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
피에타는 천년이란 긴 세월을 버틴 가문인 만큼, 알려지지 않은 비밀도 무수히 많았다.
그중 가문의 보검인 마스와 피에타는 극비 중 극비였다.
“피에타 그놈, 그러니까 노아 생부 말이야. 갑자기 나보고 최대한 빨리 자기를 좀 찾아와 달라고 하더라고.”
당시 글로리아는 급한 호출에 그해 하계 휴가와 연차를 전부 끌어모아 제국행 여객선에 올랐다.
그때는 전쟁이 일어나기 정확히 4개월 전이었다.
“갔더니 그놈이 느닷없이 그리 알려 주더라고.”
“…꼭 직감한 것 같은데?”
자신의 죽음을.
비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알기로는, 피에타 가문은 망명을 준비 중이었잖아. 근데 왜 그런….”
“준비했지만.”
말을 가로챈 글로리아가 우유를 술처럼 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새낀 처음부터 제 두 딸만 보내려고 했던 모양이야.”
“어째서요?”
아스가 벌떡 일어났다.
“부모님이잖아요!”
꽉 쥔 주먹을 파르르 떨면서, 아스는 격양된 목소리로 물었다.
“그때 아가씨가 얼마나 작고 약했는데! 그런데 왜 자기 자식들만 왕국에 보내려고…!”
“피에타였으니까.”
글로리아가 반쯤 마신 우유 머그잔을 내려다 놓았다. 툭, 하고 잔이 테이블에 부딪히는 소리가 꽤 날카로웠다.
그게 꼭 아스에게 진정하라고 타이르는 것처럼 들렸다.
움찔한 아스는 뭐라 더 말하려고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결국 아무 말 않고 털썩 앉았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피에타여도, 그 전에 두 아이의 부모님이잖아요.”
“아마 본인들도 많이 생각했을 거야.”
“무슨 생각을 했기에 자기들만 먼저 죽을 생각을 했대요? 그 때문에 작은 주인님이랑 아가씨가 얼마나 고생을…!”
소리치려다 멈칫한 아스가 소매로 눈가를 꾹꾹 눌렀다. 그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글로리아와 비스가 아이고, 하며 큰 손녀를 다독였다.
“…둘을 위해서였을 거다.”
비스는 피에타 백작 부부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피에타 가문의 망명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했어.”
그들은 제국에서 유일하게 전쟁을 반대했던 가문이다.
물론 반전을 외친 귀족들은 많았다. 하지만 황제의 뜻이 너무 강했고, 이에 반대하는 충언을 외쳤다가 죽은 귀족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니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피에타는 제국에서 전쟁을 반대한다고 표명할 수 있었던 유일한 가문이었다.
그러니 황제의 눈밖에 단단히 날 수밖에 없었다.
제국과 황실을 위해 충성해야 할 가문이 어느 시점에서부터 황실에 반하는 노선을 타더니, 이젠 대놓고 반대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결국 피에타는 엄중한 감시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피에타 백작 부부는 자신들과 관련된 사람들이 피해를 대신 입는 것을 가장 걱정했지.”
그들의 망명 계획을 주도적으로 돕고 있었던 글로리아도 전운이 감돌던 때에 몇 번이나 권유했다.
제발 네 딸을 생각하라고.
나머지는 전부 자신이 지원해 주겠다고.
몸만 빠져나오라고.
안 그러면 너희 다 죽을 거라고.
하지만 피에타 백작 부부는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노아를 왕국으로 보낼 준비는 마쳤으나, 저택에 고집스럽게 남은 고용인들을 두고 갈 수가 없었다.
“그러다 클라레가 생겼고….”
전쟁도 발발했다.
글로리아는 시스토 제국에 함부로 갈 수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해군을 이끌고 함선에 올라, 제국을 공격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피에타와 연락도 끊기고, 꽤 골치 아팠는데….”
그러던 중.
웬 햇병아리 하나가 나타났다.
임관식도 치르지 않은 사관생도가 80kg짜리 신형 무기를 등에 이고, 몇 날 며칠을 쉬지 않고 바다를 건너 제국에 침투했다.
그 덕에 다른 병력도 뒤이어 제국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글로리아 역시 그때를 틈타 피에타 영지까지 올라갔다.
“…노아는 피에타 영지 밖에 있는 마을에 숨어 있었어.”
썩 즐거운 회상은 아닌지라, 글로리아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팍 쓰고 말았다.
벌써 7년이 지났는데도 그날 느꼈던 오감이 여전히 생생했다.
“살기가 가득했지.”
하필 그날은 비가 왔었다.
비에 홀딱 젖은 쥐새끼처럼 웅크리고 있던 작은 몸, 온몸에 묻어 있던 검붉은 피, 제대로 씻지 못해 떡지고 헝클어진 금발.
한 손에 든 이 빠진 검.
그리고 제 가슴팍에 품고 있던 무언가를 가리려던 또 다른 팔.
그 속엔 울 힘도 없어 축 늘어진 갓난아기가 있었다.
“나중에 들은 거지만, 같이 도망쳤던 유모가 있었다더군. 노아 혼자선 클라레를 먹여 키울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유모가 도망가던 길에 죽었다고 한다. 노아와 클라레를 노리고 쫓아온 황실 기사를 막아서다가.
그렇게 살아남은 노아에게 남은 건 품에 안긴 동생과 독기뿐이었다.
“날 보자마자 검을 휘둘렀지. 내가 누군지도 모르더라고. 이지를 완전히 잃은 상태였어.”
그 와중에도 클라레가 다칠까 봐 오러는 쓰지 않았다.
가까스로 노아를 진정시킨 글로리아는 제 막사에 아이들을 숨겨 뒀다.
전쟁고아라고 둘러대며 당시 특수 부대에서 근무했던 베닝, 그러니까 현 아드벨로 수도 저택의 집사에게 아이들을 맡겼다.
그리고 자신은 피에타 영지 저택에 입성했다.
“다 죽었더라고.”
온통 시체였다.
하녀복을 입은 젊은 여자, 조리 도구를 쥔 채 쓰러진 주방장, 잡일을 돕는 어린 소년까지.
그리고 그 중엔 피에타 백작 부부도 있었다.
“시체를, 가져올 수는 없었나요?”
아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글로리아는 고개만 가로저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설명은 비스가 대신해 줬다.
“그때 글로리아는 오케아누스 장군, 그때는 대장이었지. 어쨌건 그 사람의 후임으로 지목되었어.”
차기 해군 대장으로 내정된 사람이 적국의 귀족을, 그것도 시신을 왕국으로 가져오는 것은 상당히 눈에 띄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당시 아들라보르 국왕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시체를 숨겼지.”
“어디로요?”
“수도로.”
글로리아는 두 사람의 시신을 차에 실어, 수도 황성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 저택의 어느 은밀한 곳에 시신을 숨겼다.
“노아는 언젠가 반드시, 그곳으로 갈 것이니까.”
글로리아는 모든 것을 의심했다.
이 전쟁은 여러모로 의아한 점이 많았다.
애초부터 연합국에는 승산이 없는 전쟁이었다.
전쟁을 은근히 부추기는 신성청의 행보도 의심스러웠고, 역공전이 성공하였음에도 불만을 드러내는 국왕의 시큰둥한 반응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마스와 페미나도 내가 챙기고 있다가, 노아가 영관급 장교로 진급할 즈음에 해군을 통해 슬쩍 건네려고 했었어.”
“그걸 큰 주인님이 가지고 계셨던 거예요?”
아스가 진심으로 화를 냈다.
“그거 찾으려고 작은 주인님이 얼마나 고생하셨는데!”
“그래서 못 준 거야.”
“어째서요!”
“만약 그때 노아한테 검을 줬다간, 걔가 어떻게 했겠어.”
“그거야…!”
당연히, 라고 말을 꺼내려던 아스가 멈칫했다. 그러고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국으로 바로, 가 버렸겠네요.”
글로리아는 바로 그거란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시간을 좀 두고 주려고 했어. 당장 뛰어들어 봤자 자살 행위밖에 더 되냐고.”
그래서 노아가 어느 정도 실력과 경험을 쌓고, 제국으로 넘어가도 될 작전에 참여할 수 있을 정도의 인정을 받을 즈음.
“어쨌건 진급할 때가 되어서, 검을 주려고 손을 썼더니….”
“못 받았잖아요. 작은 부군이 진급을 방해….”
아.
아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쩐지….”
비스가 너털웃음을 흘렸다.
“당신이 그걸 용케 허락했다, 싶었지. 문제 삼지도 않았었고.”
“난 못해도 5년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어.”
사실, 이것도 아주 짧게 예상한 것이었다.
사관학교를 갓 졸업한 생도는 소위 직위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소령까지 진급하기 위해선 최소 10년이었다.
운이 좋아 잘 풀려야 8년 정도고.
그런데 노아는 무려 2년 만에 영관급까지 진급할 뻔했다.
전공으로 중장까지 오른 레토 오케아누스와 비견될 정도로 엄청난 능력이었다.
오히려 해군에선 레토보다 노아를 높이 평가하는 의견도 있었다.
“솔직히 줄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그래도 영관급이 되었으니 마스와 페미나를 내놓긴 했는데.
“…푸하하!”
글로리아가 느닷없이 배꼽을 잡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 미친놈이! 노아의 진급을 막아 버리고, 검까지 가로채 간 거야! 하하하! 진짜 엄청나지 않냐?”
7년 전, 노아를 구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 것도.
훗날 노아의 검을 빼앗고 진급을 막았던 것도.
그리고 노아와 함께 제국으로 넘어가 그녀의 한을 풀어주는 것도.
“이게 운명이란 건가, 싶더라니까!”
전부 레토 오케아누스였다.
***
멜라니 벨리피아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은 뒤, 보르고 피에타는 매일 즐겨 마시던 술을 단번에 끊었다.
대신 시가를 미친 듯이 피워 댔다.
이따금 청소하러 들어오는 고용인들이 저도 모르게 오만상을 쓸 정도로, 그가 오래 머무르는 공간엔 항상 매캐한 냄새가 났다.
하지만 누구도 그에게 욕을 하거나, 하다못해 건강을 위해서라도 연초를 줄이시라는 충언도 못 했다.
애초에 그 정도의 충성심을 가진 사람도 없지만.
충성스러운 명예를 빛내던 피에타 가문은 멸문했다.
그리고 멸문시킨 장본인이 바로 보르고 피에타였다.
홀로 남은 그는 여전히 귀족이고, 피에타의 핏줄이었다.
하지만 피에타는 멸문했다. 그는 피에타의 성씨를 쓰지만, 더는 피에타가 아니었다.
그래서 보르고 피에타는 가문의 보검을 미친 듯이 찾기 시작했다.
그것만 있으면 다시 피에타 가문을 일으킬 수 있고, 잃어버린 제 명예와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었다.
“…….”
보르고 피에타는 벌써 몇 개비째인지도 모를 시가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그러고는 시가를 쥐었던 제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오래된 굳은살이 가득한 손바닥이었다.
보르고 피에타는 제 몸속의 마력을 움직였다.
몸속을 흐르던 마력이 곧 난폭하게 꿈틀거렸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약한 정전기처럼 파직, 하는 것을 끝으로 마력은 유순하게 흘렀다.
손바닥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