운을 느꼈다. 노아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면서 보여 줬던 오러와 똑같은 기운이었다.
이곳에서 수도까지의 거리를 생각한다면, 조금 전 그 푸른 번개의 위력은 정말 어마어마한 것이 틀림없었다.
“…저 위력을 버틸 만한 기술이나 그와 비슷한 것을, 시스토 제국이 가지고 있을 리가 없습니다.”
피스트 준위는 본래 마탑 소속 연구원이었다. 군인으로 근무 중이긴 해도 그의 기본 발상은 마법사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조금 전 푸른 번개를 보자마자 확신했다.
천하의 아드벨로도, 날고 기는 마탑도 저 힘을 막아낼 도리가 없을 것이라고.
“저희도 대비해야겠습니다.”
곧 대원들이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