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
특함 여섯 명이 수도에 도착한 건 해가 지고 어둑해진 저녁 시간이었다.
마부는 오늘은 평소보다 빨리 왔다며 자랑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와아….”
“오….”
“우와…!”
“허….”
수도에 도착한 특함 여섯 명은 순서대로 입을 쩍 벌리며 감탄했다.
“뭐야, 다들 수도는 처음 와 본 건가?”
“쟤들은 처음 와 본 겁니다. 저희 둘은 아니고요.”
마부에게 감사의 의미로 삯을 더 얹어주던 레토가 철저하게 선을 그었다.
그의 옆에 있던 노아도 감탄하는 대원들 사이에 끼진 않았다.
하지만 다른 의미로 큰 충격에 빠져 있었다.
“선생님께서도 오늘 수도에서 머무르십니까?”
“아니, 가까운 곳에 있는 역참이 있어. 마부들은 거기서 말을 맡기고 하룻밤을 묵지.”
마부가 가 버린 뒤.
대원들은 그제야 수도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시스토 제국의 수도, 시스토 황성의 첫인상은 ‘이분법’이었다.
‘이렇게까지 분위기가 다르다고?’
아미는 최대한 놀란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과연 수도는 수도였다.
황성은 여태 지나온 모든 영지, 마을들과 비교도 안 될 만큼 화려했다.
마동력차가 다니는 도로도 멀끔했고, 어두운 시내를 밝히는 가로등도 눈부셨다.
거리에는 부유한 차림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활보했다.
빈곤을 모르는 것처럼, 7년 전 전쟁을 아예 모르는 것처럼.
정말 기괴한 광경이었다.
왜냐하면 시선을 옆으로 조금만 돌려도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전쟁의 잔혹한 여파가.
“…….”
“…….”
특함 대원들은 최대한 건물 사이사이로 난 시커먼 골목길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가로등은커녕 불빛 한 점 없는 으슥한 골목길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골목 밖에 가로등 불빛이 환한데도 빛 한 줌 스며들지 못했다.
그래서 그곳에 몸을 움츠린 이들의 시선이 극명했다.
굶주리고 주저앉은 눈빛. 희망을 잃은 표정은 그들이 저 화려하고 기괴한 빛에 얼마나 많은 것을 약탈당했는지 방증했다.
개중 그나마 활기가 있어 보이는 것들은 특함 대원들을 힐끔거리며 음산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여섯은 좀 많은가?”
“차림새를 보니 돈은 없어 보이는데….”
“머리랑 얼굴을 봐. 잘 먹고 잘산 티가 나잖아.”
“좀 반반한 것들은 기절시켜서 7번가에 넘기면 크게….”
대화를 나누는 이들 사이로 은빛 물체가 흐릿하게 반짝였다. 조그마한 칼이었다.
하지만 위협은 전혀 되지 않았다.
대화를 알아들은 노아와 레토는 물론이고, 눈치로 상황을 읽은 특함 대원들이 한 번 째려보자 그들은 바로 꼬리 말고 도망쳤다.
겉으로야 검소한 시골 사람 행색이라지만, 특함은 업무상 범죄자 한두 명은 기본으로 죽여 본 경험이 있는 자들이었다.
“기가 막히네….”
어이가 없어진 벨라 토르 중사가 자신들에게만 들리게끔 속삭였다.
“저런 협박이 먹히는 줄 알고 저러는 겁니까? 이런 경험 처음이라 조금 재밌긴 합니다.”
“긍정적인 사고는 아주 좋은 거야.”
반면 아미는 살짝 불쾌한 상태였다.
“이게 정말 무슨 꼴이냐.”
눈앞의 화려함과 구석진 빈곤함.
이 두 가지가 동시에 공존하는 황성.
마치 이율배반적이기까지 한 현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많이 변하긴 했군.”
7년 전 역공전의 주역이었던 레토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봤던 황성은 전쟁의 여파로 무척 암울했었다.
아들라보르 해군의 군용차가 여기저기 있었고, 황궁 높이 펄럭이던 제국기는 그의 손에 낚아채져 떨어졌었다.
‘지금은 다른 의미로 무섭네.’
적어도 7년 전 황성은 패전의 분위기를 답습하고 있었다. 제국의 슬픔, 그 자체였다.
그런데 지금은 꼭 그 모든 것을 잊은 것처럼 보였다.
물론 힘든 과거를 잊고 발전하는 것이 나쁘단 건 아니다.
하지만 10년도 안 된 과거의 잘못을 잊은 듯한, 그리고 그 상흔을 떡하니 내버려 둔 이 꼬락서니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정말 건드리지 않아도 멸망하겠군.’
레토는 또 습관적으로 노아를 힐끔거렸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노아도 이번만큼은 충격이었는지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여섯 명은 저렴해 보이는 여관으로 들어갔다.
여태 머물렀던 곳 중에서 가장 비싼 곳이었다. 하지만 관리는 제대로 하지 않는지 더럽기도 가장 더러웠다.
“…외지인?”
50대로 보이는 초로의 남자가 방 열쇠를 두 개 주면서 말했다.
그는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여섯 명을 살폈다. 레토가 넉살 좋은 웃음을 짓자, 주인장이 시선을 거뒀다.
“타지에서 왔지? 수도는 처음인가?”
“그렇습니다. 저와 아내는 수도에 와 본 적이 있습니다.”
“밤에는 어지간하면 돌아다니지 마.”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아예 신문을 펼쳐 들고 대화를 일방적으로 끝내 버렸다.
대원들은 방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짐을 풀자마자 객실을 샅샅이 살폈다.
도청 장치나 감시 마법 등, 수상한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윽고 아미는 아주 신중하게 탐지 마법을 발동했다.
“…….”
무언가를 감지한 아미가 레토에게 무어라 보고했다.
고개를 끄덕인 레토가 말했다.
“이제야 절반의 성공이로군.”
수도에 들어왔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 역시 딱 1주일이었다. 결코 넉넉한 시간이 아니었다.
“…진짜 간첩 짓도 함부로 못 하겠네.”
레토의 가벼운 농에 대원들이 입꼬리를 피식거렸다.
확실히 수상하지 않은 척하며 돌아다니는 건 그들의 성미에 안 맞았다.
“주인장이 그러더군. 밤에는 어지간하면 돌아다니지 말라고.”
“치안이 좋지 않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벨라 토르 중사가 닫힌 창문을 살짝 열어봤다.
이곳 여관은 나름 광장 가까운 곳에 위치했지만, 바로 아래는 시커먼 골목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런 뜻이기만 하면 좋겠는데.”
반면 노아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짐작 가는 바라도?”
아미가 물었다.
노아는 대답하는 대신에, 등에 멘 마스를 대뜸 풀어내려 손에 쥐었다.
다른 대원들도 대화를 멈추고 옷 안에 숨긴 총을 꺼내 들었다. 소음기를 다는 것도 잊지 않았다.
“…….”
문에 귀를 댄 레토가 노아와 아미, 벨라 토르 중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나머지 남자 대원들에겐 조용히 하라고 손짓했다.
“아아, 피곤하다!”
노아가 대뜸 제국어를 구사했다.
“오늘은 남자들도 일찍 잘 것 같은데, 우리도 일찍 자자.”
“그러게나 말이에요.”
“나도야.”
노아의 자연스러운 말투와 달리, 제국어가 서툰 아미와 벨라는 교과서적인 문장을 책 읽듯이 뱉어냈다.
하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뮤트 플라치드 병장이 3초를 센 뒤에 불을 껐다.
그리고 레토가 문을 발로 쾅 걷어차는 순간, 마스를 뽑은 노아가 그대로 달려들었다.
“아악!”
검날은 문 뒤에 있던 주인장의 어깨를 찔렀다. 깊숙이 찔렀던 검을 뽑자 붉은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그 핏방울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노아는 문 오른쪽에 숨어 있던 괴한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X발, 저건 뭐…!”
반대편 왼쪽에 숨어 있던 또 다른 괴한들이 노아의 등을 향해 단검을 휘두르려는 찰나.
픽!
아미가 소음기를 착용한 권총을 발포했다.
제압은 금방 끝났다.
“윽, 으으…!”
피가 흐르는 어깨를 쥐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주인장 앞에 레토가 섰다.
주인장의 이마에 총구가 겨눠졌다.
“너무 흔해 빠져서 재미없어, 이런 경우는.”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린 레토가 비식거렸다.
하지만 흐릿한 조명 아래서 미동조차 없는 붉은 눈동자는 어떤 흉기보다 날이 서 있었다.
주인장은, 손님들을 덮치려 했던 괴한은 이마에 겨눠진 총구보다 절 내려다보는 저 붉은 눈동자에 위압감을 느꼈다.
“전부 죽었나?”
“주인장을 제외한 다섯, 전부 사망했습니다.”
노아가 마저 숨통을 끊은 괴한의 목에서 검을 빼냈다.
쿨럭, 쏟아진 피가 먼지로 뒤덮인 복도를 빠르게 적셨다.
“나머지 대원들이 여관을 뒤지는 중입니다.”
아미가 탐지 마법으로 감지한 곳은 건물 지하였다.
“중장님. 대위님.”
때마침 내려갔던 대원들이 돌아왔다. 그런데 표정이 하나같이 심상치 않았다. 그 속에 아미는 없었다.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벨라 토르 중사가 말했다.
여관에 다른 손님은커녕 사람들도 없다는 말에, 레토는 주인장의 멱살을 붙잡고 손수 지하까지 끌고 갔다.
계단에 부딪힐 때마다 그가 비명을 지르긴 했지만, 노아가 입에 쑤셔 넣은 수건 덕에 음소거가 되었다.
지하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미가 보고했다.
“마약과 인신매매의 흔적이 있습니다.”
지하실 내부는 온실이라도 되는 것처럼 후끈거렸다.
마약 제조 과정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이 만든 열기 때문이었다.
구석에 설치된 실험대 위엔 사용 흔적이 역력한 비커와 도구들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아래에는 생뚱맞은 얼음물과 이름 모를 풀더미가 가득했다.
“마약은 알겠는데….”
실험대를 짜증스럽게 노려보던 레토가 물었다.
“인신매매 흔적은 어딨지?”
“아래를 보십시오.”
아미의 말대로 아래를 내려다본 레토는 말을 잃었다.
“큭! 크윽…!”
그러고는 주인장의 목을 쥐고,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로 손에 힘을 실었다.
바닥에는 시커먼 얼룩이 가득했다. 처음에는 마냥 바닥이 시커먼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아니었다.
살점, 머리카락, 옷가지까지.
누군가가 이곳에서 얼마나 끔찍한 순간을 맞이했는지, 그것을 역력하게 보여 주는 광경에 특함 대원들은 말을 잃어버렸다.
“평범한 여관이 아닌 줄은 알았는데….”
들어서자마자 이상함을 감지했다.
제법 커다란 건물인데, 직원은 주인장 한 명뿐이었다.
바가지에 가까운 숙박비치고는 관리가 너무 부실했다. 손님도 없고, 식사 제공 서비스도 없었다.
“진짜 천운이 돕는 건지, 운이 없는 건지.”
“지금은 운이 좋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노아는 자신이 찔렀던 주인장의 어깨 쪽 옷가지를 잡아 뜯었다.
“대어를 물었습니다.”
피가 흐르는 어깨에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자그마한 네모 위에 겹쳐 그려진 큰 가위표 문신.
아들라보르에서 이 문신은 제국 간첩을 의미한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조용히 임무를 끝마치겠다는 의지를 상징하는 문신이었다.
그러니 시스토 제국에서 이 문신이 뜻하는 바는….
“…황실 첩보원이군.”
정체를 들킨 황실 첩보원의 눈빛이 살벌하게 번뜩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흉포한 붉은 눈동자가 가소롭단 듯이 첩보원을 제압했다.
“마약을 제조하고 인신매매하는 국가 공무원이라.”
레토는 목을 쥐던 손에 힘을 더욱 실었다.
“재밌네.”
아주 더럽게 말이야.