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메스껍다고 해야 할지.
여관을 빙자한 범죄현장에는 마약을 옮기는 용도로 보이는 트럭이 한 대 있었다.
대원들은 우선 마약부터 찾았다. 마약은 금방 발견되었다.
이 망할 황실 첩보원들은 신선도를 이유로 마약을 식당 내 업소용 대형 냉장고에 보관해 뒀다.
그걸 트럭에 옮긴 뒤, 레토와 클라우스 구베르 하사가 운전석에 올랐다.
나머지는 차 트렁크에 올라탔다가, 저택에 도착하기 전에 내렸다.
“이 야심한 시간에 갑자기 마약을 가져오라니….”
“사람들 눈에 안 띄려는 의도라기엔, 갑자기 모두를 데려오라는 명령이 의심스럽군.”
“피 냄새가 비릿하게 느껴지지 않아?”
레토는 걸려왔던 전화의 의도를 의심했다.
그래서 계획한 대로 노아와 아미, 벨라 토르 중사가 내려서, 주변에 숨어 있던 무장 세력을 기습했다.
“주머니엔 딱히 뭐 없습니다.”
“담배와 열쇠, 조그만 휴대용 칼….”
“기사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군인일지도 모르겠군.”
“병력을 이렇게 사적으로 쓴다는 건 역사에서 자주 본 정권 종말의 징조인데….”
죽은 남자들에게선 딱히 건질 것이 없었다. 그나마 열쇠와 칼이 있어서 그것들만 따로 챙겼다.
그 뒤엔 시체를 트럭 뒤로 숨기고, 트렁크에 실어 뒀던 주황색 천으로 덮었다.
“그럼 이제 들어갈 일만 남았군.”
눈앞에 있는 피에타 저택으로.
레토가 그리 말했지만, 누구도 쉬이 발을 떼지 못했다.
이미 굴절마법으로 모습을 감춘 상태인데도 다들 조심스러운 행동이었다.
“피에타 영애.”
“…….”
멍하니 저택을 올려다보던 노아가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돌렸다.
“…뭡니까, 그게.”
그러곤 피식 웃어 버렸다.
레토는 한 손을 등 뒤에 감춘 채 허리를 살짝 굽혔다.
마치 동화책 속에 나오는 멋진 왕자님이 아름다운 공주에게 춤을 신청하는 것처럼.
조금 전 피비린내 나는 상황이 꿈처럼 느껴질 정도로 근사한 모습이었다.
“영애의 자택에 발을 들여도 되겠습니까.”
“제 허락이 필요합니까?”
“당연하지 않습니까.”
레토가 능청스럽게 굴었다.
“이 아름다운 저택의 주인은 영애, 그대뿐이니까요.”
다른 누구도 아닌 노아의 것.
레토는 저택 부동산의 소유주를 한 번 더 강조했다.
뺀질뺀질한 태도가 아주 조금 얄미웠지만, 노아는 덕분에 가라앉았던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래, 저 얄미운 능구렁이는 늘 제 기분을 이렇게 풀어 줬지.
“연회를 열어야겠습니다.”
노아는 레토가 내민 손 위에 제 손을 살짝 얹었다.
귀족 영애의 것이라기엔 굳은살이 덕지덕지 박여 있고, 자잘한 흉터도 있고, 계속된 임무로 눈에 띄게 거칠어진 손이었다.
그러나 피에타와 가장 어울리는 손이기도 했다.
“피의 연회를 말입니다.”
진정한 피에타의 후계자가 모두를 연회에 초대했다.
초대받은 대원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저택으로 발을 내디뎠다.
현관 대문은 조금 전 죽은 남자들이 반쯤 열어놔서인지 수월한 입장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 순간.
“……!”
노아는 숨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쾅쾅 뛰는 심장에 놀라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그리고 그건 레토도 마찬가지였다.
“…….”
“…….”
둘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왜 그래?”
아미가 움직이지 않는 두 사람을 재촉하듯 불렀다.
“들키려고 환장했습니까? 훤히 뚫린 대문 앞에서 뭐 하는 겁니까! 어서 빨리 움직여야 한다고!”
그래도 반응이 없자, 결국 아미와 다른 대원들이 두 사람을 근처 정원 나무 뒤로 숨겼다.
간발의 차이로, 저택 현관에서 소총을 등에 멘 남자들이 나왔다.
아미가 소리 죽여 화를 냈다.
“둘 다 미쳤어? 아까 저 앞에서 지랄하더니 정신머리가 진짜 춤추다 허리 빠진 것처럼 빠졌어?”
갓 입대한 이등병도 저지르지 않을 실수나 저지르고!
“굴절마법으로 모습을 감췄다고 해서 기감이 좋은 것들은 알아챈…!”
“…어.”
“뭐?”
화를 내다 멈칫한 아미가 눈살을 찌푸렸다.
“…있어, 있다고!”
노아는 제 허리춤에 찬 마스를 반사적으로 움켜줬다.
쾅! 쾅!
제 심장처럼 요동치는 박동질이 손바닥을 타고 느껴졌다.
그제야 노아는 제 심장을 뛰게 만든 것이 마스란 사실을 알아챘다.
“이게 무슨….”
놀라기는 레토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허리에 찬 페미나를 믿을 수 없단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곤 노아를 바라봤다.
“왜, 왜 그러십니까?”
클라우스가 물었다.
“이거 진짜….”
레토는 믿을 수 없단 듯이, 정말 넋 나간 얼굴로 제 턱을 한 손으로 연신 쓸어 만졌다.
“…정말이었군.”
결혼 전, 노아가 해 줬던 그 말을 이제야 이해했다.
“…부모님의 시신은 제국 어딘가에 묻혀 있어.”
“자세하게 말해 줄 순 없어. 하지만 부모님의 시신은 어떤 사람이 은밀한 곳에 숨겨 뒀다고 했어.”
“마스와 페미나는 부모님의 시신을 찾아 주는 단서야.”
“두 검을 가지고 제국에 가 보면 알아.”
마스와 페미나가 반응했다. 그리고 알려 주고 있었다.
피에타 백작 부부가 있다고.
바로 여기에, 그들이 있노라고.
레토가 충격에 겨워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사이.
“…….”
노아는 7년 만에 돌아온 제집을 눈앞에 두고도, 심지어 이곳에 제 부모님의 유해가 있단 사실을 알았음에도.
울음은커녕 웃음이 나왔다.
‘빌어먹을…!’
지금 이 순간, 드디어 간절히 바랐던 순간을 눈앞에 두기 무섭게 누군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돌아가신 친부모님도 아니고, 하나뿐인 혈육인 클라레도 아니었다.
만악의 근원인 디모네 닉스나 보르고 피에타도 아니었다.
‘…할머니!’
글로리아가 보는 사람 속 터지도록 얄밉게 웃고 있었다.
* * *
“음?”
글로리아가 문득 간지러워진 오른쪽 귀를 만지작거렸다.
“왜 그래?”
“갑자기 귀가 간지러워서.”
“누가 당신 욕이라도 하나?”
“그러면 네 욕은 내가 해 주마. 같이 장수해서 천년만년 살자고.”
늦은 밤.
오랜만에 일찍 퇴근한 글로리아와 비스는 거실 소파에 앉아 느긋한 휴식을 보내고 있었다.
아비스가 발동된 이후로 거의 처음 갖는 여유였다.
“오늘 클라레는 비스 당신이 재웠다면서?”
글로리아가 저 대신 제 귀를 만져 주던 비스의 손을 치우며 물었다.
“꿈나라로 벌써 떠났지. 지금쯤 식칼토끼와 즐겁게 세상을 정복하고 있지 않을까?”
“하여튼 귀여운 녀석이라니까.”
하지만 아이가 평소보다 기운이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클라레는 잠들기 전, ‘언니랑 형부는 언제 올까? 늦게 오면 언니 방에 있는 라디오 내가 가져갈 거야!’라고 도둑질을 예고했다.
“오늘로 벌써 일주일째네.”
“작은 주인님이랑 작은 부군이 출장 간 날 말이죠?”
아스가 따뜻한 우유가 담긴 머그잔 3개를 가져오며 말했다.
“야, 난 술 가져오라고 했는데?”
“큰 부군께서 우유로 바꾸시라고 해서요.”
“야.”
“요즘 술을 너무 마시니까, 좀 줄이는 게 좋죠.”
비스가 싱긋 웃으며 그렇지 않으냐고 물었다. 글로리아는 풀 죽은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아이고, 내 유일한 낙이….”
“당신의 유일한 낙은 나인 줄 알았는데.”
“뭐, 그렇기야 하다만.”
결국 글로리아가 군말하지 않고 따뜻한 우유를 홀짝였다.
“저, 그런데요.”
아스가 천장 위를 잠시 힐끔거렸다.
그녀는 꿈나라에서 열심히 식칼토끼와 세계 정복 중인 어린 아가씨를 떠올렸다.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뭐?”
“그, 작은 주인님의 친부모님의 유해….”
“아하.”
아스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지만, 다행히 글로리아가 눈치껏 그 뒷말을 예측해 냈다.
“유해를 어떻게 찾느냐고? 그거 검으로 찾는다더라.”
“검이요?”
아스가 영문을 모르겠단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맥 찾듯이 검을 쥐나?’
아스는 노아가 양손에 수맥봉처럼 검을 잡고 땅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그게 너무 웃겨서 그만 웃음이 삐질 새어 나왔다.
“네 상상도 웃기긴 한데.”
글로리아도 덩달아 피식거렸다.
“아마….”
으음.
잠시 말을 아끼던 글로리아는 언젠가 피에타 백작이 들려줬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오러는 사람의 몸에 흔적을 남긴다더라.”
“흔적이요?”
하지만 아스는 노아의 몸에서 이상한 흔적을 본 적이 없었다.
“작은 주인님의 몸엔 딱히 그런 흉터가 없는데요? 알았다면 작은 부군께서도 눈치를 챘….”
“피부에 남는 게 아니야.”
글로리아가 제 손목을 움켜쥐며 말했다.
“뼈에 남는다더라.”
“네에?”
저도 모르게 소리친 아스가 서둘러 입을 다물었다.
비스 역시 처음 듣는 소리였는지, 쓰고 있던 안경이 살짝 움찔했다.
“뼈에 흔적이 남는다니?”
“나도 자세히는 몰라.”
글로리아는 비스의 안경을 고쳐 주며 대답했다.
“나라고 그 뼈를 봤겠어? 하지만 대충 이해는 되더라.”
오러는 마력을 제련하여 만든 일종의 무기다.
혹독한 훈련으로 몸속의 근원을 날카롭고 거칠게, 그리고 단단하게 벼른다.
그렇게 되면 마력은 체내에서 오러로 변환된다.
세상에서 가장 파괴적인 무기가 완성되는 것이고.
이는 즉, 오러를 쓰는 사람이 무기가 되는 격이었다.
“오러의 가장 큰 특징은 신체를 강화시킨다는 거지.”
“그 영향이 뼈에 간다는 건가요?”
“아무래도 피부와 달리 체내에 있는 신체 기관이고, 뼈가 튼튼해야 오러를 활용하기에 편리하니 영향을 가장 많이 받겠지.”
“어떻게 변하는 건가요?”
“…….”
글로리아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너, ‘아우라’라고 아냐?”
웬 전설의 광물 이름을 물어봤다.
“…아가씨 어릴 적에 읽던 동화책에 나오는, 그거요?”
아스도 익히 알고 있다.
“동화책에서 용사가 쓰는 검을 만드는 재료였던 거로 기억하는데. 맞죠? 좀 오래된 고전 소설에도 나오고요.”
“그게 그거야.”
“저기, 제가 이해를 잘….”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요청하려던 아스가 숨을 헉 들이켰다. 그러곤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
하지만 바르르 떨리는 몸은 어떻게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그 뼈가, 광물이라고?”
충격을 받은 건 아스만이 아니었다.
비스가 드물게 격해진 표정으로 글로리아의 몸을 제 쪽으로 잡아 돌렸다. 글로리아는 그런 남편의 어깨를 툭툭 가볍게 두드렸다.
“당사자가 그러더라고.”
아우라가 전설의 광물로 취급되는 건, 그 누구도 아우라가 묻힌 광산을 본 적이 없어서였다.
왜냐하면 그건 애초에 ‘광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피에타의 보검은, 선조들의 뼈로 만들었다더라.”
마스와 페미나가 오러를 흡수하고, 저장해서 방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따로 없었다.
그것들은 이미 처음부터 오러를 머금은 사람의 뼈로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