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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장 떼고 결혼합니다-219화 (219/245)

219.

이번에도 실패하고 만 보르고 피에타는 펼쳤던 손바닥을 꽉 쥐었다.

빠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힘을 준 손은 새하얗게 질려 갔다.

‘뭐가 문제냐…!’

분에 겨운 시선은 이제 죽고 없는 남동생을 노려봤다.

아직도 생생하다.

마스와 페미나도 없이, 그저 평범한 검으로 저와 기사들과 대치했던 남동생 부부.

자신들을 죽이려고 온 기사들에게 빙 둘러싸였는데도, 오러를 쓰지 않고 보란 듯이 전부 제압했다.

오러 따윈 없어도 상관없단 듯하던 표정은 다시 생각해도 가증스러웠다.

하지만 결국 죽었다.

기사들을 오러 없이 상대했던 건 정말 대단했다.

솔직히 남동생 부부가 오러 없이도 그렇게까지 버틸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심지어 제수씨는 일반인이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검을 만져 본 적도 없는 여자가, 심지어 출산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몸으로 마지막까지 버티었다.

그게 최악의 변수가 되었다.

끈질긴 동생 부부를 제 손으로 죽였다. 하지만 시간을 너무 끌어 버린 탓에 조카들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마스와 페미나도 함께 사라졌다.

그래서 보르고 피에타는 전쟁이 끝나기 무섭게 부부검을 수색했다.

피에타와 관련된 사람들은 전부 찾아다녔고, 피에타와 연관된 장소는 전부 수색했다.

하지만 나온 것은 없었다.

“…방향을 잘못 잡았던 건가.”

그는 눈을 느리게 감으면서 후회스럽게 중얼거렸다.

유감스럽게도, 그 후회는 제 과거의 행간을 반성하는 게 아니었다.

“아이들을 먼저 죽였어야지!”

입만 살았던 그 여자, 멜라니 벨리피아도 조카들이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여자는 자신의 눈 밑에 흉터를 남긴 노빌리아를 증오했다.

어린 것이 벌써 살인자의 눈을 하고 있다면서 얼마나 예민하게 굴었던가.

하나 결국 그녀의 말이 맞았다.

“노빌리아를 먼저 찾았어야 했어.”

당장 눈앞의 현실에 급급해서 부부검만 수색했던 것이 실수였다. 어린 조카가 검을 가지고 도망쳤을지도 모르는데.

그 망아지.

조카를 떠올릴 때면, 보르고 피에타는 언제나 나잇값 못하는 질투심이 따라왔다.

말도 못 하던 때부터 두각을 드러냈던 아이는 빠르게 성장했다.

타고난 실력을 드러내고 싶어 안달이 났던 그 주체 못할 혈기. 그 혈기로 아이는 보검을 쥐었고, 오러를 터득했다.

“…….”

부질없는 추억이었다. 추억이라고 할 만큼 애틋한 감상에 젖어 들 만한 것도 아니었지만.

보르고 피에타가 움직였다.

창에 희미하게 비친 그의 머리칼은 희뿌연 금발이었다. 젊었을 때는 제법 색이 진했다.

마치 햇살이 내리쬐는 밀밭을 연상케 하기도 했으나, 이제는 흰머리가 제법 나기 시작하면서 본래의 색을 잃어 갔다.

언제부터 잃었을까.

언제부터.

머릿속을 스치는 짧은 의문은 금방 사라졌다.

부질없는 고찰이었다.

지금 당장 중요한 건, 벽에 걸린 검을 떼어내는 것뿐이었다.

보르고 피에타는 검집에서 검을 천천히 뽑았다.

새하얀 검날이 화려한 조명을 등지고 선 보르고 피에타의 그림자에 잠겨 들었다.

쿵! 쿵!

이 검은 보르고 피에타가 가진 것 중에서, 아니, 시스토 제국에서 가장 훌륭한 명검이었다.

제국에서 가장 유명했던 도검장이 만든 검이었다. 그자도 이제는 죽은 사람이었다.

저에게 검을 줄 바에야 쇳물을 마시고 죽겠다는 노인네와 그의 도제들을 보르고 피에타가 죽였다.

쿵!

…쾅!

이제 굉음은 눈에 띄게 커졌다. 그리고 점점 가까워졌다. 벽이 무너지면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음까지 선명해졌다.

소리 속에 엉킨, 그러나 독보적이기까지 한 전류 터지는 소리도 뚜렷했다.

그 순간.

콰앙!

벽이 무너지는 동시에 보르고 피에타가 검을 크게 휘둘렀다.

크게 휘두른 검 위로 또 다른 검이 날아들었다.

벽이 무너지면서 생긴 뿌연 먼지 사리로 푸른 번개가 파직, 파직 요동쳤다.

두 검이 부딪히자 엄청난 폭음이 터졌다. 검과 검이 부딪혀서 내는 소리라곤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상황을 모르고 들었다면 폭탄이라도 떨어진 줄 알 정도였다.

“윽!”

저를 찍어 누르는 엄청난 힘을 끝내 견디지 못한 보르고 피에타가 반동을 이용해 뒤로 물러났다.

이내 먼지가 조금씩 가라앉았다.

“…라우스?”

보르고 피에타의 눈에 환영이 비쳤다.

죽은 사람이 서 있었다. 한 명은 늦게 태어난 주제에 감히 제 영광과 명예를 훔쳐 간 남동생이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그런 남동생을 빼닮아 고집스럽고 재수 없던 유스티아였다.

두 환영은 먼지가 완전히 사라지기 무섭게 겹쳐졌다.

조금 전까지 보르고 피에타가 서 있던 자리에, 낯익으면서도 낯선 사람이 우뚝 서 있었다.

“역시 살아 있었군.”

흩날리던 붉은 머리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찬란한 금발을 휘감은 푸른 전격은 그녀의 어깨, 팔, 다리를 타고 파직파직 내려왔다.

여자는 쥐고 있던 검을 검집 안에 넣었다.

“네가 가지고 있었느냐.”

“버러지가 사람 말을 하네.”

바다보다 푸른 눈동자가 눈앞의 삿된 것을 노려봤다.

서로를 노려보던 두 사람은 다시 검을 휘둘렀다.

콰쾅-!

또 한 번 폭탄이 터지는 듯한 굉음이 울리면서, 저택은 겁에 질린 것처럼 흔들거렸다.

***

피에타 저택에 잠입하기 전.

“지금부터 다들 제 말을 똑똑히 듣습니다.”

노아는 손가락으로 흙바닥에다 저택 평면도를 그렸다.

저택의 구조와 설치된 함정, 비밀 통로 위치 등을 대원들에게 상세히 알려 줬다.

그리고 작전도 곧장 세웠다.

“조를 나눕니다. 그리고 제가 신호를 보내면 대문 밖 트럭을 타고 영지 밖까지 도주하는 겁니다.”

“조는 어떻게 나눌 거지?”

레토의 물음에 노아가 바로 짝을 맞췄다.

“1조는 아미 치티아 중위와 벨라 토르 중사, 클라우스 구베르 하사가 증거를 확보합니다.”

증거가 있을 만한 곳은 집무실과 침실, 서재였다.

노아는 그중에서도 집무실 책상 2번째 서랍과 서재에서 문학 도서만 모아 놓은 책장의 3번째 칸을 의심했다.

“아버지는 물론이고, 할머니도 중요한 서류를 이곳에 보관하셨지. 그놈이 여전히 피에타가 미련이 있다면, 따라 하고 있을 거야.”

다음 조는 레토와 뮤트 플라치드 병장이었다.

“두 사람은 제 부모님의 유해를 찾아 주십시오. 플라치드 병장, 길은 중장님이 아실 테니 그냥 따라가면 된다.”

“대위님이 가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뮤트의 미간이 깊이 패였다.

말수 적은 뮤트 플라치드 병장이 정말 드물게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노아가 부모님의 유해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는 이 상황을 분하게 여겼다.

“오랫동안 기다리신 상황이셨을 겁니다. 그런데 왜….”

아까도 그녀는 대원들을 위해 제 부모의 유해를 포기하려 했었다.

“저희는 약하지 않습니다.”

“그래. 그러니까 맡기는 거야.”

뮤트는 저를 보며 쓰게 웃는 노아를 보자마자 입을 꾹 다물었다.

“…죄송합니다. 주제넘었습니다.”

“아니야. 걱정해 줘서 고마워.”

노아는 뮤트의 어깨를 가볍게 도닥였다.

그러곤 자신이 왜 이런 작전을 짜고, 이런 식으로 조원을 나눴는지 설명했다.

“보르고 피에타는 어차피 내가 상대해야 해.”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전에는….”

레토가 의아해했다.

가문을 이끌 능력은 없고, 그렇다고 제힘으로 무언가를 해낼 재능도 없는 질투쟁이.

분명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아하.”

레토가 뒤늦게 깨달았다.

“한 가문의 가주가 될 능력이 없다는 거지, 전투 실력까지 답이 없는 건 아니란 소리였군.”

노아가 바로 그거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제 아버지가 태어나기 전까진, 차기 피에타 가주로 불렸던 인간입니다. 오러를 쓸 수 있고, 그간의 경력도 무시 못 합니다.”

“마도구로 모습을 감추면….”

아.

아미는 조금 전에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인상을 팍 썼다.

은빛 단추에 새겨진 굴절마법은 무척 효율적이지만, 어디까지나 마법식으로 구현된 보조 도구였다.

“네 말마따나 기감이 좋은 사람에겐 들켜. 보르고 피에타에겐 효과가 없을 거야.”

“침입하는 순간 들킨다는 겁니까?”

벨라 토르 중사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래서 조를 나눠 움직여야 한다는 거군.”

레토는 이해했단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왜 혼자서 그 남자와 대결하려는 거지?”

“확인해 볼 것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노아는 어느 때보다 예민해진 제 감각에 집중했다.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느꼈다. 이 저택에 남아 있는, 저 말고 또 다른 오러들을.

너무도 익숙하고 그리웠던 오러는 그 긴 세월에도 변한 것이 없었다.

저의 부모님은 죽어서까지 변함없이 이곳에서 절 기다렸다.

“…이상한데.”

그래서 의아했다.

***

그 이상함을 확인하기 위해, 노아는 저 혼자 보르고 피에타를 습격했다.

보란 듯이 벽을 부수고, 사람들을 해칠 것처럼 위협했다.

“꺄아아아!”

“으아악!”

느닷없는 습격에 당황한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하며 도망쳤다. 노아는 도망치는 민간인에게는 손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제게 총구를 겨누거나 검을 휘두르려는 군인과 기사들은 빠르게 죽였다.

전신을 휘감은 푸른 오러는 번개처럼 으르렁거렸다.

마치 오랫동안 이 순간을 위해 인고했던 맹수가 웅크렸던 몸을 크게 활보하는 것처럼 거침없었다.

그렇게 오러로 감싼 몸으로 여기저기 활보했다.

내가 여기 있노라고,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냈다.

그래야 다른 곳에 숨어든 대원들에게 한눈팔지 않고 자신을 찾으러 올 테니까.

그리고 드디어.

“네가 가지고 있었느냐.”

“버러지가 사람 말을 하네.”

보르고 피에타와 마주했다.

“늙었네, 숙부님.”

노아는 제 기억보다 훨씬 늙은 남자를 무심하게 응시했다. 저보다 큰 키는 그대로지만, 눈높이는 이상할 정도로 비슷했다.

아니, 노아는 저자의 눈을 보자마자 알아챘다.

“…그렇군.”

그러곤 피식, 입꼬리를 느슨하게 올렸다.

“그렇구나, 그래. 역시 그런 거였어.”

영문 모를 혼잣말에 보르고 피에타가 미간을 찌푸렸다. 저를 눈앞에 두고도 무시하는 태도가 못마땅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노빌리아.”

제 앞에서 보란 듯이 오러를 휘두른 조카가 꼭 저를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이 불쾌하고 수치스러웠다.

꼭 너는 한 입 거리도 안 될 거라는 듯한 맹수의 가소로움이 느껴졌다.

복수할 가치도 없다는 한심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드디어 내게 복수를 하려고 온 거냐.”

“드디어는 무슨.”

노아는 수준 낮은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같잖단 표정을 지었다.

“난 피에타의 마지막 후계자로서 끝을 내려고 왔을 뿐인데.”

오러를 완전히 거둔 노아가 검을 들었다. 날카로운 검날의 끝은 보르고 피에타의 목을 겨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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