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
레토는 바로 주인장을 처리했다.
처리 방법은 간단했다. 레토 오케아누스가 7년 전에 ‘미친개’라는 영광스러운 별명을 얻게 된 방법이었다.
뜯겨 나간 주인장의 목은 순식간에 바닥을 굴렀다.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표정이 멍청했다.
“우웩.”
비위가 약했던 클라우스 구베르 하사가 고개를 돌려 구역질했다.
다른 대원들도 처음 보는 잔혹한 광경에 눈살을 찌푸렸다.
딱 한 명.
“얻을 정보는 얻고 죽이시지 그러셨습니까.”
혼자 태연한 노아가 바닥에 고꾸라진 주인장의 몸뚱이를 내려다보며 투덜거렸다.
죽고 나서야 주제 파악하고 고개 숙이는 주인장이 참 한심스러웠다.
“…….”
레토는 그런 노아를 의아하게 바라봤다.
하지만 곧 기쁘다는 듯이 웃었다.
“우리 대위는, 이런 나도 사랑하는 건가?”
“안 사랑했으면 결혼했겠습니까?”
또 이상한 질문하고 있네.
노아는 제발 공사 구분 좀 하라는 잔소리 말고는 딱히 부정적인 분위기를 풍기지 않았다.
대신 애먼 대원들만 진절머리를 쳤다.
“아, 쫌!”
기어코 아미가 소리쳤다.
“장소 가리면서 분위기 타라고! 여기 방금 사람 하나 죽어 나갔다고! 네 남편 손에! 그리고 다른 피해자들도 죽은 곳이라고!”
“치티아 중위는 질투하나 봐.”
레토가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아오, 저 인간 진짜 중장만 아니었어도…!”
씩씩거리는 아미를 뒤로한 채, 노아가 아까 하다 만 말을 이었다.
“너무 급하게 죽이신 것 아닙니까?”
“얻어낼 것도 없어.”
레토가 피 묻은 손을 아미에게 내밀며 말했다.
으으, 아미는 질색하면서도 정화마법으로 손을 깨끗하게 했다.
“저 문신까지 새겼다면 상당한 경력을 쌓았다는 뜻이야. 어지간해선 입도 안 열었을 거야.”
“그런데 황실 첩보원이라는 놈이 왜 이런 곳에서….”
클라우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원래, 어느 국가든, 어두운 일을 담당하는 부서가 존재한다.
아들라보르엔 테네브레가 그런 존재였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불법도 감수하는 필요악이었다.
하지만 그 불법적인 단행은 모두 국익을 위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리고 절대 국민을 해치지 않는다는 기본 중의 기본적인 상식도 존재했다.
테네브레가 아무리 수많은 불법을 저질러도 제 나라 사람을 죽이고 다치게 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런데 조금 전 특함이 죽인 황실 첩보원들은 마약을 만들었고, 제 나라 사람들을 수도 없이 죽였다.
“…중장님.”
묵묵히 주변을 살피던 뮤트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웬 잡동사니가 가득 들어 있는 낡은 바구니였다.
피해자들의 유품이었다.
“…….”
아미는 말없이 성호를 긋고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역시.”
노아가 레토에게 말했다.
“너무 쉽게 죽이셨습니다.”
“그러게.”
조금 더 고통을 안겨 줄 것을.
레토는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
특함 대원들은 일단 시체부터 치웠다. 바로 없애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지하실 구석에 대충 처박아 뒀다.
그리고 여관을 본격적으로 수색했다.
“그런데 황실 첩보원이 왜 이런 곳에 있었던 건지 의아합니다.”
장부를 살피던 벨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국민을 대상으로 저런 미친 짓까지 저지르고….”
“그만큼 황실이 제 역할을 못 한다는 뜻 아니겠어?”
“혹시 황실에서 일부러….”
“쉿.”
또 다른 장부를 살피던 아미가 벨라의 말을 끊었다.
드물게 단호하고 냉혹한 아미의 눈빛에 벨라가 흠칫거렸다.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자신들은 밀입국한 간첩 신분이다.
이 나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설령 얼마나 심각한 범죄가 성행한다고 한들.
자신들이 걱정하고 참견할 일이 아니었다.
“…뭐, 그래도.”
태도를 누그러트린 아미가 아무 일 없었단 듯이 중얼거렸다.
“확실히 이상하긴 해. 이런다고 무슨 이득이 있다고.”
아미는 피해자들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쯧, 하여튼 보통 미친 게 아니야. 여행객들은 물론이고 골목길 부랑자들에, 귀족까지 죽은 거 같던데.”
바구니 안에는 대부분 오래되고 손때가 묻은 물건들이 많았다.
하나 개중엔 고가로 추정되는 장신구도 들어 있었다.
즉, 피해자들은 나이, 성별, 신분에 공통점이 없었다.
“뭐 때문에 이들의 표적이 된 걸까?”
“아니, 애초에 국가 공무원이 이런 짓을 하는 것부터가….”
또 울컥해 벨라는 이것저것을 투덜거렸다.
“그나저나 이건 무슨 단어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제국어가 있었나?”
“뭔데?”
“이거지 말입니다.”
벨라가 가리킨 페이지를 쭉 살펴보던 아미의 눈이 마구 흔들렸다.
“…야!”
“아, 시…, 아니, 깜짝이야!”
반사적으로 튀어나올 뻔한 욕을 서둘러 삼킨 벨라가 사람 놀라게 왜 이러시냐고 투덜거렸다.
하지만 장부를 노려보는 아미의 시선이 심상치 않았다.
벨라는 눈치껏 장부를 아미에게 넘겼다. 그리고 다른 대원들을 불러왔다.
위층 객실을 살피던 클라우스와 뮤트, 지하실을 조금 더 둘러보던 노아와 벨로가 올라왔다.
“뭐 알아냈어?”
옆에 앉은 노아에게, 아미가 장부를 넘겼다.
“이거, 그냥 장부가 아니었어.”
“본론부터 말해 주라.”
“마약 제조법이야.”
장부에 적힌 목록들은 재료의 약자였다.
그리고 아미가 그걸 알아챈 건, 벨라가 들고 있던 장부에 적힌 어떤 단어 때문이었다.
“이것 봐.”
아미가 어떤 단어 하나를 가리켰다.
“…….”
제국어를 읽을 줄 아는 노아와 레토의 표정이 빠르게 굳었다.
반면 교과서 수준으로만 제국어를 배운 다른 대원들은 더듬거렸다.
“프, 프세, 푸세식?”
“프세드 렐리.”
노아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제국어를 읽었다.
“예? 프세드 렐리?”
벨라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콜록! 그 프세드 렐리 말씀이십니까? 왕실 기사였던?”
“아니, 그 새끼는 지금 마약 때문에 재판….”
뭔가를 깨달은 클라우스가 조금씩 목소리를 줄였다.
“…그, 마약인 겁니까?”
말수 적기로 유명한 뮤트가 드물게 격양된 어조로 물었다.
“아마, 그런 모양이군.”
레토가 피곤하단 듯이 중얼거렸다.
프세드 렐리.
지금 아들라보르에서 가장 주목받는 범죄자의 이름인 동시에, 해군에선 이 망할 범죄자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올봄에 해군에서 개인함선을 빼돌리는 범죄를 저지르려다 미수에 그쳤는데, 알고 보니 수도에서 마약을 재배, 제조하면서 간첩, 해적단과 내통한 천하의 쓰레기였다.
“그 마약이 해적단을 통해 제국으로 흘러간 건 알고 있었는데, 설마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레토는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그 사건을 여기서 다시 접하게 될 줄은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프세드 렐리가 어쩌면 알려진 것보다 아주 잔인한 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부에는 ‘프세드 렐리, 300’이라고 적혀 있군.”
“프세드 렐리가 밀수출했던 마약의 무게 단위 같습니다.”
장부를 마저 살피는 노아의 표정이 점점 험악해졌다.
“…황실 첩보원이 왜 여기서 그 미친 짓을 저질렀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이 맞다면, 이건 정말 끔찍하다 못해 절대 세상에 드러나선 안 되는 사실 중 하나였다.
“마약의 재료가….”
말하기도 너무 끔찍해서, 노아는 몇 번이고 심호흡한 뒤에야 가까스로 이 말을 꺼낼 수 있었다.
“마약의 재료가, 사람입니다.”
“…뭐?”
“마약 거래 장부가 아닙니다. 마약 제조에 들어간 재료 종류와 무게, 비율을 적은 겁니다!”
제국어를 알고 본다고 해도, 장부에 적힌 것은 이상한 내용이 아니었다.
[남자 세 명. 각 22, 34, 53. 3000L]
보통 사람들이 저걸 봤다면, 22살, 34살, 53살의 남자 세 명이 숙박해서 3000 라쿠를 벌었다는 내용으로 읽을 것이다.
저것만 있었다면, 말이다.
“‘남자’라 적힌 목록 바로 아래에 프세드 렐리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프세드 렐리의 이름은 계속 언급되지만….”
딱 하나, 바뀌는 게 계속 있었다.
“남자, 여자, 혼성, 나이….”
이것들만은 계속 바뀌었다.
아주 어린 아이도 있고, 나이가 지긋한 노인도 있었다.
몇 장을 넘기면 ‘푸른 피’라고 적힌 것도 있었다. 푸른 피는 귀족을 상징하는 관용어였다.
평범한 장부가 아니었다.
“실험 일지야.”
아미가 눈을 질끈 감으며 장부를 닫아 버렸다.
알 만큼 알았으니, 이젠 이 끔찍한 것에서 눈을 떼고, 요동치는 마음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다.
“와, 진짜…!”
하지만 이 불쾌한 흥분은 쉬이 가라앉을 여지가 안 보였다.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까지 타락할 수가 있어! 사람이 정도라는 게 있지!”
아미는 실로 오랜만에 분노했다.
신성청에서 이미 인간의 밑바닥을 경험했다고 여겼다. 그래서 어지간한 악행은 가소롭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그런데 이건 뭐냔 말이다.
사람의 피로 만드는 마약이라니.
심지어 프세드 렐리가 제조하고 밀수출한 마약이다. 그리고 그 마약에 신성청도 어느 정도 관련된 정황이 있다.
“…X발!”
울분을 참지 못한 아미가 벌떡 일어나, 손에 들고 있던 장부를 집어 던졌다.
“증거다. 주워.”
물론 레토의 명에 바로 장부를 주웠다. 바닥에 떨어져서 묻은 먼지도 손바닥으로 탁탁 털었다.
“…제가 한 달 전에 참여했었던 간첩 체포와 관련된 것 같습니다.”
노아가 최대한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들 기억할 겁니다. 샤프 영지에 잠깐 반짝거렸다가 바로 체포되었던 불법 폭력 조직 단체.”
이때 특함이 경찰 지원에 응해서 노아를 파견, 체포 작업에 참여했었다.
“그때 제국에서 마약과 불법 무기를 밀수입한 조직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간첩도 체포했었습니다.”
“관련이 있을 거라고?”
“관련만 있는 게 아닙니다.”
어쩌면 그때 그 불법 단체를 은밀하게 지원했던 흑막이 바로 황실 첩보원일지도 모른다.
“마약을 밀수출했던 건, 사실 그 불법 단체를 통해 역으로 만들라고 표본을 보낸 걸지도 모릅니다.”
“장부 전부 챙겨.”
대원들이 장부를 챙기는 사이.
“아무래도 이거….”
레토는 노아를 따로 불렀다.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혹시, 너도 나랑 같은 생각일까?”
“마음이 통해서 좋습니다.”
노아가 불쾌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이거, 그 약물의 제조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도 구치소에서 풀루스 대위를 만나고 돌아오던 길.
“오케아누스 중장이 조금 전에 말했던 대로, 저건 어떤 특정 마약류에 의한 증상이야.”
“이건 검출이 안 돼.”
“약물이 뇌에만 쌓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